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56화 (57/204)

<제56화>

이곳은 설대성 의원 탈출 사건이 벌어진 서리풀 터널. 현장을 살피는 트리스타 홍세호 경영기획본부장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저격을 당한 것처럼 정확히 정수리 한가운데를 관통했어!’

싸늘하게 식어 있는 세 구의 시체. 홍세호 본부장에게는 모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부하직원들이었다. 그들의 직접적인 사인은 모두 두부 관통상.

“본부장님, 여기도 같은 형태입니다.”

“여기도 같습니다.”

그것도 모두 같은 부위였다. 세 명 모두 정확하게 두 눈썹 사이를 꿰뚫린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뭐라고 생각하나?”

“길고 가느다란 꼬챙이 형태의 흉기에 당했다고 봐야겠죠.”

“아니야. 무언가에 찔린 거라면 이렇게 상처 주변이 깨끗할 수가 없어.”

“확실히 검은 아닙니다. 검에 의한 상흔이라고 보기에는 상처 모양이 너무 원형에 가깝습니다. 마치 이건…….”

“총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사실 총상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는 합니다만…….”

누가 보더라도 총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처였다. 문제는 죽은 이들이 모두 각성자라는 사실. 모두 기절해 있던 것이 아닌 이상 총알 따위에 머리가 뚫려 죽을 리가 없는 이들이었다.

“각성자의 몸을 꿰뚫을 수 있는 총탄은 세상에 하나뿐이지.”

홍세호 본부장은 결국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음에도 그는 이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흔적이 너무 보란 듯이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마탄 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마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대놓고 빼도 박도 못할 흔적을 남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마탄 제조는 오로지 마탄만 할 수 있습니다. 흉내 내고 싶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음…….”

홍세호 본부장은 쉽사리 자신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두 틀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실체에 가까운 증거를 남겼느냐였다.

트리스타 소속 각성자가 마탄에 당해 목숨을 잃었다. 설 의원을 데려간 것을 보면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곧 의도적으로 트리스타를 노렸다는 말이 아닌가.

석기현 이사에게 어찌 보고해야 할지 대충 결심이 선 홍세호 본부장. 이제 곧 트리스타와 마탄 사이에 전쟁이 이어질 것이 뻔했다. 어디까지 커질지 모르는 전쟁이었다.

***

뽀글뽀글.

같은 시각 ‘가리봉 왕족발’에서는 여느 때처럼 족발 삶는 냄새가 진동했다. 오늘도 코뿔멧돼지 고기가 가득 든 커다란 냄비 앞에 세 사람이 나란히 쭈그려 앉아 초코맛 얼음 막대를 빨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지?”

“누구 말입니까?”

“설 의원을 도와준 놈 말이야. 화련방인가?”

“화련방이 그럴 정신이 어디 있습니까? 용두가 뭐고 싹 다 저승길 보낸 양반이 누군데……. 혹시 자작극 아닐까요? 설 의원이 원래 검찰 출신이라지 않습니까? 검찰에 인맥도 빵빵할 테니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후배 검사들을 꼬드겨서…….”

달수는 본인 추측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너 같으면 트리스타랑 설 의원 중에 누구를 선택할래?”

“그야 당연히 트리스타죠. 어디 게임이 됩니까, 그게?”

“그럼 검찰은 바보야?”

“듣고 보니 그러네요.”

본인 마음에는 들었는지 몰라도 휑한 머리만큼이나 빈틈투성이였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에는 트리스타가 연루되어 있었다. 달수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마력삼을 도둑맞은 피해자인 트리스타가 설 의원을 탈출시킨 검찰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혼자 튄 걸 수도 있지. 그새 각성했을 수도 있잖아.”

“하필 그 타이밍에 딱 말입니까?”

“인생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동생이나 나나 주방에서 이렇게 미스릴 같은 청춘을 썩힐 줄 누가 알았겠어?”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거지.”

갑작스러운 변수가 등장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드웨인 말대로 설대성 그자가 검찰 조사 중에 불현듯 마력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가정이었지만.

“현장에서 당한 시체들이라도 보고 올까? 무슨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 아니야? 관리국 본청에 있으려나?”

