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회 - 괴물
“일나라.”
고개 숙인 그에게 들려온 목소리. 그가 고개를 든 곳에 현성이 서있다. 상처 가득한 얼굴, 퉁퉁 부은 허벅다리를 하고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민욱을 노려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도발하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그 순간 민욱이 알 수 없 짜릿한 쾌감과 상처난 자존심에 분노를 느끼며 ‘오냐…! 오냐!’ 하고 소리를 지르곤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이아아아!”
기합을 내뱉으며 간신히 8 카운트에서 일어난 민욱이 정말 조금 더 들어갔으면 그대로 기절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머리를 스치며 등골이 서늘해진 듯 웃음기를 거두고 그를 바라본다.
“후우… 후우…”
너무 원사이드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다보니 흥분했고, 그것이 방심을 만들어 냈다. 민욱이 그 뼈 아픈 실수를 반성하며 간신히 파이팅 포즈를 취해보지만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았다. 이민욱의 선수 인생을 통 틀어서, 아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한 일격 중 가장 충격적인 일격…! 두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아직도 머리가 띵 할 정도였다. 때리는 내내 기분 나쁘게 그를 응시하던 그 강렬한 눈빛이 이 한 수를 위한 것이었다니…
“아무래도… 내가 널 너무 물로 봤다, 현성아.”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고 했던가? 그 교훈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며 민욱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일념으로 심판 배훈에게 괜찮다 눈빛을 보낸다. 단 한방으로 이렇게 상황이 반전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현성의 주먹이 턱을 흔들었고 그 충격이 뇌를 타고 전해졌는지 제대로 서있기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빠르게 남은 시간을 체크하던 민욱이 2분… 하고 꿀꺽 침을 삼킨다. 충격에서 회복할 시간을 벌고 2라운드까지 넘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본격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저 놈을 찢어버리겠다 다짐해보지만…
“아플끼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샌드백 신세였던 현성이 이제 본격적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듯 그를 씹어 삼킬 듯 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주먹을 든다. 그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순간 민욱이 많은 경험을 해보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는 듯 멈칫한다. 그동안 그가 서울 강남 쪽에서 대장 노릇을 하면서 소문만 무성하던 양아치, 건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그들 모두가 하나 같이 우스운 수준이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또래들 사이에선 뛰어난 기량을 뽐내던 이민욱에게는 모두 우스운 상대들에 불과했지만 이번은 말 뿐이 아니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 몸에 피가 활발하게 돌며 전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민욱의 몸을 강타하는 동안…
“시합 재개!”
심판 배훈의 외침에 의해서 다시 타이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현성이 먼저 그를 향해 달려든다. 로 킥에 당한 충격 때문인지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이지만 애시당초 발을 쓸 생각은 없는지 그 강한 어깨에서 뻗어 나오는 펀치가 무지막지하게 날아든다! 민욱이 충격을 받은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겠단 그 일념이 담긴 펀치에 민욱이 이를 꽉 물고 가드를 올린다.
-뻑!
그 가드위로 전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
“큭…!”
그 가드가 무색할 정도로 위력적인 펀치에 다시 민욱이 휘청인다! 가드를 올려봐야 별 상관이 없다는 듯, 말 그대로 가드를 박살 내버리고 들어오는 충격에 민욱이 비틀하는 동안 그 눈빛이 또 다시 민욱을 향한다.
여지껏 민욱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외부 활동으로는 불량아 노릇을 하면서 만나온 놈들 중… 저런 눈빛을 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 덤비는 상대의 눈 말이다!
-뻐억!
다시 한 번 현성의 주먹이 민욱의 가드를 흔든다!
“윽…!”
지켜보는 사람들과 심판이 경악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주먹의 위력에 저도 모르게 ‘와…’ 하고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리는 동안 민욱이 ‘도대체 무슨 힘이…!’ 하고 이를 악 물고 반격의 로 킥을 날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거동이 불편한 건 민욱 역시 마찬가지!
-후웅!
한 템포 늦은 그의 공격을 예상이라도 한 듯 현성이 다리를 들어 그의 발차기를 피해내고는 다시 주먹을 뻗는다. 슈퍼맨처럼 날렵하게 찔러 들어간 펀치가 이번에는 처음에 민욱이 날렸던 스트레이트와 비슷하게 일자로 쭉 뻗어 들어간다! 황급히 민욱이 가드를 올리지만 가드가 무색하게 그 상체를 크게 흔들며 주먹이 그 위를 때린다.
-파앙!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민욱이 순간 휘청하고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문다. 그러나 정신 차리기도 전에 현성이 공격을 이어간다. 처음의 2분 30초, 그 공백 시간이 마치 민욱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부웅!
날아드는 펀치가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닌 막무가내 식이지만 그 핸드 스피드는 놀라울 정도였다. 게다가 막무가내식인지라 오히려 각도를 예측하기가 힘든데다 가드라도 부서버리겠다는 듯 날아드는 저돌적인 맹공이다 보니 지금의 상태로썬 막고 피하기 급급한 상태…!
저도 모르게 민욱이 작은 신음을 토해내는 동안 현성이 천천히 민욱을 케이지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견제 같은 것은 없다. 다소 막무가내 같아 보여도 한 방, 한 방이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펀치로… 맹수가 토끼를 구석으로 몰듯이 천천히…! 기세를 올려야 했으나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가드 위를 두어번 흔든 묵직한 주먹에, 날아들 민욱의 반격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가 날린 로 킥을 보랏빛으로 변한 허벅지로도 우직하게도 참아내며 최대한 접근해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뻑!
