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회 - 괴물
2월의 날씨는 우스운 구석이 있었다. 겨울이 가실 것 같다가도 다시 한 번 꽃샘추위인지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곤 했는데, 때로는 한 겨울보다도 더 지독스러운 추위를 보이곤 했다. 조금 따뜻한 기운에 방심했다간 몰려든 꽃샘추위에 감기에 걸려 콜록이는 사람들처럼…
현성 역시 생각지도 못한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자 감기기운이 도는 마냥 정신이 몽롱해지고 말았다.
“하아…”
머리를 자르기는커녕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이 가게로 와선 그저 벽에 기대 선 채 말 없이 담배만 태운다. 가장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그리고 생각도 못 했던 사람을 만난 것 때문인지 두근두근 뛰는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누군가 심장을 꾹꾹 누르는 것처럼 갑갑하고 답답한… 그 심정을 풀어내기 위해서 연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보지만 그것도 결국 한계가 있는 모양인지 막 3번째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갈 때…
“씨팔…!”
거칠게 욕을 내뱉으며 그가 재떨이를 향해 담배를 집어 던진다.
“후우… 후우…”
그리고 연이어 진정되지 않는 그 기분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현성이 말 없이 벽에 머리를 기댄다. 항상 가게 오픈을 담당하던 것은 범수였지만 현성이 위치가 가깝고 성실하다 보니 이제는 범수 대신 그가 가게 문을 열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도망칠 자리라도 있었으니까.
-털썩…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다음은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몸을 웅크린 채 현성이 한숨을 내쉰다. 다시 담배라도 태워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다 한들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온 몸이 축 늘어지는 것 같고 심장은 다시 죄여 온다. 아주 작은 행복감 하나마저도 용서할 수 없는 세상의 각박함에 다시 한 번 입술을 꾹 깨물고야 만다. 속이 좋지 않았다. 지난달 내내 달고 살던 장염인지 뭔지 모를 고통이 속을 다시 뒤집어 놓는 것만 같았다. 너무 신경이 과민해져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잠잠하던 속이 한 번 더 뒤집어지니 견디기 힘든 모양인지 그가 조금 더 몸을 웅크린다. 도망치고 사라지고 싶은 기분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어둠 속에서 홀로 그가 주먹을 꽉 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똑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나오는 것이라곤 한숨 뿐.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 길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 날 ‘그 애’를 도와줬던 걸까?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서 이렇게 시달리고 괴로워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 이다지도 괴로운 줄은 미처 몰랐단 생각에 현성이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그리고 끝날 겨를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갑갑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쉰다.
방송 이후에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보단 나아지길 바랬고… 아무리 기대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더 나빠지길 바라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그에게 다가오고야 말았다.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 미래만큼이나 거대하고 괴로운 일 말이다.
‘남겨진 사람들…’
그 괴로운 단어를 꺼내는 자체가 고역인지 현성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낀 채 더욱 더 깊이 고개를 숙인다. 도대체 이놈의 세상은 얼마나 더 날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 생각과 동시에 현성이 이게 벌이라면 정말 너무 가혹한 벌은 아닌가 하고 다시 한 번 한숨을 깊이 내쉰다. 가슴이 갑갑해지고 숨을 쉬기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민욱과 싸우는 순간보다도 더 괴롭고 먹먹한… 충격이 가슴을 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리 할 수 없는 것은 해본 적도, 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혜주…가 생각나긴 했지만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 마다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건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음으로… 그게 너무 어렵다 생각하며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쉰다.
그나마 한결 나은 게 있다면…
“…고맙다꼬…?”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욕이나 원망이 아니라… 그 사람의 딸이라고 했던 소녀는 그에게 ‘고맙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 할 수 없었지만…
“후우…”
쓴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씁쓸하고 텁텁한 맛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벽에 머리를 붙인다. 품에서 담배를 다시 꺼내 입에 물고 찰칵 불을 붙이곤 코끝을 찌르는 담배 냄새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다시 담배를 벗삼아 연기를 빨아들이던 그가 후우 하고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잘 한기가…”
어쩌면 결론적으로 그는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심지어 자기 딸에게도 손을 대는 인간 말종을 처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고맙단 이야기를 들을 일은… 특히나 그의 딸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현성이 글썽한 눈을 다시 감고서 담배 연기만 들이킨다. 질식할 듯 가득 찬 연기가 어느 샌가 그 목을 조여오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목이 뻑뻑하지만 계속해서 담배만 태울 뿐이다.
그 순간에 화를 이겨내지 못했고,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에 모든 것들은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들로 돌아왔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을 잃었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에 당해야 했고, 설 자리조차 가질 수 없이 내몰리고 말았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말이다. 어쩌면 ‘그 애’가 그를 도와줬다면 그렇게까지 내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죽음이란 걸 그렇게 쉽게 생각 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그에게는…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잊혀 지지 않는지 벽에 기댄 채 몽롱함에 취해 있던 현성이 금방 다 태워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놓고는 힘없이 벽에 기대어 선다.
