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회 - 괴물

사람이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모를 볼 수 있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말곤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외면의 것이 그 사람의 모든 면면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이는 것 이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현성은 그 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인생에 있어서 몇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긴 했지만 그때에는 정말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괴물과 같이 비춰지는 그 외양을 넘어서서 장현성이라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그건 그렇게 거창한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단지 더 이상은 얼굴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거나, 거북스러워하지 않게 된다거나…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 하나가 그에겐 행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대인기피증이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 앞에선 스스로가 움츠러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몸 가눌 곳,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상황은 더더욱 그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쉬는 날보다 좋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그로 하여금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깨닫게 만들었다. 휴일 이후 다시 출근을 하는 날. 몸은 여전히 피로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쉬는 날에 오히려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마음고생을 단단히 한 탓에 고단한 기운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외모나 소년원 전력으로 그를 평가 하지 않는 가게의 식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맘을 더 편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휴일 날에 밥을 사준 것도 모자라 셔츠까지 선물해준 혜주를 떠올리며 현성이 새 셔츠를 몸에 걸쳐 본다. 빳빳한 카라 깃과 구김 하나 가지 않은 새 셔츠의 말끔한 느낌이 몸에 착 달라붙자 기분이 좋은지 거울 앞에 선 현성이 오늘은 그리 못난이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에 괜히 혼자 뻘쭘한 기분을 느끼며 살짝 웃음을 지어 본다.

입 꼬리가 어색하게 파르르 떨리는 것이 웃는 연습을 하라던 혜주의 말대로 조금 더 웃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내 현성이 바보 같단 생각이 들었던지 고개를 흔들며 화장실을 나선다.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는 편이지만 그보다 더 일찍 나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디뿔 하나만 주이소.”

‘그 애’가 없는 곳에서 담배를 사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거는 얼마나 하는데요…?”

“아… 10개에 이천원.”

길거리에서 악세사리를 내다 놓고 파는 여자가 그의 얼굴과 덩치를 보고 조금 놀란 듯 움찔하며 대답한다.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어색한 얼굴로 가판 위의 악세사리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얼굴을 하고 눈치를 살피자 주인이 웃음이 터진 모양이다.

“여자친구 사줄라고 그카는가봐요?”

“아… 여자친구는 아니고요… 그냥 아는 누나예…”

그 말에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현성이 고개를 흔든다. 단지 어제 같이 밥을 먹으면서 머리카락 때문에 불편해 하던 혜주의 모습이 생각나서 이런 거라도 필요하진 않을까 생각했을 뿐. 그게 또 오버하는 건가, 아니면 괜한 짓을 하는 건가 걱정스럽지만…

“아, 그렇구나. 총각 나중에 여자 친구 생기면 잘 해주겠네.”

후후 웃음 짓는 주인의 모습을 보니 나쁘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 생각에 망설이던 현성이 결국 10개 한 묶음 머리띠를 들고 ‘이거…’ 하고 그가 주머니에서 2천원을 꺼내자 그 모습에 주인이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무섭게 생긴 얼굴과 덩치로 수줍어 하는 모습이 되려 더 풋풋해 보였던지 그녀가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잘 될 거에요.’ 하고 응원을 더한다.

“아… 그런 거 아닙니더. 수고 하세요.”

그 말에 괜히 기분이 머쓱한지 현성이 주머니에 머리띠들을 챙겨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제 정말로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앉았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면 더 좋은 것들을 해줘야 하겠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되는 상황도 아니거니와… 여전히 괜히 오버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주면 된다… 생각하지만 현성이 괜히 긴장감이 들자 ‘이게 뭐라꼬…’ 하고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저 보잘 것 없는 머리띠 몇 개 가지고 오버한다는 생각에 다시 그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운다.

어제 혜주가 잘해줬다고 해서 그걸 또 다르게는 생각하지 말자. 인간이란 것이 참 간사한 동물이라 그러지 말아야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끝끝내 기대를 하고 만다. 그런 생각들을 애써 떨쳐냄 현성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밤거리를 지나 가게로 걸음을 재촉한다.

