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회 - 괴물
“후우… 날씨 와 이카노.”
유난히 쌀쌀맞은 겨울이 시작되려는 모양인지 12월말의 칼바람이 무척이나 매섭다. 밖에서 일을 보고 바로 가게로 출발한 터라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혜주가 ‘아, 추워…’ 하고 코트 자락을 꼭 끌어안고 종종 걸음으로 가게로 걸음을 옮긴다. 아가씨들의 출근 시간보다는 이르다고 하지만 웨이터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게로 들어가자 마자 ‘어, 누나!’하고 웨이터 범수가 카운터를 정리하다 놀란 듯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어, 안녕? 와 글케 놀래노?”
일찍 온 혜주의 모습에 범수가 ‘오늘 일찍 오셨네요!’ 하고 머리를 긁적이자 혜주가 ‘어, 그렇게 됐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밖에 약속이 있어가 거 좀 갔다 오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남자친구에요, 누나?”
“지랄한다. 누나 남자친구 있음 이카고 댕기겠나?”
주점 웨이터가 보통 3개월에 한 번씩, 정이 들만하면 바뀐다고 하지만 벌써 1년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범수와는 제법 친했던지 혜주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쿨한 그녀의 음성에 범수가 ‘그라몬 누군데요?’하고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든다.
“있다! 아무튼… 니 혼자 나왔나? 요즘 범수 열심히 하네. 과일도 껍데기 한 개도 못 깍드만 요샌 좀 반듯하네.”
“아, 그거요? 그거 요즘에 가, 현성이가 다 하잖아요. 가 과일 잘 깍대예. 보기랑은 다르게.”
범수가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 말에 혜주가 ‘그렇나?’ 하고 조금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깡패 김창호의 소개로 그 후배라는 현성이 들어온 지 거의 2주가 지났다. 그 2주 동안 웨이터 일을 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기만 할 뿐, 딱히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으니 그런지 몰랐던지… 아니면 애시당초 처음 들어오기 전부터 밉상이라 낙인이 찍혀서 그런지 혜주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금마는 뭐 하는 게 없노?’ 하고 고개를 흔든다.
“웨이터가 룸에 들어오지도 않고, 이런 거 청소도 다 니가 하게 하고…”
“아, 아니라예. 청소는 벌써 저 오기 전에 가가 다 했놨어요. 처음 나올 때부터 계속 그카던데…”
자기가 한 게 아니라 뻘쭘하다는 듯 범수가 머리를 긁적이자 혜주가 ‘맞나…?’ 하고 그를 바라본다.
“예, 아가 보기보다 괜찮던데예? 말수가 되게 적은데… 암튼 저는 몰랐는데, 밑에 다른 웨이타 아들은 가 누군지 다 알데요? 그캐놓으니까 뺀질거리던 아들도 쫄아가꼬 일도 열심히 하고 지는 요즘만큼 편한 적이 없네요.”
웨이터들 가운데에서는 대장 노릇하고 있는 범수가 자기는 편안하다는 듯 이야기 하자 혜주가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그래도 웨이터가 룸에 서빙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이고? 아무리 이 바닥이 그런 바닥이라캐도 한 달이라도 먼저 들어왔으면 선배 아이가? 내 그 동안 가 들어온 거 한 두 번 밖에 못 본 거 같은데…?”
“그게… 지 생긴 거랑 덩치 큰 거 때문에 아가씨들이랑 손님들 불편해 할 거 같다고… 다른 거 다 시키고 그냥 그것만 좀 대신 해달라 카던데예…”
그 외모 이야기가 나오자 혜주가 흐음… 하고 다시 멈칫하며 범수를 바라본다. 확실히 외모가 웨이터를 할 용모는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것 저것 트집을 잡고 싶지만 딱히 트집 잡을 구석이 안 보이자 혜주가 뚱한 얼굴을 하고서 ‘암튼 확실하게 시키라!’ 하고 괘히 까탈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친다.
“예…! 근데예… 누나, 가 팁 좀 챙겨 주면…”
“웨이터가 팁 받을라 카면 룸에 빠삭하게 돌아 댕기야지. 지가 그래 하는데 뭐 어떻게 챙겨 주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혜주가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밖의 추위도 얼추 풀렸던 모양인지 따뜻한 실내에 혜주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범수가 ‘그래도요…’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가도 많이 미안해 하던데… 밤 일 해가 팁 못 받으면, 그거 누구 코에 붙입니까…? 일도 열심히 하는데 좀… 그렇지예.”
“싫으면 때리 치겠지! 굳이 여 와가지고 와 그래 뻐튕기는데?”
“갈 데가 없어가 그렇다 카던데… 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네예.”
