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삐용삐용.
그런데 잠시 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찰차가 나타났다. 골목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슈퍼 박 씨 아저씨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굳이 신고하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죠?”
“살려 주세요!”
“이 새끼 각성자야! 내가 분명히 들었어! 막 내 머릿속에다가 대고 뭐라고 떠들어댔다고! 당장 잡아가! 관리국이든 어디든 전화해서 어서 잡아가라고!”
두 사람은 경찰관이 다가오자 이내 태도를 바꿨다. 세상 억울한 표정이었다. 흑사파니, 뭐니 으스대더니 피해자인 척은.
“각성자이십니까? 신분증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각성자라는 말에 경찰관의 표정이 굳었다.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이거 귀찮아지겠는데.’
당연히 신분증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필 성진이가 마련해 준 전화기도 두고 온 참이었다. 전화번호를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주머니 속에서 명함 하나가 손에 잡혔다.
‘마침 잘 됐네. 경찰관까지 온 마당에 내가 직접 처리하기는 그렇고 얘한테 정리하라고 하면 되겠다.’
이런 성가신 일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인물이 있었다. 저런 양아치들을 상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었다.
***
“이 새끼 각성자야! 내가 분명히 들었어! 막 내 머릿속에다가 대고 뭐라고 떠들어댔다고! 당장 잡아가! 관리국이든 어디든 전화해서 어서 잡아가라고!”
최종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흑사파 소속 각성자인 척 행세하며 재미를 보려고 했는데 하필 상대가 마력을 쓸 줄 아는 각성자였다. 하마터면 된통 당할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경찰이 와 준 것이었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 가지고. 식인계 귀환자가 어디 그리 흔한 줄 알아? 기껏해야 F 등급 각성자일 테지.’
마력을 이용해 얕은 속임수를 쓰는 F 등급 각성자일 것이 분명했다.
“각성자면 내가 쫄 줄 알았냐!”
각성자가 일반인에게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범죄였다. 최종구는 자신이 피해자인 듯 소리를 질러댔다. 조금 전까지 턱을 덜덜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화 한 통화만 합시다.”
그때 오히려 사기꾼 녀석이 경찰관에게서 전화기를 빌리더니 번호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달수냐?”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의외의 이름이 언급됐다.
‘달수? 팽달수? 이 새끼 봐라. 이게 또 누구를 속이려고. 달수가 네 친구냐?’
최종구는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흑사파라고 거짓말을 하자 딴에는 머리를 굴려 역으로 달수파 행세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긴. 마봉춘, 팽달수 같은 이름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어디서 주워들었을 테지.’
굴러들어온 뜨내기가 분명했다. 달수파 길드장 팽달수는 무려 D 등급 각성자. F 등급 풋내기 따위가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아니었다.
“누구기는. 나야. 벌써 목소리도 잊었어?”
어설픈 것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이 구로 바닥에서 감히 팽달수에게 저리 반말을 할 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바쁜 거 아니지? 잠깐 이리 와봐. 여기가 어디냐면…….”
진짜 통화라도 하는 척 애쓰는 모습이라니. 최종구는 막 각성자 행세를 시작했던 초창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저 사기꾼 각성자 새끼 체포 안 해?”
통화를 엿듣던 최종구가 목소리를 높였다.
‘강아지는 물 건너갔고 이놈한테나 두둑하게 뜯어내자.’
최종구의 한쪽 입꼬리가 삐쭉 위로 솟구쳤다. 각성자가 일반인을 협박하고 위협한 것을 물고 늘어지면 합의금을 적지 않게 받아낼 수 있을 터였다.
“헉헉. 죄송합니다, 형님. 조금 늦었습니다.”
겨우 일이 분이나 지났을까. 웬 대머리 아저씨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전화한 지가 언젠데 이제 와?”
“신규 게이트 때문에 처리할 것들이 좀 있어서…….”
“길어.”
“예?”
“변명이 길다고.”
“죄…… 죄송합니다, 형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진짜 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이놈이 통화 속 그 ‘달수’라는 놈일 터. 인상이 보통은 넘어 보였지만, 진짜 팽달수라면 저리 고분고분할 리가 없었다.
