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회 - 괴물
“누나, 여기!”
185센티, 큰 키에 모델마냥 자그마한 얼굴. 길게 쭉쭉 뻗은 두 팔과 다리가 시원스러운 민욱이 카페의 편안한 의자에 기대 앉아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선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대구에서 지난 3일간 함께 했던 6mm 카메라를 들고 그를 향해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긴다. 짧은 단발머리에 여전히 편안하게 신은 운동화와 활동성 있는 패션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그녀가 그의 앞에 서자 마자 ‘너 이 미친 자식!’ 하고 욕을 내뱉자 민욱이 껄껄 웃음을 터뜨린다.
“덕분에 그 자식도 방송 나온다면서? 그럼 된 거 아니야? 앉아! 앉아서 애기 하자, 누나!”
지선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 듯 민욱이 낄낄 웃음을 터뜨리며 ‘사촌 누나’인 그녀를 바라본다. 그 말에 지선이 정말 ‘넌 진짜 언제 인간 될래?’ 하고 인상을 팍 구기며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자 민욱이 어깨를 으쓱인다.
“난 또 이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그 태연자약한 얼굴에 지선이 깊이 한숨을 내쉰다. 그녀로써도 처음 맡은 방송에서 히트를 할 수 있는 소재… 엄밀히 말해서 ‘주먹이 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이슈화 시키기 쉬한 상대인 현성이 섭외에 응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반가운 게 사실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섭외가 섭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고, 어린 시절부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그녀의 잘난 사촌 동생의 못되고 못난 면이 그대로 도드라지고 있었으니까.
“넌 진짜… 애가 왜 그러니?”
“누나야 말로 왜 그래? 내가 이렇게 도와주면 고맙다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핑계 없는 무덤이 얼마나 있겠냐고… 그놈도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겠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놈 살인범인 건 변하지 않는 팩트야. 뭐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내가 아무리 못 된 놈이라도 살인범보단 낫지 않겠어?”
논쟁과 다툼을 즐기는 호전적 성미답게 일사천리로 막힘 없이 현성의‘ 원죄’를 공격하는 그의 모습에 진선이 질린다는 듯 인상을 구긴다.
“…모르겠다. 내가 널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지.”
깊이 한숨을 내쉬는 지선의 모습에 민욱이 ‘아이, 왜 그래!’ 하고 다시 싱글벙글 웃음을 터뜨린다.
“괜찮아…! 어차피 뭐 방송 나가봐야 케이블인데 얼마나 본다고. 대신 내가 나오니까 내 팬클럽 애들이 좀 보고, 캡쳐 찍어 나르고 하면 꽤 반향은 있지 않겠어? 제목 자제도 좋잖아? 천재 의대생 파이터 이민욱의 악인 응징!”
그 말에 지선이 살짝 인상을 구기며 ‘후…’ 하고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누나 그렇게 한숨 많이 내쉬면 주름 생긴다…?”
“주름 이야기는 됐고. 난 니가 진짜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진짜… 너 아무나 손찌검 하고 다니니?”
그가 대구에서 벌였던 일들을 ‘현성’이 아니라 주변을 인터뷰 하면서 듣게 된 지선이 정말 많이 화가 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민욱이 ‘어, 걸렸네.’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렇지만 상과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모습은 반성은 커녕 그게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병원비하라고 돈 많이 줬어, 괜찮아. 솔직히 뭐 돈 벌라고 걔네들도 그러는 건데 뺨 한 대 맞고 그 정도 받았으면 땡 잡은거지.”
어린 시절부터 너무 완벽했기 때문일까? 외모, 집안, 운동, 공부… 어느 면에서 빠짐 없는 그녀의 사촌 동생은 ‘인성’에 크나 큰 결격 사유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리고 다니며 사고도 종종 치곤 했지만 그렇다 해도 항상 전국에서 수위권에 드는 높은 성적을 유지했던 탓이 그걸 한 순간의 방황 정도로만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사촌이 지선이 봐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렇게 방송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지만…
“야! 이민욱!”
