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7화 (27/281)

- 27 회 - 괴물

“먼저 오늘의 도전자…! 대구 제일의 주먹! 전국구라고 소문 난 남자…! 괴물 장현성!”

요란한 MC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스피커를 울린다. 입장씬 역시 중요한 장면이고, 격투기에서 몇 안 되는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있는 부분이라 한 껏 오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듣기가 싫었던지 혜주가 ‘괴물은 무신…’ 하고 살짝 인상을 구긴다. 그러나 그녀 이외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지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지를 뿐이다.

도전자의 테마라고 한다면 이 노래만한 것이 있을까? 록키의 테마곡이었던 ‘Eye Of Tiger’가 흘러나오며 문이 열리고 어색한 얼굴로 현성이 걸음을 옮긴다. 착 달라붙는 팬츠에 맨 다리. 그 위로 티셔츠 하나만 걸친 모양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듯 하다만 대체로 잘 어울려 보인다. 마치 저 철장이 고향인 것처럼… 중세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는 그의 모습에 승지와 범수, 덕기가 ‘장현성! 파이팅!’ 하고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민욱의 팬들로 보이는 여자들이 우우 하고 플래카드를 들고 야유하는 모습도 보인다.

두 소리의 공존 속에서 그를 응원하는 가게 식구들의 목소리를 들은 현성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응원을 와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목례를 하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혜주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의 응원보다 그녀의 눈빛 하나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걸 느끼곤 그가 미소와 함께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는 동안 그의 지인들이 아닌 다른 관중들과 스태프들이 그의 용모를 보고 놀라서 술렁이는 사이… MC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인다.

“도전자를 상대 할 오늘의 프로 파이터! 천재 파이터, 엄친아 파이터, 의대생 파이터…! 오만가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파이터! 이민욱!”

다소 오버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그 표현은 극적인 연출 장치에 불과한 것.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다시 문이 열리고 헤비한 사운드와 함께 민욱이 모습을 드러낸다. 얌전히 입장한 현성과 달리 두 팔을 들고 관중들을 열광케 하도록 박력 있게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어필하는 그 모습에 그를 싫어한다 하던 승지도 순간 혹한 듯 그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함성을 지르려다 망설이고 멈춰 선다.

긴장한 듯 굳어 있는 현성과 달리 한껏 여유 있는 민욱의 모습. 두 사람의 싸움은 아마 불을 보듯이 뻔해 보이는 가운데 혜주가 불안한 마음이 커지던지 두 손 모아 현성을 바라본다. 그 눈빛을 향해 현성이 여전히 괜찮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고는 뒤돌아서서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벗는다.

“어머… 현성이 몸 좋네…! 몸 이쁘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그의 몸. 요 근래에 생활 자체가 힘들어서 그런지 살이 너무 많이 빠져 다소 앙상해 보이는 몸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체격 자체가 워낙에 큰데다 근육질 체형이다 보니 옷을 입었을 때보단 왜소해보여도 전반적으론 아주 날렵하게 잘 빠진 몸 같다. 남자들 보단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체형이라고 할까? 승지와 아가씨들이 꺅꺅 하고 높은 목소리로 응원하는 동안 현성이 민망하던지 얼굴을 붉힌 채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이 또 보기완 다르게 풋풋하고 순진해 보여 걱정하던 혜주도 살짝 웃음을 터뜨린 채 함께 응원을 하는 동안 민욱이 ‘현성이 인기 좋은데?’ 하고 씩 웃으며 티셔츠를 벗는다.

현성과 달리 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갑옷과 같이 쫙쫙 갈라진 바디가 드러나자 응원하던 승지와 아가씨들이 순간 그 몸에 혹한 듯 어머… 하고 그를 바라본다. 생긴 것, 키, 몸… 어느 것 하나 빠질 데 없는 그의 몸에 그녀들이 ‘그래도 현성이 편이니까…!’ 하고 다시 현성을 응원하는 동안…

“흠… 도전자가 장현성 씨라고 했나요…? 몸은 마른 편인데 골격은 아주 좋네요.”

일일 해설자를 맞은 대구 MMA 팀 토네이도의 김관수 관장이 힐끔 현성을 보며 감상평을 내린다.

