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지독한 똥 냄새에 분명 묘한 향기가 섞여 있었다. 천국과 지옥의 향기가 섞여 있다면 이런 냄새일 터.
드디어 생각이 났다. 이 익숙한 냄새의 정체가.
“앰버그리스야.”
“앰버그리스요? 그게 뭡니까?”
“앰버그리스는 여자들이 쓰는 물건 아닙니까?”
“어, 아네?”
샤이언의 말처럼 분명 여성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달수는 아예 처음 듣는 모양이고 겉만 여자인 카스카디아가 그런 것을 챙겨 다닐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이곳 귀족 여성들이 사용하는 최고급 화장품.”
“이 똥 냄새 나는 게 화장품이라고요?”
“앰버그리스는 히포하데스의 배설물 중 일부인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 독특한 향이 나거든. 그걸 몸에 뿌리는 거지.”
“똥 냄새를 몸에 뿌린다고?”
“아니, 시간이 지나면 똥 냄새가 아니라 좋은 향기가 난다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고래의 용연향과 비슷한 것이었다. 앰버그리스는 거대 몬스터 중 하나인 히포하데스의 배설물 중 일부가 산화되어 굳은 덩어리였다. 신기하게도 그 시커멓게 산화한 덩어리에서는 실제로 비싼 향수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이곳 아리아스 대륙에서는 값이 여간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하여간 인간들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어쨌거나 지금은 향기가 아니라 똥 냄새가 나는데 그걸 왜 뿌려? 달수 너 이런 취향이었어?”
“왜 또 가만히 있는 저한테 그러세요?”
우리 중 이런 고급 향수에 어울릴 법한 외모를 가진 건 카스카디아가 유일했다. 물론 외모로만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일 뿐.
“그건 달수가 아니라 쟤한테 물어봐.”
범인은 달수가 아니라 드비어스였다. 녀석이 왜 이 값비싼 향수의 원료를 주변에 뿌려댄 것일까. 이유는 뻔했다.
“네가 뿌렸냐? 꼴에 귀족이랍시고 티 내려고 돈지랄했나 본데 냄새가 무지 구려.”
“귀족티 내려고 뿌린 게 아니야.”
“그럼 왜 뿌렸는데?”
“우리가 맡기에는 지독한 똥 냄새일 뿐이지만, 히포하데스에게는 다르지.”
“다르다니요? 똥 냄새가 다 같은 똥 냄새 아닙니까?”
“이성을 유혹하는 일종의 페로몬이거든.”
아직 산화되기 전 앰버그리스가 풍겨대는 지독한 똥 냄새는 히포하데스를 흥분시키는 강력한 최음제이다. 이 냄새를 맡은 녀석들은 본능에 이끌려 이곳으로 몰려들 터. 드비어스는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잠깐! 너는 그걸 왜 가지고 다니는데? 설마… 인간과 몬스터를 넘나드는 사랑 뭐 그런 거야? 아, 더러워!”
“달수야, 그게 아니라… 저기를 봐라. 저런 놈들하고 그게 말이 되겠니?”
대신 변명을 해주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드비어스를 더럽다는 듯 바라보는 달수에게는 약간의 설명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새 히포하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설명하는 것보다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게 더 빨라 보였다.
쿠궁!
“오우씨! 완전히 떼로 몰려오는데요? 그러면 도대체 저것들을 왜 유혹한 건데?”
“우리 때문이겠지.”
“우리? 야! 나 여자 좋아해. 여자 인간 좋아한다고!”
“달수야, 그게 아니라니까.”
히포하데스. 마몬처럼 고대 마물 군단을 이끌었던 네 군단장 정도는 아니어도 바로 그 아래로 여겨지는 베히모스의 새끼를 히포하데스라고 불렀다. 이것들이 변이를 겪으면 A 등급 몬스터 못지않은 B 등급 몬스터 베히모스로 변신한다는 말이었다.
시간만 많았다면 키워서 잡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변이 전이라서 마력도 겨우 C 등급에 불과한 이것들보다는 베히모스가 훨씬 영양가 있을 테니까.
