- 43 회 - 괴물
“와…? 긴장 되나…? 뭐 별 거 라꼬 표정 그카는데…?”
혜주와 함께 택시를 타고 김관수 관장과 지선, 오대표가 기다리는 토네이도 짐으로 가는 길. 현성이 왠지 모르게 조금 굳어 있는 얼굴을 하자 곁에 앉아 있던 혜주가 그 팔을 안으며 물음을 던진다.
물론 아무리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한 순간에 익숙해지는 일은 아닐 터.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상황이 꿈결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지 조금 멍한 얼굴로 혜주를 돌아보던 현성이 다시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냥 잠을 못 자가… 좀 그카는가 봐요.”
그 말에 혜주가 ‘내 때문이라꼬?’ 하고 그를 찌릿 노려보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상과 달리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혜주가 ‘어?’ 하고 조금 삐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당연하죠…’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도 남잔데…”
그 한 마디에 혜주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그를 바라본다. 조금 생각을 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굴리던 그녀가 ‘그카면 니, 내 자고도 못 잤나?’ 하고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게 또 뭐가 그리 좋은지 혜주가 ‘혹시 이상한 짓 안 했나 모르겠네!’ 하고 더욱 더 그의 팔을 꼭 끌어안는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참을성 있는 남자일 것이다. 물론 그 참을성이 어릴 때나 생각이 짧아질 떄에는 마냥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지금의 혜주처럼 세상 풍파를 모두 겪어본 사람에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보통의 마음으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끓어 오르는 혈기를 참기 힘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가만두었다는 것은…
“생각해보니까 내 좀 자존심 상하는데…? 가슴이라도 좀 안 만졌나?”
괜히 또 너무 참으니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한 그녀의 말에 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든다. 그리 놀리는 게 재미있는지 혜주가 히히 웃음을 터뜨리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택시 기사를 그제야 의식한 듯 입술을 앙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민망한 그 모습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고개 숙이던 혜주가 어느 샌가 발그레한 얼굴로 모른 척 하지만 이미 웃음이 터져버린 듯 그 팔을 안았던 손을 풀고 입을 가린 채 반달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왜 얘기 하지 않았냐 나무라는 듯 그의 팔을 찰싹찰싹 두드리자 괜시리 택시 기사도 뻘쭘했던지 ‘아… 둘이 사이가 엄청 좋네요!’ 하고 허허 웃음을 터뜨린다.
“남자 친구가… 완전히 복 잡았네.”
백미러에 비친 현성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며 그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자 현성이 ‘그렇지예…’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에 혜주가 아… 하고 어색하고 민망한 것을 참다가도 ‘아닌데요!’ 하고 당당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인다.
“예…?”
그의 물음에 그녀가 마찬가지로 도도한 얼굴로 아까의 실수는 인정하지만 이번은 택시기사의 실수라는 마냥 그의 팔을 다시 꼭 안은 채 대답한다.
“복은 내가 잡았죠. 영계 잡았잖아요! 키도 이래 크고, 인물… 음… 쪼끔 미흡해 보여도 야 눈이 얼마나 이쁜데요? 글고 다른 겉멋만 든 아들이랑은 차원이 달라요! 복은 내가 받은 거죠!”
열변 후에 ‘완전히 잘 생겼다곤 못 하겠다… 내가 좀… 이런 거는 냉정해서…’ 하고 속삭이며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푸훕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 용모가 매우 부족한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지만… 혜주가 그리 이야기를 해주니 마음 한 켠이 무척이나 간질간질하고 기분이 좋다.
만약 그녀가 잘 생겼다 이야기를 한다면 조금 민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헛된 기대(?) 가지지 않도록 사실을 이야기 해주니 민망한 기분도 덜하다. 그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하다는 생각에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자 혜주가 살짝 발그레한 얼굴로 ‘뭐?’ 하고 톡 쏘며 그를 바라본다. 이내 그가 말 없이 큰 손을 펴보이자 그녀가 ‘참 나…’ 하고 도도하게 웃으며 그의 손 위에 앙증맞은 손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함께 낀 깍지 손가락.
그 모습에 그저 허허 웃으며 택시 기사가 ‘아니, 진짜… 남자 입장에선 복 잡은 거지!’ 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진짜 내가 보기엔 그래, 아가씨도 그카겠지만… 진짜 남자 입장서는 아가씨가 아니라 총각이 복 받은 거 같은데…? 생긴 거 이래 이쁘고, 또 이래 남자 친구 잘 챙겨주는데… 안 글나? 총각!”
