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회 - 괴물
사람을 망치기 가장 좋은 것은 아마도 ‘헛된 기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가망성 없는 일에 괜시리 들뜨고, 기대하다 결과를 마주하면 실망감은 바닥을 치고 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보다 갑절은 더 실망스럽고, 때로는 좌절감까지 불러오는 헛된 기대들은 삶의 지척에서 쉴 새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곤 했다.
최소한 그 부분에 있어서 현성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그런 기대는 가지는 것보단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의외의 일들은 다른 이들에겐 보잘 껏 없다 하더라도 그에게만큼은 보석처럼 느껴지곤 했으니까.
“후우…”
눈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며 ‘뭐 꼬라 보는데?’하고 시비를 걸 듯이 툭툭 말을 던지는 혜주처럼 말이다.
“…아니요…”
“와? 이뻐가 자꾸 눈이 가나?”
흥 하고 도도한 얼굴로 우쭐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 또한 매력적이다. 그 말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혜주가 ‘진짠가 보네~!’ 하고 장난스럽게 그에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 날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들은 없었지만 몇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일 것이다.
“하기사 내가 좀 이뻐야지. 안 글나?”
가게를 오픈하기 전. 다른 아가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해서 함께 맞담배를 피는 일이라던지, 이제는 혜주나 승지 같은 아가씨들이 그에게도 먼저 인사를 하기도 했고, 팁도 그렇게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다른 일을 하는 만큼은 벌어갈 수 있을 정도로 수월찮게 들어오기 시작했단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할게예.”
그 변화들은 무척 극적이라기보다는 아주 차츰 시작된 변화들이었고, 웨이터 일을 한다면 당연한… 아니, 웨이터 일 하면서 고작 이것 밖에 벌지 못하나? 의문을 던질 정도로 아직은 미진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 사소함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어느 날인가 갑자기 곤두박질치고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불안해하곤 했지만 말이다.
“대답이 시원찮데이, 니! 죽는다!”
이내 현성의 대답에 혜주가 주먹을 꾹 쥐고 위협을 가한다고 하지만 조그마한 주먹이 앙증맞기 그지 없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슬쩍 웃음 짓자 혜주가 ‘흐음…’ 하고 유심히 그 얼굴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현성이 담배를 재떨이에 올리고 다시 웃음을 거두고 얼굴을 숙여 가린 채 ‘와예…?’ 하고 물음을 던진다.
“니 웃어 봐라.”
“예?”
“웃어보라고.”
갑자기 웃어보란 혜주의 말에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갑자기 왜…’ 하고 난처한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주가 ‘니 돈 벌고 싶제?’ 하고 말을 이어 간다.
“돈 벌고 싶으면 이 바닥에서 그런 표정 가지고 그카면 안 된다. 내가 니 얼굴… 그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니는 인상도 험한 편인데, 솔직히 안 웃고 맨날 그카고 있으니까 더 그런기다. 범수나 덕기 같은 아들 봐바라. 가들 잘 웃고 다니제? 우리도 사람들이 그칸다 아이가. 웃음 파는 년들이라꼬. 그러니까 니도 웃는 거 좀 연습해라.”
그 진지한 충고에 현성이 ‘아… 예…’ 하고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건성 하는 대답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꽤 생각을 해본 일인지 ‘근데요…’ 하고 그가 그게 힘들다는 듯 힐끔 혜주를 바라본다.
“…웃어도 다 무서워 하던데…”
“차라리 웃는 게 덜 무섭지! 빙시야! 봐라! 이렇게!”
금방 혜주가 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꼬리를 쭉 올린다. 웃어라 이야기 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그다지 웃음이 많은 편은 아니었고, 오히려 까칠한 성미가 단연 돋보이는 얼굴이라 그런지 그 모습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괜시리 우습단 생각이 들어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혜주가 민망하던지‘ 왜, 왜 웃는데!’ 하고 소리친다.
“…누나가 아까 웃어 보라고…”
“그때 안 웃고 와 지금 웃는데!”
괜히 또 툴툴 거리며 성질을 부리는 혜주의 모습에 현성이 ‘아입니다…’ 하고 고래를 흔든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서 ‘이렇게예…?’ 하고 손가락으로 억지로 입술 끝을 올리자 굳게 다문 일자 입술이 어색하게 올라간다.
