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87화 (88/204)

<제87화>

[ 그라니께 지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께유! 관리국에서 찾고 있다는 그 몬스터가 틀림없어라. 그 뭐시다나, 요… 요르……. ]

[ 요르문간드요? ]

[ 이, 고것이요! 요르문간드. 참말로 디져뿌는 줄 알았당께유. ]

구수하다. TV 화면에서 무슨 청국장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서울말이라도 가르쳐서 들여보낼 걸 그랬나?”

걱정이 샘솟았다. 구수한 사투리에 신뢰감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서울 촌놈이라 그런가.

“저 정도는 다 알아들을 겁니다. 오히려 생동감 있고 좋은데요?”

“그래? 소문만 제대로 나면 되지 뭐.”

일단 지상파 생방송 중이니 소문이야 제대로 날 터. 군불만 꺼지지 않게 지펴주면 어려울 것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 고놈뿐만이 아니었어라. 없어졌다는 그 우라질 것들이 죄다 저 안에 모여 있다 안 혀요. 오매, 우짜쓰까이. 우덜 룸싸롱이 바로 조짝인디. ]

[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여기 이 사진들을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정말 이 몬스터들을 모두 다 봤다는 겁니까? ]

[ 아따, 그렇다니께 주댕이 아프게 뭘 또다시 묻고 그란다요? ]

아까 사투리 무시했던 건 취소. 그때 그 장도리 들고 설치던 녀석이 제일 화면발을 잘 받는 것 같다. 내 의도를 아는 것인지 눈을 말똥말똥 순박해 보이게 뜨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 그런데 게이트 안에는 어떻게 들어가신 건가요? 현재 관리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서 출입 금지 상태인 걸 모르셨습니까? ]

[ 그랑께 지도 고거시 이상하다니께유. 분명히 포장마차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디……. ]

그런데 여기서 기자가 폐부를 찔러왔다. 저 촌놈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왜 포장마차가 아니라 게이트 안에서 깨어났는지 기억할 리가 없다. 술 퍼마시며 잘 놀고 있던 놈들을 기절시켜서 게이트에 던져놓고 온 것이 바로 나니까.

“뭐야? 누가 채널 돌렸어?”

“안 돌렸는데?”

“장난치지 말고 빨리 아까 그 채널 틀어 봐.”

“진짜 안 돌렸다니까!”

“아이, 진짜. 뭐야? 진짜네?”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 귀염둥이들 재롱 잔치 홍보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TV 화면이 바뀌었다. 마치 채널을 돌린 것처럼.

“형님,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달수 말대로 뭔가 사달이 났다는 뜻이다. 아마 누군가 고의로 생중계를 막은 모양이었다.

따르릉.

그때 달수의 휴대폰이 요란을 떨었다. 벨소리가 참 정직하다. 꽃개띠답지 않게.

[ 형님, 빨리 이쪽으로 오셔야겠습니다! ]

대림동 게이트 근처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 춘복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게이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 걸려고 했는데. 방송국 애들 어디 갔냐? 왜 방송이 끊기고 지랄이…….”

[ 석문식이요! ]

“석문식? 석 의장이 왜?”

[ 석문식 의장이 여기 왔다고요! 남태현 회장하고 무명 진인도 같이요! ]

“그 세 사람이 같이?”

대한민국 세 손가락이 전부 몰려왔단다.

“제대로 걸려들었네.”

이 정도면 재롱 잔치 홍보는 대성공인 셈. 다음은 우리 귀염둥이 애완 몬스터들 차례였다. 혼자 힘으로는 절대 게이트를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지랄 발광을 떨어주어야 했다.

***

그 시각, 대림동 게이트 앞.

“안 됩니다!”

“안 되다니? 누군가는 들어가서 확인을 해봐야…….”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게이트 앞에 급하게 차려진 대책본부 천막에서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졌다. 게이트에 들어가 내부 상황을 확인하겠다는 석문식 의장과 그를 한사코 막아서는 남태현 회장.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거지? 지금 한가하게 말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로 보이나?”

“이곳이 트리스타의 게이트는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님, 욕심이 과하시군요.”

“이 석문식이 저깟 게이트 하나를 독식하기 위해 꼼수라도 쓰려는 것으로 보이는가?”

“저깟 게이트라니요? 저 안에 들어있는 몬스터가 A 등급 세 마리에 B 등급이 다섯 마리입니다. 거두어들일 수 있는 마정석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결국 나를 못 믿겠다는 거로군.”

“서로를 신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요.”

TV 생방송을 끊어 버린 것도 이들이었다. 지금은 안전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남 회장은 석문식 의장 주도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혹여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트리스타가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라면 짜여 있는 각본대로 놀아나는 꼴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정 그렇다면 같이 들어가도록 하지. 이제 됐나?”

결국 석문식 의장이 대안을 제시했다. 남 회장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

“그럼 서두르실까요?”

그제야 굳어 있던 얼굴을 펴는 남 회장. 이제 판은 남 회장이 원하던 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실 남 회장은 석 의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혹여나 자신처럼 그도 랭크업의 비밀의 문을 연 것이라면 게이트 안에서 영영 나오지 못하게 수를 쓸 생각이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몬스터들이 석 의장을 성가시게 하는 틈을 이용해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기우라고 해도 석 의장은 게이트에서 살아서 나올 수 없을 터. 남 회장은 오늘 이곳에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곤 하니까.

“불가합니다!”

