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6화 (6/281)

- 6 회 - 괴물

“아 씨발 거… 오늘 뭐 이래 바쁘노…!”

불경기 탓에 한동안 조용하던 주점이 연말 분위기를 타서 그런지 송별회를 겸해서 연이어 만취한 상태의 손님들로 북적이자 범수가 정신없이 이 방, 저 방을 쏘다니기 시작한다.

본디 주점에서는 항시 손님들의 상태가 중요한 법이었는데, 어느 정도 적당히 알딸딸한 상태에서 온 손님들이 문제를 가장 덜 일으키는 반면에 연말 무드를 타고 이미 들어올 때부터 개차반이 된 손님들은 항상 돈을 냈으면 돈 값을 누려야 한다는 본전 정신 때문인지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요구하면서 아가씨들 혹은 웨이터들과도 트러블을 일으키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도 역시 새해를 3일 앞둔 시점인지라 주점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초뺑이가 된 손님들이 룸을 잡는 바람에 범수를 비롯한 주점 웨이터들 모두가 발 붙일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주방과 룸을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한동안 주방 일만 도맡아 하던 현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아! 3번 방에 또 과일 안주 갔다 줘야 된데이!”

범수가 쟁반을 한 가득 채워 다시 서빙을 나가며 목소리를 높이자 현성이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속이 울렁거리고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린다. 다른 건 몰라도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이렇게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별 거 아니다, 별 거 아니다 스스로 되뇌이며 현성이 과도를 들고 과일들을 빠르게 깍아내기 시작한다. 조금 미안스러워도 그 와중에 다른 웨이터가 와서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내 과일 안주를 셋팅하고 나서 ‘별 거 아이다…’ 하고 현성이 스스로에게 이야기라도 한 듯이 혼잣말로 긴장한 자신을 풀어 보고 안주를 들고 3번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정말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본인 스스로가 아주 우습고 한심할 지경이었다. 아마 얼마 전에 가게 에이스인 혜주에게 한 소리를 들어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선원을 모집하는 광고가 많지 않았고, 연락을 한 곳도 시기가 맞물리지 않아 아직도 몇 달은 더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눈치가 보이니까. 혜주 말대로 웨이터가 서빙을 하지 않는단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었고, 이걸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기어 올라와 더욱 더 몸을 뻣뻣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후우…”

서빙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몇 번 해봤지만 왜 이렇게 더 긴장이 되는 건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원하지 않으니 정말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사라지고 싶은데, 그것조차도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일까?

“…쓰잘 데 없노.”

잡생각들을 떨쳐내고 현성이 심호흡을 하고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을 열자 마침 혜주가 그 방에서 다른 아가씨들과 함께 접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힐끔 바라 보는 눈빛이 부딪친다. 엄밀히 말해서 현성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데다 덩치는 반밖에 되지 않지만 그 눈빛이 두렵다. 싸우거나, 때리거나 다투는 것보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더 무섭다.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있는다면 왜 꺼지지 않냐고 화를 내고, 성을 낼 것만 같다. 그 느낌에 현성이 위액이 역류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는 이내 혜주의 눈을 피하며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하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며 안주를 내어 놓는다.

“아이고, 깜짝이야! 마! 뭐가 이리 생깄노?”

그러는 와중에 이미 너끈하게 취한 40대 중년 두 사람이 그를 보고 정말로 놀란 듯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야… 내가 여지껏 삐끼 하는 아덜 마이 봤는데 니카이 몬 생긴 건 처음 본데이!”

그리곤 푸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그 눈 앞에 보란 듯 삿대질을 하며 그들이 껄껄 웃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에 혜주가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듯 눈썹이 꿈틀 하는 동안 주변의 아가씨들이 덩달아 호호호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시뻘게진 얼굴의 현성이 억지로 웃으며 ‘죄송합니더…’ 하고 고개 숙여 사과 하자 ‘미안하나?’ 하고 실실 웃으며 중년 두 사람이 물음을 던진다.