불행히도 달수는 여전히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해력이 딸려서 슬픈 달수였다.
“음하하하! 저것들이 바로 이 페른 호의 주인 히포하데스들이다. 히포하데스는 네놈들이 이제까지 상대한 오크나 은갈기늑대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될 괴력을 가진 몬스터라고! 변이를 겪고 나면 베히모스로 진화하지. 결코 요행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 그러니까 지금 우리 엿 먹이려고 일부러 저 하마 새끼들을 불러냈다는 거네?”
“이제 좀 이해가 돼?”
당사자인 드비어스가 직접 설명해주고 나서야 감이 오는지 달수가 그를 몰아세웠다. 아무튼 드비어스는 C 등급 몬스터인 히포하데스가 뭔가를 해줄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야, 이 박쥐 같은 놈! 어쩐지 고분고분하다고 했다. 형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관상은 과학이라니까요.”
“드비어스 자작,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군.”
“아주 똑똑히 알고 있지. 이제 저 히포하데스들이 네놈들을…….”
달수처럼 화부터 내야 할 샤이언이 조곤조곤하게 드비어스의 실수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가 어떠할 지를 이미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의기양양한 드비어스. 아직도 일행 중에 드래곤 한 마리와 마왕이라고 불리던 사나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 하는 눈치였다.
쿠르르릉.
몰려든 히포하데스들이 다시 지축을 흔들었다. 생긴 것은 하마처럼 생긴 것들이 엄니는 코끼리만한 것이 여간 위압적인 것이 아니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때 이야기이기 했지만.
“야, 이거나 물어 와.”
때마침 좋은 놀잇거리가 생겼다고 여겼는지 카스카디아가 가까이에 있던 나무 하나를 통째로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집에서 키우는 개를 길들이듯 가뿐하게 나무를 휙 던져 버렸다.
“월!”
쿠르르릉.
다시 지축이 흔들렸다. 모여들었던 히포하데스들의 시선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나무를 따라 이동했다. 덩치에 비해 앙증맞게 작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는 모양새가 귀여운 강아지와 같았다. 하긴, 카스카디아에게 이런 것들은 마냥 귀여운 애완견들이나 다름없을 터. 개중에는 마치 강아지처럼 짖어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역시나 그 꼬리만큼 앙증맞게.
“……?”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아예 말을 잃어버린 드비어스. 샤이언은 대충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예상했는지 그리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아… 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뭐 하기는. 이러려고 부른 거 아니야? 생긴 게 땡글땡글한 게 귀엽네. 자, 이것도 물어와 봐!”
“월월!”
아무리 덩치가 커도 새끼는 새끼였다. 이리 덩치가 큰 데다가 낳자마자 독립시키는 몬스터의 특성상 어미인 베히모스가 살갑게 놀아주지도 않았을 터. 히포하데스들은 아예 카스카디아 앞에서 눈동자를 끔뻑거리며 더 놀아달라고 칭얼거렸다.
“마침 잘됐네. 달수야, 다리 하나만 뜯어와. 배 좀 채우게.”
“이 귀여운 애들을 잡아먹자고?”
“그럼 뭐 먹어? 굶을래?”
“뭐 챙겨 온 거 없어?”
“어제 저녁에 네가 다 먹어서 이런 거잖아. 뭔 쪼그만 여자애가 코뿔멧돼지 한 마리를 저 혼자 다 처먹냐?”
아침 식사거리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먹을 것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 셈이었다. 포동포동한 젖살이 여간 먹음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보들보들한 동파육이나 한번 만들어 봐?
“내가 여자로 보여?”
“미안, 내가 실수했다. 달수야, 얼른 한 마리 잡아 와.”
“형님, 아직 얘들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그럼 카스카디아 네가 잡아 와.”
“내가?”
“그럼 그냥 드래곤 날개 튀김 먹을까?”
“농담도 꼭 그렇게 마왕답게 해야 하냐?”
아니면 튀김 요리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런데 재료가 영 신선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고, 귀엽다. 자, 이리 온. 옳지.”
