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훗! 지랄하네.”
“진… 진주야?”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평소 달수에게 쏘아붙이는 모습이야 많이 봐왔지만,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시원하게 일갈을 날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헉! 박진주, 너 정말 미쳤구나? 할아버지, 쟤가 저런 애라니까요.”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감히 설 의원님한테 지… 지랄?”
“보셨습니까? 댁의 따님들 수준이 이렇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우는 법이죠. 댁들 수준이 이러니 따님들도 죄다 이 모양 이 꼴인…….”
“당신들이 내 부모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조그만 게 어디서 어른한테……!”
연이은 진주의 일갈에 이사장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설 의원도 생각지도 못한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른이 어른 같아야 어른 대접을 해드리지. 그리고 거기 국회의원 아저씨! 존댓말을 할 거면 말을 좀 정중하게 하든가. 그렇게 개소리를 할 거면 그냥 반말로 해. 개소리를 존댓말로 하니까 어색하잖아.”
“풉!”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설 의원의 같잖은 존댓말이 무지 거슬리던 참이었다.
“뭐야! 가정교육이 얼마나 개판이면…….”
“선영이 아버지는 선영이 공부시키려고 매일 목숨 걸고 공사판에서 일하셔. 목숨 걸고 자식을 키우고 계신다고. 반면에 너는? 저 현규라는 양아치 새끼는 선영이 아버지가 목숨 걸고 벌어서 쥐어주신 선영이 점심값을 보호비 명목으로 매일 빼앗아 가.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 그 잘난 국회의원 아버지 배경 때문에 아무리 잘못을 해도 교감부터 이사장까지 죄다 감싸주거든. 당신 그 잘난 감투가 아들을 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과연 누가 자식을 잘 가르치는 걸까?”
우리 진주가 그동안 마력만 랭크업 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쩜 이리 말을 잘하는지 켜켜이 쌓인 숙변이 깔끔하게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거짓말하지 마! 누가 너 따위 말을 들어주기나 할 것 같아! 아빠, 저거 다 거짓말이야!”
“그리고 저기 저건 더 꼴 보기 싫어. 겉으로는 착한 척, 모범생인 척하지만, 뒤로는 이사장인 제 할아버지 믿고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거기다 그 잘난 남친 옆에 끼고 애들까지 괴롭히잖아. 아주 역겨울 정도야.”
“야! 박진주!”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항상 불편해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진짜 가해자인 두 녀석은 거침없이 진실을 뱉어내는 진주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더 들을 것도 없어! 이것들 다 퇴학 시켜!”
“경찰도 부르세요. 퇴학으로 끝낼 문제가 아닐 것 같군요.”
“예, 설 의원님.”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이사장이나 설 의원 모두 아예 귀를 닫아버린 모양이었다.
“잠깐!”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됐나 본데 너희들은 이미 끝났어! 아무리 싹싹 빌어도…….”
“정말 경찰까지 부를 겁니까?”
“왜 겁이라도 나십니까? 그러니까 주제넘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그래도 괜찮겠니? 지금 경찰을 부르면 간단히 끝나지 않을 텐데?”
이쯤이면 진짜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였다. 이대로 경찰을 부른다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과 설 의원은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혹시나 반성의 기미가 있나 싶어 진짜 가해자들의 의중을 물어보았다.
“그…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보는데요? 가해자인 쟤들한테 물어봐야지.”
“그래? 부르자, 그럼.”
괜한 기대였다. 본인들 뜻이 그렇다면야, 뭐.
“저, 그래도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선영이 아버님. 잘 마무리될 겁니다.”
선영이 아버지는 이 상황이 못내 불안한 표정이었다. 상대가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울고불고 매달려도 안 들어줄 테니까 그리 알아!”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쪽은 그쪽일 겁니다.”
“망상이 심하군요. 당신 같은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그런 걸 꿈꿉니까?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 위에 서보는 꿈? 그런데 그거 절대 이뤄지지 않는 꿈입니다. 본인들도 잘 알 텐데요? 그 모양 그 꼴로 사는 게 본인들 숙명이라는 거. 절대 바뀌지 않는 진리죠.”
끝까지 바득바득 기를 쓰는 이사장과 설 의원의 모습이 참으로 못나 보였다.
“그깟 이사장, 국회의원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지금 이사장실에 누가 와 계신 줄 압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은 그림자도 못 밟아 보았을…….”
“아!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높은 분들하고 노는 사람이다 이겁니까?”
“주제를 알고 덤비라는 겁니다.”
“오히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주제를 모르면 겸손하기라도 하시든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하긴 그렇게 망상에 갇혀 사니 그 모양 그 꼴이겠지만요.”
이 정도면 서로 주고받을 만한 말은 다 주고받은 셈이다. 이제 상황을 정리해야 할 때.
“여기 계셨네요, 설 의원님.”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그냥 이사장실에 계시지 않고 왜……?”
그때 교무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부리나케 달려가는 설 의원의 모습으로 볼 때 그가 자랑삼아 말한 그 ‘높은 분들’ 중 한 명이 틀림없었다.
“하도 안 오셔서 어디 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용케 두 분이 만나셨네요?”
“예? 만나다니 누구를……?”
“오늘 설 의원님께 소개해 드리려던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죠. 벌써 서로 인사를 나누신 모양이네요?”
“지… 지점장님께서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시라고요?”