지선의 화가 난 눈빛에 민욱이 ‘아아, 넵!’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귀찮다는 듯 턱을 괴고 앉아서 그녀를 바라본다.
“누나는 다 좋은데 그 성격이 문젠 거 같아. 걔들이야 어쨌든 누나 방송만 잘 되면…”
“넌 진짜 아직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을 못 내리는 구나? 그만 입 다물어. 나 너한테 더 정 떨어지면 그냥 일어설 거니까.”
아무리 사촌 지간이지만 지선의 불 같은 성격은 그도 익히 잘 알고 있던 모양인지 ‘에, 어련히…’ 하고 민욱이 두 손을 들고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여전히 반성과는 거리가 먼 그 모습이 현성과는 선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 그 죄책감을 아직까지 안고 살고 있다. 그게 그 날의 목사였던지, 아니면 그의… 였던지.
그러나 민욱은 철저하게 반대였다.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니 잘못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이겠지만. 무엇인가 인간적인 면모가 결여된 동생의 모습은 혹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과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 걱정 담긴 눈빛에 민욱이 씩 웃으며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나도 좀 과하다 생각하긴 했었어. 아, 걔한테도 미안하고 걔네들한테도 미안하지.”
그 여자 진짜 이뻤던 것 같은데 하고 쿡쿡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여전히 진지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전임 PD였다면 이런 녀석을 영웅으로 만들고 띄우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사촌인 그녀보다 손 발이 더 잘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선이 한숨과 함께 카메라를 들자 민욱이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방송에 내보낼 건지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만… 아무튼 그건 그래. 내가 굳이 왜 그 녀석이랑 붙으려고 생판 모르는 여자 얼굴 까지 손을 댔느냐!”
연극에도 재주를 보이는 것 처럼 비범한 자태와 과장된 음성으로 이야기 하며 민욱이 씩 웃음 짓자 지선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6mm 카메라 안에 비치는 사촌 민욱의 모습은 사촌인 그녀가 보기에도 잘 생긴 외모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있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녀석.
“사랑 받는 건 이제 지겨워. 솔직히 말해서 학교 대강 다니면서 놀고 해도 의대에 들어갔고… 뭐 또 선수 생활 하는 것도 별 자극이 없고. 간단히 생각해보면 사랑 받는 것 보단 미움 받는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킥킥 웃으며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다는 듯 민욱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어쩐지 현성의 깊고 묵직한 빛과는 무척이나 크게 대조를 이루는 경망스러운 느낌이 들자 지선이 저도 모르게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미움 받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럼! 사람들은 나 같은 놈 싫어하거든! 아니, 싫어한다기보단 열폭 하는거지. 잘 생기고 키도 큰데… 집안도 짱짱하지. 거기다 싸움은 예술이고, 놀기만 해도 의대에 들어갈 정도로 머리도 좋아. 그렇다고 성격이 이상하길 하나…? 강남 일대 클럽 VVIP가 나고, 친구들만 천명이 넘는데! 난 뭐, 싫어 할래야 싫어 할 수가 없는 사람이잖아?”
뻔뻔하게 카메라를 향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그는… 말 그대로 악당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황태자가 황궁 생활에 지쳐 똑같은 외모를 가진 거지와 역할을 바꾸었던 것과 같이 뭔가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듯 흥분된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미움 받고 싶더라고. 아, 물론… 계속 그럴 생각은 아니야. 뭐, 내가 맞거나 까이면 흥분하는 편은 아니거든! 아무리 미워도 결국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 그 많은 사람들이 내가 깨지고 혼나길 바라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거든. 그거야! 그 사람들이 내가 무너지거나 떨어지길 바라고 저주하는만큼… 난 그 사람들의 기대를 부수고 싶거든! 재미있잖아…? 그렇지 않아, 누나?”
