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42화 (42/281)

- 42 회 - 괴물

술 많이 마시고 일어나는 다음날은 항상 아침이 괴롭다. 그게 아침은 훨씬 지난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일어나는 순간이 괴롭긴 마찬가지인지 혜주가 ‘으…’ 하고 머리를 붙잡으며 천천히 눈을 뜬다.

“으응…”

그렇지만 눈도 잘 떠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그런 것이 화장도 지우지 않고 밤새도록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으니… 아직도 많이 버거운 듯 그녀가 으으응… 하고 침대에서 홀로 투정을 부리다 갑자기 흠칫 하고 멈춰 선다. 간 밤에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다 어렴풋이… 옆에 만져지는 크고 단단한 몸이 닿으니 저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든 듯 혜주가 눈을 크게 뜨자 그곳에는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던지 곤히 잠든 얼굴의 현성이 보인다.

쌔근쌔근 내쉬는 숨결이 얼굴에 닿을 듯 가까운 곳에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린 채 정신 없이 잠에 빠져든 그 모습을 보니 혜주가 어제 밤의 기억이 온 몸을 스치던지 화끈한 기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어떡해…’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린다. 어제 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그건 말이다.

“…아 씨… 창피해…”

화끈화끈 거릴 정도로 또렷한 기억 탓인지 혜주가 창피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온 몸이 바짝 굳어 움찔하는 것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곤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잠이 든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숨만 내쉬고 있을 뿐. 그 얼굴이…

“…귀엽노…”

그게 또 귀엽단 생각에 혜주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잠이 든 그의 얼굴은, 처음에 보기엔 다소 험상궂어 보이는 것과 달리 정말 아이처럼 온순하기 그지없다. 너무 얌전하게 잠을 자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히…”

괜시리 바보처럼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혜주가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그 얼굴을 손가락으로 간질간질 간질이자 ‘으음…’ 하고 그가 얼굴을 살짝 흔든다. 그 모습에 다시 그녀가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꼭 참고서 재빨리 눈을 감고 모른 척 잠자는 척 하다 다시 그가 ‘음…’ 하고 썌근쌔근 숨을 내쉬자 감았던 눈을 살짝 떠본다. 그리고 다시 웃음을 꾹 참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간질간질 하자 이번에는 더 크게 고개를 흔든다.

“큽…”

괴롭히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은 생각에 혜주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척 하는 동안… 현성이 ‘으…’ 하고 잠에서 깬 듯 손을 들어 눈을 부빈다. 눈을 감고서 ‘깼나…’ 하고 생각하던 혜주가 깨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잠을 깨게 만든 것이 미안스러운 듯 두근거리는 심장 대신 이불을 꼭 움켜쥐고 곤히 잠이 든 척 한다. 그리고 이내…

“…아…”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간밤에 잠이 들어 잠긴 듯 한 목소리가 새어나오지만 이상하다기보단 왠지 모르게 또 가슴이 설레서 그녀가 저도 모르게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꼭 참고 일부러 뒤척이는 척 이불을 끌어당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감고 있던 혜주가 궁금해졌던지, 아니면 자는 척 참는 것도 시간이 지나니 힘이 든 것인지 이상하게 자길 계속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입술을 꼭 깨물고 참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살짝 눈을 뜬다. 그러다 그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눈이 보이자 화들짝 놀라며 눈을 감는다.

두근두근 하고 뛰어오는 가슴에 자꾸만 터져 나오는 입가의 웃음. 이내 혜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았던 눈을 뜨고 ‘왜…!’ 하고 그를 째려본다. 그 모습에 현성이 ‘아… 누나 안 잤어요…?’ 하고 조금 어벙해 보이는 얼굴로 깜짝 놀란 듯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다시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 맘을 더 이상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몸을 일으켜 그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꿈결 속의 일인가 싶었던 간밤의 일이 거짓말이나 환상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듯 한 그녀의 포옹에 현성이 ‘아..’ 하고 멍한 얼굴을 하다 이내 그녀를 따라서 웃음을 터뜨리곤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끌어 안으며 어루 만진다.

“잘 잤어요…?”