“지금 관리국 본청에 잠입하시겠다는 겁니까? 거기에는 특임 경찰에 각성자 특수전단까지 있을 텐데요, 형님.”

“그래서 뭐? 못 갈 이유가 있나?”

“트리스타나 마탄 게이트도 가볍게 털어 드시는 분인데 못 가실 거야 없지만, 그러다가 만에 하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곳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나……?”

어쨌거나 뭐라도 단서가 될 법한 것들을 건지려면 탈출 현장에 남은 흔적들을 하나씩 짚어봐야 했다. 가장 직접적인 단서는 역시 현장에서 수습한 시신들일 터.

“뭐야? 나만 빼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데?”

“얘네 지금 설 의……! 웁! 으그르!”

“왜 드웨인 형 입을 막고 그래? 설 뭐?”

그때 성진이가 주방으로 난입했다. 요즘 들어 부쩍 주방 쪽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럴 때는 일단 드웨인 입부터 막아야 했다.

“설거지 얘기하고 있었다고. 그렇지 달수야?”

“그러니까요. 설거지 참 재미있다. 내가 왜 이 기쁨을 이제 알았는지 몰라. 딸꾹.”

그나마 달수 녀석 눈치가 조금 나은 편이기는 했지만, 얘는 연기력이 문제였다. 무슨 로봇도 아니고 대사를 스타카토로 읽고 그러냐. 다 티 나게. 딸꾹질은 또 뭐고.

“요즘 진짜 수상해. 뭔 이상한 짓 꾸미는 거 아니지?”

“이상한 짓은 무슨. 우리가 뭐 애들인가?”

“애들이 아니니까 더 걱정이지. 가게로 자꾸 이상한 사람들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많은 일을 겪다 보니 모여서 쏙닥거리는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솔직히 다 말했다가는 앞으로 가게 밖으로는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할 것이 뻔했다.

“아, 저번에 왔던 그 치매 할아버지 때문에 그러는구나?”

“치… 치매 할아버지요? 누구……? 욱!”

어쩔 수 있나. 내가 살려면 누구 하나 환자로 만드는 수밖에. 연기력은 됐고, 제발 말귀라도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달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 있잖아. 무명 진인 닮은 그 할아버지. 그때 가족 찾아드린다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냐.”

“아… 아! 그 할아버지요? 저는 치매가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몰랐습니다. 그때 형님들하고 같이 파출소 갔다가 경찰서 들러서… 하여간 무진장 돌아다녔습니다.”

“그분이 진짜 무명 진인이 아니었어?”

“진짜 무명 진인이 이 변두리 가리봉까지 왜 와?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하도 감쪽같아서 우리도 속을 뻔했다니까.”

무명 진인이야 선행을 쌓아서 등선하는 게 인생 목표인 양반이니까 분명 이해해 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별수 없고. 아무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뭐.

“그래? 편찮아 보이지는 않으셨는데…….”

“그러니까 더 무서운 병이죠. 마음의 병 아닙니까?”

“드웨인 봐. 좀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쟤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잖아.”

“응? 나 뭐?”

“아니, 아이스크림 녹는다고.”

“후루릅.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데! 아이, 아까운 내 애기들.”

“참 안됐다.”

드웨인이야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마음의 병이 깊다고 소개했으니 더 의심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의혹에 가득 차 있던 성진이의 눈빛이 한결 사그라졌다.

“하필 이 타이밍에 저 사람은 또 왜 왔지? 빚 받으러 왔나 보네.”

“누구? 빚은 또 뭔 소리야? 형 어디서 대출받았어?”

그렇게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족발집으로 다가오는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저번에 진 빚을 받으러 온 모양이었다. 졸지에 불청객이 다시 성진이의 의심에 불을 지필 형국이었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고.

“어서 오세……? 어? 저번에 경찰서에서 도움 주셨던 표 단장님, 아니 표 부장님 맞죠?”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드려서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정말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유진, 오랜만이야.”

각성자 특수전단장 표호철이었다. 애써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를 배려해 성진은 그를 부장님이라고 칭했다.

“족보부터 좀 정리하지? 내 동생한테는 존댓말 하면서 왜 나한테는 계속 반말이지?”