가는 길에 힐끔 살펴본 편의점엔 야간 시간에 일을 하는 진희의 전 타임 알바생이 손님들을 대하고 있다. 그런 탓에 굳이 그 멀리 갈 필욘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앞으로도 왠만하면 저 편의점은 들리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하고 가게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장현성씨?”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란 사실에 혹시 동진이 여길 찾아온건가 싶지만 말투가 꼭 서울 말투다. 몸에 살살 간질거리는 기운이 올라옴을 느끼며 현성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얼추 그와 눈높이가 맞을 만큼 큰 키에 훤칠하게 잘 생긴 남자가 씩 웃음을 짓고 서 있다. 그완 완벽하게 대비 되는 모습에 순간 현성이 주춤하며 물음을 던진다.

“…누구…?”

그런 얼굴은 본 적도 없을뿐더러, 이런 서울 사람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현성의 모습에 남자가 ‘이야…’ 하고 감탄을 터뜨린다.

“생각했던 것 보다 외모는 아유… 사실 뭐 사람 외모 가지고 이야기 하긴 좀 그렇지만.”

더 긴 말 할 필요 없다는 듯 그가 엄지손가락을 들자 순간 현성이 울컥하며 그를 바라본다. 뭔지는 몰라도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놈이 갑자기 그 이름을 부르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좋았던 기분이 다시 바닥을 칠 것 같은 상황에 그가 ‘뭡니까?’ 하고 불편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자 남자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도 좀 서운하긴 하네. 나는 너 아는데, 너는 나 모른다고 하니까. 내가 너 스토커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기분 나쁠 정도로 웃음을 흘리는 곱상한 얼굴에 현성이 점점 기분이 점점 망가지는 것을 느끼며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서 ‘별 그지 같은 새끼 다 보겠네…’ 하고 다시 뒤돌아서서 걸음을 옮긴다.

“내가 여기까지 너 보러 왔는데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장현성!”

기분에 거슬리는 웃음 섞인 목소리에 현성이 슥 고개를 돌린다.

“니 눈데 자꾸 지랄인데? 디지기 싫으면 입 닥치고 꺼져라.”

그 거친 모습에 남자가 ‘정말 나 누군지 모르냐?’ 하고 물음을 던진다. 이내 체념한 듯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뭐. 소년원서 한 일 년 넘게 썩었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다.”

그 순간 현성이 욱 하고 치밀어 오른 감정에 성이 난 얼굴로 그를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모습…! 대체 뭐 하는 놈인지 몰라도 그의 이름도 알았고, 그가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억에는 전혀 없는 녀석!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갑자기 튀어 나와서 이렇듯 이야기를 던진다는 게 너무나도 기분이 나쁜 듯 그가 참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꾹 움켜쥐자 민욱이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환하게 웃는 낯을 하고서 말을 잇는다.

“나는 이민욱이라고 하고, 니가 방송 나오면 너 같은 양아치 두들겨줄 프로 선수님이지. 뭐 그 전에 니가 여기 촌동네 짱 먹을 때 서울에서 짱 먹었던 놈이야. 이러면 기억이라도 나려나? 야, 나 잘 나갔는데 기억이나 좀 해주라. 너무 나만 애타보이지 않냐? 똑같이 짱 먹고 난 너 기억 해주는데 너도 나 좀 기억 해주라. 응?”

그 말에 현성이 ‘방송…’ 하고 어이없단 얼굴로 웃음 짓는다.

“한 번 나오게 할라꼬 별 개수작을 다 부리네. 씨발 좆 같은 것들 진짜.”

이내 터져 나온 분통 가득한 음성에 민욱이 다시 또 실실 웃음을 흘린다.

