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83화 (84/204)

<제83화>

오늘의 사냥터는 여의도 Y19S-01 게이트. 유진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지 한 시간 가까이 흘렀지만,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늘 유진이 노리는 사냥감이 러시아 미녀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애애애앵!

별안간 어둠 속에 잠들어있던 여의도 전체가 쩌렁쩌렁 신음을 토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숨어들지 못할 것 같은 철통 경계망 너머 게이트에서 게이트 브레이크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려 퍼진 것이다.

“아, 이 미친 괴물 형님 새끼! 도대체 또 무슨 멸망 급 사고를 치려는 거야!”

게이트 주변 골목길에 차를 세운 채 망을 보던 팽달수는 느닷없이 울려대는 경고음 때문에 간이 졸아붙을 지경이었다. 여기는 대한민국 주요 길드들의 본사가 다 모여 있는 여의도가 아닌가.

“이깟 일로 나라 안 망한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신 겁니까?”

“온 김에 이것저것 찾아볼 것도 있어서. 그런데 여기도 없네.”

“어쨌거나 그놈의 취미 생활은 다 끝난 거죠? 누가 보기 전에 빨리 가시자고요. 얼른!”

한참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괴물 형님 새끼는 경고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느긋했다.

하여간 무슨 취미 생활을 이리 요란하게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최대한 빨리 튀어야 할 때였다. 팽달수가 서둘러 유진의 팔을 잡아끄는데…….

“쟤는 데리고 가야지.”

그때 뭔가 빠뜨린 것이 있는지 발길을 떼지 않는 유진. 그의 고개가 향하는 곳으로 팽달수가 시선을 돌렸다.

“예? 누구 부르셨어요? 도대체 누구를……! 헉!”

털썩.

유진이 데리고 온 누군가를 보자마자 제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팽달수.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모습이 아무래도 충격을 제대로 받은 모양이었다.

푸드덕.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팽달수를 바라보며 하나 남은 날개를 겨우 푸드덕거리는 존재. 오늘 유진이 사냥한 사냥감이었다.

“잠깐만 이것 좀 붙들고 있어 봐. 신발 끈 좀 묶게. 이게 언제 풀렸냐?”

팽달수은 엉겁결에 유진이 넘겨주는 목줄을 받아들었다. 목줄에 묶인 사냥감의 살기 어린 눈동자 또한 목줄이 넘겨지는 것과 함께 팽달수에게로 옮겨갔다.

“이… 이게 도대체 뭡니까?”

“얘 몰라? 마몬이라고 꽤 유명한 앤데.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간만에 힘 좀 썼네.”

“마… 마몬이요? 제가 아는 그 마… 마몬이요?”

“크아앙!”

“으아아악!”

고대 마물 마몬.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목줄에 묶인 채 무시무시한 괴성을 질러대는 저것이 바로 마몬이었다.

대한민국에 몇 개 없는 A 등급 게이트 중 하나인 Y19S-01의 보스 몬스터가 바로 이놈이었다. 아리아스 대륙에서도 드래곤 바로 다음 줄에 놓이는 몇몇 마물 중 하나였다.

빡!

“너 내가 입 닥치고 조용히 따라오라고 했지? 애 겁먹었잖아! 남은 날개 하나도 마저 뽑아줘? 왜 대답이 없어!”

“크으으…….”

빡!

“이 새끼가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아, 맞다! 내가 혀도 뽑아 버렸지.”

마몬의 꼴이 실로 말이 아니었다. 유진에게 뒤통수를 얻어터지는 치욕은 치욕 축에도 끼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드래곤의 그것처럼 하늘을 암흑으로 뒤덮던 녀석의 잿빛 날개 중 한쪽은 처참하게 찢겨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한쪽도 날개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진 채 겨우 까딱거릴 수 있는 상태.

마몬만의 자랑인 핏빛 뿔도 이미 온데간데없이 뽑혀 있었고 혀 또한 어디 버려졌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게다가 오른팔과 왼발은 기괴하게 접힌 채 덜렁거렸다. 누가 이 몰골을 고대 마물 군단을 이끌었던 네 군단장 중 하나인 마몬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이… 이게 진짜 A 등급 몬스터라는 말입니까? 설마 이걸…….”

