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떡 벌어지다 못해 우람하기 그지없는 어깨, 굵기를 가늠하기 힘든 팔뚝과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허리까지.
여느 사람이었다면 분명 헐렁했어야 할 원피스가 당장에라도 질식할 듯 주인의 몸매를 여실히 드러냈다.
초조한 듯 만지작거리는 주먹은 타고났다고 해야 할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모두 긴장할 수밖에.
“그러니까 여기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요?”
“야. 지가 요리사가 꿈인디요. 요즘은 제대로 요리를 배울 만한 곳이 없어 놔서…….”
“요리하는 것보다 먹는 걸 더 잘할 것 같은데…….”
이 늦은 저녁 의문의 여인이 ‘가리봉 왕족발’을 찾은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달수의 말대로 누가 보더라도 의심스러운 방문 동기였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사람 안 뽑아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더욱더. 일손도 부족하지 않고요.”
“지 이름은 봉순이여라. 못 하는 것 없이 다 잘혀유. 월급은 안 주셔도 되니께 제발 요리만 가르쳐 주셔유.”
“봉순이? 느닷없이 찾아온 것도 그렇고 이름도 마음에 안 들어. 너 봉춘이랑 무슨 관계야? 마봉춘이가 보내서 온 거 맞지?”
“얼래? 우리 사촌 오라버니를 아셔유? 그란디 우리 사촌 오라버니는 서울에 와 본 적도 없고 벌써 돌아가셨는디 어떻게 아신댜? 그리고 지는 마씨가 아니고 피씨인디유. 피봉순.”
그녀의 이름은 피봉순. 다행히 달수가 의심하는 바대로 적대적인 누군가가 보낸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천하장사 뺨치는 덩치가 무색하게 일체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다가온 사람으로 보기에는 눈빛이 너무나도 순박했다.
“피봉순인지 마봉순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촌스러운 그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보라고. 패션 감각도 봉춘이 녀석이랑 비슷하다니까. 이 시국에 요리나 배우러 다니는 것도 수상하고. 분명 냄새가 나.”
“냄새가 나기는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여유! 그리고 이 원피스가 뭐 어때서유? 울 할매가 읍내 장터까지 나가서 사주셨던 최신 유행하는 옷인디…….”
미안한 말이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의심을 지울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 박물관에서나 보았을 법한 저 복고풍 패션 센스는 분명 마봉춘의 그것 못지않았으니까.
훌쩍.
달수의 원피스 지적에 여인은 느닷없이 눈물을 보였다. 덩치가 덩치이다 보니 훌쩍거리는 리듬에 맞춰 어깨가 더욱 크게 출렁였다. 아마도 몬스터들 손에 가족들을 잃고 먹고살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서울로 갓 상경한 시골내기일 터.
“아가씨, 일자리가 필요한 모양인데 보다시피 여기는 자그마한 족발집이에요. 일손은 우리만으로도 충분해요.”
사정은 딱해 보였지만, 이 정도 사연이야 누구나 다 안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인상 하나만 믿고 새사람을 들일 만큼 인심 넘치는 세상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꼬르륵.
그때 그 무슨 말보다도 솔직한 배꼽시계 소리가 홀 안에 메아리쳤다. 순간 민망한 듯 눈물을 훔치던 손으로 얼른 불룩 나온 배를 애써 가리는 여인. 당황한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배꼽시계는 더욱더 거세게 으르렁거렸다.
“유진아,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 나누면 안 되겠니? 애들도 다들 배고픈 것 같고 나도 시장하구나.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아가씨도 바쁘지 않으면 밥이라도 먹고 가요.”
“저…… 정… 정말 그래도 될까유? 지송해서…….”
여인은 밥을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반색하며 나머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배가 고픈 것은 확실해 보였다. 적어도 배고픈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함부로 들입니까?”
“그럼 이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손님을 밥도 안 먹이고 내치려고? 게다가 이렇게 연약한 젊은 처자를? 달수 총각, 그러면 천벌 받아.”
“아니, 어머니도 참. 연약하기는 누가 연약하다고 그러세요? 저 팔뚝을 보시라고요. 웬만한 전봇대보다도 굵은 거 안 보이십니까?”
달수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모르는 사람 목숨도 살려주는 의선 행세도 하는 마당에 밥 한 끼 못 먹여 보낼 거야 없다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오랫동안 지켜보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선정한 이들이었다. 이 여인처럼 정체가 모호한 뜨내기들은 애초에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꽃다운 처자한테 그 무슨 실례야? 유진아, 돌려보내더라도 밥은 먹여서 돌려보내야지 않겠니? 보아하니 갈 곳도 딱히 없어 보이는데.”