“저 정도면 내츄럴 헤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이겠는데… 덩치나 골격에 비해서 체중이 너무 많이 빠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베스트를 유지하고 있고, 따로 감량 안 한 이민욱 선수와 비슷해 보이는데… 아마 그런 면에서 이민욱 선수가 확실히 힘이나 스태미나에서도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체격이 있지만 너무 살이 많이 빠진 탓에 제대로 된 힘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동체급의 운동선수를 상대로는 더더욱… 김관수 관장이 회의적인 평을 내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리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소개를 마친 엠씨가 중계석에 합류해선 ‘아…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치를 살핀다.

대구 쪽에서 가장 유명한 체육관이 있다면 김관수 관장이 운영하는 팀 토네이도 체육관일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경량급 파이터 송기철의 팀이기도 했고, 특히나 김관수 관장은 코리안 탑 팀의 코치를 거치며 국내 격투기 무대에서는 명조련사로 손 꼽히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따라서 대구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그를 섭외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 당사자가 이 프로그램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격투기가 아니라 주장을 하고 있어 섭외는 물론이거니와 이 해설자 역할을 맡기는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전임 PD가 연락을 해서 사정하는 것으로 참여는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MC가 힐끔 그를 바라보며 ‘김관수 관장님께서는 경기를 어떻게 전망 하시는지…?’ 하고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뭐, 경기라 칼 게 있겠십니까? 사실 일반인과 프로 파이터는 다르지요. 운동선수랑 보통 사람 붙여놓는다는 자체가 저는 그렇게 와닿는 일은 아니다 싶습니다. 운동 좀 해봤다 싶은 사람들은 다 알 거에요. 안 그렇심까?”

단연 이민욱의 승리를 예견하는 그의 말에 MC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장현성 선수가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덩치도 크고…”

“덩치 크다꼬 다고난 소질도 큰가? 아입니다. 타고난 소질은 모르지요. 근데… 이민욱 선수가 고교 3년 동안 꾸준히 전국체전 및 현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일본에 있는 슛 파이팅에서도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이건 애시당초에 경력 차이가 너무 크지요. 운동선수 중에서도 엘리트 운동 선수에 속하는 민욱이… 아니, 민욱 선수랑 일반인 아입니까…? 생업 전선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랑은 차이가 있심다. 이건… 시작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게임이지요.”

왜 이런 바보 같은 프로그램을 참가해야 하고, 또 해설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심드렁한 김관수 관장의 말에 MC 용준이 난처한 얼굴로 식은땀을 닦으며 ‘네… 말씀 잘 들어 봤습니다…’ 하고 빨리 신호를 준다.

그 신호에 심판 마배훈이 링 중앙에 있다가 서로 눈치를 살핀다. 이제 시작하자는 용준의 눈빛에 배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과 민욱을 번갈아 바라본다. 준비 되었냐는 그의 물음에 민욱이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 안으로 마우스피스를 끼워 넣는다. 현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마우스피스를 집어넣지만 뭔가 어색한 듯 불편한 얼굴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전설 대 프로! 제 1라운드의 공이 울립니다!”

그러는 와중에 용준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와 함께 심판 배훈이 ‘렛츠고, 파이트!’ 하고 우렁차게 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폭발한 듯 와아아! 하는 함성이 순간 터져 나오고 그 소리가 잣아 들자마자 여유 있는 얼굴로 민욱이 그를 향해 다가선다. 주먹을 마주침 없이 날렵한 상체 움직임으로 시작하자마자 민욱이 주먹을 뻗는다.

-파앙!

파공음처럼 귓가를 스치는 매서운 소리…! 그가 보기완 다르게 매서운 주먹을 뻗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무척이나 어그레시브하게 들어가는 민욱이 잽 이후에 바로 스트레이트를 찔러 넣는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주먹에 현성이 움찔하며 몸을 낮춰 스트레이트를 피해내지만 완벽하게 피하진 못하고 글러브가 이마를 스친다. 따끔한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현성이 휘청인다. 보통의 싸움과는 철저하게 다른 것…! 그것이 있다면…

“로 킥! 원 투 컴비네이션 이후에 로 킥! 이민욱 선수, 아주 날렵하게 콤비네이션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MC 용준의 외침에 곁에 있던 김관수 관장도 이 프로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확실히 민욱의 콤비네이션만큼은 인정할만하다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처음부터 저렇게 적극적으로 들어갔다는 자체가 이민욱 선수가 굉장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거죠. 아마 상대와의 실력 차이도 있을 것이고, 또 킥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아마 안심하고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가지 않켔나 싶심다.”