“뭐 해? 그쪽 좀 들어봐. 트렁크에 들어가려나? 안 되겠다. 어딜 더 접어야 쏙 들어가지?”

자동차 트렁크에 마몬을 욱여넣으려는 유진의 모습에 팽달수는 다시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녀석은 A 등급 몬스터였다. 혹여 달리는 와중에 트렁크에서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저번 빅터스크캣 사태 때처럼 사람 몇 명 죽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얘를 차에 실어서 집에 가지고 가시려고요? 형님,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거 하시려는 거 아니죠?”

“응, 맞아.”

“맞다는 말은 그러니까… 진짜 그걸 하겠다는 겁니까? 이 형님 진짜 미쳤나 봐.”

“그래, 이 괴물 형님 새끼 미쳤다.”

“지금 얘를 뇌익조처럼 튀겨먹겠다는 거잖아요. 와! 이 세상에 A 등급 몬스터를 튀겨먹겠다는 사람은 형님뿐일 겁니다. 이 형님 진짜 마왕 맞네!”

더 무서운 건 유진이 이 마몬을 무슨 입맛을 돋워주는 새싹 채소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야 드웨인이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던 마왕의 참모습을 발견한 팽달수. 그는 내심 이 마왕 형님 새끼가 자신을 식자재로 보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누가 튀겨먹겠다고 그랬어?”

“아… 아닙니까? 그럼 어쩌시게요?”

“상어입해파리처럼 한번 길러보려고.”

“예? 쟤가 무슨 햄스터예요? 고양이입니까? 무려 A 등급 몬스터라고요!”

튀겨먹으려던 건 아니라는데……. 유진의 말을 듣고 보니 차라리 튀겨먹는 게 백번 나아 보였다. 달수네 게이트 안을 무슨 개인 수영장인 줄 알고 헤엄쳐 다니는 C 등급 몬스터 상어입해파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팽달수가 아닌가.

그런데 이 미친 마왕 형님 새끼는 몬스터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대 마물 마몬을 강아지 기르듯 길러보겠다며 실실 웃고 있었다.

***

[ 어제 여의도 전역을 포함한 영등포구에 내려졌던 몬스터 비상사태 1급 경보가 오늘 08시를 기해 마포, 용산, 동작, 양천, 구로구까지 확대된 가운데 정부는 사라진 A 등급 몬스터 마몬의 흔적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브레이크가 발생한 Y19S-01 게이트의 관리사인 마탄 길드는 현재 임직원 전원이 비상경영 태세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 (중략) …. ]

다음날 브레이크 타임. 어젯밤 유진의 새로운 취미 생활 때문에 갑작스레 발령된 비상사태 1급 경보는 날이 새자 주변 5개 구로 확대 발령된 상태였다.

졸지에 관리하고 있던 게이트 중에서 가장 큰 게이트가 셧다운 된 마탄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돌아오지 않는 한 셧다운 된 게이트는 이제 텅텅 빈 창고나 다름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의도에 있던 마몬을 잡아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대림동 게이트에 풀어 놓으신 겁니까?”

“말했잖아. 재미 삼아 길러보겠다고. 취미 생활 좀 하겠다는데 왜 그래?”

다행히 유진은 새로운 애완 몬스터 마몬을 가리봉 달수네 게이트가 아니라 다른 곳에 풀어놓았다. 화련방 서울 지부가 그동안 관리하던 대림동 게이트가 바로 그곳이었다.

“저 위험한 걸 꼭 기르셔야겠어요? 취미 생활로 즐길 만한 거야 많지 않습니까? 등산을 하시든가, 아니면 수영이라도 해보세요. 꽃꽂이 같은 것도 좋잖아요.”

“내 취미 생활을 좀 존중해주면 안 되냐?”

“제 목숨도 좀 존중해주시면 안 됩니까? 저 마몬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와서 날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형님이야 ‘야! 휙! 빡!’ 하시면 되지만 저나 다른 사람들은요?”

