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그건 뭐 그렇다고 치고. 도둑은 잡아야지, 안 그래? 우리 형님이 도둑으로 몰렸는데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려야 할 거 아니야? 얘들아, 안 그러냐?”
“맞습니다, 형님.”
“아니,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여기가 그 잘난 당신 가게야?”
“예? 그렇기는 한데…….”
“얘들아, 여기 어디 쥐새끼가 숨어 있는 모양이니까 구석구석 꼼꼼히 뒤져봐. 벽도 뜯어보고 마루도 까보란 말이야. 오해는 풀어드려야지.”
“알겠습니다, 형님.”
순간 팽달수의 수하들이 가게 안으로 물밀 듯 몰려가기 시작했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것들인지 다들 손에는 도끼, 해머에 드릴까지 들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종수야! 여보! 이 사람들 좀 어떻게 해봐! 경찰은 뭐 하는 거예요! 이놈들이 우리 가게 다 결딴내는 거 안 보여요?”
“제품 입출고 내역하고 현금 입출금 내역이 맞지 않네요. 잘못 적은 게 아니라면 탈세를 하셨다는 건데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거는……!”
현장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팽달수 길드장의 전화 한 통에 세무서에서도 특별히 직원들을 보내주었다. 그새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온 애 엄마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법 없이도 사실 양반들 같은데 설마 탈세를 하셨으려고. 도둑이 든 거라니까. 도둑놈이 가게가 아니라 집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집도 살펴드려. 얼마나 불안하셨으면 생사람을 잡으셨겠어. 어이, 도롱뇽! 너, 집 어디야?”
“잘…… 잘못했습니다. 제발 집만은…….”
“집 어디냐고!”
가게뿐만이 아니었다. 팽달수는 집까지 허물어뜨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짭새!”
“예!”
“그거 뭐라고 그러지? 억울한 누명 씌워서 사람 엿먹이는 거?”
“무고죄 말씀입니까?”
“아무튼 그거. 그거로 잡혀 들어가면 감방에서 몇 년이나 사는 거야?”
“10년 이하 징역이기는 합니다만…….”
“무…… 무고죄라니요? 우리는 그냥……!”
박 순경은 팽달수를 말릴 자신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팽달수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얘들아! 이동!”
“어디로 이동합니까, 형님?”
“도롱뇽, 집이 어디라고 했지?”
“아이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강아지를 갖고 싶은 욕심에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러니 제발 인제 그만…….”
울고불고 자백까지 해봤지만, 팽달수와 그 수하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어디 숨었는지 모를 진짜 도둑을 찾아 열심히 부수고 또 부술 뿐이었다.
***
“일단 대파와 쪽파를 송송 썰어준 다음에…….”
그날 저녁. 아침부터 도둑으로 몰려 놀라셨을 진혁이 어머니를 식당으로 초대했다. 놀란 마음도 진정 시켜 드리고 내가 만든 음식도 맛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독성을 뺀 코뿔멧돼지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두고.”
코뿔멧돼지 앞다릿살이 남아 있었기에 그것으로 새로운 요리를 해볼 작정이었다. 다른 족발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메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제 어머니 표 묵은지를 볶아줘야 하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요거!”
원래대로였다면 들기름에 묵은지를 달달 볶아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들기름을 대신할 구원투수가 있다.
“이걸 넣고 지글지글 볶으면 들기름을 넣은 것보다 백만 배는 고소해 지거든.”
오늘의 요리는 바로 코뿔멧돼지 김치찜. 혀끝에 느끼함이 남는 족발이나 보쌈과는 대비되는 시원하고 개운한 음식이다. 진혁이 어머니표 묵은지와 함께 코뿔멧돼지 고기를 천상의 맛으로 탈바꿈시켜줄 식자재는 바로…….
“형님, 묵은지 아깝게 왜 그걸 거기에다가……! 이걸 진짜 드시려는 건 아니죠?”
“조금만 기다려봐. 이게 보기에는 이래도 김치찜이나 김치찌개 끓일 때 이거 넣으면 훨씬 고소해지거든. 그런데 너 누가 마음대로 주방에 들어오래?”
“긴팔트롤 뼈다귀만 발라서 십 분 내로 튀어오라고 시키실 때는 언제고.”
긴팔트롤의 뼈다귀를 곰탕 우리듯 푹 끓여주면 골수에서 진득한 기름이 우러난다. 이걸로 고기나 야채를 볶으면 그 고소함이 일품이다.
“너 내가 많이 편해졌나 보다?”
“형님, 그게 아니라…… 이거 가져다드리려고 왔다가 하도 맛있는 냄새가 나서 저도 모르게 넋 놓고 지켜보던 거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겠습니다.”
“고생했는데 온 김에 너도 기다렸다가 먹고 가. 어디 가서 내 요리 비법이나 떠들고 다니지 말고.”
달수도 이 자리에 낄 자격이 충분했다. 오늘 일도 그렇고 녀석이 없었으면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죄다 직접 신경 써야 했을 터였다.
“저 입 무거운 거 아시지 않습니까, 형님? 그런데 이거 진짜 괜히 아까운 묵은지만 버리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봐도 사람이 먹을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다, 너 그냥 가라. 백구야, 달수 좀 배웅해 주고 와!”
“왈왈!”
“아…… 아닙니다, 형님! 군침이 줄줄 흐르는 게 무지 맛있을 것 같습니다, 형님!”
빤질빤질한 문어 대가리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도록 놀려대는 재미도 있었다.
“어머니, 이것 좀 드셔보세요.”
달수를 놀리다 보니 금세 코뿔멧돼지 김치찜이 완성되었다. 이제 평가를 받을 차례.
“두었다가 다른 손님들한테 팔아야지. 값을 치르지도 못하는 돈 없는 노인네한테 뭘 이런 걸 내오고 그러니. 됐어.”
