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회 - 괴물
주점 일이 그렇다 하지만 대체로 힘이 든 점이라면 야간에 하는 일, 그리고 주변 환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술 취한 진상들이 자주 출몰하는 업종이다 보니 그걸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지만 갈 곳 없고 방황하는 청춘들은 ‘한 몫’을 챙기기 위해서 어김 없이 이 일에 뛰어 들곤 했다. 현성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갈 곳이 있으나 굳이 이 일을 선택했다지만,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단 것 정도일 것이다. 시작은 괴로웠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일도 익숙해지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단골들은 얼굴이 익어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걸 정도가 되고 나니 한결 지내긴 편안해진다.
“현성아, 5번 방! 담배 심부름 부르는 갑다!”
더러 범수가 그를 챙겨 주면서 이렇게 얼굴을 많이 보지 않고 팁을 남겨 올 수 있는 담배 심부름을 양보해주기도 하다 보니 하루, 하루 벌어가는 돈의 양도 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 만족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 현성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예, 행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얼굴이 좀 밝아진 것 같네.”
보기 좋다는 듯 범수가 후후 웃으며 한 마디를 던지자 현성이 ‘요새 웃는 연습 좀 하고 있심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긴다. 5번 방에는 양사장의 지인이자 골프 용품을 운영하고 있는 김사장이 있었는데,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나름 알부자로 올 때 마다 적잖은 팁 빨을 날리는 호구 중 하나 였다.
“오, 우리 장골 왔나?”
이런 곳을 자주 찾는 게 이상할 정도로 좋은 사람인지라 현성에게도 괴물이나 다른 놀림거리 같은 별명보다 ‘장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곤 했는데 그 말에 현성이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하고 웃으며 인사하자 김사장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적잖이 취한 얼굴로 허허 웃으며 ‘담배 한 갑 좀 사온나. 맛세! 알제?’ 하고 오만원짜리 지폐를 건네준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얼마나를 남겨 와야 하나 하고 조금 망설이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기자 김사장의 곁에서 술 시중을 들고 있던 승지가 히히 웃으며 ‘사장님, 잠깐 물 좀 빼고 올게예~’ 하고 아양을 떨며 현성을 따라 나선다.
“현성아~”
애교가 철철 흘러 넘치는 승지의 부름에 현성이 ‘어…’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다. 이제 20살이 된 동갑내기 막내 아가씨는 무척이나 귀여운 용모에 무척이나 말이 많고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 일이 있은 이후로 현성에게도 살갑게 구는 몇 안 되는 아가씨이기도 했다.
“그거 담배 한 보루 사가지고 남은 거는 니 챙기고 한 갑만 갔다 주면 된다. 그래가 나머지 손님들이 심부름 시키면 그거 한 개씩 갔다주고 적당히 챙기면 되고. 내꺼도 하나 챙겨도~ 알겠제?”
후후 웃으며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승지의 말에 현성이 ‘그래도 되나…?’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오만원을 받았는데 그걸로 한 보루를 사서 그렇게 많은 돈을 삥땅치는 게 못내 걸린단 눈치인 그를 보며 승지가 ‘다 그래 한다! 김사장님은 괜찮다…!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하고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어…’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자 승지가 치~ 학고 살짝 붉어진 얼굴로 깡총 뛰어 그의 등에 매달린다. 앳된 얼굴이라고 하지만 얇은 홀복 하나 입고 찰싹 달라붙자 남자의 몸과는 다른 포근한 느낌이 그대로 와닿는다.
“와, 와 카노…!”
당황한 듯 현성이 소리치자 승지가 ‘혜주 언니랑만 친하게 지내고…! 내랑은 동갑인데…!’ 하고 후후 웃으며 아양을 떤다. 이렇게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무어라 이야기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승지가 후후 웃으며 ‘잘 갔다 온네이..’ 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긴다.
