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23화 (24/204)

<제23화>

“으……!”

“으아아아악!”

며칠 뒤 달수네 게이트. 각성 등급 판정을 앞두고 달수 조언을 듣는다는 핑계로 다시 게이트를 찾았다.

“집중해! 마력이 한 곳에 뭉치지 않게 흘려보내야 해. 아프더라도 참아!”

게이트 안에 진주와 달수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훈련의 요점은 단 한 가지. 내가 억지로 밀어 넣은 마력을 온몸으로 퍼뜨려 순환시키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러자면 마력 통로를 넓혀야 하는데 이 과정이 고통을 수반했다.

“으윽!”

“아아아아악!”

오로지 버텨내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랭크업 방법이다.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귀청 떨어지겠네.”

계속 몰아붙일 수만은 없어서 잠시 마력을 회수했다. 달수 녀석이 질러대는 비명이 어찌나 크던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아이고, 나 죽어! 도저히 못 해! 못한다고!”

“말이 짧다?”

“살려주십시오, 형님! 이러다가 저 죽습니다.”

며칠째 이어지는 반복 훈련에 달수는 혀를 내둘렀다.

“엄살은. 진주야, 그만할까?”

“아니, 할 수 있어. 할 거야.”

“들었어? 진주는 할 수 있다는데?”

반면 진주는 비교적 잘 버텨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D 등급까지 랭크업에 성공할 터였다.

‘하여간 제법이라니까.’

역시 진주였다. 강해지는 것만이 오빠를 그리 만든 자들에게 복수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쟤는 저랑 다르잖아요!”

“다르지. 너처럼 참을성도 없고 의지박약에 오줌싸개도 아니니까.”

“누…… 누가 오줌싸개라고 그러십니까, 형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 한다고요.”

“오해는 무슨. 그게 다 마력이 허해서 그래.”

진주와 달수는 바탕부터가 다르다. 진주는 스스로 랭크업에 성공한 천재 중의 천재. 둘을 같이 놓고 랭크업을 시도한다는 게 달수에게는 무척이나 억울할 법한 일이기는 했다.

“빡센 단기 속성 코스 말고 이론부터 아주 차근차근 다져가는 최장기 만성 코스 뭐 그런 거 없습니까, 형님? 온몸이 찢어져 나갈 것 같다고요.”

“정 싫으면 하지 마. 평생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 벌벌 떨면서 기저귀 차고 살면 되겠네.”

둘을 따로 봐줄 만한 여유는 없었다. 족발집도 그렇고, 이제 차근차근 ‘차원의 서’에 관한 단서를 찾아 게이트들도 둘러봐야 할 터였다.

“누…… 누가 하기 싫답니까? 좀 쉬엄쉬엄하자는 거지. 당장 내일 각성 등급 판정도 받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네 훈련이랑 뭔 상관이냐?”

“아무리 그래도 시험 전날인데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고 일찍 들어가셔서 컨디션 조절도 좀 하시고…….”

내 걱정을 다 해주고 기특하다만, 오늘 일찍 쉰다고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게이트에서 이루어지는 실전 테스트에서 ‘어떻게 하면 마력을 최대한 숨길 수 있을지’였다.

“정 못하겠으면 빠져. 징징거리면서 시간 잡아먹지 말고.”

툴툴거리는 달수 모습에 지쳤는지 진주가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거리에서 자라서 그런지 거칠고 도전적인 어투였다.

“뭐? 징징? 쪼그만 게 싸가지를 어디 물 말아 먹었나? 꼬박꼬박 반말이네. 너 진짜 오빠한테 혼나 볼래? 이 천사 오빠도 화나면 무섭다?”

얼굴이 벌게진 것을 보면 어린 진주에게 징징거린다는 말을 들은 것이 무지 쪽팔리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오빠를 잃은 진주가 측은했는지 달수는 수하들을 대하는 것보다 한결 부드럽게 진주를 꾸짖었다.

“…….”

‘오빠’라는 말에 아무런 말없이 달수의 번들거리는 대머리, 제멋대로 생긴 얼굴, 두툼한 허리춤을 차례대로 훑어보는 진주.