“그카면 삼촌아. 니 노래 함 해봐라. 오늘 우리 기분이 윽수로 좋아가 니 노래 함 하면 봐주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 놓는다… 하고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던지 현성이 ‘죄송합니다, 사장님… 지금 너무 바빠가…’ 하고 고개를 숙인다. 웃고 있던 아가씨들도 덩달아 민망해질 정도로 그의 얼굴이 시뻘겋지만 아무래도 3번 방의 두 손님은 그게 용납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야… 안다, 안다! 노래 함 썩 잘 뽑아주면 내가! 아나? 이거 보이나?”

이내 그들이 지갑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서 흔들며 ‘불러 봐라.’ 하고 난처해 하는 그를 놀리 듯이 낄낄 거린다. 보통 팁 빨 올리려고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흔한 편이었고, 많이 받아가라 아가씨들이 호응을 해주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현성이 가슴을 누군가가 꽉 죄어 오는 듯 한 갑갑함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더 정중 하게 ‘죄송합니다… 사장님…’ 하고 고개를 숙이자 취기가 이상한데서 오기를 불러온 모양이다.

“여 뭐꼬. 웨이터가 손님 대접 아주 개판으로 하네! 쉐끼가 생긴 것도 더러버가… 이 임마, 손님은 왕이다 모르나? 빨리 함 불러봐라!”

밖이라면 말도 걸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는 돈을 든 사람이 왕이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의 요구에 현성이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곳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다면… 또 어떻게 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지 참말로…’ 하고 다시 한 번 그가 부탁하듯이 손님들을 바라보지만 그들은 잔인할 정도로 완강하다.

“마! 이 자슥 덩치는 산만해가 그거 뭐꼬? 프랑켄슈타인? 뭐 그래 생기가 뭐 이래 빌빌 거리고 빼샀노! 빨리 제대로 함 불러보라카이!”

그 모습에 그를 좋아하지 않던 아가씨들도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던지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딱 봐도 연말에 생긴 보너스로 기분 좀 내러 온 진상들인데 하필 이런 방에 와서 말로 두들겨 맞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즐기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같은 업계 종사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모두 불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가운데…

“사장님요! 뭐 저런 아 노래 들을라 캅니까? 오늘 내 노래 땡기는데 내가 불러 보께예! 분위기도 못 맞추는데 빨리 가라 카소! 연말 아입니까?”

혜주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목소리를 높인다. 그 말에 사장 두 사람이 못생기고 험악한데다 재미도 없는 웨이터보단 차라리 예쁘고 산뜻한 아가씨가 좋겠다 싶었던지 ‘그르까…?’ 하고 고개를 돌린다.

“와…! 사장님, 진짜 운 좋으신데예! 우리 언니야가 노래 진짜 잘 안 하는데!”

아가씨들 역시 꺄르르 웃으며 분위기를 맞추자 두 사람이 ‘그래?’ 하고 완전히 흥미가 혜주에게로 돌아간 듯 반색한다. 그 와중에 혜주가 ‘가라, 빙시야!’ 하고 나가보란 듯 눈빛을 보내자 현성이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여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아…”

밖으로 나오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에서는 노래방 반주가 울린다. 그리고 혜주의 노래에 맞춰서 아가씨들이 분위기를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복도로 오다니는 웨이터들의 분주함 속에서 여기 저기 방마다 들려오는 노랫소리. 그 모든 것이 마치 환상처럼, 환청처럼 정신없이 맴돌고 있는 가운데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는다.

“현성아, 뭐하노?”

이내 지나가던 범수가 그럴 시간이 없다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현성이 ‘예…’ 하고 무척이나 많이 힘이 든 듯 조금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안주와 술을 나르고, 들어갈 때 마다 듣는 소리들. 무던해 질 만도 하다만 아직까지 상처 날 구석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생각보다도 너무나도 풀리지 않는 현실이, 더 내려갈 자리 없는 비참함에 내몰려 아무런 자신도 가질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져 무던함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마치 힘겨운 악몽을 꾸는 마냥 정신없이 일을 임하고, 시간은 흘러흘러 새벽 4시 무렵.