설 의원이 설설 기며 떠받들고 있는 상대는 바로 국가 몬스터 관리국 구로지점장 주경모였다. 오늘 마침 그에게서 예비 각성자 클래스 교관 업무를 안내받으려던 참이었다. 주 지점장은 교관 자리를 수락한 내게 이사장과 설 의원을 소개해주려고 했던 눈치였고.
“예. 역시 나랏일 하는 분들이라…….”
“쉿!”
“나… 나랏일이라니요?”
“아!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네요. 그런데 두 분 아직 볼일이 남으셨나요? 우리 형님께서 시간이 그리 많은 분이 아니셔서…….”
“아, 그게…….”
“주 지점장, 내 조카하고 그 단짝 친구가 이분들 덕분에 경찰에 붙잡혀가게 생겼거든. 소개 두 번 받았다가는 사람 잡겠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조카가 경찰에 붙잡혀가게 생기다니요?”
이사장이야 비할 바도 못 될 테고, 국회의원도 몬스터 관리국 지점장 앞에서는 벌벌 기는 것이 요즘 세태였다. 이렇게 시간을 따로 내 만나주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대단한 관리국 지점장이 나를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둘 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곧이어 또 다른 인물이 교무실로 들어섰다. 그 ‘높은 분’은 주 지점장뿐만이 아니었다.
“길… 길드장님까지 왜……?”
“지금 내 여동생이 잡혀간다잖아! 뭐야! 어떤 놈이 감히 우리 진주를 건드린 거야! 너야? 너냐고!”
“길… 길드장님 일단 이 멱살부터 좀 놓으시고……!”
주 지점장보다 더 윗줄에 놓이는 것이 바로 각 지역 게이트들을 책임지고 있는 길드장이었다. 당장 구로구 주민만 해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달수파 길드장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요즘 방송을 탄 이후 더욱 유명해진 달수였다. 내가 온다는 소리에 주 지점장이 달수까지 불러낸 눈치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버러지 보듯 하던 설 의원은 달수에게 멱살을 잡힌 채 나를 바라보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듯이.
***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분인 줄도 모르고…….”
“그대로시네요.”
“예?”
“제가 여기 주 지점장하고 달수와 친분이 없었다면 이렇게 사과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말씀이잖아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장소가 바뀌었다. 교무실 구석에서 갖은 면박을 주던 이사장과 설 의원은 곧바로 우리를 이사장실로 안내했다. 여기가 학교 재단 이사장실인지 대기업 회장실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곳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진주를 양아치로 몰아간 놈들입니다, 형님. 오빠가 되어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냥 이 ‘오류동 혈귀’에게 맡겨 주십시오. 눈깔을 후벼 파고 사지를 절단해서 몬스터들 먹이로 던져줄 테니까.”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길… 길드장님!”
“달수야, 그만.”
오랜만에 달수의 도축용 정육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녀석의 칼을 마주한 이사장과 설 의원은 눈을 질끈 감고 목숨을 구걸했다. 두 사람 다 ‘오류동 혈귀’의 명성을 모르지 않는 눈치였다.
“이 녀석은 어찌할까요? 촉법소년도 아니고 일반인을 상대로 마력까지 사용했으니 구속을 면치 못할 겁니다.”
괘씸하다는 듯 설 의원의 아들을 가리키는 주 지점장. 정식 각성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을 상대로 마력을 사용한 범죄자나 다름없으니 녀석을 바라보는 주 지점장의 표정이 밝을 리 없었다.
“아… 아빠!”
“아드님이 학생들에게서 빼앗은 돈은 모두 돌려주실 거죠? 아! 꽤 오래전부터 그런 것 같은데 이자까지 얹어서 돌려줘야겠구나. 그렇죠? 손녀분도 그렇고.”
“그…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어른들의 해법은 이러해야 했다. 권력과 돈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정의에 따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돈 문제는 그렇다고 쳐도 폭행 건은 어쩔 수가 없겠네요. 이미 경찰에 신고해버리셨으니…….”
“아빠, 어떻게 좀 해 봐! 나 감옥 간다고!”
“닥치고 있어!”
“그러니까 경찰은 부르지 마시라니까.”
“잘못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아빠!”
설 의원이라는 자. 더 부딪혀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이제 사과하셔야죠.”
“그… 그럼요. 백 번이라도 사과드리겠습…….”
“저 말고 여기 선영이 아버님께요. 아까 너무 심하셨거든요. 저 같으면 아마 정신적 위자료까지 얹어서 모욕죄로 고소했을 겁니다. 그랬으면 언론에도 알려졌을 테고 잘못하면 의원직도 상실하셨을 텐데…….”
“선영이 아버님, 제가 이렇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돈으로 제 무례를 씻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떻게든 사죄를 드리고자 하는 제 마음이니 받아주십시오. 제발 넓은 아량으로 이번 한 번만…….”
설 의원은 서둘러 제 지갑은 물론 이사장과 비서의 지갑까지 탈탈 털었다. 돈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선영이 아버지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돈 봉투를 들이밀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애들한테도 사과하셔야죠? 두 분 다요.”
“애… 애들한테도 말입니까?”
“저도요?”
“당사자들인데 당연히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자존심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으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될 것을.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나만큼이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가 또 있었다.
“이것들이 진짜! 그럼 애초에 사과할 짓을 하지 말든가! 왜? 혓바닥이 안 움직여? 혓바닥을 뽑아줄까?”
진주의 멋진 오빠, 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