“야! 너 뭐냐, 그 눈빛? 나 94년생 개띠라고! 너랑 별로 차이도 안 나!”

달수는 진주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는지 발악하듯 나이를 밝혔다. 진주의 눈빛은 오히려 더 의심으로 채워졌다.

***

“강 비서는 아직도 연락이 안 돼? 벌써 일주일째야.”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여의도 마탄 빌딩 99층. 비서실장 지현우가 담배를 문 채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강 비서가 정말 그 팽달수라는 놈한테 당하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팽달수 그자가 그럼 정말 랭크업에 성공했다는 거잖아?”

아직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서둘러 재떨이에 비벼 끄는 지현우 실장. 그의 오른팔인 강 비서가 일주일째 연락 두절이었다. 강 비서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임무는 팽달수의 랭크업 여부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팽달수를 대신해서 저쪽에서 손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팽달수가 어쨌든 활용 가치가 있으니까 저쪽에서도 접근했을 거 아니야? 그러면 랭크업 말고 뭐 다른 게 있겠어?”

“팽달수가 정말 랭크업 한 것이 사실이고 저쪽에서도 그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잠잠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먼저 언론에 터뜨렸거나 진즉에 우리 시야에서 치워 버렸을 테죠.”

차 비서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이대로 그냥 지켜보자는 건 아니겠지?”

“너무 빨리 움직인 것이 패착입니다. 강 비서가 당할 정도라면 빌리 부문장님이 직접 움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하게 상황 파악을 한 후에 대응하셔야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저쪽’은 바로 빌리 그레이엄 부문장의 세력을 일컬었다. 남태현 회장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 그자가 남 회장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럼 그 아이는? 그 아이라도 찾아와야 할 거 아니야? 강 비서가 분명 그 아이를 찾았다고 했다면서?”

“분명 그렇게 연락받았습니다만 정확한 위치를 남기지 않는 바람에…….”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팽달수를 무턱대고 족쳐볼 수도 없었다. ‘그 아이’에 관한 단서라고 할 거라고는 사라진 강 비서가 남긴 문자가 전부였다.

“그걸 지금 나보고 그대로 보고하라는 말이야? 강 비서는 팽달수를 감시하다가 저쪽에 제거된 것 같고 그 아이도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정말 다 죽고 싶어?”

“인원들 총동원해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실장님.”

“당장 찾아와. 당장!”

지현우 실장의 고함소리가 바로 아래층 빌리 그레이엄 부문장의 사무실까지 들릴 기세였다.

***

“그건 몬스터 짓이 아니라 선생님이 술 먹고 발로 걷어차서 부서진 거라고요. 아까 CCTV 녹화영상 보여드렸잖아요.”

“무슨 소리야! 분명 몬스터 짓이라니까!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고.”

다음날 고척동 옛 돔구장. 국가 몬스터 관리국 구로 지점이 위치한 곳이다. 구로구 내에서 관리국이 직접 관리하는 유일한 게이트가 바로 이 돔구장 안에 존재했다.

“만취하셨으니까 당연히 기억이 없죠. CCTV 화면 다시 보여드려요?”

“그럼 각성자 등록은 왜 안 해 주는데?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그 무섭다는 식인계 귀환자라고! 뜯어먹어 줘?”

이곳에는 게이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관리국 구로 지점은 연일 각성자 관리 사무로 바쁘기 그지없었다.

“마력 수치가 측정이 안 되는데 어떻게 각성자 등록을 해 드려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경비, 여기 이분 좀 밖으로 안내해 드리세요.”

“야! 이거 안 놔? 내가 누군 줄 알고…… 느그 지점장 고척동 살제? 마! 어제 느그 지점장하고 같이 술도 먹고, 사우나도 같이 하고, 다했어!”

관리국이라는 곳이 꼭 각성자들만 들락거리는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술주정뱅이들이 득실 거리는 꼴이라니.

“어이, 각성 등급 측정하러 왔지?”

“……?”

오늘 이곳에서 각성 등급 판정을 받아야 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가 다가왔다.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각성자가 분명했다. 얼핏 보기에는 E 등급 정도?

