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2화 (22/281)

- 22 회 - 괴물

촬영이란 것은 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당황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것이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더 어색한 것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지선이 밀착 취재를 위해서 가게도 함께 따라나섰단 것이다. 물론 손님들이 넘치는 시기는 아닌지라 그다지 바쁜 것은 없었지만 항상 남에게 관심 받고 주목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싫어하는 현성이다 보니 승지를 비롯한 아가씨들과 다른 웨이터들의 관심이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불편한 기색을 내비추면서도 끝끝내 참을 생각인지 별 다른 말 없는 그를 보며 지선이 미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씬이 필요해서…’ 하고 이야기 하자 괜찮다는 듯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한 차례 크게 당해본 그인지라 지금도 딱히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다. 단지 이민욱이라는 가진 자의 횡포에 발버둥을 치겠단 말처럼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그의 마음가짐은 결연해 보이기 까지 했다.

“혹시 폐가 안 되면…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만큼 그의 사연을 백방으로 알리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져야 했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웨이터들이나 아가씨들도 방송이란 것에 조금 들뜬 눈치로 지선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차곡차곡… 소년원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초년생 장현성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솔직히 인상도 안 좋고, 덩치도 크고 해서 겁 많이 먹었어요. 들어온 것도 갈 데가 없어서 아는 형님한테 부탁해서 겨우 들어온거라 캤는데… 뭐 시키면 때리고 엎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근데 안 그러더라구요.”

“오히려 되게 성실하고, 예의도 바르고… 맨날 오픈 하기 저에 먼저 와서 청소도 다 해놓고 할 거 다 해놓으니까 우리는 진짜 많이 편해졌죠. 좀 미안한 거는… 그래 고생 하면서 왜 사람들 앞엔 안 나설라 그러니까 팁빨 못 받잖아요? 웨이터가 팁빨 못 받으면 진짜 돈이 안 되는 건데… 그런 와중에도 힘든 거도 남한테 안 미루고 자기가 할라 그러고… 솔직히 그냥 옆에서 보면 안타까운 게 고생하고 있다는 게 보이니까.”

“생긴 거는 타고 난 건데 그건 뭐 어쩔 수 없잖아요? 근데 그런 거 가지고 시비거는 손님들도 있고… 잘난 거 하나도 없으면서 돈 냈다고 막 진상 피우는 손님들도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 되게 내가 막 속상하고 그래요. 그리고 든든해요. 무뚝뚝한데 남자답고 은근히 자상한 구석도 있어요. 그냥 다른 노는 애들이랑은 느낌이 다른데… 뭐라고 캐야 되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래요. 난 현성이 좋아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쑥스러워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현성을 보는 것도 새로운 일면처럼만 느껴진다. 지선이 촬영을 하면서 처음에… 단순히 목사를 폭행치사한 무척이나 파렴치하고 악독한 소년범이 아니라 지금은 아주 기구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음을 느끼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누구든 그를 마주 본다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장현성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막되먹은 인간은 아니고, 오히려 올곧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혹시… 현성 씨가 왜 소년원에 가게 된 건지는 알고 계세요?”

조심스럽게 지선이 다시 물음을 던진다. 인터뷰에 응한 덕기와 승지가 서로를 바라보며 그건 아직도 잘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그냥… 안 좋은 일 있었다고만…”

함부로 이야기 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동갑내기 직장 동료들 두 사람도 모르는 그의 과거. 그 순간 지선이 힐끔 현성을 바라보며 ‘얘기… 해도 되요?’ 하고 승낙을 구하자 현성이 조금 부담스러운 듯 하면서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현성 씨가 때린 사람… 현장에서 성폭행을 시도 하려던 사람이었대요.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 말에 덕기와 승지에 많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어색하게 서 있는 현성을 바라본다.

“참말로요…?”

믿기 힘들다는 듯 두 사람이 힐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일 있음 얘기 하지… 우리는 그런 거도 모르고…”

알고 지낸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은근히 서운한 감이 있다는 듯 승지가 다시 그를 바라본다. 그녀가 받은 그 든든한 느낌은 아마 그것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그카면 소년원에 드갈 필요는 없는 거 아니에요? 나쁜 놈 나쁜 짓 못하게 막은 건데 왜…!”

이건 억울한 처사가 아닌가 하고 승지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핍박과 괴로움을 눈 앞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 게 바로 그녀 아니던가? 감정이 몰입된 듯 글썽한 눈의 승지가 현성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자 현성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지선을 바라본다.

“피해자가 도망쳐서, 증인이 없어가… 단순 폭행치사 돼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꺼내야만 한단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리 해야만 했다. 이 참에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털어 놓으란 혜주의 말처럼 어점 그리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몰랐다. 비록 그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험악한 외모에 가려진, 그리고 그 무서운 사건에 가려진 진실의 일면이 드러나자 도저히 그런 짓을 한 사람으론 보이지 않던 현성의 평소 모습이 빛을 발한다.

“…와, 진짜… 나쁘다. 그 가시나.”