그 묵직한 목소리에 혜주가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응…’ 하고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물론 그녀 자신은 그게… 평소와 다름없으려 노력한 음성이지만… 그녀는 몰라도 그는 알 수 있는 부끄러움 가득한 목소리에 현성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자 혜주가 ‘아… 왜 자꾸 웃는데…!’ 하고 그를 바라본다.

그러다 그녀 역시 어제 느꼈던 그… 불안했던 마음이, 오늘 일어나고 나서 그가 달라지거나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 어떻게 하나 했던 불안한 마음이 모두 가시고 그와 같이 즐거운 마음 밖에 남지 않았던지 ‘니 때문에 나도 웃기잖아…!’ 하고 웃으며 다시 그를 꼭 안는다.

그 기분 좋은 포옹에 막 깨서 얼떨떨하던 현성이 다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이라이 안 웃고 배깁니까…?’ 하고 얘기 하자 혜주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그건 글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또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보며 현성이 미소와 함께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주가 다시 또 화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그를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먼저 다시 입을 맞춘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닿은 입술을 맨정신이라 그런지, 낮이라 그런지 재빨리 떼어내곤 그녀가 또 금방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자 현성이 웃음이 멈추질 않는지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인다.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스치고 그 사이에 서로 힐끔 바라보던 혜주가 갑자기 화장도 엉망이고 상태도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홱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현성이 마찬가지로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고 ‘누나…’ 하고 그녀를 부르자 혜주가 ‘왜…’ 하고 고개 숙인 채 힐끔 그를 바라본다.

“…몸은 괜찮아요?”

할 말이 정말로 없었던지 어색하게 튀어나온 그 물음에 혜주가 괜시리 웃음이 빵 터진 듯 ‘갑자기 내 몸은 왜…!’ 하고 그의 품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 눈가를 손으로 슥슥 닦으며 ‘내 화장 안 번졌나…?’ 하고 물음을 던진다.

“조금 많이 피곤해 보이기는 한데 괜찮아요.”

“…화장 번졌제? 맞제?”

우… 하고 인상을 구기며 혜주가 그의 품에 얼굴을 기댄 채 입술을 삐죽인다. 그녀의 몸에 나는 향긋하고 부드러운 향기에 현성이 ‘쪼금…’ 하고 대답하며 그녀를 꼭 안자 혜주가 ‘아… 씻어야 돼…! 안 돼…!’ 하고 앙탈을 부린다. 그렇지만 이내 파닥이던 것도 힘이 들었던지 ‘씨… 엉망이다…’ 하고 그녀가 그의 품에 얼굴을 다시 부비며 기대서자 현성이 ‘그래도 이뻐가 괜찮아예.’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거짓말치지마라!”

괜시리 또 좋으면서 화난 척 소리치지만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혜주가 억지로 참아내지만 그가 ‘정말로.’ 하고 웃음 짓자 참지 못하고 웃고 만다.

“치… 좀 있다 씻고 나면 니 기절 할끼다. 내 쌩얼이 더 이쁜 거 모르제?”

투덜투덜 거리며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아 그래예…?’ 하고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그, 그래…’ 하고 조금 자신감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하다 카면 니 죽는데이.”

억지로 더 이쁘다를 만들어 낸 그녀의 교섭 능력에 현성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혜주가 술기운 때문에 어젠 너무 정신이 없었다는 듯 두 눈을 비빈다.

“후… 근데 지금 몇 시야…?”

“아… 시간 얼마 안 된 거 같아요. 한 12시 이제 좀 지난 거 같은데.”

현성이 시계를 돌아보며 이야기 하자 혜주가 ‘내 일찍 일났네…’ 하고 다시 졸린 듯 그의 품에 얼굴을 기댄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조금 난처한 웃음을 짓자 혜주가 홱 고개를 돌리며 ‘어디 갈 데 있나?’ 물음을 던진다.

“아… 갈 데 있어요. 어제 얘기를 할라 그랬는데…”

그 말에 그녀가 ‘어딜?’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사실 어제 전화를 했을 때 뭔가 비장하게 현성이 어디 다녀올 데가 있다고 하더니 취해서 그 이야기를 하질 못했다. 그게 또 민망하고 미안한 듯 혜주가 ‘어디, 어디, 어디…’ 하고 무안한 맘에 어리광을 부리듯이 재촉하자 현성이 다시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한다.

“내… 격투기 선수 해볼라꼬요.”

