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9화 (29/281)

- 29 회 - 괴물

싸움이 끝나자 마자 도망치듯 들어온 대기실. 의료진들이 그의 상태를 체크하려 했지만 그것조차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현성이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많이 히트를 허용했기 때문에 건강 체크를 확실히…”

“일 없심다.”

계속해서 의료진들이 막무가내로 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 그를 붙잡고 어떻게든 설득하려 해보지만 그는 단호했다. 무엇보다도…

“괜찮심다. 가이소.”

왜인지는 몰라도 울 것 같은 그 눈이 그를 더 이상 붙잡아 이야기를 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지만 계속 그에게 상태 체크를 권하는 것은 이 덩치 크고 순박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 듯 의료진들이 주춤하고 만다.

허나 그들이 보기에 현재 현성의 상태는… 내부적인 충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외견상은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여야 할 곳이 여기저기가 보인다. 분명히 진단을 따로 하지 않아도 외상 부분엔 붕대든 뭐든… 상처를 치료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도망치려는 사람처럼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무슨 급한 일 있습니까? 그냥 간단히 상태면 보면 된다니까…”

“괜찮다 안 캅니까!”

이내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가 그들을 바라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현성이 뭔가 상태가 무척 좋지 않은 듯 으득 하고 이를 갈다 ‘제발… 그냥 가이소…’ 하고 뒤돌아선다.

“…혹시라도 이상 있다 카면… 병원 꼭 가보이소.”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결국 진단을 포기한 채 대기실을 벗어나는 동안 현성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울렁거림에 서둘러 옷을 갈아 입는다. 입고 왔던 하얀 셔츠를 서둘러 걸치고 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그 위로 얇은 외투까지 걸친 그가 도망치듯이 대기실을 벗어나려는 찰나..

-덜컥…

“…니 오데 갈라고 그라는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를 찾아온 것인지 숨을 헐떡이는 혜주가 보인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가 금방이라도 도망치듯이 떠나려는 그의 모습에 ‘무슨 일인데?!’ 하고 다급하게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아니… 아입니다…’ 하고 고개를 흔든다.

민욱을 완벽하게 쓰러뜨리고 기뻐하기는 커녕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서 이렇게 부단히 서두르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인 듯 혜주가 ‘뭐가!’ 하고 괜시리 마음이 울컥하는 기분에 목소리를 높이곤 그를 바라본다.

“개안나…?”

“괜찮아예. 그냥… 빨리 가가 쉬고 싶어가…”

울먹울먹하는 그 목소리에 혜주가 ‘니 대체 왜 카는데…!’ 하고 덩달아 울먹이며 그를 붙잡는다. 그 모습에 현성이 ‘아무 것도…’ 하고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점차 위태로운 그 감정이 불안하게 흔들리다 이내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릴 듯 하자 혜주가 ‘왜 그러는데…!’ 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는다. 이미 그보다도 먼저 눈물을 보이며 혜주가 ‘왜…?’ 하고 그 얼굴을 쓰다듬는다.

“괜찮다, 괜찮다… 왜 그러노… 왜…”

그를 꼭 안고서 아이를 달래듯이 그녀가 그의 등을 다독이자 그 손길에 현성이 ‘하아… 하아…’ 하고 숨을 거칠게 내쉬다 이내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를 꼭 끌어 안는다.

“괜찮다… 왜… 잘 하고 그라노…?”

덩치만 큰 아이를 보는 것 같은 그 이상한 기분에 혜주가 계속해서 등을 다독이며 ‘괜찮다’ 이야기 하자 현성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서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조용히 흐느끼는 그의 모습은… ‘승자’의 것이라곤 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뒤늦게 찾아온 지선과 김관수 관장이 열러 있는 대기실 문 너머로 바라보고는 서로 눈치를 살피는 동안 지선이 ‘잠깐… 시간 좀 필요할 것 같네요.’ 하고 그를 돌아본다.

“…와… 저런지 압니까…?”

“잘은 모르겠어요… 그냥 어렴풋이.”

솔직한 말로는 그게 어떤 심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센세이셔널한 승리를 거두고,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망치듯이 떠나와서… 평소 잘 따르던 누이 같은 여자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뜨려버린 저 덩치 큰 남자를 말이다. 하지만 왠지 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고 울컥해지는 기분이 있었다. 그를 안아주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나였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래도… 사연이 좀 많은가베…?”