노련하게 경기를 풀어 설명하는 그의 말에 MC 용준이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민욱의 공세는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죽이겠다더니 뭐가 이래?”

로 킥의 충격에 휘청이는 현성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또 다시 번개 같은 원 투…! 아직 한 번도 주먹을 뻗지 않은 채 그의 공세를 받고 있는 현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한 충격에 적잖게 당황한 듯 주먹조차 뻗지 못하고 주춤하며 구석으로 내몰리기 시작한다.

“아… ‘주먹’이 주먹을 내뻗지를 못하네요…! 벌써 시작부터 위기인가요?!”

자못 위태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 MC 용준이 소리치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물론 민욱을 응원 온 그의 여자 팬들이 ‘꺅! 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 하는 동안 현성을 응원 온 혜주와 범수를 비롯한 가게 식구들은 그와 함께 심정을 공유하는 듯 갑갑한 얼굴로 ‘현성아…! 파이팅!’ 하고 어떻게든 소리를 내 응원을 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숫자에서도 밀릴뿐더러 경기의 판도는 다소 일방적인 구석이 있었다.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번에는 로 킥이 아니라 바디샷이 현성의 옆구리를 때린다. 여지껏 맞아본 주먹들 가운데 가장 아픈 주먹이란 사실에 현성이 살짝 인상을 구기자 민욱이 ‘아프냐?’ 하고 비웃음을 날린다. 그리고 다시 번개 처럼 이어지는 펀치 러쉬…! 쇼트로 끊어 치는 펀치가 케이지 구석으로 현성을 몰아 세우며 폭풍처럼 쏟아진다. 그저 현성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권을 하거나, 손을 들어 그 주먹들을 어떻게든 막아서는 일밖에는 없는 듯 보였다…!

“이거 너무 일방적인데요!”

“일반인이랑 프로선수가 싸우면 안 되는기 저런 이윱니다. 아무리 일반인이 날고 긴다 해도 프로 선수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버 몰아치기 시작하면 버틸 수가 없심다. 그런 거 치고 이민욱 선수가 일반인을 상대로 좀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김관수 관장이 일방적인 공격을 몰아치며 거의 잘근잘근 씹어먹듯이 현성을 유린하는 민욱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콤비네이션은 빠르고, 정교하며, 한방 한방이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게 프로 선수가 아마추어… 아니, 아마추어도 아니고 운동 경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반인에게 보일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그가 ‘심판이 이민욱 선수를 좀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현성아…! 아이고…!”

범수와 덕기를 비롯한 웨이터들이 주먹 한 번 뻗지 못하고 구석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운 듯 발을 동동 구른다. 기운차게 시작한 응원도 점점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경기 양상에 그저 입을 다물고 고요해지기 시작한다. 이건 게임이 되지 않아도 너무 되지 않는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생각들이 모두의 머리에 차오를 때 쯤…!

“야, 내가 샌드백 치러 왔냐?!”

재미가 없다는 듯 민욱이 인상을 구기며 다시 한 번 바디 샷을 꽂아 넣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꼐 현성의 몸이 휘청인다. 어느 샌가 얼굴에 생겨난 잔 상처들과 여기 저기 부은 자국들이 이제 겨우 경기 시작한지 2분 30초가 지났지만 그 전에 토너먼트라도 치루고 온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역시 니들 것들은 말만 앞서는구나…!”

기대했던 자기가 잘못이라는 듯 민욱이 그를 조롱하며 다시 주먹을 뻗는다. 거의 2분 30여초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이어 콤비네이션을 날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현성은 불안감이나… 지겠다는 생각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얼굴에 생겨나는 생채기들도, 다리에 겹겹이 쌓이는 로 킥의 강렬한 전율도… 그렇게 아프진 않다는 생각 뿐. 계속해서 쏟아지는 파상 공격들 속에서 현성은 눈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 매서운 주먹과 공격들이 그의 몸에 쏟아진다 하더라도 그저…

“그냥 1라운드에 작살 내줄게! 병신아!”

예상보다 더 맥이 풀린 듯 민욱이 재미를 망쳤던 사실에 분노하며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처음으로 현성이 움직였다.