“…왜 하필… 고맙다꼬…”
그 말이 왜 그렇게 괴로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죽음을 그의 딸은 해방이라고 말했다. 어딘가 멍하고 이상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그의 딸은 말이다. 원망이라도 받았다면 ‘나는 정당한 일을 했다!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내 인생을 잃었다!’ 소리라도 칠 수 있었을 텐 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렇게 한 참이나 싱숭생숭한 기분을 이어가던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등을 떼고 일어난다.
“…얼마나 기다린기고…”
그러다 문득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듯 한… 벌겋게 얼어붙은 그 맹한 얼굴이 떠오르자 그가 이를 꽉 깨물고 다시 걸음을 돌린다. 가게 오픈을 준비할 시간까지는 아직 여력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핸드폰을 든다.
-뚜르르…
신호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보세요?!’ 하고 다급하게 전화를 받는… 낯익은 서울 말씨가 들린다.
“PD 선생님… 저 장현성 입니더.”
한숨 섞인 그의 목소리에 지선이 반가운 듯 ‘현성씨! 잘 지내고 있어요? 방송은 봤어요?’ 하고 따다다닥 말을 꺼낸다. 그러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조금 안 좋게 들렸던지 어물어물 하며 그녀가 ‘무슨 일 있어요?’ 물음을 던진다.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심까…?”
그 물음에 현성이 대답 대신 물음을 던진다. 그의 물음에 지선이 ‘뭐든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줄 게요!’ 하고 지선이 흔쾌히 승낙의 대답을 남긴다. 왠지 모르게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며 현성이 어렵사리 말을 잇는다.
“…저기… 혹시 가능하시면… 그… 목사 있잖아예.”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지선이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하다 생각한 듯 재빠르게 ‘네, 그 분… 맞죠?’ 하고 대답을 더한다. 그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예.’ 하고 대답하자 잠깐 정적이 스친다.
“그 목사… 가족들은 우에 지내고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예…?”
그리고 현성이 어렵사리 다시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에 지선이 ‘네…?’ 하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반문하자 현성이 다시 한숨을 내쉰다. 나오는 게 한숨밖에 없는지 ‘부탁드립니다…’ 하는 그의 목소리에 지선이 ‘알겠어요, 현성씨…’ 하고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녀가 연이어 물음을 던진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이다.
-저기… 근데 혹시 그 추가 촬영은…
“이것만 도와주시면… 할게예. 뭐 더 찍을 게… 있나 싶기도 한데… 이것만 도와주시면요.”
받은 만큼은 돌려 줘야 한다. 그 생각으로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다. 수화기 너머의 지선이 그의 표정이나 얼굴을 알 수 있는 건 아닐테지만 그 음성으로도 충분히 그런 의지가 전해졌던 모양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이야기를 나누고 또… 혹시라도 괜찮다면 현성 씨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분들과도 이야기를 한 번 나눠봤으면 해서요…! 제가 그 사람…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빨리 알아볼게요! 아니, 조만간 대구로 다시 내려갈 건데 그때 연락 할게요! 괜찮죠?
이내 지선이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슨 일이 또 생긴 것인지 궁금한 듯 간략하게 추가로 어떤 장면을 전하려고 하는지 이야길 한다. 누가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물음을 던지지 않고 현성이 ‘알겠심다.’ 하고 대답한다. 촬영은 하지 않고 도움만 청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가 빨리 다시 거기로 돌아가봐야겠단 생각에 ‘그람… 전화 끊으께예.’ 하고 전화를 끊고 가게 문을 다시 잠그고 밖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 멍해 보이는 애가 혹시라도 아직까지 거기에 서성이고 있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무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단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따스함보다 차가움이 서린, 아니… 오히려 마지막 발악이라 더욱 더 시린 것 같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한 순간의 온기를 잡기도 전에 불어오는 세찬 바람들이 원망스럽지만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 바람에 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이내 그가 다시 모텔 앞으로 돌아왔을 때 걱정과 달리 소녀는 그 사이에 어디론가로 가버린 모양인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한산한 모텔 입구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서 있는 사람도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이 횅한 공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현성이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는다.
“갔나…”
추운 날씨에 기다리지 않고 갔구나… 안도하는 한 편 또 왜 이런 걸 자신이 신경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현성이 입술을 꽉 깨문다. 그냥 모른 척 지나치면 될 일이란 걸 알지만 그게 맘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어쩌면 나는 타고난 빙시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그가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가게로 발걸음을 올린다.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앞을 막아서는 사람을 느끼고 걸음을 옮기자 그 사람이 그 앞을 막 듯이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아무래도 같은 방향으로 피했단 생각에 현성이 다시 발걸음을 돌리자 이번에도 같은 방향으로 그를 막아선다. 혹시 일부러 그러는건가 싶은 생각에 그가 고개를 들자마자 다시 크게 움찔한다.
“…닌 또 뭐꼬…?”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 몰라도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물 밀 듯이 밀려오고 있는 날인 듯싶었다. 현성이 대체 이번엔 또 뭐냐는 듯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자 퉁퉁 부어오른 턱에 붕대를 감고서, 그 잘생긴 얼굴이 2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민욱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