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팡!
짝짝짝.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박수 소리까지 요란했다.
“축하드립니다, 김유진 씨.”
결과는 C 등급. 목표는 F 등급이었는데 실전 테스트 때 뇌익조를 잡는 바람에 원하지 않던 결과가 나와 버렸다.
“누구시죠?”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국가 몬스터 관리국 구로지점장 주경모라고 합니다. 우리 지점 개설 이래 C 등급 각성자가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것은 김유진 씨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지점, 더 나아가서 우리 관리국 전체의…….”
등급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괜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말려야 했다. 말로 알아듣지 못하면 죽여서라도.
“이게 다 뭡니까?”
“하하하! 이런 경사를 저희만 알고 넘어갈 수는 없죠. 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기자분들은 미리 모시지 못했고 따로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하려고요. 물론 관리국에서 발행하는 월간 ‘몬스터’에도 사진과 기사가 게시될 겁니다.”
오지랖도 넓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저, 지점장님. 잠깐 단둘이 얘기 좀 하시죠?”
“그…… 그러실까요?”
일단 보는 눈이 많으니까 지점장실로 들어가서.
“지점장님?”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이제 우리 구로의 자랑이 되실 텐데 관할 지점 수장으로서 이 정도 지원은 해드려야죠. 제 자랑 같아서 말씀드리기가 좀 민망합니다만, 다른 지점에 근무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제 손을 거쳐서 유명세를 탄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닙…….”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저에 관한 개인 정보도 새어 나가는 일이 없어야 할 거고요.”
“예? 왜 그러십니까? 뭐 언짢으신 거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지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할 터였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다른 분들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해 안달이신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요즘 항간에 떠도는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예…… 예? 소문이라니요?”
쉽게 굽힐 것 같지 않던 지점장이 별안간 소문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나와 백구에 관한 말들이 새어 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제가 변두리 지점장이기는 해도 관리국 내에서는 정보통으로 통합니다. SDS, 맞죠?”
“……?”
엥? SDS는 뭐지?
“각성자 특수전단이라……! 내심 관리국 특임경찰 간부 특채 시험을 권해드리려고 했었는데 한발 늦었군요. 국가의 부름을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저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각성자 특수전단?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와 백구의 과거 이력과 관련된 내용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쉿!”
뭘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때로는 오해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때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쉿! 이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지점장은 나를 따라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무덤까지.”
“예. 무덤까지.”
결의에 찬 눈빛으로.
***
“어떻게 됐습니까, 형님?”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보도자료니, 뭐니 쓸데없는 것들이 나돌지 않도록 싹 정리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예. 각성자 등록증 발급받고 몬스터 육류 가공 허가? 그거 처리하고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이제 다 처리했으니까 맛있게 만들어서 팔기만 하면 됩니다.”
드디어 합법적으로 ‘가리봉 왕족발’을 다시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귀찮은 일은 없겠지.
“무슨 등급입니까, 형님?”
“그냥 턱걸이했어. 그리고 이거.”
“이게 뭔데, 형?”
“테스트하면서 잡은 몬스터 부산물 판매 대금이래. 네가 우리 ‘가리봉 왕족발’ 사장님이니까 돈은 앞으로 네가 관리해. 이래저래 돈 들어갈 데가 많을 거야. 어머니랑 애들 여름옷도 좀 사야 하고 진주 다시 학교 보내는 것도 생각해야 해.”
실전 테스트에서 계획에 없던 힘을 보여준 관계로 뜻하지 않게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F 등급 몬스터 한 마리 잡아서 부산물 팔아봤자 고깃값이 전부인데 어깨에 너무 힘 들어가신 거 아닙니까, 형님?”
F 등급을 받아오겠다고 누차 말을 뱉어둔 터라 달수는 내가 당연히 드워프토끼나 한 마리 잡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 형, 이거 액수가……!”
“작은 형님도 참. 기껏해야 오륙백만 원일 텐데 겨우 그 정도로 놀라시는 건 너무 소박하신 거 아닙니……! 뭐…… 뭐야? 삼억? 도대체 뭘 잡으셨기에 한 마리 부산물 판매 대금이 삼억이 넘습니까?”
수표에 적힌 숫자에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보통 사람은 구경하기 힘든 숫자이기는 했다.
“뇌익조.”
“뇌익조요?”
“뇌익조가 뭔데 그렇게 놀라?”
달수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각성 등급 판정을 받는 풋내기 각성자가 다른 몬스터도 아닌 뇌익조를 잡았다는 사실이었다.
“우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치 천둥소리 같고 날개로 막 번개도 쏘고 그러는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작은형님. 저는 덤비지도 못하는 C 등급 몬스터라고요. 도대체 어쩌시려고 뇌익조를 잡으신 겁니까, 형님?”
“형이 C 등급 몬스터를 잡았다고?”
반응은 역시 엇갈렸다. 내 마력을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달수는 왜 이리 강한 놈을 잡았냐며 타박했고 성진이는 걱정 반 놀라움 반으로 되물었다.
“아빠, 그럼 큰아빠도 달수 삼촌처럼 영웅인 거야?”
“응. 큰아빠가 달수 삼촌보다도 더 강하고 센 영웅이래.”
“정말? 큰아빠 최고!”
“아저씨 멋있어요!”
“…….”
민우와 현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현희의 한층 밝아진 모습이 반가웠다. 반면 아직 어색한지 진주는 무표정이었다.
“유진아,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런 거 안 해요. 저 족발집 주방장입니다, 어머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머니는 걱정뿐이었다. 진혁이처럼 먼저 보내기 싫으신 눈치였다.