그 순간 혜주가 ‘아…’ 하고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현성이 못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잘 될 지는 모르겠는데…’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함… 해볼라고요. 진짜 목숨 걸고… 그라면 배도 안 타도 되고… 또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고.”

지난밤에 생각이 무척이나 많았던 모양인지 제법 결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분위기였다. 민욱과의 싸움에서 그가 얼마나 싸운다는 걸,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내켜하지 않았는지 이미 알고 있는지라 혜주가 ‘니… 그런 거 안 좋아했잖아…?’ 하고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물론 그녀도 그가 프로 파이터가 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고, 오히려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마냥 좋아하고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사람이 다 자기 하고 싶은거만 할 수는 없으니까… 내 돈 많이 벌어야 되거든요. 아영이도 도와줄라카면… 내 앞가림도 해야 되고… 잘 될 지는 모르겠는데… 아직까지 주먹질 해가 꿀린 적은 없으니까네… 좀 잘 될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예. 그래요…”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에 혜주가 응원을 해야겠다 생각한 듯 ‘생각 잘 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심 맘으론 그가 그리 좋아하던 일이 아니란 것이 또 신경이 쓰이지만 그렇다고 또 결심을 한 마당에 그걸 다시 흔들고 싶진 않았던지 그녀가 ‘잘 한 거다…!’ 하고 그를 꼭 끌어안는다. 그 위로에 현성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녀를 마주 안는다.

“걱정 하지마라. 니는 잘 할 거다. 뭐든지 다…! 내랑 내기 할래?”

그 자신감 가득한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내 여지껏 뭐 되본 적이 없는데…’ 하고 이야기 하자 혜주가 ‘그카면 내기 해보던지!’ 하고 새초롬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에 그가 미소를 띤 채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혜주가 뿌듯한 얼굴로 미소 짓고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라면 오늘 거기 체육관 같은데 가는거가…? 그 아저씨… 있는데?”

왠지 모르게 들뜬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출근하기 전에 함 들려가 다시 얘기 나눠보고 할라고요. 아마 피디 쌤이랑 다른데 잡지사 대표 같은 분도 있는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나봐요. 그케가…”

“그라면 이칼 시간 있나! 바보야! 빨리 나갈 준비 해야지!”

화들짝 놀라서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한 2시쯤에…’ 하고 대답하자 혜주가 조금 오버했나 생각했던지 움찔하며 ‘그럼 빨리 말 해줘야지!’ 하고 샐죽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면 오늘 뭐 당장 계약하고 뭐 그카는거가…? 뭐 어떻게 하는 건데…?”

이래저래 그에게는 궁금한 게 많은지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저도 정확한 거는…’ 하고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혜주가 ‘안 되겠다!’ 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 한다.

“내 빨리 씻고 나오께…! 혼자 가면 니 뭐 실수 할 수도 있으니까…!”

은근히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고마워요, 누나.’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에 혜주가 화 내거나, 괜히 또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받아주자 ‘나중에 잘 되면 한 턲 솨라!’ 하고 도망치듯이 화장실을 향해 쪼르르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소와 함께 작은 숨을 내쉬고는 어제 충전해놓는 걸 잊었던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꾹 버튼을 누른다.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로고가 스쳐지나가면서 금방…

-부르르…

진동이 울린다. 그리고 그 진동 속에서 부재중 통화를 알리는 전화 4통과 메시지가 보인다.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은…

-진짜에요?! 진짜 현성 씨 선수 활동하려구요?!

그를 많이 도와주던 지선이었다. ‘정말 잘 됐다!’ 하고 축하와 응원이 가득한 그녀의 메시지를 바라보며 현성이 휴우 하고 숨을 내쉰다. 뭔지는 몰라도 그가 뭔가를 시작하면서 누군가가… 아니, 주변 사람들이 이리 응원을 해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응원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잘 되어야만 한다는 부담감 들기도 했지만…

아영이를 생각하거나, 어제 울고 있던 혜주를 생각하면 대충대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 결심한 대로 목숨이라도 걸고서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 다짐을 되살린 그가 다시 고개를 흔들어 아직도 몸에 남은 피로한 기운을 쫒아내고는 숨을 고른다. 몸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가볍고 기운이 넘쳤다.

“이제 봄… 오는 것 같네.”

============================ 작품 후기 ============================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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