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31화 (32/204)

<제31화>

“학교가 정말 예쁘네요.”

화단에 가지런히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들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가 출현한 지 벌써 십 년. 이리 제대로 된 정돈된 교정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진주와 같은 아이들 덕분이죠.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생기가 넘치지도 않았을 겁니다.”

머리가 달수보다도 더 훤한 이분은 바로 이곳 가리봉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 아이들을 생각하는 저 마음이 고스란히 교정 곳곳에 묻어나는 것일 터였다.

“아시다시피 진주가 학교에 다니지 못한 지 꽤 됐거든요.”

전학생을 위해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학교 구경을 시켜주시는 것만 봐도 애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점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쉬지 않고 진학한 아이들이 드문 게 현실이니까요.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마치 용기를 심어주려는 듯 푸근한 표정으로 진주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진주를 믿고 맡겨도 안심이 될 만한 학교 같았다.

“그런데 요즘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은가 보네요?”

그때 이질적인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유명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찬 플래카드였다.

“우리가 모두 각성자는 아니니까요. 마력이 없으면 학력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예…….”

생존이 가장 우선시되는 사회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각성자를 제외하면 기존 사회의 구조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 학력은 여전히 중요한 성공 조건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 입학생도 있네요?”

놀라운 점은 그 빼곡한 플래카드와 별도로 마력 아카데미 입학 축하 플래카드도 내걸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비학교에 입교하지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별도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죠. 애매한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마력 아카데미는 각성자들을 교육하는 유일한 국립 교육기관. 미성년 각성자들은 아카데미에 진학하기 전 아카데미 예비학교에 입교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애매하다니요?”

“마력 말입니다. 정식 각성자로 등록하기에는 마력이 애매한 거죠. 없는 마력을 갖다 붙여줄 수는 없어도 몸 안에 내재한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정도는 도움을 줄 수 있겠죠.”

개중에는 마력 수치가 애매한 경우의 학생들도 존재했다. 최저 각성 등급인 F 등급 기준치에 아깝게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일반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예도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어리기는 해도 엄연히 각성자들인데 이렇게 일반 학교에서 가르쳐도 되는 건가요?”

일반 학교에서 예비 각성자들을 지도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마력 제어에 서툰 경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터였다.

“몬스터 관리국은 물론 마력 아카데미 예비학교, 지역 길드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상 필요 인력이나 세부 교과 내용은 각 기관에서 파견된 분들이 전담하고 계십니다. 예비학교에서 이런 학생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는 없으니 우리 학교와 같은 지역 거점 학교에 예비 각성자 클래스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죠.”

“아!”

한 명의 각성자가 아쉬운 상황이니 F 등급 기준치에 간당간당한 아이들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진주는 언제부터 등교시킬 생각이신가요? 서류 처리는 다 끝냈고 당장 다음 주부터 바로 등교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진주와 학부모님께서 상의해서 결정할 일입니다만,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교문 앞이었다. 배웅을 마친 교장 선생님은 다시 푸근한 눈빛으로 진주를 바라보셨다.

“진주야, 언제부터 등교할래? 삼촌 생각에도 천천히 준비하고 다니기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진주야.”

학교 이야기를 꺼낸 지 불과 며칠 만에 이루어진 일이라 너무 급한 것은 아닐지 걱정하던 참이었다. 여러모로 어려울 것이 많을 진주였다.

“바로 다니고 싶어.”

“녀석.”

진주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망설이는 기색도 없었다. 오빠와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어릴 때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진주야, 공부도 공부지만 삼촌은 진주가 평범한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도 많이 사귀고 그러면서 학창 시절을 밝게 보냈으면 좋겠어.”

“각성자인 거 드러내면 안 된다는 말이지?”

입학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진주에게 당부해 둘 것이 있었다. 반감이라도 생길까 봐 한참 에둘러 말하려고 했는데 진주는 단박에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그게 낫지 않을까? 적어도 너와 네 오빠를 데려갔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네 안전을 위해서 말이야.”

“그럴게. 걱정하지 마.”

침착하고 진중한 진주의 모습이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어른스러워 보였다. 이런 애가 달수 앞에만 가면 어찌 그리 퉁명스럽고 까칠해지는지.

***

“너는 뭐 건진 거 없어?”

진주와 학교에 다녀온 후. 주방에서 드웨인과 달수가 뽀득 소리가 나게 설거지를 잘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던 중이었다.

“이것들이 어디로 싹 다 숨은 건지 티끌만 한 흔적도 없습니다, 형님.”

“설렁설렁 찾아본 거 아니야?”

고무장갑을 낀 채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대답하는 달수. 흑사파의 소재파악도 그렇고 미끼부대 관련 단서도 진척이 없어 보였다.

“누구 명령인데 대충했겠습니까. 그리고 진주가 어디 남입니까? 이제 제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애인데 당연히 제가 나서서 도와줘야죠. 저 그렇게 매정한 놈 아닙니다, 형님.”

“오빠 죽었을 거라고 애 속을 박박 긁어 놓을 때는 언제고.”