“존댓말 듣고 싶으면 너도 존댓말을 하든가. 나이만 놓고 보면 마땅히 존댓말 들을 사람은 나 아닌가?”

“처음 봤을 때부터 반말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훈계질은. 됐어, 그냥 이대로 해. 뭐 먹을래?”

“왜? 대접이라도 하게? 저번처럼 쫓겨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이거 의외인걸?”

“그래도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정 그렇다면 뭐. 그럼 족발 맛 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이 냄새 때문에 뱃속이 난리거든.”

사실 따지고 보면 표 단장에게 신세를 갚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영등포 관리국 지점장과 경찰서 식구들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전부 백구 뱃속에서 황금빛 개똥으로 변신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경찰서까지 직접 달려와 준 성의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실 부탁할 것도 있었고.

“쟁반국수도 서비스로 줄게. 마침 부탁할 것도 있으니까.”

“부탁? 저번에는 영등포 경찰서였고 이번에는 구로서인가? 아니면 금천?”

“특수전단에 끼워달라고 말하려던 참인데 싫으면 말고.”

표 단장이 받고 싶던 보답도 사실은 이것이었으니 딱히 부탁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표 단장이 보여준 성의에 감동받아 마음이 움직였다느니 뭐 이런 인간적인 이유 때문은 당연히 아니었다. 일단 먼저 성진이 눈치 보지 않고 돌아다닐 핑계 거리가 필요했다.

“진심인가? 그렇게 싫다고 버티더니 갑자기 왜 마음이 변했지?”

“형? 특수전단에 들어가겠다고? 이제 더는 위험한 일 안 하겠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인데 내 안위만 생각할 수야 없지. 그리고 특수전단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일만 하는 건 아니야. 거기 들어가면 우리 식구들도 더 안전할 거고. 족발집 영업에도 지장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맞지, 표 부장?”

“그건 유진 말이 맞습니다. 저희도 유진을 정식 상주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모를 긴박한 상황에 대비하여 더 많은 각성자들을 확보해두려는 거죠. 몬스터 비상사태 1급 경보가 발령되지 않는 한 업무도 아마 일주일에 한 번 긴급 연락망 확인 정도가 전부일 겁니다. 아시다시피 몬스터 비상사태 1급 경보라는 게 시도 때도 없이 발령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수 목적을 위한 일종의 별정직 공무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무원만큼 인정받는 직업이 없었다. 뜯어말릴 것처럼 펄쩍 뛰던 성진이도 일주일에 한 번 비상소집 점검 정도가 전부일 것이라는 말에 고집을 꺾은 눈치였다.

“나중에 연금도 나오는 거지?”

“물론.”

가끔 얼굴만 비춰도 따박따박 월급도 나오고 늘그막에 연금까지 챙길 수 있으니 가히 철밥통이라고 할 만했다.

“……?”

고개를 돌려보자 드웨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창조주라는 카렌 신조차 수틀리면 일단 뭉개고 볼 마왕이 국가와 민족을 떠들어대는 것이 가당치 않아 보였을 터. 마왕이 누구에게 제 식구들의 안전을 신세 질 리도 만무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 식구들 속에 드웨인 본인은 물론 백구까지 있으니 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터.

“형… 형님?”

달수의 반응은 더 적나라했다. 손가락 까딱할 것도 없이 잡아다가 바치는 몬스터 고기의 독성만 제거해서 내다 팔아도 떼부자가 될 양반이 도대체 뭔 수작을 부리려고 하냐는 눈빛이었다.

“그럼 나도 이제 명색이 각성자 특수전단의 일원인데 관리국 본청 견학이라도 한 번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래야 비상소집 시에 바로 집결할 수 있을 테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 오전 어때? 점심 오픈 전에 가보면 될 것 같은데.”

“좋을 대로. 사실 내심 걱정했는데 자네가 이렇게 애국심이 투철할 줄은 몰랐군. 내일 특별히 내가 직접 안내해주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이야기는 일단 좀 먹고 계속하는 게 어때? 벌써 침이 입 안 가득 고였다고.”

“그래, 많이 먹어. 그런데 관리국도 회식 같은 거 하지?”

그제야 드웨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달수는 거기에 더해 표 단장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기까지 했다. 동병상련을 겪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애잔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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