현성을 평소 무서워하던 덕기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승지도 덩달아 동갑내기 친구에게 일어난 일에 분노하며 함께 그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고맙고 감사하나 한편으로는 역시나 부담스럽다. 현성이 조금 많이 불편해 하는 듯 하자 지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야 한다는 듯 물음을 던진다.

“평상시에 현성 씨가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그냥… 어릴 때라서 빙시 짓 했다고 카기만 해서… 근데 그게 진짜 그런 건 줄은 몰랐어요.”

어느 생가 승지가 훌쩍이며 그를 바라본다. 20살의 소녀와 숙녀의 경계에 놓인 그녀가 왠지 모를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다. 안아주고 싶은 그 모습이 그녀의 모성애를 자극한 듯 승지가 ‘현성아…’ 하고 그에게로 먼저 다가와 그를 꼭 안아주자 현성이 어색한 얼굴을 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선이 촬영에 임하는 동안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혜주가 옅은 미소를 짓는다. 촬영을 하는 여자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왠지… 장현성이라는 남자의 가치가 이 방송을 통해서 극히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헛으로 만들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 안 둘기다.”

그래도 여전히 지선이라는 여자 PD가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는 듯 혜주가 후후 웃으며 뒤돌아 선다. 그리고 이후에 범수나 다른 사람들이 추가로 인터뷰를 하면서 밤 2시가 넘어서야 촬영이 끝이 났다. 6mm 사이즈의 작은 카메라이긴 했지만 그게 그의 일상과 평소 모습을 담는덴 큰 어려움이 없었던 모양이다.

“후우…”

카메라를 들고 피로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지선을 바라보며 현성이 ‘이제 들어가서 좀 쉬소.’ 하고 이야기 한다. 아직까지 그녀에게 마음을 모두 연 것은 아니지만 승지의 말처럼 은근히 자상한 구석이 있는 무뚝뚝한 목소리에 지선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퇴근해서 나가는 장면 찍고 싶어서요.”

“…그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나는 정확한 사실을 전하고 싶어요. 현성씨 많이 힘들고 억울하잖아요. 같이 일하는 분들도 처음엔 생긴 것만 보고 무서워 하고 거리를 두고… 또 그 일 때문에 더 그랬잖아요. 최소한 그런 편견이나 오해는 벗겨내고 싶어요. 그런 사람 아니니까. 만약 내가 현성 씨를 내 프로그램에 섭외를 했다면 최소한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가벼운 프로그램도 좋지만 최소한 진정성이 느껴지게 만들고 싶어요.”

열정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피로하지만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일을 가져본 적은 없는 것 같단 사실이 문득 머리를 스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선이 후후 웃음 짓는다.

“내가 여자라서 남자들의 세계를 잘 모르니까, 막바지인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고 그냥 뒷수습요원으로 투입된 것도 알아요. 그래서 그땐 정신이 살짝 나가서 너무 들떠서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못하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생각했던 거 정말 미안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정말 꿈이었고, 목표에 다가가기 시작한거거든요. 지금은 비록 케이블 방송사의 땜빵 PD지만… 나중엔 진짜 잘 나가는 PD가 될 거니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많으 사람들이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라 뭔가 남는 게 있도록이요. 음… 갑자기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살짝 혀를 내밀고 수줍게 웃는 서울 말씨의 여자를 바라보며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열정과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소 무안한 상황에서 그냥 포기해버릴 수도 있던 것을 악착 같이 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자 현성의 가슴이 쿵쿵 하고 뛰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그에겐 세상의 벽은 너무 높고 험해서… 살아가기 벅차 그런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분명히 꿈은 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하지만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나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네예.”

그 목소리에 지선이 ‘아…’ 하고 그를 바라본다. 이따금씩 보이는 그의 공허한 눈빛은 아마 그런 것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아직 알아갈 곳이 많은 사람. 그리고 동시에 더 알아가고 싶은 것들을 많이 남기는 사람. 말로는 이뤄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끌림을 느끼며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그만큼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녀의 위로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 그게 가능이나 할까…? 의문이 생긴다. 현실의 벽은 언제나 높고 높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무엇인가 자신도 그녀처럼 열정이란 것을 가지고, 목숨 걸고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일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의 씨앗이 그 가슴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얼핏 스친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본 현성이 그런 걸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래 강한진 모르겠심다…”

그 말을 남긴 채 그가 쉬라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곤 다시 일을 보러 걸음을 옮긴다. 손님들은 많이 없지만 쉬지 않고 부단히 몸을 움직이는 그를 보며 지선이 간절하게 자리 잡은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처럼 한숨을 내쉰다. 허나 그가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실의 벽이란 높고 높으니까. 물론 그 벽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만… 현성에겐 그 벽을 잡고 버티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니까.

너무 많은 고생을 해온 그가 제발 잘 되면 좋겠단 생각으로 그녀가 잠도 깰 겸 바깥 공기 좀 마셔야 겠단 생각에 카메라를 꼭 안고 가게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한 팔로 카메라를 감싸 안고 반대쪽 손으로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일단은… 민욱이 이 돌아이 자식한테 먼저 연락 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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