“형님, 저 좀 잠깐…….”
그때 달수와 따로 잠시 골목으로 나왔다. 장소를 가릴 줄도 알고 제법 눈치가 늘었다.
“C 등급은 좀 과한 거 아닙니까, 형님? 이 구로 바닥 최강자인 제가 겨우 D 등급인데 이렇게 별거 아니라는 듯 C 등급 판정을 받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도 족발집 주방장으로 사시겠다는 양반이. C 등급 각성자가 유명 길드가 아니라 낡고 허름한 족발집 주방장이 됐다? 이런 특종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아예 다 공개하기로 하신 겁니까?”
“다 도망치고 겨우 그놈 하나 정신 못 차리고 눈앞에서 기웃거리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 그냥 떨어질 수는 없잖아.”
달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관리국에서의 일처럼 충분히 이목을 끌 만한 상황이었다.
“생각 없이 남들 다 보는 데서 한 방에 보내버리신 건 아니죠?”
“그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있어서…….”
“아예 광고를 하고 다니시지 그러세요?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 길드에서 같이 일하시죠? 제가 언론을 겪어봐서 아는데 그것들이 형님을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뭐,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생긴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다. A 등급 각성자도 있는데 C 등급 각성자가 뭐 대수라고.
“어쩔 수 없었다니까. 관리국 지점장한테 개인 정보 유출하면 각오하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왔으니까 괜찮을 거야.”
언론에 사진이나 인적사항이 유포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게이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며칠 떠들다가 잊을 것이 분명했다. S 등급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
“어? 구로 천사다!”
그때 누군가 달수를 알아봤다. 기자는 아닌 것 같고 TV에서 보던 얼굴을 직접 보자 소리를 지른 모양이었다.
“들어가 밥이나 먹자.”
아직은 달수, 얘가 제일 문제였다. 오래 얼굴을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아직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
“양념은 족발에 사용하는 간장 양념을 그대로 사용하면 될 것 같고 고기는 가지고 오자마자 개똥민들레를 이용해서 독성을 빼두었으니까 여기에다가 양파즙하고 마늘, 후추, 소금으로 밑간을 한 다음에 전분 가루를 묻혀서…….”
달수 팬이 한동안 식당 문을 두드리며 요란을 떨고 난 후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지쳐 포기한 모양이었다.
치이이이익.
기름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했다. 점심 식사 때라서 그런지 허기가 더 강하게 밀려왔다.
“형님, 설마 이거 제가 생각하는 그 고기 아니죠?”
“맞는데?”
“뇌익조 고기를 먹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독성이 심해서 먹으면 죽는다고요!”
이번 요리는 아이들을 위한 것. 관리국에서 내가 직접 사냥한 바로 그 뇌익조 고기를 써먹어 볼 생각이다.
“내가 우리 애들한테 독성도 제거 안 한 고기를 먹일 것 같아?”
“겨우 한 등급 차이지만, 코뿔멧돼지랑 뇌익조는 독성이 천지 차이라고요. 설마 실험 삼아서 먹여 보실 거라면 저한테 먹일 생각은 마십시오. 죽어도 안 먹습니다.”
뇌익조 간장 치킨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달고 짭조름한 간장 양념에 바삭한 뇌익조 튀김이 빚어내는 환상의 조화를 처음으로 맛보게 될 터였다.
“드래곤 정도 상위 몬스터는 좀 더 고생해야겠지만 C 등급 몬스터인 뇌익조 정도는 개똥민들레로 충분히 독성을 제거할 수 있어. 내가 직접 모조리 다 먹어봤으니까 충분히 검증된 방법 아닌가?”
달수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었다. 직접 먹어봤다는데도 저러니.
“그럼 전에 하셨던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까?”
“무슨 말?”
“드래곤 고기를 진짜 먹어보신 거냐고요?”
“비켜 봐. 이거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어.”
“와! 형님, 이건 대발견이라고요! 족발집을 하실 게 아니라 몬스터 고기를 팔아야 합니다. 버려지는 몬스터 고기만 가공해서 팔아도 벼락부자가 될 겁니다.”
“돈에 별로 관심 없다.”
돈 벌 욕심이었다면 아리아스 대륙에서 결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그냥 돈만 버는 게 아닙니다. 굶어 죽어가는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거라고요, 형님.”
“네가 언제부터 인류 걱정했다고.”
“그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말 아닙니까, 형님? 지금 이 코딱지만 한 족발집 주방에 갇혀 계실 때가 아니라고요. 일단 가공공장부터 하나 세우고…….”
“나중에 방법 가르쳐 줄 테니까 그건 네가 해. 혼자서도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게 되면 그때 하면 되겠네.”
인류 걱정까지 할 만큼 도덕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고.
“어디 가실 것처럼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
달수 녀석은 의외로 예리했다. 아리아스 대륙에 다시 다녀와야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마지막 말의 뉘앙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때는 달수와 진주에게 어머니와 현희, 성진이와 민우를 부탁해야 할 터였다.
쿵쿵쿵.
달수와 주방에서 한참 대화를 이어가던 그때. 누군가 식당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놀라 방에 들어가 있던 다른 식구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구로 천사’ 없어요.”
아까 그 달수 팬이 분명했다. 본인도 지겨운지 달수 녀석이 직접 소리를 질렀다.
“김유진 씨를 좀 뵙고 싶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달수가 아니라 나를 찾아온 손님이었다.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 설마 그렇게 당부했건만, 몬스터 관리국 지점장이 주둥이를 놀려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