“아암…”

분주하던 가게도 이제 바쁜 시간이 끝이 나고 집에 아직 가지 않은 진상들 몇만 남아 있는 가운데 퀭한 얼굴로 범수가 하품을 한다.

“…씨발 새끼들, 뽕을 뽑을라 카나…”

“그러게요. 아… 집에 좀 가자, 개새끼들아! 오늘 피곤해 죽겠는데!”

그렇지만 이렇게 바쁜 날은 주머니가 두둑하다. 다들 피곤하다, 힘들다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주머니 생각하면 그나마 버틸만 하던지 ‘니 오늘 얼마 벌었노?’하고 기분 좋게 팁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현성이 우두커니 서서 벽에 등을 붙인 채 멍하니 불빛을 바라본다.

“오늘 저 완전 대박 났어요! 한방에 요거, 요거… 보이십니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두식이가 100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자랑하자 순간 모여있더 웨이터들의 눈에 부러움이 스친다.

“와… 씨바, 니 대박이네…”

보통은 이런 걸 자랑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어린 애는 아직 이 바닥 돌아가는 생리를 모르는 모양이다. 자랑 하고 싶어서 난리 난 어린 얼굴을 바라보며 경험이 되는 범수는 고개를 흔들고, 나머지들은 그걸 또 뜯어 먹으려고 두식을 설득 중이다. 어린 웨이터는 하룻밤 만에 번 큰 돈의 가치를 모르고 마냥 좋아서 ‘그렇게 할게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마치면 뭐 먹으러 갈까 신이 났다.

저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멍한 현성을 범수가 힐끔 돌아본다. 아무래도 오늘 유독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 걱정 되는지 범수가 그의 곁에 다가가서 ‘니 괜찮나…?’ 하고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예…’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마 오늘 룸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받은 팁 2만원을 주머니 속에서 꾹 움켜쥐며 그가 ‘행님, 지 담배 좀…’ 하고 이야기 하자 ‘그래라!’ 하고 범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웨이터들 사이에서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담배를 태우러 가는 외로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범수가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는 동안 현성이 천천히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룸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으니 손님들이 오진 앉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슨 상과이겠는가? 담배와 술, 여자 향수 냄새 가득한 곳이 이곳인데 말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현성이 눈을 감고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인다.

이쁘장하고 싹싹한 막내가 100만원이 넘는 돈을 번 동안 그는 오늘 하루 2만원을 벌었다. 그게 나쁘단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보다는 많이 번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엇인가가 불공평하게만 느껴진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그때 문득 창호가 술에 취해서 했던 이야기가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우리. 창호가 있는 자리. 그리고 그가 있어야 할 자리. 그 생각이 점점 커져 가는 가운데 현성이 담배를 깊숙이, 아주 깊숙이 빨아들이며 눈을 감는다. 눈이 너무 침침하다. 피곤이 쌓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낮에도 잠을 자기는 커녕 될 수 있는 대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 아직도 백방으로 이곳, 저곳에 연락을 취하고 있으니까. 우울하고, 슬프고, 절망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덕지조차 없는 현실이 너무 고달팠다.

“…벌… 너무 씨게 받는 거 아닌가…”

서러울 정도로 고달픈 현실에 그가 담배를 세모금만에 다 태워 버리고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내일은… 아니,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만 자야겠다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가 화장실에서 복도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새벽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하던 정적과 쉬고 싶다는 그 바람까지 깨뜨린 소리가 말이다.

“이거 놓으라꼬! 미친 새끼들이 돌았나!”

무슨 일이 벌어진 지 몰라도 낯익은 혜주의 음성에 현성이 걸음을 재촉하려다 멈칫 한다. 그래봐야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저도 모르게 다시 움츠러 든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 곳에는 새벽이 다 되도록 나가지 않고 진상을 부리던 3번 방의 손님 두 사람과 혜주를 비롯한 아가씨들이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이 미친 새끼들이 2차 안 간다 안 카나!”