김관수 관장이 그의 사연까지는 듣지 않고 오직 전임 피디와의 친분 때문에 이 일을 수락한지라 내심 뭔가 얘기 못 할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물음을 던지자 지선이 애써 웃음 띤 채 고개를 끄덕인다.

“…자료 보내드렸는데 그거 좀 보고 검토 해주시지…”

조금은 원망이 담긴 귀여운 목소리에 김관수 관장이 조금 민망한 듯 ‘그게…’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딱히 할 말이 없는 듯 중년의 감독이 ‘미안하게 됐네…’ 하고 다른 변명 없이 사과를 하자 지선이 ‘괜찮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랑 기다리면서 그 이야기나… 좀 하실까요…? 아무래도 관장님… 얘기 하시려면 꼭 알아야 할 부분들이라서.”

지선의 말에 김관장이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열려있는 틈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연인사이라기 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오랜 경력의 김관장을 경악시킬 정도로 터프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민욱을 제압한 거대한 남자가 이렇게 연약해 보일 수도 있다니… 그리고 그를 감싸 안은 작은 덩치의 여자가 또 저렇게 커보일 수가 있다니… 참 묘한 두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그가 지선과 함께 걸음을 옮긴다.

그러는 동안… 혜주를 꼭 안고서 훌쩍이던 현성이 시간이 점차 지나가면서 그 감정도 진정이 된 듯 후우… 하고 숨을 고르며 안정을 찾아가자 그를 꼭 안고서 함께 눈물 흘리던 혜주가 고개를 든다.

“…이제 좀 괜찮나…?”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진 채 고개를 끄덕인다.

“…와 다 이겨놓고 혼자 그카노… 빙시 같이…”

괜시리 속상한 마음에 혜주가 그를 찌릿 하고 째려보며 다시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 하자 현성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흔든다.

“일단은 좀 앉아라… 앉아서 좀 쉬고…”

“여… 빨리 나가고 싶어예…”

“왜 그러는데…? 니가 무슨 잘못 했다고…?”

평소와 다르게 혜주가 그의 어깨를 꼭 붙잡고 ‘응…?’ 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자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던 현성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눈을 슥 피하곤 상처 가득한 얼굴을 다시 어둠에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그 날… 기억이 나서예.”

거친 숨결이 얼마나 그가 지금 위태로운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에 순간 혜주가 움찔하며 ‘그 날…’ 하고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그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날이 아닐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날이 맞을 것이다. 그 생각에 혜주가 ‘빙시야…!’ 하고 울먹이며 그를 꼭 끌어안는다. 상처 난 얼굴에 피가 옷에 묻어도 상관없다는 듯 그를 꼭 안고서 두 가슴으로 그를 품은 그녀가 ‘괜찮다… 괜찮다…’ 하고 그의 등을 다독인다.

멍하니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현성이 그 아릿한 기분에 다시 울컥하고 감정이 솟아 오른 듯 주먹을 꾹 쥐고 그녀를 끌어안는다.

“…다… 손가락질 할 거 같심다…”

아마도 그 날의 기억이, 그 날의 충격이 그에겐 평생 안고 갈 짐이자 상처가 될 모양이다. 그 말에 혜주가 이기고도 함성을 누리지 못하며 이렇게 두려워하는 그 여린 모습에 ‘뭐가…! 뭐가, 빙시야! 다들 얼마나 좋아했는데…!’ 하고 훌쩍이며 그를 더욱 더 꼭 끌어안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승패를 떠나서 그들의 싸움에 열광했고, 그 누구도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는데…

그렇게 잘 하고도 두려워 겁을 먹은 것은 너무나도 상처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돕고 살인자가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이가 되었을 때문일 것이다. 그가 입었던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채 아물지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것들이… 모든 것을 다 발산한 이 싸움 뒤에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온 모양이다. 그간 겪었던 울분과 고통들이 모두 다 발산되기도 전에 싸움은 끝이 났고 그 감정들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이렇게 혼자서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런 현성을 나무라지 않고 혜주가 천천히… 그의 등을 다독인다. 그동안 아무도 그에게 전해주지 않았던 ‘괜찮다…’는 한 마디로, 따스한 품으로 그녀가 그를 감싸고 위로했을 때 그는 다시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아냈다.