“카스카디아 님, 사냥을 하시라니까 왜……? 헉!”
빡!
쿠르르릉.
“깨갱!”
“오우씨!”
“히… 히포하데스를 단 한 방에……!”
십대 소녀가 길 잃고 바들거리는 강아지를 어르듯 히포하데스를 부르던 카스카디아가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주먹을 뻗었다. 단 한 방에 쓰러지는 히포하데스. 깜찍해 보이기까지 하는 카스카디아의 지금 외모를 감안 할 때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기는 했다.
“다리 하나면 되지? 이쪽이 쫄깃쫄깃해 보이네.”
“헉!”
게다가 주저 없이 히포하데스의 앞다리를 뜯어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드비어스를 슬쩍 바라봐 주는 센스까지.
“뭐 해? 뼈 안 바르고. 아직도 미련이 남았어?”
“그… 그럼 정말 용사란 말인가!”
드비어스는 이제야 좀 자신이 어떤 존재들 틈에 끼어 있는지 자각한 표정이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봐서 알겠지만, 통하지도 않을 테고.”
“야, 뼈 바르라고!”
“예…… 옛!”
샤이언의 충고대로 두 번 다시 허튼짓을 하지 않는 것이 명대로 사는 길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터. 그래서인지 대답 소리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
드비어스 자작이 잔심부름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몸을 놀리던 그때. 소렐 왕국의 수도 소피아 왕궁에서는 황태자 바란 소렐과 타니스 후작과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왕좌를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타니스 경!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이오! 폐하께서 저리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계시거늘 그게 신하된 자가 할 소리입니까?”
비록 병중이라고는 해도 국왕인 드미트리어스 소렐 8세가 엄연히 살아 있었다. 그런데도 타니스 후작은 마치 국왕의 자리가 공석이라는 듯 다음 왕위를 운운했다. 신하라는 자가 대놓고 선위(禪位)를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현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국사(國事)를 살피지 못하신 지가 벌써 몇 달째입니까? 케아스 제국이 아직까지 책봉을 미루고 있는 이유를 정녕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들이 폐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반역이라도 저지르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우리가 저들의 제후국이라도 된답니까?”
핑계가 참 구차했다. 고작 몇 달 병석에 누워 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응당 국왕의 쾌차를 위한 방안을 거론했을 터.
게다가 타니스 후작은 뻔뻔하게도 드미트리어스 국왕이 아직 케아스 제국으로부터 국왕 책봉을 받지 못한 것까지 들먹였다. 아직 소렐 왕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다. 비록 제국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황제국의 격식을 따르는 이유도 독립국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렐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귀족 가문의 수장인 타니스 후작은 이미 이곳이 케아스 제국의 제후국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소신 또한 태자 전하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언제까지 그런 싸구려 감상에 젖어 계실 것입니까?”
“지금 싸구려 감상이라고 하였습니까?”
“대륙의 패권은 이제 케아스 제국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드웨인 하인라이트가 사라진 로디우스 제국은 결코 케아스 제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미 모두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말입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그런 감상적인 애국이 나라를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들은 그 누구도 섣불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타니스 후작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곧 케아스 제국군이 소피아를 점령하기 위해 출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재 소렐 왕국은 그들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믿었던 우방 로디우스 제국마저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 소렐을 도울 원군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의 바람이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럼 경처럼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조국을 두고 현실을 운운하는 것이 애국입니까? 침을 질질 흘리는 몬스터 같은 저 케아스 아가리에 갈기갈기 피투성이가 된 조국을 욱여넣어주는 것이 애국이냐는 말입니다!”
“태자 전하, 우리는 모두 현실을 살아갑니다.”
“현실을 바꿔보려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만 산다면 개돼지나 다를 바가 없겠죠.”
바란 황태자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하지만 외로운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당장 그렇게 충성을 부르짖던 대신들마저 고개를 돌리고 있지 않은가. 이미 소렐을 케아스 제국에게 갖다 바치기라도 한 듯 거들먹거리는 타니스 후작을 꾸짖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의 비열한 조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