“…….”
어머니의 말에 더 용기를 얻었는지 여인은 허기 가득한 눈망울로 더욱 내 연민을 자극했다. 여전히 홀 안에는 그녀의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고.
아이들은 물론 어머니까지 모두 그녀의 무언의 호소에 넘어간 듯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여기서 더 매몰차게 내쳤다가는 가족들로부터도 마왕 소리를 들을 눈치였다.
“일단 앉아요.”
“고맙구만유. 고맙구만유, 사장님.”
“아, 아니 나는 사장이 아니라…….”
그렇게 일단 그녀를 안으로 들이기로 했는데. 밥 한 끼 대접하기로 한 것이 그리 고마웠을까. 그녀는 느닷없이 우람한 두 팔을 한껏 벌려 숨이 막힐 정도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진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걸 확 뿌리칠 수도 없고…….
***
우걱우걱.
농담이 아니고 진짜 잘 먹는다.
“언니, 이것도 먹어.”
“그므으.”
“고맙대.”
진주는 거리에서 지내던 과거 기억 때문인지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하는 봉순을 더 살갑게 챙겼다. 민망함은 잠시 접어두었는지 양 볼 가득 음식을 채운 채 겨우겨우 뱉어내는 그녀의 말을 통역하는 것은 달수의 몫.
“얼마나 배고팠을까. 체하지 않게 여기 물도 마시면서 먹으렴.”
“누나, 여기 치킨도.”
“나도 줄 거야.”
어머니는 옆자리에서 연신 봉순의 고래 등 같은 등짝을 쓸어내렸고, 아이들도 제 몫의 뇌익조 치킨을 건네주었다.
뚝뚝.
“으쯔드드 으그드…….”
“어쩜 다들 얼굴도 천사 같은데 마음마저 예쁘냐고……? 뭐야? 갑자기 왜 울어? 뭔 수작을 부리려고?”
“그 입 좀 다물고 있지?”
“내가 뭘 어쨌다고?”
“다물라면 그냥 다물어. 언니, 천천히 먹어도 돼. 그리고 빨랫감 있으면 나한테 줘. 세탁기 돌려놓을게. 목욕물도 받아 놓을 테니까 식사 끝내고…….”
모두의 친절에 감격한 듯 눈물을 떨구는 봉순. 진주는 훌쩍이는 봉순에게 다그치듯 우는 이유를 묻는 달수를 매서운 눈빛으로 제압했다. 그러고는 당연한 듯 더 많은 호의를 보이는데.
“안 돼. 딱 식사 한 끼만이야.”
더 이상의 호의는 무리였다. 뭐 별일이야 있겠느냐만 그래도 집안에 새사람을 들이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경계해야 할 것들이 많은 때였다. 천채궁 식구들을 증발 시켜 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왜? 숟가락 젓가락만 하나씩 더 놓으면 되잖아, 삼촌. 방도 남고.”
“그건 백번 생각해도 형님 말씀이 맞아. 숟가락 젓가락이 문제가 아니라 저 덩치를 먹여 살리려면 족발집 기둥 다 뽑히겠으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목욕물을 어떻게 받아? 욕조에 들어가지도 못하겠는데.”
“오빠! 그 입 다물라고 했지?”
“오빠? 지금 나보고 오빠라고 그런 거야?”
“앞으로 오빠라고 꼬박꼬박 부를 테니까 내 말대로 해주면 안 돼?”
“진짜? 오케이! 형님,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우리 진주가 하자는 대로 해주십시오!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분명 안 된다고 했어.”
달수는 그새 진주의 오빠 소리에 백기를 들었다. 본인이 먹여 살릴 것도 아니면서.
“잠깐! 아까 못하는 거 없다고 그랬지?”
“뭐… 뭐든 시켜만 주셔유. 밥값은 톡톡히 할 거구만유.”
“이것 보십시오. 본인 밥값은 한다지 않습니까?”
“그럼 설거지도 잘하겠네?”
“다섯 살 때부터 했으니께 설거지 경력만 벌써 십팔 년이어라. 설거지 정도는 일도 아니랑께요.”
드웨인도 점점 마음이 기우는 모양이었다. 설거지 담당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봉순이가 아니라 드래곤이라도 싱크대 앞에 앉힐 눈치였다.
“애들하고도 잘 놀아줄 것 같고.”