-쩌억!

마치 장작을 패는 듯 엄청난 소리가 스튜디오 전체를 가득 채운다.

-털썩…

“어…?”

그리고 순간 콤비네이션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민욱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비틀비틀 거리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그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동안 장내에 정적이 맴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아… 이, 이… 이민욱 선수 다운! 다운!”

MC 용준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혜주가 ‘현성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서 승지와 범수, 덕기가 와아아! 하고 소리를 지으며 ‘장현성! 장현성!’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세상에…”

그 사이에 김관수 관장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카운트 중인 케이지 안을 바라본다.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하는 민욱이 쉽지 않은 듯 덜덜 떨리는 두 팔로 몸을 버티고서 헉헉 숨을 몰아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김관장님…?”

MC 용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김관수 관장이 ‘아 예?’ 하고 다소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을 하다 다급히 본분인 해설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이게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 장현성… 저 주먹이란 친구가 이걸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공격당하면서 가드만 확실히 지키고 있다가 이민욱 선수가 서두르는 사이에 한 방을 날렸는데 과거 ‘북방의 최종병기’라고 불렸던 이고르 보브찬첸 선수 아시지요…? 바로 그 선수를 비롯한 슬라브계 선수들이 자주 구사했던 러시안 훅처럼 이게 무각도로 들어갔어요! 당연히 어그레시브하게 들어가던 이민욱 선수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거고, 그게… 엄청나네요…! 정말로…!”

설명을 하면서도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김관수 관장이 꿀꺽 침을 삼키며 감탄을 터뜨린다. 저것은 정말로 그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소 일방적으로 진행 되는 싸움에서 주먹이라고 불린 친구가 너무 패기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일방적인 경기를 단 한 방. 첫 주먹을 클린 히트 시키며 분위기 자체를 완벽하게 뒤집어 버렸다.

카운트 속에서 일어나려 비틀 거리는 민욱과 차분한 얼굴로 그를 내려 보고 이쓴 현성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온 몸의 솜털 하나, 하나가 바짝 서는 느낌을 받으며 그를 바라본다. 190 센티에 이르는 거대한 키와 내츄럴 헤비급에 가까운 골격. 그리고 표정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할 것 같은 기백…! 결정적으로… 아무런 운동 경험 없는 이가 노리고 쳤다면 그야 말로 대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타격감과 선수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다운 당한 적이 없었던 이민욱을 쓰러뜨린 펀치력…!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전율은 김관수 관장 뿐 아니라 지선을 비롯한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대 최초로… 주먹이 프로 선수를… 슬립 다운이 아닌 정식 다운을 이끌어 냈다. 두근두근두근 하는 심박이 커지고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MC 용준이 ‘그 러시안 훅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주시죠…! 김관장님…!’ 하고 카운트 중 해설을 부탁한다.

“일반적인 훅은 허리랑 무릎을 돌려서 치는데 러시안 훅은 어깨와 팔꿈치를 중심으로 주먹을 안쪽에서 비틀어 치고 들어갑니다! 요래, 요런식으로! 스트레이트로 명중되는 펀치를 어깨에서 반원을 그리며 팔꿈치를 되돌리는 식으로요! 요 각을 이룬 훅과 스트레이트의 장점이 골고루 혼합된 공격기술인데… 이건 타고난 어깨와 힘이 없으면 쓰고 싶어도 함부로 못 씁니다…! 방금 그 소리는… 지금 이민욱 선수가 일어난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들 정돕니다. 저 장현성이란 친구가 진짜 엄청난 한방이 있는… 말 그대로 ‘주먹’ 그 자체였네요!”

다소 부정적이었던 김관수 관장이 케이지의 현성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열변을 이어가는 동안 민욱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지껏 이런 충격은 경험해본 일이 없는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 그림에 민욱이 급격하게 당황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 물고 바닥을 밀어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그저 치고 들어갔을 때 기절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졌고,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민욱은 사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정말로 그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그 순간 민욱이 ‘설마… 내가 져…?’하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하자 그럴 순 없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으으윽 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간신히 치켜든 고개. 그리고 그 앞에 큰 덩치가 보인다. 원래 키가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스럽게 거대해 보이는 그 모습에 민욱이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는 동안 현성이 그를 내려다 보며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일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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