이렇게 착하고 여린 아이가 얼마나 내몰렸었던 것일까? 무서운 외모와 무뚝뚝한 성격, 강인해 보이는 모습들 뒤에 숨겨진 그 연한 면들을 모두 직면했을 때 혜주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괜찮다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더할 뿐. 그녀가 가지고 있는 표현력이 이다지도 모자란가?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밖에 해줄 수 없단 게 참 미안스러운 마음으로 그를 다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그 마음 하나로, 그 말 하나로, 그 체온 하나로… 무척이나 큰 위로를 받은 듯 현성이 두 손으로 그녀를 꼭 안은 채 숨을 깊이 들이킨다. 더 이상 추태를 보이지 말자… 더 이상은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꿀꺽 목구멍 너머로 그 약하고 초라한 모습들을 모두 집어삼키려는 듯 그가 눈물을 삼키며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혜주가 보인다.

“다 울었나…? 울보야.”

놀리는 듯 부드러운 웃음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현성이 못내 창피한 듯 ‘…예.’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에 혜주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 하고 그의 곁에 털썩 주저앉는다.

“…다 잘 해놓고 이기 뭐꼬… 바보야.”

“…그르게예…”

그 덕분에 그녀도 눈물 꽤나 뺀 모양인지 훌쩍이며 이야기 하는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그 팔에 얼굴을 기댄 채 이야기 한다.

“…얼굴은 또 왜 이래 많이 다쳤노…?”

“…별로 안 다쳤어예… 그냥… 낼 되면 다 낫심다.”

“니는 뭐 얼굴 철판으로 만들었나? 뻔뻔하지도 못한기!”

흥 하고 혜주가 그를 째려보자 현성이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왜 그런지 몰라도 감정이 너무 거칠게 터져 나와서 주체를 하지 못한… 그 어리고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어색해 하는 그 모습에 혜주가 휴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미소 짓는다.

“…닌 아직 보호자가 필요한갑다.”

“아, 아입니더… 이제 어른인데…”

“뭐? 내 싫나! 빙시야…!”

사람 말 끝까지 듣지도 않고 싫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혜주가 톡 쏘는 목소리로 소리치자 현성이 움찔하며 그녀를 돌아본다.

“니… 어른 될 때 까지는 내가 니 돌봐주께. 찔찔 짜고 그러면 오냐오냐 해주고.”

이내 그게 창피했던지 도도한 얼굴로 놀리듯 이야기 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거 평생 놀리겠네예… 누나.”

“그래, 뭐? 니 나중에 한 여든 먹어도 니 울었다고 놀릴낀데!”

그 말에 현성이 눈가를 손으로 슥슥 닦으며 ‘내 오늘 실수 했네예…’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에 혜주가 웃음이 터진 듯 ‘실수는 무슨!’ 하고 그의 팔을 찰싹 때린다.

“아야… 아파예, 누나…”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아직 부상이 다 나은 게 아니라 이야기 하자 혜주가 ‘내가 가보다 훨씬 쎄제?’ 하고 앙증맞은 주먹을 꽉 쥐어본다. 그리고 슉슉 소리를 내며 ‘이거는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을 가르는 소리데이!’ 하고 어설프게 원 투를 뻗자 현성이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을 터뜨린다.

“니 혼나 볼래…!”

혜주 역시 차마 민망했던지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에게 주먹을 날리자 현성이 ‘아야..’ 하고 어깨로 주먹을 맞으며 미소 짓는다.

“…닌 내 없음 안 되겠다. 내 있으니까 금방 또 울다가 웃잖아.”

그런 그를 바라보며 혜주가 도도한 얼굴로 잘난 척 이야기 한다. 그녀의 눈가도 조금 부어 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현성이 ‘정말로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괜시리 또 그 대답에 혜주가 창피한 듯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흠흠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한테 잘해라!’ 엄포를 놓는다. 그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도저히 아니라곤 대답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돌봄 당하는 거는 싫습니다.”

그러나 그건 싫다는 듯 그가 고개를 흔든다. 그러자 순간 혜주가 크게 움찔하며 ‘뭐… 왜!’ 하고 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왜 싫다고 했지…? 맘에 안 들었나?’ 몇 번 해보지 않은 걱정을 내비치는 동안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돌봄 당하면 우에 지켜 줍니까…? 내가 지켜주고 싶어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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