“아이, 귀청 떨어지겠네. 그럴 일 없으니까 그냥 너도 할 일 없으면 낮잠이나 자.”

그래도 팽달수는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 목줄에 감긴 채 자신을 노려보던 마몬의 그 검붉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림동에서 가리봉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게이트 안에서 마력을 회복한 마몬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유진은 태평하게 낮잠 타령이었다. 팽달수의 목숨쯤은 자신의 즐거운 취미 생활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듯.

“지금 이 판국에 잠이 오겠어요?”

“만에 하나 내 허락 없이 게이트에서 기어 나오면 다시는 서서 오줌 못 싸게 그걸 뽑아 버린다고 했으니까 안 그럴 거야. 너 같으면 도망칠래?”

“아!”

듣고 보니 유진도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어제 무서운 맛을 봤으니 마몬도 쉽사리 유진의 말을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 대가가 ‘그것’이라면 더더욱.

“됐지? 이제 그 입 다무는 거다?”

“아니지. 그럼 마탄은요? 이제 곧 마몬이 거기 있는 걸 마탄도 알게 될 텐데 제 물건 찾겠다고 달려올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렇지 않아도 대림동 전체가 시끄러운데 더 시끄러워질 테고 마탄에 밀린 것들은 죄다 이리로 몰려들 거라고요!”

마몬이야 게이트 안에 고이 가둬둔다고 치고. 마탄이 대림동으로 달려오면 이미 대림동에 진출한 군소 조직들이 주변 지역으로 밀려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이곳 가리봉까지 위험해질 것이라는 게 팽달수의 생각이었다.

“그거야 마몬 한 마리만 있을 때 이야기지.”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동물원에 원숭이 한 마리만 있는 거 봤어?”

“헐! 다른 것도 키우시게요?”

“되도록 많이. 내 체면도 있으니까 그래도 기후별로 육해공 구색은 맞춰야겠지? 말썽 피우는 놈들은 백구 간식으로 주면 되겠네.”

그것도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는 유진이었다. 마몬 한 마리뿐이라면 팽달수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을 테지만, 마몬 급 몬스터가 떼로 몰려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무슨 마물 군단이라도 만드시게요? 취미 생활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닙니까?”

“마물 군단을 왜 만들어. 그냥 조용히 취미 생활이나 하면서 살고 싶어서 그러지. A 등급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게이트 근처에 누가 감히 오려고 하겠어? 어때? 여기는 그리 멀지도 않고 아주 가깝지도 않으니까 적당히 조용히 살 수 있겠지? 아닌가? 여기는 좀 먼가? 대림동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와, 큰 그림 보소! 이런 거는 진짜 형님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생각조차 못 할 겁니다. 역시 마왕!”

괜히 주변에서 알짱거리다가 단체로 소풍 나온 A 등급 몬스터들에게 갈가리 찢겨 죽기 싫어서라도 대림동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터. 진짜 마왕이 아니고서는 생각조차 못할 취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앞에서 자꾸 ‘마왕’거리지 마라. 지난 십 년 동안 그 마왕 소리 지긋지긋하게 듣다 왔으니까.”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왕다워 보이거든요!”

“마왕? 어디? 어쩐지 오래간다 했더니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건가, 유진?”

그때 유진과 팽달수의 대화를 엿들은 것인지 자다 말고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는 드웨인. 당장 유진의 심장에 검을 쑤셔 박을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너 낮잠 자던 거 아니었어?”

혹여 드웨인이 예전처럼 마왕 타도를 외치며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유진.

“유진!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치 않겠……. 푸후후.”

다행히 잠꼬대였다. 드웨인은 이내 다시 스르르 누워 자연스럽게 코를 골았다.

“하여간 저 형님도 보통은 아니라니까. 어쩜 캐릭터가 저리 일관되냐? 자면서도 마왕 타도야.”

그런 드웨인을 바라보며 탄성을 자아내는 팽달수. 주변에 온통 이런 형님들뿐이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슬픈 그런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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