크~ 하고 엄지 까지 치켜든 택시 기사의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진짜로요. 진짜… 태어나가 제일 복 받았심다.”
그 진심이 담긴 대답에 택시 기사가 ‘아이고! 총각! 그캐도 부모님이 들으면 섭섭해 한다!’ 하고 허허 웃으며 이야기 하자 그저 대답 대신 현성이 웃음 짓는다. 그 모습에 혜주가 힐끔 그를 바라보며 마주 잡은 손을 꼭 쥐자 현성이 힐끔 그녀를 돌아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택시 기사의 말대로 그가 만난 가장 큰 복은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행복을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아직도 기억에 선 한 실수 덕분에 그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만 했으니까. 그때부터 은연중 품고 있던 죄책감. 그 괴로움 속에서, 많은 상처들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고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로 서혜주란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는 행운의 여신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그가 더욱 더 애틋한 맘을 담아 그녀의 손을 움켜쥔다.
“아이고마! 둘이 손에 땀띠 나겠다!”
“아저씨도 집에 가가 와이프 손 좀 잡아 주이소!”
놀리는 택시 기사에 지지 않고 혜주가 오히려 자랑하듯이 이야기 하자 그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내 우리 와이프가 아가씨 반만 닮았어도 당장 달려가뿌는데… 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의 모습에 혜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한다.
“현성이, 니는 나중에 저카지마레이! 내 나이 들어가지고 살도 찌고 뭐 그 칸다고…! 그러면 진짜 혼난다. 알겠나?”
뼈 있는 그 한 마디에 택시 기사가 ‘아이, 아가씨야! 그런 게 아이고!’ 하고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는 동안 현성이 택시 안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나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죽어도 안 캅니다.”
그 말에 택시 기사가 ‘에헤이!’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를 바라본다.
“캬… 뭐 우에 하겠노! 그래, 젊어서 좋다! 총각, 아가씨한테 엄청 잘 해줘레이! 음 보기 좋아!”
그리고 그가 항복을 알리며 엄지를 들자 현성이 미소를 띤 채 힐끔 혜주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그녀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자 현성이 이런 것도 해야 하나… 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이상하게도 새벽부터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고 마음이 행복하다. 마치 세상 모두를 얻은 것만 같은 그 기분에 그가 그녀의 작은 새끼 손가락에 손을 걸고 ‘죽어도요.’ 하고 미소 짓자 혜주가 음… 하고 인상을 찌푸린다.
“…죽는단 소리도 하지 말고.”
그는 남다른 구석이 있는 남자다. 그래서 그런지 조심스러운 그 말에… 왠지 모를 배려심을 느끼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맘 속으론 ‘정말로 죽어도…’하고 대답하며 그가 그녀와 도장까지 모두 찍었을 때…
“자, 도착했심다!”
택시 기사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택시를 세운다. 곧 혜주가 ‘계산 내가 하께!’ 하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자 현성이 ‘아, 아이에요!’ 하고 고개를 흔든다.
“뭐? 갈 때 니가 내라. 갈 때 더 나오거든?”
흥 하고 그를 무시한 채 혜주가 돈을 꺼내자 택시 기사가 다시 ‘진짜! 총각은 복 받은기다!’ 하고 감탄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현성이 어색하게 웃음 띤 채 괜히 눈치만 보다 ‘부르르…!’ 하고 핸드폰 진동이 울리자 아…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이내 혜주가 받아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전화를 받는다.
“아… 관장님.”
그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던지 이미 토네이도 짐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김관수 관장이 참질 못하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맞은 편 택시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어색하게 웃음 짓는 동안 혜주가 계산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리며 그를 바라본다.
“지금 막 도착했어예.”
그 대답에 핸드폰 너머로 ‘맞나?! 아! 보이네!’ 하는 김관수 관장의 들뜬 목소리가 들리자 덩달아 기분 좋은 듯 그녀가 미소 짓는다. 그 얼굴을 보며 현성이 택시에서 내리는 동안 택시 기사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진짜 놓치지 마소!’ 하고 미소 짓는다.
“예… 진짜로.”
그 미소에 현성이 수줍지만 확실한 마음을 담아 대답하고 택시를 내리자 길 건너의 김관수 관장이 ‘현성아~!’ 하고 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현성이 고개 숙여 꾸벅 인사하는 동안 혜주가 다시 팔짱을 끼며 이야기 한다.
