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회 - 괴물
술병 탓에 하루를 쉬고 출근하는 길은 마음이 꽤 무거웠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기 앞가림엔 철저했던 현성인지라 더욱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혜주가 괜찮다, 이야기를 해놓았다 말을 하긴 했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가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약속된 휴일도 아니었고, 창호 덕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자리에서 또 그리 행동을 하니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더불어 혜주가 말했던 모두의 ‘오해’가 더욱 더 마음을 죄어 오고 있었다. 당장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런 오해가 생긴다면 자신은 몰라도 혜주가 피해를 입을까 움츠러들고야 마는… 왜냐하면 그는 일개 웨이터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지만 혜주 같은 아가씨에겐 그런 소문들이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걸 떠나서 본인의 혐오스러운 외모에 같이 조롱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기분도 나쁘고, 말 그대로 얼굴을 갈아 치우고 사라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까. 그 역시 혜주, 본인의 말로는 자기니까 괜찮다고 했지만 어떻게 그 말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한 마냥 안도할 수 있겠는가?
평소처럼 남들보단 일찍 출근하는 길이었지만 유난히 가게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던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댄다. 얇은 외투가 바람을 막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몸이 으슬으슬 춥고, 술독이 올랐던 모양인지 아직까지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못내 두려웠다. 차라리 이게 더 낫겠다 싶었던 현성이 품에서 담배를 뒤지다 그것도 바닥이 나버렸단 것을 깨달고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진짜 안 풀리네.”
인근에 있는 편의점은 ‘그 애’가 일을 하는 곳이 전부였고, 담배를 사려면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물론 야간 시간에 보았으니 지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여기도 저기도 모두 가기가 거북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결국 벽에 기댄 채 멍하니 한숨을 내쉬던 현성이 천천히 가게 안으로 걸음을 돌린다. 가끔씩 좋을 때도 있지만 세상은 대체로 좋지 않은 곳이었다. 너무 살아가는 게 힘들다 생각하며 그가 여기도, 저기도 가고 싶지 않아서 정말로 사라지고 싶단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을 느끼며 쓴웃음을 짓는다.
“어, 현성이 왔나?”
그러다 현성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가슴이 움찔하고 죄여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뒤돌아 선다.
“출근 하셨습니까, 행님.”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 범수가 ‘그래, 몸은 좀 괜찮나?’ 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 말에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괜찮심다…’ 하고 대답하지만 마음은 편치가 않다. 하루 일을 빼먹고 혹시라도 민폐를 끼친 건 아닌가 크게 움츠러 든 그의 모습에 범수가 괜히 인원 한 빵꾸 나서 고생했단 생각보다도 얇아 보이는 겉옷 하나 입고 다니는 그 모습이 짠했던지 ‘안 춥나…?’ 하고 물음을 던진다.
“…괜찮심다.”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어색한 웃음 짓는 동생 같지 않은 동생의 모습에 두툼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던 범수가 ‘빨리 드가자!’ 하고 먼저 웃으며 현성의 등을 두드린다. 그 걱정과 달리 나무라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를 대해주는 범수의 모습에 안도와 동시에 고마움을 느끼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술병 났으면 푹 쉬어야 되는 게 맞다. 아직도 좀 글체?”
“…그렇지예… 진짜 죄송합니다, 형님.”
“아이다. 죄송할 게 뭐 있노? 어제 손님도 별로 없고 가게 조용했다.”
원래 자리 자체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그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의 빈 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 생각을 떠올리던 현성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스스로의 존재감에 다시 또 조금 움츠러 들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이 정말로 불편했다. 빨리 선원이 되어 어디론가로 떠나간다면 몸은 힘들다 해도 마음만큼은 정말 편안할 것이란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좋다가, 나쁘다가를 반복하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너무 나쁜 것들만 많이 겪다보면 좋은 것도 나쁘게만 느껴진다.
“혜주 누나는… 뭐, 어제 잘 들어가셨나…?”
가게 안으로 들어와 불을 켜고 걸치고 있던 파카를 벗으며 범수가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에 현성이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던지 그 물음에 현성이 무척 어색한 얼굴을 하자 범수가 픽 웃음을 터뜨린다.
“걱정 하지 마라. 혜주 누나랑 니랑 뭐…. 그캤다 아무도 생각 안 할 거다.”
“아…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범수가 ‘그 누나 성격을 다 알잖아, 우리가!’ 하고 미소 짓는다.
