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 - 괴물
1
“하아… 하아…”
그 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려는 것 처럼 텁텁한 더운 공기가 밀려와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던 날이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머리는 멍했다. 땀보다도 끈적하고, 역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르는 무더운 날. 어릴 때 입은 화상 자국이 욱씬거릴 정도로 말이다. 주먹이 까진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이 묻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양 손은 피범벅이었다.
멍한 얼굴로 내가 눈 아래에 있는 그를 내려 보았을 땐… 이미 그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었을 뿐이다. 잔뜩 뭉개져 버린 얼굴과 더러운 물건을 달고서 말이다. 나는 왜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지, 그리고 도망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제발 살려주시오…’하고 꿈틀거리는 그걸 완전히 끝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놈의 깡패 새끼! 쉬발 닌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그건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경찰이 머리채를 잡고 벽으로 날 밀치며, 수갑을 채우는 순간에도 말이다.
-끼리릭…
차갑고 단단한 수갑이 아플 정도로 빽빽하게 손목을 채웠을 때. 그리고 끌려가는 나를 바라보는 인파 속에서 도망치듯 사라지는 ‘그 애’를 봤을 때, 나는 실감했다.
‘아… 올해 여름은 무척이나 길겠구나.’
2
“장현성이. 이제 맘 단디 묵고 착실하게 잘 지내그레이. 알았제? 니 모범수라가 좀 일찍 나왔다 캐도 아직 보호 관찰 대상이라 카는 거 잊지마레이. 알긋나?”
가을이 완전히 끝을 향해 다가섰고, 겨울이 본격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12월은 유난히 쌀쌀한 감이 있었다. 한기를 잔뜩 머금고 불어오는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과 우수수 떨어진 낙엽 들이 을씨년스럽게 휘날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지도 몰랐다. 마치 ‘마지막 잎새’처럼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나뭇가지 위의 낙엽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중년의 간수가 ‘오야’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그를 힐끔 바라 보며 한 마디 거든다.
“지 빙시 아입니더.”
그 무뚝뚝한 목소리에 간수가 ‘고래, 고래야제.’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현성이 천천히 소년원 바깥의 세상을 둘러 본다. 1년 6개월 만에 나온 세상은 마치 그 날 이후로 시간이 멈추었다 다시 흘러가버린 듯 벌써 다시 겨울이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듯 잠깐 멈춰 선 그의 모습에 간수가 휴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쉰다.
190센티에 가까운 큰 키와 떡 부러진 어깨, 기골이 장대한 소년은 누가 봐도 위협적이었다. 더구나 삭막한 인상에 짧은 머리. 그리고 어릴 때 입었다던 얼굴의 화상 때문에 그 인상이 더욱 더 무서워 보였는데, 하지만 간수는 그가 보기와는 사뭇 다른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기엔 영락없는 깡패와 다름없지만 생각보다 착실하고 예의도 바른 녀석이란 것을 1년 반이 넘도록 함께 지내며 알아왔으니까.
물론 지나치게 위협적인 외모 탓에 아직도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됨됨이가 글러먹은 다른 소년 죄수들과는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다는 생각에 간수가 다시 말을 건다.
“빨리 가보그라. 춥다. 보호자는 안 오시나?”
“뭐 잘했다꼬 데리러 오겠습니까.”
그 물음에 퉁명스러운 듯 무뚝뚝한 목소리로 현성이 대답한다. 공허함이 맴도는 듯 텅 빈 목소리에 간수가 ‘그렇나…?’ 하고 조금 안타까운 얼굴로 현성을 바라본다. 2년의 형기를 6개월 단축해 모범수로 풀려나긴 했지만 아마 가족들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하긴 가족도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짠해졌던 모양인지 간수가 품에서 뒤적뒤적 종이 하나를 꺼낸다.
“ 니 갈 데는 있나? 혹시 갈 데 없으면 일로 함 가보그라. 대구 소년원에 김형범 대리가 일로 보냈다 카면 알끼다.”
형범이 내민 명함을 바라보며 현성이 무뚝뚝한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년 보호소네예. 저 드갈 수 있습니까?”
이제 소년원을 출소 하는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이제 몇 일 뒤면 20살. 성인의 나이라 게 걸렸던 모양인지 한숨 섞인 현성의 물음에 형범이 ‘하모!’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생일 안 지났다 아이가? 내년까지는 충분하지!”
“예… 뭐… 거 아니라도 어디든 갈 때 있지 않겠심니까…”
“보자, 그러고 보이 니 생일도 을마 안 남았네! 그 날 담당자랑 같이 케이크 사들고 찾아가까?”