그 모습이 무섭다기보단 조금 우스꽝스러웠던지 혜주가 픽 웃음을 터뜨리며 ‘니 설마 내 보고 웃겨가 웃은 거가?’ 하고 물음을 던진다.
“…조금예.”
“죽을래, 니!”
이내 씨이 하고 혜주가 다시 주먹을 꼭 쥐어 보지만 그 자그마한 주먹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피식 웃음 짓자 혜주가 그 얼굴을 다시 또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뭐…’ 하고 새침한 얼굴로 이야기 한다.
“그래도 웃는 게 낫네.”
“아…”
그 말에 다시 현성이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자 혜주가 ‘앞으로 계속 연습해래이. 알겠나?’ 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듯 대답을 요구한다. 그 당당한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누나도 웃는 거좀 어색하던데.”
그리고 연이은 그의 지적에 혜주가 움찔하며 ‘나, 나는 이뻐가 괜찮다!’ 하고 소리친다.
“자꾸 니 말대답할래? 혼날라꼬! 니랑 내랑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어른이 이래야 된다 카면 그냥 예! 하면 되는 거지! 니 은근히 말 많네?”
당황한 듯 다시 또 툴툴 거리는 그 모습에 현성이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머리를 긁적인다. 7살이나 많다고 하지만 딱히 나이 차이는 나 보이지 않는다. 현성이 또래보다 나이가 들어 보여서가 아니라 아직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혜주가 어려보이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꾹 참는 동안 혜주가 양 손으로 입가를 어루만지며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이내 눈치를 살피곤 아무 것도 아닌 척 도도하게 뒷짐을 진다.
“암튼 뭐… 이제 서빙도 할 만 하다 아이가?”
뻘쭘했던 모양인지 금방 또 화제를 돌리는 귀여운 모습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겉으로 보기엔 무척이나 까칠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범수의 말이 새삼 와닿는 모양인지 옅은 미소를 띤 그의 모습에 혜주가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래?’ 하고 물음을 던진다.
“예… 근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방 일이 더 편한 거 같심다.”
그 낯가림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하면 하겠지만 조금 꺼려지긴 한다. 그도 그런 것이 20년을 그렇게 살아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뀌기야 하겠는가? 그 솔직한 말에 혜주가 벽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흔든다.
“니는 그카면 안 돼지! 돈 벌라면 계속 돌아 다녀야 된다! 니 그래가 나중에 결혼해서 마누라랑 아는 우예 먹이 살릴라 카노?”
그 날의 술자리 이후 대강의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는 그녀가 ‘돈은 그래 하면 안 벌린다!’ 하고 다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자 현성이 듣기 싫단 생까보다는 고맙고 감사하단 마음으로 고개를 흔든다.
“…괜찮을낍니다. 그런 사람 없을 거고…”
“그런 사람이 왜 없는데!”
“내 같이 생긴 사람 누구 좋아 합니까? 국제 결혼 같은 거 같이 억지로 그카고 싶진 않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 그의 말에 혜주가 ‘우…’ 하고 순간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 지 턱 막힌 듯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한다. 현성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는데, 그 현실의 암담함이나 차가움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떤 면면에서는 지나치게 부정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니 뭐 그래 이상하게 생긴 건 아니다! 좀 험하게 생기긴 해도 그거는 니가 안 웃어서 그렇다니까, 빙시야!”
이내 ‘다 니 탓이다!’ 하고 소리치는 혜주의 말에 현성이 ‘예…’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20년을 살아왔지만 혜주처럼 이렇게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쉽게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 그를 무서워했지만 이렇게 겁이 없는 사람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그게 거북스럽다거나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식이나 위선 같은 것을 한꺼풀 벗겨내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있는 것만 같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조만간 연 닿으면 배 탈라꼬예.”
“…여 나가가 배 탈라고…?”
그런 그녀에게 현성이 보호관찰 기간이 끝이 나고 날이 풀리면 선원이 되겠다 이야기 한다. 그 말에 혜주가 이전에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나눴던 이야기 생각났던지, 그게 자기 탓이라도 되는 양 미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 미안함이 곧 퉁명스러움이 된단 것을 이제는 알고 있는 현성 그녀의 탓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을 잇는다.