“글고 혜주 누나 2차 안 나간 지 엄청 오래 됐다. 어쩔 수 없이 나갈 때도 있는데 인제 이거 그만 두고 자기 가게 차릴 준비 한다던데…”
그리고 연이어 들려온 범수의 말에 현성이 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범수가 그가 뭔가를 궁금해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단 생각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잇는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이런 가게 차릴 지 아니면 뭐 다른 거 할 지! 근데 아가씨로 일하는 거는 아마 올해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더 이상 이거는 안 할라 카는갑더라. 근데 뭐 그카겠나? 안 그라지. 막 말로 니가 뭐 사장님도 아이고… 이 바닥 그렇다 아이가?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말에 현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네요.”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음성에 범수가 힐끔 그를 바라보며 ‘니 혹시 혜주 누나 좋아하나?’ 하고 웃음과 함께 그의 팔을 툭툭 친다.
“예? 아입니다… 그냥…”
현성이 그런 건 생각도 해본 적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범수가 ‘좀 수상하긴 한데…!’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창호와 달리 마치 좋은 동네 형님처럼 수덕한 웃음 짓는 범수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머리를 긁적인다.
“저 같이 생긴 게 누구 좋아하고 그라면 민폡니더.”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그의 말에 범수가 ‘니가 뭐 어때서, 임마…!’ 하고 그를 바라본다.
“키도 크고, 남자답고, 덩치도 좋고…”
“괴물 같이 생겼잖아예.”
그 한 마디가 입을 다물게 만든다.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봐야 할 지, 아니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온 게 그러 것인지… 범수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렇게 이상한 얼굴은 아이다, 현성아…’ 하고 위로를 더하지만 그는 그저 고개를 흔들 뿐이다. 범수처럼 가만히 지켜봐주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그렇게 생각해주는 고마운 사람도 드물다.
“괜찮심다.”
그저 그런 사람들에게만큼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수줍게 인사를 더할 뿐이다. 그 모습에 범수가 ‘화상만 없으면 진짜 괜찮은데…’ 하고 위로를 전하자 현성이 먼저 웃음 짓는다.
“나중에 돈 모아가 싹 갈아 엎으라고요. 그래가 돈 많이 벌고 하면 행님 찾아 와서 술 한 잔 살게요.”
그 말에 순간 범수가 ‘어?’ 하고 그를 바라본다. 현성이 가게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던진 농담 같은 말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던지 그가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을 띤 채 ‘기대 할 게!’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냥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사는 게 가끔은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곤 가게를 다시 오픈 할 준비를 한다.
바닥 청소부터 물수건으로 실내 구석구석을 닦고 꼼꼼하게 준비를 하는 모습은 아마 가게 주인이라면 누구든 흡족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단지 이것이 서비스 업이고, 사람들과 왕래가 잣은 일이다 보니 외견 상 위협적이라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단 게 흠이었지만.
“니 손 안 시렵나?”
“괜찮심다. 그래 안 차가워예.”
정말 안 차가운 건지, 아니면 참는 건지. 젖은 수건으로 테이블과 비품들을 청소하느라 손가락이 시뻘겋게 변했지만 괜찮다는 그의 말에 범수가 아프거나 안 좋은 티는 도통 내지 않으려는 그 모습에 진짜 뭔가 일이 잘 풀려서 잘 되면 좋겠다… 하고 그를 바라본다.
물론 아직까지 그가 폭행치사로 소년원을 다녀온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혹시 그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구석이 무척이나 많은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참! 김 사장이 니한테 팁 주라 그러더라, 현성아!”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건 생활이라도 좀 나아지라 팁 챙겨주는 일 밖에 더 있을까. 범수의 말에 현성이 ‘예?’ 하고 그를 돌아본다. 그러다 박재운과 창호를 만나러 가기 전 담배 심부름이 생각났던지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김 사장이 요새도 니 같이 정직한 아 있나 카면서 이거 주고 갔다.”
후후 웃음과 함께 범수가 주머니에서 10만원짜리 수표를 꺼내자 현성이 ‘아…’ 하고 다시 어색하게 그를 바라본다. 이렇게 큰 돈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그게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해 하는 현성의 모습에 범수가 ‘니 안 하면 내 한다?’ 하고 수표를 내밀자 현성이 조심스럽게 수표를 받는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지 옅은 웃음을 띤 채 그가 수표를 받고서 ‘고맙심니더, 행님.’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범수가 ‘내가 준 거도 아닌데, 뭐…!’ 하고 손사래를 친다.
물끄러미 10만원짜리 수표를 바라보던 현성이 자꾸만 기분 좋은 미소를 짓자 범수가 ‘그래 좋나?’ 하고 웃으며 물음을 던진다.
“…그냥… 좀 신기해서…”
머리를 긁적이는 순박한 모습에 범수가 푸훗 웃음을 터뜨린다.
“니 나중에 100만원짜리도 받아보고 하면 난리 나겠네!”
“…그랄지도 모르겠심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범수가 자기도 기분이 좋아지는 듯 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근데 그래도 마냥… 그때는 좋지만은 않을 것 같네예.”