“니미 쒸빠… 좆 같은 가스나가 돈은 돈대로 받아 쳐묵고 안 가다꼬?! 여 완전 개판이네! 개판!”

“지랄하고 있네, 미친 새끼들이…! 니 딸 뻘 되는 아들이랑 떡 치고 싶나? 개새끼들이 싫다 안 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한쪽 어깨끈이 내려온 홀복. 화 내며 소리치는 혜주와 두 사람에게 손목을 잡힌 막내 승지. 모르긴 몰라도 대충 견적 나오는 그림이다. 현성이 먼 발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동안 웨이터들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저기… 손님, 진정 좀 하시고요… 아가씨 아파 하니까 손을 좀 놓고…”

“씨발! 너거들 내가 누군지 아나?! 이런 쒸발 좆 같은 데를 봤나! 사장 나오라캐라! 사장!”

젊을 때 한 주먹 했던 모양인지 자신감 있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 모습에 웨이터들이 주춤한다. 괜히 엮이기 싫은 듯 주저하는 와중에 혜주가 ‘너거 신고 한다!’ 하고 소리를 지르자 ‘이 쉬발년이!’ 하고 그가 손을 치켜든다.

“손 내리 놓으소.”

그리고 현성이 천천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는다. 시끌벅쩍한 가운데 묘하게 귀에 박히는 그 음성에 그가 주춤하다 현성을 발견하곤 하 하고 비웃음을 터뜨린다.

“쒸빠… 저거 덩치만 커가 밸도 없는 거 아이가? 니 뭐, 야 기둥서방이가? 어? 씨발놈아! 어디서 어른한테 눈을 부라리노!”

무뚝뚝한 얼굴로 현성이 천천히 다가오자 순간 웨이터들이 긴장한 듯 그를 바라본다.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손님 앞에서 가당치도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 그가 승지의 손목을 잡은 그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나가서 얘기 합시다.”

“이 쉬발넘이! 놔라! 이거 안 놓…! 아, 아아아아!”

붙잡힌 손목이 아프던지 금방 승지의 손목을 놓고 그가 비명을 지르자 현성이 ‘여 안 되겠네!’하고 덩달아 화를 내는 나머지까지 반대쪽 손으로 붙잡고 두 사람을 질질 끌고 나가기 시작한다.

“이 쒸발! 개새끼야!”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못 이겨 끌려가면서 비어 있는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치고 욕을 내뱉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범수가 ‘누, 누나…!’ 하고 혜주를 바라보는 동안 혜주가 ‘잠만 기다리 봐라…!’ 하고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선다. 혹시나 그가 다시 한 번 사고를 칠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아가씨들과 웨이터들도 걱정 반, 불안 반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동안 힘이 어찌나 센지 두 사람을 벌써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간 모양이다.

“아야! 쉬발… 니 오늘 뒤졌다…! 이 괴물 새끼…!”

그대로 내동댕이 치듯이 두 사람을 밀어낸 현성이 벌떡 일어나 팔을 걷어 붙이는 그를 바라보며 무심한 눈으로 속삭인다.

“여 가게 밖이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뭐?! 뭐 임마!’ 하고 두 사람이 소리치자 어렵잖게 현성이 그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그를 몰아붙인다.

-퍽!

“아, 아이고!”

“여 가게 밖이라꼬.”

등판을 세게 부딪쳐서 이내 그 우악스러운 주먹에 멱살을 붙잡힌 채 몰린 취객이 아등바등하는 동안 현성이 ‘니 아까 내한테 뭐라 캤노…?’ 하고 오싹한 목소리로 귓가를 속삭인다.

“이 쒸바…!”

“아가리 닥치라. 잡아 뜯기 전에.”

말의 무게가 달랐다. 차원이 다른 그 섬뜩함에 다른 하나가 뒤에서 덤비려다 주춤하는 동안 현성이 점점 숨을 쉬기 어려운지 켁켁 거리며 ‘놔라, 놔… 놓으라꼬…’ 하고 소리친다. 허우적 거리는 그 모습에 현성이 잡고 있던 목을 놓자 그대로 주저 앉으며 그가 ‘씨바 니 내 누군지 모르제!’하고 소리친다.