“마력으로 훑어보면 다 나온다니까. 딱 보니까 F 등급도 간당간당하겠네. 너무 겁먹지 마. 드워프토끼? 붉은목쥐? 그거 별거 아니야.”

“…….”

내가 어리숙해 보였는지 사내는 연신 무언가를 설명해주려고 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허세도 약간 있는 것 같고.

“나 배도완. 그래, ‘신도림 팽달수’가 나야. 움찔하는 거 보니까 내 이름 들어봤나 보네?”

“…….”

“오늘 횡재한 줄 알아. 미래의 달수파 이인자랑 각성 등급 측정 동기가 되는 거라고.”

쳐다보지도 말 걸 그랬다. 어쩜 쉬지 않고 혼자서 저리 말을 잘하는지. 참 별의별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

마력 측정기 결과는 F 등급. 그것도 겨우겨우 턱걸이를 했다. 족발집을 하려는 것이지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뭐야? 이것들이 다 어디로 숨어든 거야?”

“여기 몬스터가 있기는 한 거요? C 등급 게이트라며? 그 흔한 붉은목쥐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실전 테스트를 위해 들어 온 게이트 안은 고요했다. 마치 원래부터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지 않는 곳처럼.

“트리스타 알지? 내가 거기 출신이거든. 트리스타에서 끝까지 남아달라고 붙잡는 걸 뿌리치느라…….”

“저기, 몬스터를 아예 마주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 실전 테스트에 배정된 감독관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아까는 ‘신도림 팽달수’인지 뭔지 하는 놈이 정신 사납게 굴더니 게이트 안에서는 말 많은 감독관에게 시달려야 했다.

“어? 규정 때문에 더는 시간을 못 줘.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그래. 긴팔트롤. 그러니까 긴팔트롤이 막 달려오는데 내가 거기서…….”

“그럼 각성자 등록증은요?”

“……했다니까. 내가 E 등급 각성자 중에서도 D 등급에 가까운 정예 길드원이니까 망정이지 나 없었으면 거기 있던 길드원들 전부 그냥…….”

이제 아예 귀를 닫아 버렸다. 무슨 인내력 테스트를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이대로 실전 테스트 끝나면 각성자 등록증은 못 받는 거냐고요!”

“어? 등록증? 당연히 못 받지.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규정이 그래.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됐네. 이번에는 시험장 분위기 익혔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뭐. 마력 측정값을 보니까 F 등급에 겨우 걸쳤던데 드워프토끼나 붉은목쥐 잡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당신 같은 꿈나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소수 정예로…….”

그 오랜 수다의 결론은 개인 교습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감독관이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겨우 등록증 종이 한 장 얻는데 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 어디 가? 당신 미쳤어?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내가 갑작스럽게 튀어 나가자 감독관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수다쟁이와 같이 돌아다녔다가는 시간 내에 몬스터 구경을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야!”

마침 한 마리 정신 나간 녀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놈이라도 잡아야 했다. 일단 불러 세우고.

휙!

날아간 다음.

빡!

시원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찌이이잉.

웬만하면 드워프토끼나 붉은목쥐 같은 F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싶었는데…….

“저기 봐! 저기!”

“오우씨! 저…… 저거 뇌익조잖아? 이 게이트 보스 몬스터인데 어떻게 저걸……!”

머리통은 터져 버렸지만, 뇌익조(雷翼鳥)의 날개에는 여전히 전기가 흐르고 스파크가 튀었다. 역시 게이트 안에서는 기운을 다 숨기기가 어려웠다.

“저 사람 수험생 아닌가 본데? 트리스타 같은 데서 파견 나온 사람 아니야?”

“여기 관리국 지점장도 겨우 D 등급인데……!”

하필 딱 한 마리 발견한 것이 뇌익조였다. 당연히 모든 수험생과 감독관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들 중에는 미래 달수파 이인자를 꿈꾼다는 ‘신도림 팽달수’도 있었다.

“이제 됐죠?”

그렇게 말 많던 수다쟁이 감독관은 아예 얼어붙어 버렸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험생이 게이트의 등급을 결정하는 최상위 몬스터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결과를 계획했던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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