“여서 계속 민폐 끼치는 것도 미안스럽고…”
“민폐 아인데!”
흥 하고 도도하게 태클을 거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기분이 좋은 듯 수줍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인다.
“…아무튼 여 계속 있으면 아마 깡패 밖에 할 거 업시 싶슴다.”
그 말에 혜주가 ‘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창호가 그를 이 자리에 소개 시켜줬을 때 했던 말이 기억이 났던 모양이다. 우리 세계로 올 후배. 그 말 덕분에 무척이나 그를 싫어했었는데, 현성은 아무래도 그럴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그카면 언제 그만 둘 건데…?”
“모르겠심다. 못 그만둘 수도 있고… 근데 계속 있으면 아무래도 그래 되지 않겠나 싶네예. 창호 히야한테 신세진 거 있으니까 거절도 못 할 거고… 여서 계속 그래 해봐야 솔직히… 답이 안 보이네예.”
“뭐, 깡패 하면 답 보이나!”
혜주가 괜히 덩달아 속상한 듯 그 마음 비추기 싫어 버럭 소리 지르자 현성이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그녀의 친절에 감사를 담아 힐끔 그녀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혜주에게도 27년을 살아오면서 마주해본 적이 없던 눈빛인지라 왠지 모를 먹먹함에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동안 현성이 그녀의 곁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기대서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안 보이긴 마찬가지지예. 하기 싫은데… 현재로썬 거밖에 오라 카는데가 없어가…”
그게 가장 서러운 부분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갈 수 있는 곳이 없단 것 말이다. 그 암담한 목소리에 혜주가 ‘니는… 깡패 되는 거 싫나?’ 하고 물음을 던진다.
“…내가 그럴라고 그랬든, 안 그랬든 내 손에 사람이 죽었심다. 그게 얼마나 기분 더러운지 아무도 모를거라예… 나쁜 놈의 자식이든, 아니든… 근데 주먹으로 먹고 살고 싶겠심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현성이 남들보다 배는 큰 것 같은 큰 손을 뻗어 본다. 아직도 그 날의 질척한 느낌이 남아 있는 것 같은지 또 다시 그 눈빛에 공허가 맴돌자 혜주가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현성이 손을 내리고 힐끔 혜주를 바라본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장한 얼굴. 왜 그녀는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것들을 굳이 꺼내서 묻지 않았다.
“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생겼어도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더. 누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케가 나중에 배 좀 타고 돈 좀 많이 모아 놓으면 수술 해볼라꼬예!”
단지 그 소박한 바람 하나만을 꺼내놓을 뿐이다. 어색하게 웃으며 성형 수술 이야기를 꺼내는 20살 남자가 생각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안스러워 보이는지… 혜주가 괜히 그렁해진 눈을 홱 돌리곤 ‘누구 같이 해달라 칼라꼬?’ 하고 물음을 던진다.
“그냥… 보통 사람 같이만 해달라 카면 되는 거지예. 화상도 지울 수 있으면 지우고…”
욕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의 말에 혜주가 ‘기왕 하는 거 장동건이 같이 해달라 캐라!’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능할까예…?”
“아니. 절대로.”
그 말에 현성이 웃음이 빵 터진 듯 ‘너무 하네예, 누나…’ 하고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혜주가 ‘내는 없는 말은 안 한다!’ 하고 새침하게 뒷짐을 진다.
“그라믄 장동건 같이 해달라 카라 카면 안 되는 거 아입니까?”
“우리 엄마가 꿈은 크게 가지라 그랬다!”
역시나 새침한 그 대답에 현성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생각보다 잘 웃는 그 모습에 혜주가 힐끔 그를 바라보며 ‘글고 많이 웃는 게 제일 좋은 성형이라 그랬다.’ 하고 한 마디를 더 보탠다. 그 말에 현성이 다른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드가자!”
그리고 혜주가 가볍게 등을 돌린다. 사뿐한 걸음으로 앞서 가는 그녀에게 현성이 ‘예…!’ 하고 대답하며 뒤를 따르는 동안 혜주가 힐끔 그를 돌아본다.
“근데 아나? 얼굴 이쁜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