“치우소, 마… 아도 아이고 누가 그런 거 신경 씁니까.”
아직까지 생일이란 것이나 각종 기념일이 민감 할 만도 했지만 그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처음 들어왔던 18살 무렵. 그리고 지금 20살의 초입. 내내 한결 같은,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내내 죽어버린 눈빛을 하고 있는 그 무던함에 안타까움마저 느꼈던 모양인지 간수가 ‘니 아직 아라 카이!’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 손길에 현성이 조금 고맙다는 듯 힐끔 형범을 바라본다.
“고맙심니다.”
너무나도 무뚝뚝하지만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그 말이 마치 1년 6개월 간 함께 생활 해왔던, 그리고 그를 돌봐왔던 형범을 향한 감사가 우러나 있는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울컥한다. 형범이 ‘그래, 자슥아! 그라모 몸 조심하고, 사고 치지 말고!’하고 그의 어깨를 툭 두드린다. 그 손길에 얇은 외투 하나만 걸친 현성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대리님도 잘 지내이소. 나중에… 자리 잡으면 연락 드리겠심더.”
곧 현성이 간수를 뒤로 한 채 가방 하나 짊어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바스락 하고 낙엽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현성이 오랜만에 나온 바깥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1년 6개월…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던 그 시간이 이제 모두 다 지나가버리고 과거가 되고 말았다. 불어오는 칼바람이 시리도록 차갑지만 원에서 입고 나온 얇은 외투 말고는 몸을 감쌀 재간이 없다. 양 주머니로 손을 움푹 집어 넣고 현성이 걸음을 옮기며 들어올 때와 달리 삭막한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여름 참 길었네.”
그 길고 길었던 여름의 종말. 하지만 겨울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의 앞에는 겨울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구 지역 특성 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제법 으슬한 바람이 불어와서 저도 모르게 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다.
“오데 가면 되노…”
불어오는 바람이 얇은 외투 안으로 스며들어 싸늘한 것 보다 갈 길 없이 막막한 기분에살며시 몸을 움츠리며 현성이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소년원에서 막 출소한 거대한 덩치의 20살은 이제 갈 곳을 찾아야만 했다. 간수에겐 어디든 가면 되지 않겠느냐 이야기 했지만 사실상 막막하기 그지 없단 생각에 현성이 깊은 우수에 잠긴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은 무척이나 높았는데, 아직도 가을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창살 너머로 바라보던 하늘에 스프라이프 줄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나오고 나니 당장 지낼 곳조차 막막한 가운데 현성이 힘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정말로 막막한 가운데 점점 더 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은연중에 반가운 기분이 들곤 했던 모양이다.
당장 먹고 잘 걱정은 없다 해도 미래와 희망이 없는 소년원 안 보다는 차라리 바깥이 낫다고 생각한 듯 현성이 그래도 이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굳은 얼굴에 그나마 옅은 미소를 더해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점점 바람이 싸늘해진다 싶더니 귓불이 시뻘겋게 얼어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어디론가로 들어가야겠단 생각이 든 모양이다.
“…칠곡이가… 버스 타야겠네…”
들어올 때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버스 정류장을 차아서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나마 목적지가 있으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모양인지 길 건너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은 현성이 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류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다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인지 정류소의 투명한 막 안쪽으로 바람을 피해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무뚝뚝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현성을 보고 움찔하며 슬금슬금 걸음을 옮긴다. 그가 버스 노선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를 피해서 바람 불어오는 쌀쌀한 바깥으로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 광경에 쓴웃음을 띤 채 현성이 한숨과 함께 노선만 확인하고는 천천히 뒤돌아서서 사람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서 홀로 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 물어보고 싶지만 아마…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싫어하고 피하는데 물어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아니, 그들은 그가 어디에서 나온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인상이 매우 험했고, 얼굴에 입은 화상 덕분에 더욱 더 무섭고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추위보다도 그 무서운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뿐일 것이다.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억울하고, 더러는 괴롭기까지 한 현실에 체념한 듯 현성이 눈을 감는다. 타고 나기를 못나고 무섭게 생긴데다 덩치까지 이러니 익숙한 일이다. 어린 시절 줄 곧 ‘괴물’이란 별명을 달고 살아왔고, 소년원 내에서도 그러했는데 밖이라고 다르겠는가…? 평생을 그리 살아왔으니 한 번 더 그런다 해서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춘 채 버스를 기다리던 현성이 주머니 속에서 이 천원을 움켜쥐고 작은 한숨을 내쉰다.