달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우와 현희는 부리나케 봉순이의 두 팔에 매달렸다. 보란 듯이 둘을 매달고 큼지막한 눈동자를 깜빡거리는 봉순이.
“어머니한테도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형님?”
이번에는 금세 셋이 나란히 서서 어머니의 어깨와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마치 십여 년 합을 맞춰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왜? 장가라도 가게? 아무튼 안 돼.”
“유진아, 정말 안 되겠니? 진주도 그렇고 다들 이렇게 원하는데도?”
“삼촌 그렇게 매정한 사람 아니잖아.”
“큰아빠 나빠!”
“아저씨 안 볼 거야!”
졸지에 온 가족에게 매정하기 그지없는 냉혈한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아무나 받아줄 수도 없으니, 참.
“밥은 찌끔만 먹을게유.”
훌쩍.
봉순은 다시 눈물을 찔끔거렸다. 황소의 그것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거릴 때마다 아이들도 하나둘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어쩐다…….
“우리 집이 안 된다면 그럼 달수 오빠네는 괜찮잖아?”
“뭐야?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새? 안 돼! 내 집은 절대 안 된다고!”
“봉순아, 달수 총각이 부끄러워서 저러는 거란다. 우리 봉순이처럼 참한 처자를 이리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거야.”
“언니, 우리 달수 오빠가 저리 짐승처럼 보여도 막 여자 몸에 함부로 손대고 그럴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거든.”
딱히 봉순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도 벌써 이리 곁을 내준 것을 보면 따뜻하고 푸근한 아이인 것만은 분명했다. 믿을 수 있는지는 진주 말처럼 당분간 달수네 머물게 하면서 지켜보면 될 터. 게다가 달수 집에는 빈방도 넘쳐나니까 뭐.
“안 된다니까! 형님, 뭐라고 말씀 좀 해 보십시오!”
내가 침묵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달수는 불길한 듯 더 길길이 날뛰었다. 봉순이가 홍조를 띤 채 큼직큼직한 팔, 다리를 배배 꼬며 녀석을 바라보자 더욱더.
***
“삼촌! 안 일어나?”
“알았어, 잠깐만.”
다음 날 아침. 여느 날처럼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여서 학교 보내자면 서둘러야 할 터.
“민우야, 세수했니? 현희는?”
“다 했어요!”
“벌써? 이제 혼자서도 척척 잘하네? 옷도 갈아입었고?”
“네! 봉 여사가 도와줬어요. 봉! 봉! 봉! 봉!”
“봉 여사?”
“잘 주무셨어유? 지 별명이 어릴 때부터 봉 여사구먼유.”
“아, 봉순이 왔구나? 일찍 왔네?”
그런데 오늘은 우렁각시가 그 일을 대신에 해 주었다. 어제부터 한 식구가 된 봉 여사의 솜씨였다.
“벌써 가게 앞 골목도 깨끗하게 쓸었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기상용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했더군. 난 봉 여사 찬성!”
“찬성은 무슨. 다 끝낸 얘기 가지고.”
우렁각시도 이런 우렁각시가 없었다. 애들 등교 준비는 물론 가게 앞 청소에 드웨인까지 일일이 챙겨주고. 기특한 우렁각시를 둔 덕에 달수도 아침부터 꽤 부지런을 떨어야 했을 터였다.
“얼른 세수하시고 아침 드셔유. 달수 씨 챙겨드리고 언능 온다고 후딱 뛰어왔는디 너무 늦지는 않았나 모르것어유.”
“아침 식사 준비까지 다 했다고?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 그럼 나는 애들 도시락만 챙기면 되나?”
“여기 있어, 도시락.”
“진주 네가 직접 싼 거야?”
“아니.”
“그럼 누가 챙겨줬는데?”
“누구기는 누구야. 봉 여사가 챙겨줬지.”
“그것도 봉순이가?”
“응.”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주의 손에는 이미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이 이른 아침에 달수네와 우리 집, 두 집 살림을 뚝딱 해치웠다는 뜻이었다.
“밥 주세요!”
“우리 삐약이들, 튼튼해지려면 밥을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당께. 밥 잘 먹으면 학교 댕겨와서 목마 태워줄 테니께 깨작대지 말고 팍팍 먹어야 혀. 알긋제?”
“네! 봉! 봉! 봉! 봉!”
“왈왈!”
거기에다가 이미 애들 마음은 확실하게 휘어잡은 것 같고 백구까지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어리숙하고 순박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일 하나만큼은 보통 야무진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