“와악…!”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민욱이 그 주먹을 버텨 보지만 차원이 다른 주먹이었다. 막으면 막는대로 몸을 밀쳐낼 정도로 빠르고 강렬한 주먹! 저런 식으로 주먹질을 한다면 저 주먹이 멀쩡할 리가 없을 텐데 아랑곳 하지 않고 날리는 주먹에 민욱이 점차 불안감이 커져감을 느끼곤 조급씩 숨을 몰아쉰다.
“…웃기지마!”
설마 내가 질 리 없어! 그 생각과 함께 민욱이 활활 불타오르는 승부욕의 화신이 되어 순간 집중력을 보이며 반격을 준비한다. 어느 정도 충격은 회복이 되었다…!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현성이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어그레시브하게 들어온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그의 공격은 충분히 위력적이고 매서웠지만 킥은 전혀 존재하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고, 그것은 민욱으로 하여금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순간 민욱이 날아드는 현성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는 몸이 ‘지금이다…!’ 하고 외치는 순간 뇌가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자동반사로 그의 안면에 주먹을 날린다.
-퍼억!
엄청난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들어간 카운터!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완벽했다! 고개까지 돌아가버린 그 엄청난 펀치에 민욱이 승리를 확신한 듯 ‘으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아아아아아아! 이민욱 선수! 카운터! 카운터를 꽂아 넣었어요! 정말 엄청납니다! 프로를 능가하는 경기를 펼치고 있어요!”
MC 용준이 실제 프로 경기를 연상케 하는, 아니! 오히려 프로 경기보다도 훨씬 더 화끈한 그 경기에 흥분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동안 김관수 관장도 몰입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금 펀치는 위험합니다! 아까 이민욱 선수와 같은 양상이에요!’ 하고 소리친다.
“장 선수가 너무 급했심다! 이거는 너무 무모하…”
-뻐억!
그러나 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피를 뚝뚝 흘리며 현성이 다시 민욱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커억…!”
“맙소사! 그 상태로 반격했습니다! 이민욱,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MC 용준의 흥분 가득한 갈라지는 목소리가 장내를 울리는 동안 모두가 온 몸이 소름이 돋은 듯 케이지 안의 그를 바라본다. 김관수 관장이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느끼며 ‘이건 대체 말이 안 되는…’ 하고 어느샌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성을 바라보는 동안…
카운터를 날린 민욱조차도 그 카운터를 맞고 현성이 바로 반격을 날릴 줄은 몰랐다는 듯 크게 휘청하며 케이지에 철퍽하고 몸을 기댄다. 분명히 클린 히트가 안면에 고스란히 들어갔고, 턱까지도 돌아갔다! 도대체 왜…! 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민욱이 케이지에 걸린 사이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그 매서운 눈이 그를 놓치지 않고서 주먹을 날리는 것이 보인다.
-오싹…!
등골이 서늘한 느낌에 민욱이 빨리 피해야 한다…! 하고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그의 주먹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마냥 반응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우득!
이내 케이지 구석에 내몰린 민욱의 옆구리를 친 주먹이 섬뜩한 소리를 내자 순간 민욱이 크게 충격을 받은 듯 움찔한다. 어금니를 악 물고 버텨 보지만…! 옆구리를 찌르르 타고 오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정식 경기도 아닌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일반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당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듯 민욱이 말도 안 된다는 황망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는 동안 주먹을 다시 한 번 치켜든 현성이 보인다.
상처 한 가득 난 얼굴에 피를 뚝뚝 흘리며 공허한 듯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는 남자. 마치… 도망칠 곳 없는 케이지에서 ‘괴물’을 만난 것만 같은 오싹함을 느끼며 민욱이 순간 정신이 멍해짐을 느낀다.
-뻐억!
그리고 어느 샌가 그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케이지를 잡고 버티려 했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르륵 미끄러지는 몸으로, 마치 환상을 보는 것만 같이 바닥에 쓰러진 그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하고 거친 숨을 내쉬며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온 몸이 축 늘어진 듯 움직이지 않았고 그저 떨리는 눈으로 울렁거리는 세상 속에서 그를 쓰러뜨린 현성을 바라봐야만 했다.
-스윽…
코피를 닦아내며 그를 내려다보는 현성. 쓰러진 민욱을 바라보는 그 눈은 어쩐지 분노도, 미움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슬퍼 보이는 눈빛.
“이기… 니랑 내 차이다.”
단지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천천히 돌아서며 현성이 더 이상은 방송 촬영에 관심 없다는 듯 얼어붙은 지선과 스태프들을 바라본다.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결말. 불가능에 가까웠던… 주먹이 처음으로 프로 파이터를 쓰러뜨렸다. 그것도 불 같은 파이팅에, 격투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실신 KO승으로 말이다!
그 속에서 그가 승리해도 그리 기쁘지만은 않은 듯 글러브를 벗고 무심한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와아아아! 현성아! 장현성! 장현성!”
뒤늦게 승지와 덕기, 범수가 소리치며 관중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환호성 속에서 MC 용준이 ‘이, 인터뷰해야 되는데!’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지선이 ‘괜찮아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흔든다. 환호를 뒤로한 채 절룩이며 케이지를 나서서 백 스테이지로 걸음을 옮기는 남자. 그 뒷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한 그녀가 ‘괜찮아요…’ 하고 눈물을 삼킨다.
“승자는… 대구의 주먹! 장현성…!”
마지막으로 MC 용준이 이것만은 해야겠다는 듯 승자 선언을 하며 동시에 와아아아! 하는 함성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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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표현이 됐나 모르겠네요. 즐거운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