범수가 더 이상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밤 일 하는 녀석 치고는 사람 됨됨이가 나쁘지 않는 녀석. 그랬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혜주가 가까이 지내는 동생이건만 그래도 이런 모습은 너무 ‘유약’해보였던 모양이다.
“니는 나중에 사기 당하기 딱 좋데이. 범수야, 니 그 카다 잘못하면 못된 년 만나가 공사 당하고 다 뜯겨뿐다. 조심해라. 닌 너무 착해서 탈이다!”
깡패 새끼 소개로 온 놈이 다를 리 없다 확신을 가진 듯, 27살의 베테랑 아가씨가 아끼는 동생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전한다. 그 말에 범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혜주가 ‘그라몬 가는 지금 어디 있는데?’ 하고 물음을 던진다.
“아, 지금 담배 태우고 있을 걸요?”
“맞나.”
그리고 혜주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아직까지 다른 웨이터들은 출근이 늦은 가운데 현성과 범수만이 일찍 출근해 오픈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게 나쁜 것 같지만은 않다.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혜주가 고개를 갸웃 한다.
“…깡패 될 거라 카드만.”
창호의 말로는 분명히 같은 깡패가 될 것 같았지만 그녀가 보기에 지금 하는 모습을 본다면 깡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들어온 경로나, 소개 해준 사람 덕분에 밉상이라고 낙인이 찍혀서 아가씨들에겐 외면 받고 있고 같이 일을 하는 웨이터들도 겁을 먹어서 거리를 두고 있다.
심지어는 룸으로 서빙을 하지 않으니 팁도 여지껏 한 번 못 받았고, 그 말인 즉 돈벌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여기 남아서 계속 그러고 있는 이유가 뭔지 대체 모르겠다 생각하며 혜주가 담배를 태우는 화장실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벽에 기대 서서 홀로 담배를 태우고 있는 현성이 보인다.
불이 켜지지 않은 쪽에 서서 어둠에 얼굴을 가린 채 새하얀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 공허한 눈빛에 20살 어린 아이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이가 묻어난다. 무척이나 깊은 슬픔의 깊이가 보고 있자니 덩달아 우울해질 것만 같다. 그 생각에 혜주가 고개를 흔들며 가방을 열고 담배를 꺼내자 소리를 듣고 현성이 힐끔 고개를 돌린다.
“아…”
그리고 급하게 담배를 끄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도망치듯이 걸음을 옮기자 혜주가 ‘어디 가는데?’ 하고 물음을 던진다.
“니 뭐 혼자서 내 욕 했나?”
“아… 아닌데예.”
그런 건 아니라는 듯 아직도 어둠에 숨어 화상 입은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흔드는 그 모습에 혜주가 ‘그라면 뭐?’ 하고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낸다.
-찰칵, 찰칵
라이터가 탈이 났는지 불이 붙지 않자 그녀가 현성을 바라보며 ‘불 있나?’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불 좀 줘봐라.”
그녀의 말에 그가 주머니에 넣어 놓은 라이터를 내밀자 혜주가 손 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담배를 내민다. 불을 붙여 달라는 그 모습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자 그 불과 함께 험악한 화상 자국 얼굴이 드러난다.
“후우…”
첫 날 이후로 이렇게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던지 혜주가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자 현성이 다시 홱 고개를 돌린다.
“그라믄 가볼게예.”
“니 내 싫나?”
“예?”
“왜 도망치듯이 가는데? 사람 기분 나쁘게.”
거침없는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그런 게 아니고예…’ 하고 멈춰 선다.
“싫어 하실까봐…”
무뚝뚝한 얼굴에서 조심스럽게 나온 목소리가 덩치와는 다르게 얼마나 움츠러 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잘 아네.”
직설적인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씁쓸한 얼굴로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와 그래 여 붙어 있는데? 너거 깡패 선배가 그래 무섭나?”
도저히 사람이 붙어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다. 일을 하는데 제일 어려운 게 뭐냐 하면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엔 그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걸 참고 감수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버느냐? 아니, 그것도 아니다.
범수의 말대로 팁을 받지 못하면 고작해야 한 달에 기본급 60만원 밖에 못 들고 가는 게 웨이터 일이다. 팁 빨이 주 생명인 일을 하면서 팁도 받지 못하는 와중에 대체 이렇게 붙어 있는 저의가 뭔지 궁금하다는 듯 혜주가 그를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던지자 현성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존심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한다.
“넘 걱정하지 마이소… 다른데 자리 생기면 갈라 캅니더…”
“다른데 어디 갈 건데? 김창호 따라가 깡패 할 끼가?”