진혁이 어머니의 깡마른 손목이 그간의 고생을 대변해주었다. 묵은지까지 내어 주셨으면서 한사코 사양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이거는 어머니 드리려고 특별히 만든 거예요. 가리봉 최고의 손맛 하면 어머니셨잖아요. 어머니가 맛있다고 말씀해주셔야 저도 마음 놓고 손님들한테 팔죠.”
“그래도…….”
달수가 기대했던 것만큼 일처리를 깔끔하게 잘해주었다. 진혁이 어머니를 거지, 도둑 취급했던 녀석들은 어찌나 탈탈 털렸는지 탈세에 무고, 협박, 그리고 그동안 흑사파 행세를 하며 벌인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모조리 들추어졌다.
“어서 드셔 보세요. 어머니가 수저를 드셔야 애들도 먹죠.”
“유진아, 고맙다. 잘 먹을게.”
오늘 일을 위로하려고 지어낸 빈말이 아니었다. 진혁이 어머니는 정말 가리봉 최고라고 평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대단하셨다. 진혁이 어머니께 인정받는다면 그 어떤 손님에게도 맛없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지 않았다.
‘더 일찍 대접해드렸어야 했어요.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꼭 이렇게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소풍날 싸주셨던 김밥처럼 나 또한 정성을 듬뿍 담아 만든 음식을 내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현희랑 민우도 먹자.”
“큰아빠는 요리 천재 같아요. 그렇지, 백구야?”
“왈왈!”
김치찜을 두른 코뿔멧돼지 고기 냄새에 민우는 기특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현희야, 이 아저씨가 현희 아빠랑 단짝 친구였어. 지금 현희랑 민우처럼. 그러니까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아저씨한테 와서 말하면 돼, 알았지?”
“네…….”
“민우랑 백구하고도 사이좋게 놀아줄 거지?”
“네, 아저씨.”
아빠 이야기에 현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가 아직 쉽지 않을 나이였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했는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나? 에이, 나 같이 다 망가진 늙은이가 어떻게…….”
“음식 솜씨가 어디 가나요? 족발이나 이런 거는 제가 만들 수 있지만, 김치는 어머니가 담가주시면 안 될까요? 식당 장사 반은 반찬 덕이잖아요. 그럴 게 아니라 아예 여기서 지내시죠? 방도 남는데. 여자 둘이서 지내는 건 어머니나 현희한테도 위험하고요.”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 세상. 허무한 죽음이 당연시되는 곳이 되어 버렸다. 더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괜히 그럴 거 없어, 유진아.”
“어머니, 저 각성자예요. TV에 나오는 그 돈 잘 버는 각성자요. 그러니까 돈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손사래를 치고 계셨지만,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는 각박한 세상에서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이 이렇게 따듯한 것이었다.
“형 말대로 하세요. 그래야 저희도 마음이 편할 것 같고요. 현희도 생각하셔야죠.”
“말만이라도 정말 고맙다. 내가 당장 죽으면 우리 현희는 어쩌나 늘 걱정이었는데…….”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혁이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자 현희가 위로하듯할머니 팔을 감싸 안았다.
“선생님도 드셔 보세요.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소중한 손님이 한 분 더 계셨다. 바로 민우와 현희의 담임선생님이신 백수현 선생님이었다.
“어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잖아요.”
흑사파 덩어리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분이 감사 인사 한 번에 얼굴이 붉어지셨다. 아까 그 당차고 용감했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수줍어하는 모습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였다.
“아빠, 우리 선생님 예쁘죠? 우리 선생님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뻐요.”
“두 번째? 선생님이 두 번째면 그럼 첫 번째는 누구야?”
“현희요. 현희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민우 녀석 눈빛이 묘했다. 얼핏 들으면 본인이 현희에게 고백하는 투였는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 보였다.
“너 현희 좋아하는구나?”
“네!”
“하하하!”
성진이를 콕 짚어 물어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민우의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는 성진이. 그 성진이를 바라보는 백수현 선생님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형님,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이게 진짜 긴팔트롤 골……! 읍!”
“달수야, 말은 나중에 하고 팍팍 먹어. 그리고 언제 애들 다 데리고 한 번 와. 족발이랑 보쌈도 넉넉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까.”
급하게 달수 입에 주먹만 한 고기를 욱여넣어 주었다. 굳이 재료를 다 밝힐 필요는 없어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긴팔트롤 골수라는 게 먹음직한 식자재로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형님, 그런데 맛 하나는 진짜 둘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리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래도 달수는 금세 긴팔트롤 골수에 관한 선입견을 떨쳐냈다. 코뿔멧돼지 김치찜이 제법 맛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달수파 길드원들에게도 날을 잡아 따로 음식을 맛보여줄 참이었다.
“어차피 돈 내고 먹는 건데 뭐.”
“예? 공짜가 아니고요?”
물론 진혁이 어머니나 현희, 그리고 귀한 손님이신 백수현 선생님과는 달리 돈을 내고 먹어야겠지만.
“너는 돈 잘 벌잖아. 너보다 더 부자인 사람이 여기 누가 있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데리고 와라. 그냥 매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여기서 회식을 해. 서운하게 사양하지 말고.”
“끼응.”
백구가 때맞춰 달수에게 귀여운 눈빛을 날려주었다. 오지 않으면 찾아가겠다는 투로 들렸으려나.
“그거 봐. 백구도 그러라잖아.”
“헉! 금…… 금요일 몇 시가 괜찮겠습니까, 형님? 그럴 게 아니라 회식을 일주일에 세 번씩 하는 것도 나쁘지 않…….”
그렇게 달수파 회식 날짜가 정해졌다. 여느 회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주 합리적인 빈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