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30화 (30/281)

- 30 회 - 괴물

“가자, 울보야.”

장난스러운 미소로 그를 이끄는 그녀의 모습. 그 말에 현성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어색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계속 놀릴라 카죠…?”

“내가 뭘~ 없는 말 한 것도 아닌데.”

얄밉게 모르는 척 하는 혜주의 모습에 현성이 한숨을 픽 내쉬며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왜 그랬는지 정말 창피한데… 또 그 지켜주겠단 말을 한 것이 이제와 생각하니 유치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왠지 모르게 맘이 간질간질 양 손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혜주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까칠한 얼굴에 내내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는 건 장난 칠 거리를 찾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렴풋이 그렇진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 고개를 흔들며 그가 미소 짓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냥 혜주가 좋아 보이니까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말이다.

“다친데는 진짜 약 안 발라도 되나…?”

“다리 말곤 크게 다친 데도 없어예.”

얼굴에 잔 상처들이 나긴 했지만 워낙에 회복에 빠른 몸이다 보니 괜찮다는 듯 현성이 고개를 흔든다. 다만 당분간 이 몰골로 다시 일을 나가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 되었던지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자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며칠 쉬어라!’ 하고 혜주가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뭔가 속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툴툴 거리며 이야기를 잇는다.

“그 얼굴로 가게 나오면 민폐니까 앗싸리 맘 놓고 편하기 쉬라.”

그냥 쉬라면 쉴 녀석도 아니고… 또 그걸 그렇게 살갑게 말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조금 퉁명하게 꺼낸 그녀의 말에 현성이 ‘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확실히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굴은 둘째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걷기 힘들 정도로 허벅다리가 아파와서 거의 절룩이고 있는데 이대로 들어간다면 민폐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업이 달린 일을 그냥 쉬기가 쉽지 않았던지 그가 머뭇거리며 한숨을 내쉬자 ‘출연료 나오잖아!’ 하고 혜주가 그의 옆구리를 툭 친다.

“니 그런 이야기도 한 개도 안 했나?”

“…아… 그렇네예…”

그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듯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자 혜주가 ‘빙시…! 진짜…!’ 하고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다.

“니 그카면 나중에 살림 우에 살라 그라노? 아휴, 어설퍼서 원!”

잔소리 많은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머슥한 기분이 들었던지 ‘진짜 깜빡해서요.’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누군가가 그의 곁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던가? 그가 소년원을 들어가기 전… 고모네 집에 얹혀 살 때에도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별로 그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 잔소리란 것을 그 또래의 친구들은 무척이나 싫어했지만… 그에겐 그것조차도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몰랐다. 짜증이 난다거나, 왜 간섭 하느냐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는 것 없이… 얼마나 내게 관심을 기울여 주고 있는지를 알 것 같다는 생각에 그가 행복한 미소를 짓자 혜주가 ‘왜, 왜…’ 하고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항상 틱틱 거리고 툭툭 내뱉는 말 속에서도 용케도 그녀의 맘을 알아차려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그녀보다도 한참 어리지만 왠지 모르게 ‘오빠’ 같은 느낌이 나는 현성을 바라보며 혜주가 ‘아무튼! 관리 앞으로 잘 해!’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랄게예.”

그 한 마디에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덩달아 혜주도 기분이 좋아진 듯 ‘나가서… 고기나 먹으까?’ 하고 그를 돌아본다.

“고기요…?”

“그래! 니가 그 못된 놈 완전 보냈잖아. 축하해야지! 내 복수 해준거니까 내가 한 턱 쏜다!”

속이 시원하게 민욱을 쓰러뜨린 걸 축하라도 해야 겠다는 듯 혜주가 이야기 하자 현성이 ‘아…’ 하고 어색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쓰러진 민욱이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었다. 혹시라도 그러다 그 때 그 목사처럼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싹 튼 듯 그가 멈칫하자 혜주가 다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그런 거 없다, 바보야.”

괜찮다는 듯 그 손을 꼭 잡은 그녀가 ‘다 같이 기다리고 있다, 가자!’ 하고 그를 이끈다. 빨간 머리끈을 맨 손을 잡고서 이끄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그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흠흠, 저기… 혹시 짐 이야기 좀 할 수 있나?”

그들의 뒤에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움찔하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 해지기 시작한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자가 보인다. 츄리닝을 입고서 그를 찾아온 남자의 모습에 ‘누구…?’ 하고 그가 물음을 던지는 동안 분위기를 살피던 혜주가 ‘해설…하던 아저씬데…’ 하고 그를 알아본 듯 대신 대답한다.

“아… 예, 아가씨… 그라니까 오늘… 이 프로그램 해설 하던… 김관수라는 사람인데…”

자못 어색하던지 김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허… 이거 어떻게 이야기 해야되노?’ 하고 어색해 하자 현성이 누군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본다.

“…근데 지한테 무슨 일로…?”

이미 싸움이 다 끝난 마당에 해설자가 굳이 그를 찾아올 이유가 있던가? 의문 가득한 얼굴의 현성이 혹시 이민욱이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김관장이 아, 아 하고 손사래를 친다.

“아… 별 거는 아니고… 아까 민욱 선수랑 시합하는 게 너무 인상 깊어가… 혹시 정식으로 운동 함 해볼 생각 없나 하고 얘기 좀 해볼라고 왔심다.”

코리안 탑 팀에서 코치 일을 하면서 유망주들을 스카웃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그로써도 처음이었다. 어색하게 그 진의를 내비춘 그의 말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본다.