“…잘 모르겠네예. 근데 그건… 진짜 안 하고 싶슴니더. 케가 배라도 타볼라고 생각하고 있심더.”
그 막막한 음성에 혜주가 괜히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단 기분이 들자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 한다.
“니 아직 20살도 안 된 기 뭐 그런 일 생각하는데?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가?”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는지 날이 선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유 없이 틱틱 거리는 건 듣기가 싫었던지 눈을 피하던 아까와는 달리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까불거리는 다른 어린 웨이터 녀석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진지한 눈빛에 혜주가 움찔하는 동안…
“다른 데는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까예.”
그게 현실이라는 듯 현성이 대답한다. 그 대답에 혜주가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이야기 하고 싶었던지 한 소리를 하려 한다.
“그건 니가…”
채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 한 마디 못하던 현성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이야기 한다.
“여 오기 전에 한 백군데 들맀심다. 아무도 안 뽑아 주데예. 생긴 게 이래가지고… 사람 대하는 일은 생각도 못 했심다. 그래가 공장은 좀 낫겠지 싶어가 공장에 드갈라 그랬는데 사무소에서 튕겨내데예. 전화를 하면 자리가 있는데 가면 자리가 없심다. 많이 거슬리고, 많이 싫어하는 거 알겠는데예…”
또 다시 깊은 한숨. 그리고 현성이 화상 자국 남아 있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조금만 기다려 주이소…’ 하고 부탁 하자 그 처연한 모습에 순간 혜주가 할 말을 잃은 듯 멈칫 한다.
“누나는… 생긴 거 때문에 쫓겨나본 적 없지예…? 생긴 거 때문에 죄인 취급 당해본 적도 없지예?”
그리고 그가 부럽다는 듯 물음을 던진다. 보통 사람에게는 당연한, 그리고 그녀에게는 오히려 ‘호의’를 더욱 더 누리게 해준 것이었기 때문에 혜주가 건드리면 안 되는 구석을 건드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라믄 누나는 와 이런 거 하는데예?”
연이은 그 물음에 다시 한 번 더 말문이 막힌 혜주가 버벅 거리며 ‘뭐, 뭐라 카노!’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새빨개진 얼굴과 그 목소리에 현성이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깊은 한숨을 내쉰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심다. 다들 내 때문에 싫어한다 아입니까. 지 빙시 아입니다. 알 거 다 압니다… 그라니까 좀만 기다려 주이소. 금방… 갈 데만 생기면 가께예.”
세상과 담을 쌓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듯 한 그 음성에 혜주가 화를 내려다가도 다시 말문이 막힌 듯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 들인다. 그녀로썬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그런 눈을 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단정 짓듯이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인정하고 싶찌 않았던지 자존심을 내세우며 혜주가 ‘빨리 그랬으면 좋겠네!’ 하고 툭 쏘듯이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움찔 하고 들썩이며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자 힐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허나 공허할 정도로 담담한 눈빛은 그런 시선이나 목소리, 대우에 닳을 대로 닳아서 별 다른 감흥도 없는지 ‘지도예…’ 하고 덩달아 고개 끄덕이며 맞장구를 칠 뿐이다. 서럽기 그지 없는 그 모습에 혜주가 점점 미안한 생각이 커지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 만다.
“…니… 얼굴은 우에 그래 됐는데.”
현성이 걸음을 옮기려 하자 혜주가 선뜻 이야길 하지 못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물음을 던진다. 그 퉁명스럽고 짧은 물음에 담긴 미안함이 동정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현성이 걸음을 멈추고 힐끔 그녀를 바라본다.
“어릴 때 불 장난 하다가 디였심다.”
무뚝뚝하면서도 가시돋힌 그 음성에 혜주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부모님 속 좀 상하셨겠네. 조심 좀 하지 그랬나.”
그녀가 담배를 재떨이에 밀어 넣으며 옹알이를 하 듯 이 웅얼웅얼 이야기 하자 현성이 ‘그러셨겠지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긴다. 그 목소리가 너무 슬프게 들려서 순간 혜주가 멈칫하고 힐끔 그를 바라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습관처럼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뒷모습은 무척 거대하지만, 무척 슬퍼보였다. 너무나도 외로워 보이는 그 뒷모습에 그녀가 ‘내가 무슨 잘못한 거 같이 저래 얘기하노…’ 하고 자기는 실수 하지 않았다는 듯 애써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두근두근 뛰는 가슴이 정말로 큰 실수를 한 것만 같고, 또 정말로 몹쓸 짓을 한 것 같다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나쁜 놈은 자잖아… 사람 때려죽인 놈인데…”
난 잘못 없어! 하고 혜주가 그 마음을 떨쳐내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러셨겠지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씨… 기분 진짜 뭣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