금방 기다리던 사람들이 힐끔 그를 바라보고는 버스 안으로 도망치듯이 걸음을 옮기며 스마트폰을 꺼내고 타다닥 두드리는 모습에 현성이 마치 자신을 비웃거나 비아냥 거릴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짐을 느낀다. 날이 차가워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그가 있었기 때문인지 도망치듯이 사라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제야 현성이 천천히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많이 추웠던 모양인지 벤치에 앉아 잠깐 바람이라도 막아서니 그나마 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바람보다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에 움츠러 들어 쓴웃음을 짓고 만다.
“…겨울은 더 길겠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버스를 기다리던 그가 어느 샌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리고 현성이 안으로 걸음을 내딛자 마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던 버스 기사가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는 게 상당히 기분이 나쁜 일이지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며 현성이 요금함에 2천원을 집어 넣고 걸음을 옮기자 버스기사 ‘잔돈 가지고 가셔야제…!’ 하고 조심스럽게 그를 부른다.
-달칵! 달칵! 달칵!
동전 나오는 소리에 현성이 꾸벅 고개 숙여 인사 하곤 동전을 들고 걸음을 옮긴다. 모두들 그 용모 때문인지 버스 안에 올라선 그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이내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 안 보는 척, 가방을 끌어안고 딴청 피우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마음 한 구석이 움찔하는 것을 느끼며 체념의 한숨과 함께 노선을 보는 척 현성이 어느 자리에도 앉지 않고 우두커니 선다. 버스에서 내릴 때 까지 홀로 서서 외로이 목적지로 흘러가던 그가 지하철역에 다다라서 도망치듯이 버스에서 뛰어 내린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그를 두려워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두려워 했으니까. 그들이 보내는 그 시선 하나, 하나와 그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헤아릴 재간이 없을 것이다.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지쳐버린 듯 무거워진 마음에 현성이 차라리 소년원 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쓴웃음을 띤 채 지하철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후끈한 버스만큼은 아니었지만 지하라서 그런지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 그런대로 지하철은 있을만 했다. 노숙자들이 왜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는지 알겠다 하고 현성이 옅은 웃음을 띤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중 전화 앞에 선다. 그리고 아까 버스 요금을 내고 남은 잔돈을 밀어 넣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번호를 꾹꾹꾹 누른다.
-뚜르르르…
신호가 두어번 울리고 이내 ‘여보시오’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고모부, 저… 현성입니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혹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의구심을 가진 사이에 낯익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신 연락 하지 말그라.
뚝 하고 끊어져 버린 전화가 뚜, 뚜, 뚜… 하고 소리를 내자 현성이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철컥 하고 체념해버린 듯 수화기를 걸어놓은 현성이 철렁철렁 하고 반환되어 나온 동전을 챙겨서 힘없이 걸음을 옮긴다. 지하철 게이트의 차가운 의자에는 버스 정류장보단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역시 그가 오자 마자 저마다 화장실에 가는 척 바쁘게 자리를 옮긴다. 지친 몸 쉬기엔 감사한 일일만도 하다만 마음은 그 어떤 매질보다도 괴롭다.
“후…”
누군가가 앉아 있어 아직 뜨끈한 온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 걸터 앉아 현성이 망연자실하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누르며 ‘이제 우야면 좋노…’ 하고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쉰다.
만약 고모가 받았다면… 최소한 반겨줄 수는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달라진 것은 하등 없겠지만 말이다. 쓴웃음 가득한 현성이 웃음을 거두고 멍하니 주머니 안에 넣어둔 명함을 끄집어 내 본다. 벌겋게 시린 손이 딱딱한 명함 끝을 찔러 따끔허니 짜증이 나지만 꾹 참아내며 청소년 보호소의 주소를 바라보던 그가 다시 한 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추운 날씨 탓인지 역사 안에서 모니터 근무를 하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게이트로 나와 그를 지켜보던 직원과 눈이 마주친 그가 꽉 어금니를 깨물고 외면하듯이 고개를 돌려 다시 지하철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다시 밖으로 나오자 마자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갈 곳 없는 현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 * * *
“김형범 대리님이 소개해줬다꼬…?”
“예.”
단순히 주소지만 보고 찾아가긴 여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시뻘건 키와 얼굴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더 무서워 보이는 외모 덕분에 조금 겁을 먹은 듯 중년의 보호소 담당자가 흐음… 하고 그를 바라본다.
“이름이…?”
“장현성입니다.”
“나이가…?”
“내년 되믄 스므살입니다.”