“짐 대구에서 팀 토네이도라고… 도장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보니까 장현성 씨…? 소질이 아주 타고 나서 만약에 운동을 시작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은기라.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피디님한테 이야기 좀 하고 이렇게 찾아온 건데… 시간 좀 되겠어요? 이야기 나눌.”

간략하게 지선에게 그의 사정에 대해서는 들은 탓인지라 김관수 관장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나이도 한참 위인 그가 그리 조심스럽게, 예의를 차려가며 이야기 하자 현성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거절하긴 힘든 듯 어떻게 하나 하고 혜주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야 지금 스카웃 할라 칸다 뭐 그런거에요?”

당차게 나서며 혜주가 물음을 던지자 김관수 관장이 ‘아… 그런 셈이지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에 흐음… 하고 혜주가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이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지는 별로 그런 거 해볼 생각이 없심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 그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아니, 왜…?’ 하고 물음을 던진다. 그 정도 덩치와 싸움 경력, 타격감을 가지고 있다면 관심은 있을 법도 하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신속하게 거절이 떨어지자 조금 당황한 눈치다.

그건 혜주 역시 마찬가지인 듯 그녀가 ‘뭔 이야기도 다 안 들어보고… 왜…?’ 하고 물음을 던지며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동안 현성이 두 사람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운 듯 ‘그냥…’ 하고 대답한다.

“원래 싸우는 거 별로 안 좋아 함다. 글고 또… 먹고 살기도 바쁘고요. 이런 거 선수한다 캐도 준비 시간도 있을 거고… 선수해도 돈도 얼마 안 될 거고…”

그 현실적인 이야기에 김관장이 그렇지 않다 고개를 흔든다.

“물론 준비하는데 시간은 걸리지만 그래도 돈 못 번다 카는 거는 옛날 얘깁니다. 요즘은 이 바닥도 좀 기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정식 선수로 등록해서 메이저 단체로 올라가기만 하면 연봉 수천만원도 꿈은 아니에요!”

조금 다급하게 김관수 관장이 그렇게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 하자 현성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든다. 아무렴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하지만 그가 그 정도로 잘 될 지는 미지수였다.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고… 그런 것에 사활을 걸 수는 없었다.

“제가… 어떤 상황인지는 아실깁니다. 사람 때려서… 죽고, 소년원 갔다 왔잖아요…”

의기소침하게 움츠러 들며 조심스럽게 스스로의 과거를 꺼내는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그…렇지요…’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선에게 이미 그 일의 진장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어 더욱 더 안타까워하는 그 눈빛에 현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하며 말을 잇는다.

“근데 주먹질해가… 돈 벌고 싶겠심까…? 아까도 그랬는데… 여기는 좀 이상한 것 같아예. 철장 같은데서 서로 주먹질 하고… 누구 하나 쓰러지면 좋아하고… 나는 그런 게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가… 구경거리 되는 거도 싫고…”

그의 과거.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콤플렉스까지. 그것들 때문에 격투기란 것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는 현성의 대답에 김관수 관장이 ‘아…’ 하고 아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현성씨가 생각하는 그런 기 아닌데… 이거는…”

뭔가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만 어느 샌가 혜주가 그의 팔을 꼭 안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뭔지는 몰라도 더 이상 현성을 괴롭히지 말아달란 그녀의 눈빛에 김관수 관장이 한숨을 내쉬며 ‘그러면…’ 하고 품에서 명함을 꺼낸다.

“혹시라도 생각 바뀌면… 한 번 연락 주이소. 체육관 와가 운동 같이 함 해봐도 되고…”

진심으로 그래주길 바란다는 김관수 관장의 눈빛에 현성이 어물어물하다 명함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혜주가 ‘그럼 가보께예!’ 하고 현성을 이끌고 걸음을 재촉하자 현성이 덩달아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함께 걸음을 옮긴다. 절룩이며 함께 걸음을 옮기는 현성과 혜주의 뒷모습에 김관장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재능은 진짜 타고 났는데…”

그의 주먹에 당한 이민욱은 갈빗대에 금이 가고 턱이 나간 상황이었다. 치명적인 위력의 주먹과 힘, 감각… 게다가 초심자가 로 킥을 그만큼이나 맞고도 버텨내는, 카운터마저도 이겨내는 근성과 투지…! 저걸 다듬기만 한다면 감히 얼티밋 파이터 챔피언쉽의 헤비급 왕좌도 감히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김관수 관장의 맘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그를 놓쳐선 안 된다. 한국 격투기 역사를 100년 앞당길 수 있는 인재가 나타났는데 그걸 놓친다면 자신이 큰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며 김관장이 핸드폰을 꺼낸다.

“그래, 기철이가? 관장실 서랍에 주먹이 운다 카는 프로그램 서류 있을기라. 그거 좀 꺼내놓그라. 아니, 아니! 버리진 말고! 그냥 거 보고 좀 쓸 일 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끊은 그가 ‘장현성…’ 하고 그의 이름을 계속 되뇌인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게 만들어야 되는데…”

아무래도 그 일이 쉬울 것 같진 않았다. 시합 후에 그가 보여준 진중한 모습은 여타 그 또래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색채가 있었으니까. 마치 그 또래… 혹은 그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이 보여주는 묵직함. 그 진중함이 무척이나 높은 벽이 되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결코 무너뜨리기 힘든 장애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한숨이 나오지만 포기란 해보고 안 되면 아는 것이지, 미리 하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 그이기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팀 토네이도, 올해의 목표는 정해진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