“야, 나는 니가 나온다고 그래서 엄청 기대 했거든. 의대 입학하면 아무래도 내가 짬을 내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 전에 뭔가는 하나 하고 싶었는데 떡하니 니가 나오더라고. 내가 학교 다닐 때 너랑 진짜 한 판 붙어 보고 싶었거든. 대체 얼마나 잘 싸우길래 그러나 하고 대구에 원정도 갔었는데… 그땐 니가 사람 패죽이고 소년원에서 썩고 있을 때라 보지도 못하고 거기 어디지? 공원에서 여자애들이랑 놀다가 그냥 올라왔잖냐.”

연이은 그 도발이 누가 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 하나는 현성의 기분을 매우 더럽게 만들고 있었단 것이었다. 특히나 그 민감한 자리를 거침 없이 들쑤시며 도발하는 민욱의 모습에 현성이 후우 하고 숨을 고르며 눈을 감는다.

“뭣 때문에 이카는진 몰라도…”

“뭣 때문인긴! 너 같은 게 나랑 비슷하다네, 뭐네 우리 때 참 그런 이야기 많았거든. 그게 내 자존심에 스크라치를 남기더라고. 내가 어떻게 너 같은 거랑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그 차이를 보여줘야겠다 싶었었는데, 마침 딱 이런 기회가 온 거 아니겠냐?”

그리고 속사포처럼 그 말을 끊고 들어온 서울 뺀질이의 말에 현성이 분노 대신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덤벼 봐’ 하고 도발하는 그 자신감 가득한 눈빛에 시리고 공허한 눈으로 화답하며 현성이 한 마디를 던진다.

“니가 뭐라 지랄해도 안 한다.

“쫄았냐?”

“그래. 니가 이겼다.”

그런 병신 같은 도발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제 분을 못 이겨 덜컥 승낙하고 나가봐야 손해 보는 것은 현성 밖에 없을 게 분명했으니까. 시간 지나서 사람들에겐 잊혀진 사건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 이렇게 괴로운데, 다시 그것들을 들쑤셔 깨어나게 된다면… 저 밥 맛 없는 서울 놈은 그저 여흥거리에 불과하겠지만 그에겐 인생이 달려 있는 문제였다.

“씨발, 뭐야? 너 정말 사람 때려죽이고 한 놈 맞냐? 뭐가 이렇게 힘이 없어? 재미없게.”

계속해서 신경을 긁는 민욱의 목소리가 울컥울컥 화를 불러오지만 참아야만 했다. 현성이 이를 악 물고 화 대신 차가운 비웃음을 띤 채 더 할 말 없다는 듯 뒤돌아선다.

마음으론 분이 가득 차서 화상 자국이 욱신할 정도로 열이 받지만 그래선 안 된다. 성격 같아선 당장이라도 면상을 후려갈기고 다시는 저런 소리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지만 그래선 곤란했다. 보호 관찰 기간이 있기도 했고, 이런 저런 사유를 만들어 밑지는 건… 억울하고 분하지만 더 억울하고 분한 일을 만들 수 있으니까.

소년원을 들어가면서 그가 깨달은 진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참는 사람이 이기는 것. 그게 불의든, 정의든… 뭐든. 민욱의 시비를 꾹 참으며 현성이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분이 치밀어 올랐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녀석이 갑자기 찾아와선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려 한다는 생각에 덩달아 어제 만났던 지선에 대한 원망까지 샘솟는다. 이건 너무 비열하지 않나? 지선이 사과를 했지만 그 출연자인 민욱이 이렇게 다음날 와서 시비를 거는 것은…

역시나 그 사과도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론의 뒤통수 치기에 ‘또’ 당하는 건 이제 진절머리 난다는 듯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민욱을 무시한 채 현성이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민욱이 ‘쫄았냐? 너 겁 먹었어? 한 판 붙자니까!’ 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곧 현성이 안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자 민욱이 씩 웃으며 ‘안 통하네…’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런다고 포기 할 내가 아니지. 현성아, 난 한다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거든. 기다리고 있어.”

여지껏 모든 면에서 안 되어 본 적이 없는 그의 자신감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자신감을 무기 삼아서 민욱이 재미있는 놀이 대상이자… 장난감과도 같은 현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실 웃으며 다시 룰루랄라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