그러다 들려온 현성의 말에 범수가 ‘왜?’ 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냥… 좋으면 맨날 더 안 좋은 일이 생겨가.”
너무 좋은 일은 그보다도 더 안 좋은 일을 불러올까봐 무섭다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에 어렴풋이 그것을 느끼고 있던 범수가 ‘애늙은이다, 애늙은이!’ 하고 그의 어깨를 다시 두드린다. 자신보다 한참 동생이지만 왠지 모르게 친구 같은 그를 위로하고는 범수가 ‘잠깐 요 앞에 담배 좀 사러 갔다오께!’ 하고 걸음을 옮긴다. 그 동안 물끄러미 수표를 바라보던 현성이 옅은 웃음을 띤 채 주머니 속으로 수표를 집어넣는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 게 뭐냐 하면 김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를 겉보기로 평가하지 않았단 것이었다.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듯 현성이 걱정하고 마음 졸였던 것과는 달리 오늘 하루가 생각보다 매끈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자 금방 또 불안이 엄습한 듯 멈칫하고 만다.
“…아무 일도 안 생기겠제…?”
이렇게 하루가 잘 풀려본 일이 없다보니 또 다른 일이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현성이 나머지를 준비 하는 동안 담배 사러 나갔던 범수가 요 앞에서 승지를 만난 건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야…! 내 맛 있는 거 좀 사줘요! 배고프다!”
막 일어나 출근을 한 건지 배 고프다 앙탈을 부리는 승지와 ‘니가 내보다 잘 버는데 내가 사야 되나?’ 하고 웃음 짓는 범수의 목소리. 그 소리에 현성이 왠만한 준비는 다 끝내놓고 여유 있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승지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조심스러워 진다. 혹시라도 동갑내기 친구인 아가씨가 그를 더러운 짐승 보듯이 바라보게 된다면… 못 참을 일은 아니겠지만 맘이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후…”
왠지 가게의 모든 사람들 하나, 하나를 다시 볼 때 마다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단 생각에 현성이 쓴 웃음을 짓는다. 10만원짜리 수표가 매 값이라면 꽤 싸게 먹힌 편인 것 같다고 말이다.
“어? 현성이 왔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승지 역시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그를 반긴다.
“아… 왔나.”
오히려 전보다 더 친근해 보이는 그 모습에 현성이 당황해서 움츠러 들자 승지가 범수를 버리고 히히 웃으며 현성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혜주와 달리 앳되고 풋풋한 느낌이 남아 있는 승지가 ‘오랜만이데이!’ 하고 장난을 치며 애교를 부리자 현성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우두커니 멈춰 서서 ‘어, 어…’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몸은 괜찮나? 그 날 내 니 미친 줄 알았데이! 무슨 술을 그래 많이 마셨는데…?!”
촉새처럼 조잘조잘 말 많은 승지의 빠른 말에 현성이 ‘그냥…’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흔들자 범수가 ‘니 싫다 안 카나, 승지야!’ 하고 웃으며 장난을 친다.
“…진짜가…? 현성이 니 진짜 내 싫나?”
금방 또 승지가 ‘헐…’ 하고 입술을 내밀곤 삐진 듯 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아닌데…’ 하고 고개를 흔든다. 두 사람의 장난에 허둥지둥하는 그 얼굴을 보고서 승지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그럼 내 맛있는 거 사죠!’ 하고 애교를 부린다.
“닌 진짜 너무 하다, 승지야.”
“왜요~! 내 돈 모아서 가방 사야 되는데!”
동갑내기 친구는 아직까지 철이 없는 모양이다. 무척이나 잘 웃고 싹싹하고, 예쁘고, 덩달아 애교가 많아 귀엽기까지 한… 하지만 무엇인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는 생각에 현성이 잠자코 있기만 하자 승지가 범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힐끔 힐끔 그를 바라보며 ‘치!’ 하고 입술을 삐죽인다.
“현성이 니! 맨날 혜주 언니만 좋아하고…!”
말이 많고 부산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 해지지만 그 밝은 모습 너머에는 왠지 모르게 무척 외로움을 잘 타고, 무척 슬퍼 보이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이 현성의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었다. 그의 역할도 아니고, 그로썬 자기 앞가림 하기도 급급할 뿐이니까.
“그런 거 아이다.”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승지가 흐음~ 하고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범수는 듣지 말라는 듯 ‘오빠! 여기 오지 마라! 우리끼리만 비밀 얘기 할 거니까!’ 하고 유치하게 엄포를 놓는다. 이내 그녀가 팔짱을 끼고서 그를 화장실 쪽으로 이끌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니 언니랑 했나…?”
그녀의 물음에 순간 현성이 멈칫하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가슴이 두근 거리고 혹시나 그것으로 인해도 또… 혜주가 덩달아 고생하게 된다면 하고 마음이 움츠러 든다. 그런 걱정 가득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승지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여자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히히… 안 그래도 그랄 줄 알았다! 딱 보면 척이니까!”