악동(惡童)이라고 해야 할 까…?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악당(惡黨)이라고 해야 할 까? 너무나도 애매한 경계선에 서서 인간적인 면모를 상실해가는 그의 모습에 지선이 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갑갑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눈빛에 민욱이 ‘범인은 이해를 못 하는 법이지.’ 하고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래도 내가 나쁜 놈이 될 것 같은데… 뭐, 이 프로그램엔 전환이 필요하잖아? 가끔은 못된놈이 착한놈들을 이길 때도 있다… 이런 거 말이야. 내가 그 전례가 되어 줄게, 누나! 걱정 하지마!”
이걸 찍어서 그대로 내보내도 되는 걸까? 지선이 갑갑함을 느끼고 사촌 동생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태연자약한 얼굴. 자기가 내뱉은 말에 후회나 미안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 누가 정신 차리게 도와주지 않으면 ‘엇’나가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지선이 이제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그래…? 내가 불쌍한 놈 같이. 불쌍한 건 그 괴물 딱지 같은 놈인데. 조금 미안하니까 매값이라도 두둑하게 챙겨줘, 누나.”
여전히 그런 것을 느끼기는 커녕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와의 일전만을 기대하고 있는 얼굴로 민욱이 비웃음을 날린다. 보기도 싫은 얼굴… 친척이라서 더 보기 싫은… 그 느낌에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 간다.”
이내 눈을 뜨고 차갑게 일어선 지선의 모습에 민욱이 ‘벌써?’ 하고 물음을 던진다.
“…편집할 거리도 쌓여 있고… 나 너 더 보고 싶지 않아.”
정말로 정이 뚝뚝 떨어졌단 그녀의 말에 민욱이 ‘도와주고 이런 푸대접이라니.’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것만 같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세상 모든 것이 쉽고 따분한 듯 말이다.
“…난 너. 현성 씨한테 많이 맞고 제대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그런 동생에게 정말로,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듯 지선이 무거운 한숨과 함께 이야기 하자 민욱이 ‘그럴 일은 없겠네요~’ 하고 다시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누나, 그래도 나 너무~ 나쁜 놈 같이는 내보내지 마! 뭐… 그래봐야 사람들은 승자만 기억하겠지만.”
결국 우매한 대중들은 그리 하고 말 것이다. 스스로를 우매한 대중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고 우월한 존재라 여기는 듯 그 오만 방자함이 하늘을 찌른다. 깊은 한숨만 내쉰 채 지선이 카페를 나서는 동안 민욱이 천천히 고개를 푼다. 뚜둑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푼 그가 지선이 나가기도 전에 눈여겨 보고 있던 카페 안의 예쁜 여자에게 눈빛을 보내자 이내 그녀가 수줍게 웃음을 터뜨린다. 좋은 징조였다. 아마 저 여잔 오늘 밤 안으로 그의 먹이가 되어 호텔 방 안에서 헐벗은 채 숨을 헐떡이게 될 것이다.
“…너무 쉬워.”
사랑 받는 건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재미도 없다. 민욱이 씩 웃음 짓는다.
“가만히 보면 나도 참 못된 구석이 있구나.”
안 그래도 힘들어 보이는 녀석을 굳이 짓밟고 망가뜨리겠다는 것. 원래 약한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왠지 그러고 나면 희열이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이내 그가 다가서서 몇 마디를 던지자 예상했던 것과 똑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부끄러워한다.
아마 그 날 역시 그가 예상한 대로 전개 될 것이다. 그 험악한 인상의 덩치는, 한 때 그보다도 위라고 소문이 났었던 ‘괴물’은 어떤 동화나… 민담에서와 마찬가지로 패배하고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색다른 재미가 밀려왔던지 민욱이 씩 웃음 짓는다. 이내 그가 흥미가 떨어진 듯 그를 향해 호감을 보이는 여자를 향해 비웃음기 섞인 웃음을 던지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게 너 같은 거 꼬시는 것 보단 훨씬 재미있겠다. 그냥 우리 지금 같이 가서 자자. 그랜드 호텔 스위트 룸에서 와인이랑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