마치 그에게 들이대는 듯 한 승지의 모습에 그가 묘한 기분을 느끼지만 이내 그 잡다한 생각들을 떨쳐 내고 만다. 그래봐야 헛된 기대는 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기분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 들뜬 기분에 농락을 당하거나 비참하게 혼자서 하늘을 날았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좌지우지되기 싫었을 뿐. 가게 밖으로 나선 그가 근처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긴다.
밤 시간이라 어둠이 내려 깔려 있고 어둠은 그의 콤플렉스를 묘하게 가려 주고 있다. 물론 편의점의 밝은 빛은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편의점에 몇 번이나 오다니긴 했지만 이런 담배 심부름 하나로 몇 만원이 오가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의문스러운지 픽 웃음 짓는다. 몸의 고됨과는 별개로 밤 기운이 몰아주는 피로감에 조금 눈이 뻑뻑하지만 그래도 바깥 바람을 맡으니 그나마 한 결 기분이 개운지는 것 같다.
-딸랑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현성이 주문을 해야 하는데 카운터가 비어 있자 고개를 두리번 거린다. 이내 ‘잠시만요…!’ 하고 새벽 시간이라 편의점 뒤의 비품 창고 쪽에서 알바생이 쉬고 있었던지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정말로 한 보루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 여자 알바생이 피로에 잠긴 얼굴을 하고서 편의점 카운터로 쏙 들어온다. 승지만큼이나 작은 체구의 여자 알바생이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났는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뭐 드릴까요…?’ 하고 고개를 든다.
전에 보았던 알바생과는 다른 알바생의 모습에 여자 혼자 이 시간에 있긴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하며 현성이 ‘마일드 세븐… 두 갑이요.’ 하고 결국 보루가 아니라 한 갑을 사고 만다. 나머지 한 갑은 자기 돈으로 승지에게 전해줄 생각으로 그가 그리 이야기 하자 알바생이 ‘잠시만요…’ 하고 아직 정신이 덜 든 듯 담배를 찾기 시작한다. 알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지 버벅 거리는 모습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녀가 순간 그를 보고는 크게 움찔한다. 이 시간에 이 용모를 보면 누구나 그럴 것이라 크게 연연치 않던 현성 역시 알바생의 얼굴을 보고 움찔하고 만다.
“아…”
멍하니 굳어 버린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대체 무얼 이야기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갑자기 여기서 왜 이 여자를 만난 것인가 하고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순간 알바생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덜덜 떨며 ‘저, 저기…’ 하고 이야기 하자 그가 두 눈을 감고 ‘마일드 세븐이나 빨리 주소.’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툭 던진다.
그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네…’ 하고 울먹이는 얼굴로 마일드 세븐을 2 갑 챙겨서 그에게 내민다.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손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눈빛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거스름 돈.”
차갑게 오만원과 함께 그 말을 던진 현성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바라보며 알바생이 깊은 한숨과 함께 네…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돈을 꺼내어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 위로 4만 5천원을 거슬러 준다. 그리고 말 없이 돌아선 현성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만다.
“대구 바닥 좁다 카디… 이래 좁나.”
그 쓴웃음 머금은 얼굴에 그가 문을 나서는 사이에 ‘잠깐만요!’ 하고 알바생이 울먹이며 그를 부른다. 문 앞에서 우두커니 멈춰선 현성이 ‘뭐요?’ 하고 힐끔 고개를 돌린다.
“…그때는 정말로…”
“늦었심다.”
차가운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현성이 씁쓸한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후우 하고 눈을 감은 그의 등 뒤로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하고 흐느끼는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그 일은 지나가버렸고,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 근방에서 다시 그 여자를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다니 그것만큼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 듯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지직 하는 네온 간판의 노이즈를 들으면서 잠깐 멈춰 선 그가 담배라도 한 대 태우고 들어갈까 생각하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 다시 돌이킬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예상치도 못하게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건 감당하기가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가 감당하고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깊은 한숨으로 다시 만난 ‘그 애’를 이번에는 그가 외면한 채 돌아서 걸음을 옮긴다. 터덜터덜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 발걸음이 을씨년스럽다. 거북할 정도로 속이 좋지 않고 기분도 좋지 않다. 나빴다 다시 좋아지다가도 헤어날 수 없는 더러운 늪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현성아!”