남 회장의 속내도 모르고 석 의장이 서둘러 그와 함께 게이트로 향하려던 그때, 누군가 둘을 저지했다.

“당신은 누굽니까?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죠? 당장 나가세요.”

“그만하게. 내가 모신 분이야. 충분히 이 자리에 참석할 만한 분이니까.”

관리국 직원이 별안간 나타난 낯선 이를 내쫓으려고 했다. 그러자 석문식 의장이 직접 나서서 그를 맞이했다. 트리스타 석 의장조차 예의를 갖춰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이의 얼굴을 확인한 남 회장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의도대로 흘러가던 상황에 변수가 생긴 것도 불만이지만, 이곳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보고야 말았다는 표정이었다.

“리자오밍 방주께서도 어지간히 급하셨던 모양입니다? 흑룡두를 직접 보내시다니요.”

“흑룡두? 그럼 설마……!”

“화련방 흑룡두 찐쩌리라고 합니다.”

낯선 이의 정체는 바로 화련방 흑룡두 찐쩌리. 며칠 전 부산항을 통해 입국한 후 돌아가는 추이를 살피다 석 의장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상경한 터였다.

남 회장에게도 천지맹 회월궁주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 이런 공식 석상에 얼굴을 내비칠 입장이 아니었다.

“방주께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변변치 못한 수하들 때문에 체면을 구기셨으니…….”

“본 방을 걱정해주시는 따끔한 질책이자 충고로 듣겠습니다.”

게다가 찐쩌리 정도의 거물급이 직접 오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던 남 회장이었다. 찐쩌리는 엄연한 A 등급 각성자였다. 회월궁주의 마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A 등급 각성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남 회장의 머릿속에서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저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을 한곳에 몰아넣은 장본인은 바로 트리스타 석문식 의장과 화련방 흑룡두 찐쩌리였던 것이다.

저 둘이 같이 움직였다면 다소 힘은 들었을지 몰라도 몬스터들을 하나씩 게이트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흔적도 없이 저 많은 몬스터들을 전부 옮겼는지는 여전히 미궁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저 둘이 모든 것을 꾸몄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이참에 마탄으로 오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드리죠. 제가 설마 누구처럼 제 구역 하나 지키지 못하고 빌빌대겠……!”

탐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 탓에 짜증이 극에 달한 남 회장. 결국 찐쩌리를 도발하고 마는데.

훅!

순식간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바로 남 회장의 목. 남 회장은 볼썽사납게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A 등급 각성자 셋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력을 뿜어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남 회장이 찐쩌리를 노려보았다. 찐쩌리의 두 손에는 어느새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보물인 빙혈조(氷血爪)가 채워져 있었다.

“남 회장님께서 화련방이 어떤 조직인지 잊으신 모양입니다. 이 찐쩌리가 어떤 사람인지도요.”

“음…….”

찐쩌리가 누구던가. 혼자서 아홉 개 성을 평정하고 화련방 지부를 건설한 사람이었다. 방주를 제외하면 화련방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라고 할 수 있는 자. 결코 남태현 회장의 아래가 아니었다.

***

결국 대림동 게이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덕분에 생방송 기회를 놓쳤던 방송국이 다시 기회를 잡았다. 상대를 믿지 못하는 길드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관리국이 대안으로 촬영 로봇을 들여보내 내부 상황을 확인하자고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대림동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누가 대림동 게이트를 관리하는 거죠?”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일단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소개하고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네.”

“화련방이 흑룡두까지 보낸 것을 보면 절대 영등포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남산 삼륭물산에서도 대림동 게이트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오늘도 역시 전 직원을 소집한 채였다.

“하지만 마탄의 말도 일리는 있어. 어쨌든 화련방이 영등포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각 길드가 각성자를 파견해서 공동으로 영등포를 관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화련방이 그걸 받아들일 리 없지. 오히려 게이트 관리에 실패한 건 보스 몬스터를 제대로 가둬주지 못 한 각 길드가 아니냐고 따졌다는군.”

“틀린 말은 아니네요.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한 건 다른 길드들 게이트지 대림동 게이트가 아니니까요.”

서로를 탓하며 누구 하나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수 없는 그런 구도. 당분간 이런 구도가 이어질 게 뻔했다.

“그러니까. 어쨌거나 큰일이야. 서울 도심 한가운데 핵폭탄이 떡하니 놓여 있는 꼴이니, 원.”

“그걸 제대로 관리할 능력을 가진 세력이 하나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죠. 도대체 길드들은 그동안 뭘 한 겁니까? 게이트에서 이익을 거둘 수 있도록 보장을 해줬으면 그걸로 새로운 인재도 발굴하고…….”

문제는 이렇게 계속 무방비에 가깝게 버려진 채로 둘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림동 게이트는 이제 핵폭탄이면서도 동시에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게다가 주인마저 없다면 분명 목숨을 걸고서라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는 자들이 하나둘 생겨날 터.

“훗! 남 탓은.”

“뭐야!”

“어차피 다른 놈들도 못 한다며? 그런데 뭘 굳이 다른 놈들한테 맡겨? 직접 관리하면 되지. 맨날 맡겨 버릇하니까 이제 아주 당연히 맡겨야 되는 줄 아네. 무슨 놈의 공무원들이 무능하다 못해 무책임하기까지 하냐? 그래가지고 떳떳하게 월급 타 먹을 수 있겠어?”

잦은 소집에 짜증이 났는지 건성건성 말을 내뱉었지만, 유진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순간 모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중에는 표호철 단장도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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