“…아… 어.”
“그리고 혜주 언니가 그럴 리가 없지. 그 언니 눈이 얼마나 높은데!”
“…눈 안 높아도 다 똑같지.”
정말 별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승지가 ‘나는 아닌데~’ 하고 그의 팔에 팔짱을 낀다. 여자의 몸을 이용할 줄 아는 이 천진하고도 영악한 아가씨가 가슴을 밀착한 채 그를 압박하자 현성이 움찔하며 ‘와 카노…’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나는 얼굴 같은 거 하나도 안 보고…! 성격이랑 덩치만 본다!”
그 말에 현성이 ‘어…?’ 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승지가 ‘나는 그렇다고!’ 하고 우쭐한 얼굴로 미소 짓는다.
“그 때 다 니보고 멋있다고 난리 났었데이…! 완전 술 꽐라 된 게 갑자기 혜주 언니 계속 보더만 막 지 뺨도 때리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혜주 언니 좋아하는 갑다 그러고!”
눈치 빠른 아가씨들이 그걸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덩달아 그녀 역시…
“내한테 그래 해줬으면 난 진짜 떼 주는데…”
히히 웃으며 승지가 재고 따짐 없이 적극적인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이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아니다…’ 하고 고개를 흔든다. 그러다 힐끔 바라본 승지의 목에 난 상처 자국들이 갑자기 신경이 쓰였던지 그가 ‘니…?’ 하고 물음을 던지자 승지가 ‘원래 다 그렇다!’ 하고 싹싹한 얼굴로 미소 짓는다. 그만큼이나 그녀 역시 어딘가엔 체념한 구석이 보인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현성이 다시 한 번 예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더란 혜주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그에게 이렇게 싹싹하게 굴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비추는 것. 왠지 모르게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생각하며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승지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그녀의 머리를 다 덮어버린 큰 손에 승지가 히히히 하고 웃으며 ‘다음엔 나도 해죠… 알았지…?’ 하고 그를 올려다본다.
“할 수 있으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승지도 혜주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이라고 사정이 없을까. 어쩌면 재운이나 창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승지나 범수, 그리고 혜주 같은 사람들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그가 끌림을 느끼는지 그 일을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주제넘게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야?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이다.
“진짜제? 약속했데이! 약속!”
그런 그에게 승지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손을 내민다. 자그마한 새끼손가락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굵직한 새끼손가락을 걸자 ‘와! 굵어서 안 걸린다!’ 하고 승지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도 도장 꽝! 이제 니 빼도 박도 못하는 거다! 알겠제~!”
혀를 살짝 내밀고 다시 좋아하는 그 얼굴을 보며 현성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담배 있으면 담배 좀 도.”
“담배? 응! 우리 기념적인 맞담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승지가 계속해서 웃음을 띤 채 가방에서 담배를 꺼낸다. 까만색 고양이가 그려진 레종을 꺼내들자 현성이 여자들은 담배도 디자인 보고 피나 보다 싶었던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왜 웃는데, 바보야~! 그카면 니 고양이가 혼내라 그란데이! 야옹!”
애교 많은 승지의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담배를 받는다. 그리고…
“승지, 오늘 일찍 왔네.”
언제 출근 했는지 혜주가‘우리 지각 대장이 웬 일이고?’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혜주가 ‘언니!’ 하고 좋아하며 다시 그녀에게로 종종 걸음을 옮긴다.
“푹 잘 쉬었어요?! 어제 왜 안 왔어요? 언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언니, 나이 들어서 힘들다.”
“언니~! 나이 하나도 안 들었는데! 내 친구 같은데!”
“그래서 요즘 니 좀 맞먹는 거 같던데?”
“아, 아니에요! 언니이~!”
히히 웃으며 혜주에게 애교를 부리는 승지와 시크하게 그녀를 받아주는 혜주. 힐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도도한 눈빛이 어쩐지 퉁명스러운 것 같다. 멍하니 승지가 내민 담배를 들고 있던 현성이 힐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왠지 모르게 반갑다가도 퉁명스러운 그녀를 보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든다.
“왔습니까…?”
그의 인사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토라진 듯 삐딱한 얼굴로 말이다.
“그래.”
이내 들려온 그녀의 대답에 현성이 왠지 모르게 반갑고, 기쁜 동시에… 가슴이 울렁울렁 하는 느낌을 느끼며 몸을 돌리고 벽에 기대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오늘의 첫 담배를 땡기기도 전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힐끔 그를 바라보는 혜주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실수를 한 것 같고, 그럴 이유야 하등 없지만 보여선 안 될 모습을 보인 것 같은 애매모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