“저 아저씨 전에도 니 탐내더만 이상한 아저씨는 아니제?”
귀엽게 질투하는 그 모습에 현성이 ‘설마요!’ 하고 고개를 흔들자 혜쭈가 흥 하고 토네이도 짐 건물을 바라본다.
“그 피디 맘에 안 드는데. 가서 잘 해라. 내 니 지켜보고 있다.”
이내 그를 째려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생각하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안심해도 될 낀데… 누가 내 좋아하고 그칼 것 같지는…”
그 모습에 혜주가 ‘그럼 나는!?’ 하고 그의 가슴팍을 툭 친다. 그 모습에 현성이 웃음이 터진 듯 ‘아… 그거는…’ 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하자 혜주가 ‘방심은 금물이다!’ 하고 이야기 한다.
“닌 격투기 선수 할 거라 카면서 그카면 안 된다! 내가 보기엔 그 여자 피디가 니한테 은근히 관심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네 방심 안 돼. 노노노.”
손가락을 흔들며 혜주가 새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그 말재주에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러는 동안 김관수 관장의 외침을 들었던 모양인지 건물에서 회색 후드티를 입은 기철과 운동화를 신은 지선, 그리고 어제와 같은 복장의 오대표가 우르르 걸음을 옮긴다. 다들 그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지 반가워하는 그 모습 속에서 현성이 운동화로 갈아 신은 채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드는 지선을 바라보며 ‘설마…’ 하고 고개를 흔들고는 혜주와 함께 걸음을 옮긴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지선처럼 많이 배우고 또 잘난 여자가 말이다. 그 생각을 가지고 현성이 혜주의 손을 더욱 꼭 붙잡는다.
“방심… 안 돼. 알았지…?”
지금의 너무 큰 행복감이 사라지진 않을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려보지 못한 환대를 이곳, 저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게 불안하고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잘 되고 싶단 생각이 온 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단 것. 원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잘 할 수 있는 자신은 있었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아영과 혜주를 위해서도.
“예! 방심 안 돼요! 조심할게예.”
그 미소와 함께한 대답에 혜주가 ‘흠, 지켜볼게!’ 하고 다시 미소 짓는다. 이것은 그 모든 것을 위한 첫 걸음. 바람마저 그쳐 봄날 같이 따스한 2월의 건널목을 건너며 현성이 아마 지금부터는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혜주의 말대로 정말 ‘방심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으며 그들의 앞에 선다.
“저 왔심다, 관장님.”
큰 결심을 내린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정말로 왔구나… 하고 안도하며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잘 왔다!’ 하고 어깨를 두드린다.
“축하해요! 현성 씨!”
상기된 얼굴의 지선이 그와 혜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으로 인사하곤 축하를 더하자 현성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기철이 어느 샌가 뒤따라 나온 예린과 함께 ‘와… 여자친구…?’ 하고 엄지를 치켜들고 인사를 한다. ‘니보다 훨씬 이쁘다, 예린아!’ 하고 기철이 예린과 또 다시 티격태격하는 동안 오형석 대표가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영상을 본 모든 격투 팬들의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 그 전설의 주먹…! 관계자를 떠나서 팬으로써의 순수한 열의가 가득한 그의 눈빛에 현성이 ‘아…’ 하고 그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 한다.
“진짜 이건 우리 엠파이트에서 대서특필을 해도 될 것 같은 소식인데요? 진짜 격투기 팬으로써 최고의 결정을 내린 거라 생각 합니다.”
그 순수한 열정이 묻어나는 이의 말에 현성이 ‘생계’를 위한… 순수함 없는 선택인데도 괜찮은 걸까…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혜주가 그의 그런 맘을 헤아렸던지 꼭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자 현성이 다시 옅은 미소를 띤 채 오형석 대표와 김관수 관장을 바라본다.
“전에… 저 여기 나가면 도와주실 수 있는 거… 다 도와주신다 그캤잖아예…?”
그 목소리에 오 대표가 ‘음, 말만 해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내가 가능한 능력 선에서…”
위트 있게 애교를 부리는 그의 모습에 혜주가 ‘저 사람, 개그 치는 게 좀 어색한 거 같은데…?’ 하고 날카로운 평을 속삭이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푸흡 웃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선이 뭔가 모를 씁쓸한 얼굴로 웃음을 짓는 동안 현성이 김관장과 오대표를 돌아보며 이야기 한다.
“기왕에 결정 한 거… 최대한 빨리 경기도 하고… 선수 되고 싶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