그 말에 담당자가 음… 하고 뜨뜨미지근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들고 있던 펜을 빙글빙글 돌린다. 그나마 따뜻한 실내에, 따뜻한 차라도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한 듯 현성이 종이컵에 녹차를 들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담당자가 저기… 하고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도 지금… 자리가…”
무척 곤란하다는 듯 한 그 말에 현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괜찮심니더.’하고 대답한다. 애시당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던 곳이다.
“갈 데가 없어요…?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무뚝뚝한 그 목소리에 담당자가 아… 하고 조금 안타까운 듯 그를 바라본다. 얼굴에 있느 화상 자국이 연상된 듯 ‘화재…?’ 하고 그녀가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담담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무서운 용모와 다르게 예의바른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런 탓인지 담당자가 조금 상냥해진 목소리로 그를 향해 이야기를 꺼낸다.
“미안해요. 정말… 지금 여기 보호소에도 너무 애들이 많이 몰려서… 겨울엔 특히 더 그렇거든요. 여유가 없는 곳이라서…”
그녀의 미안함 가득한 음성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괜찮심다.”
당장에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여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따지고 우겨봐야 이득 될 일이 없단 것을 너무나도 쉽게 깨달았던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에 에휴 하고 담당자가 측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런데… 소년원에는 왜 들어간 거에요?”
그러다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인지 그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현성이 ‘그냥…’ 하고 고개를 흔든다.
“그냥 빙시 짓 좀 했슴다. 어릴 때라가… 멍청해서.”
무뚝뚝한 얼굴로 뭉퉁거려 대답한 그의 말에 담당자가 얘기 하기 싫어한단 것을 느낀 건지 아…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안에서 좀 쉬고 가요. 날도 추운데…”
“아입니더. 그냥… 빨리 가서 숙소부터 구할랍니다.”
그리고 연이은 그녀의 호의에 현성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그 말에 담당자가 흐음… 하고 물음을 던진다.
“어디 갈만한데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모텔 드갈라꼬요’ 하고 대답하자 담당자가 걱정이라는 듯 아… 하고 그를 바라보며 ‘돈은…?’하고 물음을 던진다.
“…소년원 나오면서 좀 모아놓은 거 있습니더.”
소년원 안에서 노동을 하면서 모아둔 돈이 일부 있던 모양인지 그 말에 아… 하고 담당짜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드가가 빨리 일 구해야지예.”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세상에 내던져진 소년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안타까운 듯 담당자가 한숨을 내쉬며 ‘잘 되길 응원 할게요.’ 하고 위로를 더하지만 현성은 무뚝뚝하기 그지 없다.
“예. 일 보이소.”
아마 그 모든 호의들이 겉치레라고 생각한 듯 차가운 그 말을 남긴 채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역시나 어딘가에 기대거나 의지하면 안 된다. 그것들을 다시 한 번 느끼며 현성이 청소년 보호소를 나선다. 그가 떠나가고 남은 자리에서 담당자가 장현성… 하고 이름을 생각하다 낯이 익다 싶었던지 타다닥 하고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목사 폭행 치사…”
그 유명한 애였구나 하고 담당자가 한숨과 함께 그가 사라진 빈자리를 바라본다. 어쩌면 그로써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행동이 좀 과하긴 했지만 결코 그게 ‘악의’를 가지고 벌였던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에휴…”
세상사가 얼마나 막막하던가. 가끔은 그녀로써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게 세상이다.
“잘 됐으면 좋으련만…”
담당자의 한숨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온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몸을 움츠리며 걸음을 옮긴다. 1년 6개월 동안 원 내에서 일을 하며 모아둔 돈이 꽤 있기 때문에 사실 당장 갈 곳이 없다 하더라도 지낼 수는 있다. 어차피 세상과 동떨어진 지 1년 6개월이 지났고, 그 이전에도 세상과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딱히 원망하거나 그것들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씁쓸한 마음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던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현성이 어금니를 꽉 깨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막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앞으로의 문제였다. 당장 지낼 곳이야 모아둔 돈으로 충당하고, 며칠간은 생활비로 사용하면 되겠지만 일을 구하는 것. 중졸에 불과한 학력에 기술조차 가진 게 없고, 보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도망칠 정도로 험악한 인상과 덩치는 그로 하여금 어디에도 갈 수 없도록 만들 게 틀림 없었으니까.
“하아…”
길었던 여름보다도 지독스러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막막해서 발걸음조차 떨어지지 않는지 걸음을 멈춰선 현성이 이제는 차갑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얼어붙은 얼굴로 멍하니 늦저녁의 하늘을 바라본다.
“봄이라도 오면 좋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