들어오자 마자 그를 부르는 범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담배…”
2갑의 담배와 잔 돈을 내민 그의 모습에 범수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무슨 일 있습니까?”
착잡한 얼굴로 현성이 또 취객이 난동을 부리나 물음을 던지는 순간 범수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흔든다.
“참호랑… 그 위에 행님이라 카는 사람이랑 같이 여 왔다.”
잠깐 담배 사러 나간 사이에 엇갈렸던 모양이다. 그 말에 현성이 멈칫 하며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듯 굳은 얼굴을 하고서 ‘그래예…?’ 하고 그에게 담배와 잔 돈을 내민다. 그 굳은 얼굴에, 혜주에게서 현성이 그 일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단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인지 범수가 현성만큼이나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담배랑 팁 내가 챙기께. 니 빨리 드가봐야 겠다… 7번 방.”
하필이면 왜 또 지금… 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나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곤 했다. 탓 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그 나쁜 일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떄로는 의지만으론 역부족일 때가 있기도 하지만… 약 2년 만에 우연하게 다시 만난 그 애의 얼굴과 지금 현재 다시 어둠으로 그를 인도하고자 하는 창호와 그 무리들. 그 자신이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는 그 자신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단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이 순간을 넘기고, 차라리 그냥 이런 일상이라도 주어진다면 버틸 수 있을 텐데.
“…미안합니다, 행님.”
“아니다, 빨리 가봐라. 사장님도 계신다.”
양 사장이 함께 올 정도라면 창호 뿐 아니라 그 위로 정말로 높은 사람이 함께 온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잘못하면 정말 빼도 박도 못 할 지도 모른다. 거북스러우나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자리.
“…가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네.”
“응? 뭐?”
“아닙니다, 행님. 들어가보께예.”
한숨과 함께 현성이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기자 범수가 ‘오늘 별로 안 바쁘니까 걱정 하지 말고…!’ 하고 위로의 말을 던진다. 그 말을 새기며 현성이 7번 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김사장의 시중을 들던 승지도 따로 호출을 받았던 모양인지 7번 방 앞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물어물 서있기만 한다. 아마도 저번에 창호를 먹여 취하게 만든 게 무서웠던 모양인지 안절부절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안 드가나…?’ 하고 물음을 던진다.
“아… 왔나…!”
무척이나 반가워 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내딛는다.
“…창호가 내 때리면 어떡하노…”
평소 아가씨들에게 평이 좋지 않은 것이 창호였다. 아가씨들을 무척이나 험하게 다루는 편이었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목을 조르거나 때리는 일도 허다 했고, 사정 이후엔 다 쓰고 난 기구를 치우는 마냥 홀대하기도 하니 평이 좋을 리 없을 터.
“…안 그럴끼다.”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자 승지가 그래도 그가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위험에 노출된 여자는 본능적으로 듬직한 사람을 찾아나서는지 승지가 그의 팔을 꼭 끌어 안자 현성이 이름도 모르는 ‘그 애’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스치는 것을 느끼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현성아! 히야 왔다!”
그리고 이미 안에 들어와 있는 아가씨들을 낀 창호가 반갑게 소리치자 현성이 ‘안녕하십니까, 행님.’ 하고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 곁으로… 혜주를 곁에 둔 중년 남자가 유심히 그를 살피는 눈빛으로 씩 웃음 짓는다.
“니가 장현성이가?”
얼핏 봐도 흐르는 분위기가 보통이 아닌 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창호가 승지를 향해 손 짓 한다. 승지를 점찍은 듯 손짓에 승지가 휴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곤 다시 웃음으로 두려움을 가리고 ‘오빠야, 내 보고 싶었나…?’ 하고 그의 곁으로 가는 동안 혜주가 힐끔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굳은 얼굴의 현성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한다.
“장현성이라 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