“모른다. 씨발놈아. 니는 내 누군지 아나? 내 벌써 사람 하나 쥑이 봤는데.”

조용한 그 목소리와 눈빛이 남자에게 꽂혀 들어가자 순간 그가 크게 움찔 한다. 술에 취해서 나갔던 정신이 바깥 공기 마시고, 또 이렇게 제압당하고 나니 다시 돌아오는 모양이다. 얼핏 봐도 위압적인 그 용모와 가게 안이 아니라는 그 말. 순간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아니 그게 아이고… 우리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허세가 사라지고 본연의 비굴한 모습이 드러난 그 실상을 비웃을 틈도 없이 현성이 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 본다.

“우리는 그냥.. 참말로 그냥 좀 기분 좋게 할라꼬 왔는데… 저 아가씨들이 돈만 받아 먹고 제대로 안 하이…”

이내 뒤쫓아 온 혜주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가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 듯 놀란 얼굴로 ‘야! 니!’ 하고 현성을 부른다. 마침 등장한 혜주의 모습에 주저앉았던 남자가 ‘저 년! 저거!’하고 소리치며 현성에게 혜주가 문제라는 듯 말을 잇는다.

“저게 우리 베껴 먹고 제대로 안 해가 그래가 화가 나서 그런기라! 다 저 미친년이…!”

“아가리 닥치라 안 카드나. 잡아 뜯는다 그랬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현성이 무뚝뚝한 얼굴로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 말에 남자가 ‘그, 그게 진짠데…’ 하고 우물쭈물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자 혜주가 정말 열이 받는다는 듯 ‘참 나…’ 하고 기도 차지 않은 얼굴로 두 남자를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마도 머리채를 잡혔거나 맞을지도 모른다. 그 분하고 억울한 얼굴이 아가씨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싶었던지 현성이 왠지 모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기분을 느끼며 남자를 향해 이야기 한다.

“사과 해라.”

그 목소리에 남자가 정말 기도 차지 않는다는 ‘하… 참말로…’ 하고 현성을 바라본다.

“아니, 잘못은…!”

“씨발놈아. 돈 내고 즐기러 왔으면 곱게 즐기고 나가면 되는 거지, 돈 내고 진상 부리러 오라 카더나? 아가씨들한테 사과 해라. 뒈지기 싫으면.”

그 울분 섞인 목소리에 혜주가 저도 모르게 통쾌해진 듯 옅은 미소를 띤 채 현성의 크고 넓은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느 샌가 구경을 하러 몰려온 아가씨들과 웨이터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겁을 먹은 남자가 ‘아… 저…’하고 머뭇거리자 현성이 말 없이 웨이터 명찰을 뗀다. 백 마디 말보다 위협적인 그 행동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겁을 먹은 남자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친다.

“미, 미안합니다…! 미안해…!”

시뻘게진 얼굴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듯 고개를 숙인 남자가 주먹을 꾹 쥐고 있는 동안 현성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며 이야기 한다.

“끄지라, 씨발놈아.”

이내 두 남자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부리나케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술에 취해서, 그에게 겁을 먹어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풀려 저들끼리 철퍽 하고 넘어지자 아가씨들과 웨이터들이 그 모습을 보며 푸하핫 웃음을 터뜨린다. 언제나 진상들에게 시달리던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만큼은 그게 그리 편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점점 ‘우리의 자리’란 것의 의미가 자신에게 가깝게 다가옴을 느끼며 현성이 뒤돌아 선다. 손에 든 명찰을 아마 곧 떼내고 그가 있어야 할 ‘자리’로 가야 할 지 모른다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현성이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를 바라보던 혜주와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아…’ 하고 어물어물 길을 비킨다.

“현성아! 니…수고했데이!”

그런 그를 향해 혜주가 한껏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어색한 얼굴로 소리치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내 빙시 아입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들리는 그 말을 남긴 채 현성이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모여 있는 그들을 피해서 도망치는 듯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