“그때는…….”

방송물을 좀 먹더니 말주변이 더 수준급이 되었다. 훈련할 때는 아주 죽일 듯이 덤벼들면서 여동생 타령은.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놈이지? 일정 수준 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엄두를 못 낼 일인데.”

오늘 새벽 드웨인과 함께 게이트를 찾은 것은 단지 베히모스 앞다리나 뜯어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모종의 이유로 미끼부대의 몸에 강제로 마력을 불어넣고 있다면 가장 은밀한 장소는 게이트일 터.

“그거야 모르죠. 유명 길드일 수도 있고 막말로 관리국이나 저번에 찾아왔던 SDS 같은 정부 기관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의심스러운 게이트부터 하나씩 뒤져볼 참이었다. 일단 요즘 이래저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마탄부터.

“결국 지금처럼 한군데씩 죄다 확인해야 한다는 거네.”

“어차피 그것 말고도 따로 찾으셔야 하는 것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겸사겸사 잘 된 거 아닙니까, 형님?”

무식하기는 해도 이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어차피 ‘차원의 서’에 관한 단서도 찾아야 했으니 번거롭더라도 직접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기는 한데 나 혼자 그 많은 게이트를 전부 다 뒤지고 다닐 생각을 하니까 갑갑해서 그러지. 아무래도 훈련 강도를 좀 올려야겠어.”

살펴볼 게이트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혼자 다 돌아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역시 부려 먹을 사람은 달수뿐. 물론 제대로 부려 먹자면 지금 달수의 능력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그거하고 훈련 강도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불안하게.”

“내가 믿을 사람이 너밖에 더 있어? 쟤를 시킬 수는 없잖아.”

능력만 놓고 보자면 드웨인만 한 적임자가 또 없겠지만, 드웨인은 일단 열외다. 당장은 달수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드웨인 형님이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실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저처럼 얼굴이 팔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기록이고 뭐고 있을 리가 없으니 추적당할 염려도 없고요. 돈이 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스크림 몇 개면 충분할 텐데.”

달수의 말처럼 드웨인은 여러모로 자유롭다. 품삯도 싸고.

“언제는 인연이 어쩌고저쩌고 친형제처럼 들러붙더니 막상 귀찮은 일 생기니까 드웨인한테 떠넘기는 거야? 하긴. 너 클 때까지 기다리느니 그냥 나 혼자 게이트를 전부 뒤져보는 게 낫겠다. 아무튼 드웨인은 영 불안하단 말이야.”

“누가 봐도 딱 적임자인데 도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말씀입니까, 형님?”

그래도 드웨인은 아직 안 된다. 그럴 바에는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그 이유인즉슨…….

“어이, 달수! 내가 얘기했던가? 한번은 천신만고 끝에 겨우겨우 마왕 신전에 들어섰는데 글쎄 유진 저 녀석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더라고. 마왕이 갓난아기의 심장을 뽑아 먹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보통 사람이었으면 겁나서 다가서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카렌 신께서 선택하신 아리아스 대륙 최강의 … (중략) ….”

바로 저 주둥이다. 당사자인 나도 모르는 일화들이 무궁무진해 보였다. 뭘 먹는지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로 멀리서 밥 먹는 걸 훔쳐본 것일 테고 심장을 뽑아먹는다느니 저런 헛소리는 하드리안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일 터였다.

“진… 진짜 저러셨어요?”

“내가 저래서 불안하다는 거야.”

다시 아리아스 대륙에 돌아가게 되면 하드리안의 심장을 정말 뽑아버려야 할 것 같았다. 혀라도 뽑든가. 아무튼 드웨인은 당분간 그냥 저렇게 어디 돌아다니지 못하게 싱크대 앞에 박아두는 게 최선으로 보였다.

***

미끼부대의 뒤를 캐는 일에 진척이 없었다. 이대로 무턱대고 게이트나 뒤져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네가 잘 버텨낸 거지.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니까.”

오늘은 승규를 만나는 날. 그동안 승규의 상태는 몰라보게 호전되어 있었다.

“매번 이렇게 신세를 질 수도 없고……. 족발집 일이라도 돕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됐어. 족발집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워.”

마음은 알겠다만, 족발집에서 설거지나 시키자고 그동안 마력 마사지를 해준 것이 아니다. 순전히 복덕방 최 씨 아저씨와 승규를 위한 호의였을 뿐.

“구로 천사님도 거기서 일하신다면서요?”

“걔랑 너랑은 다르지. 정 찜찜하면 심부름 하나만 하든가.”

“말씀하십시오. 무조건 하겠습니다.”

달수나 드웨인은 논외로 하고. 하도 부담을 느끼기에 간단한 심부름이나 하나 시킬 생각이다.

“별거 아니야. 마탄에 다시 들어가면 돼.”

“예? 마탄에요? 거길 왜……?”

“네가 좀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미심쩍은 놈들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참이었다. 아무래도 겉에서 더듬어보는 것보다야 속에서 뒤집어 까보는 것이 더 확실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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