‘휴! 나는 또 패거리라도 부르는 줄 알았네.’
혹시 패거리가 떼로 몰려올까 봐 내심 긴장하고 있던 최종구는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푸하하하! 겨우 부른 게 이 문어 대가리야?”
최종구는 일부러 더 크게 웃어주었다. 진짜 팽달수처럼 대머리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천하의 팽달수가 고작 이런 비리비리한 놈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굽신거리는 컨셉은 너무 엉성했다.
“문…… 문어 대가리? 설마 지금 나보고 문어 대가리라고 한 거냐?”
“그래, 이 문어 대가리야. 설마 네가 진짜 ‘오류동 혈귀’ 팽달수라고 우기려는 건 아니지? 사기를 치려면 사전 조사라는 것도 하고 그래야지. 팽달수가 이 구로 바닥에서 누구한테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겠냐?”
역시 싸움은 기선제압이 우선이었다. 주먹이고 말이고 먼저 선공을 날려야 했다. 최종구는 일부러 더 상대방을 무시했다.
“형님, 요 깜찍한 놈은 제가 알아서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푸하하하! 이 새끼들, 완전 웃겨. 겨우 둘이서 형님, 동생은 무슨. 너희들이 무슨 조직이라도 되냐? 그래도 디테일하게 도축용 정육칼까지 준비했네? 사이즈는 또 그게 뭐야? 어디 문방구에서 샀나 보지?”
사기꾼 선배로서 따끔한 조언을 해주려던 최종구는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문어 대가리가 꺼내든 도축용 정육칼이 꽤 앙증맞았기 때문이었다.
“너 지금 크게 실수하는 거야.”
“실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왜? 저 골목에서 ‘늦었습니다, 형님!’ 하면서 네놈들 똘마니 수십 명이 나타나 인사라도 할 거 같냐?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또 사기를 치려고 들어!”
최종구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쿠궁쿠궁.
한참을 웃고 있던 그때 지축이 흔들렸다. 몬스터라도 출현한 것일까.
“늦었습니다, 형님!”
“헉!”
별안간 최종구가 가리켰던 바로 그 골목에서 수십 명의 덩치들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최종구가 예측했던 그 모습 그대로 허리를 90도로 꺾어 극도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렇게 비웃어준 사기꾼 녀석과 문어 대가리에게.
***
‘하필 혼자 순찰 돌 때 이게 뭔 일이야!’
가리봉 파출소 박동환 순경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혼자서 대충 둘러보고 오라며 숙직실로 낮잠 자러 들어간 김 경사가 이리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진짜 팽달수 길드장님이십니까? 이분은 길드장님 형님이시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요 깜찍한 놈들을 어떻게 하지? 아니다, 잠깐 기다려 봐.”
그냥 주민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 정도로 알고 왔는데 느닷없이 거물이 등장했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도축용 정육칼로 모조리 숨통을 끊어 놓는다는 바로 그 ‘오류동 혈귀’ 팽달수였다.
“장 서장, 글쎄 이것들이 방금 나보고 감히 문어 대가리라고 했다니까? 이거는 배 때기를 칼로 쑤시는 것보다 더한 거라는 거 장 서장도 잘 알잖아? 이거 분명 병원에 누워 있는 봉춘이 새끼가 시킨 거라고. 지금 내가 흑사파 싹 다 밀어 버려도 이건 정당방위라는 말이지. 안 그래?”
분명히 팽달수였다.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왔을 때 어이없이 미용실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이, 짭새! 장 서장이 잠깐 바꾸라는데?”
“아, 예?”
누군가와 통화하던 팽달수가 박 순경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엉겁결에 수화기에 귀를 가져가는데.
[ 야! 너, 뭐 하는 새끼야! ]
수화기 너머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장님? 정말 서장님이십니까?”
[ 너 뭐냐고! 너 지금 나 경무관 진급 물 먹이려는 거지? ]
“예! 가리봉 파출소 순경 박동환입니다! 저 그게…….”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갑자기 팽달수가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경찰서장이 고함을 질러댔다.
[ 네가 무슨 관리국 특임 경찰인 줄 알아! 순찰이나 잘 돌 것이지 왜 서장인 나도 어찌 못하는 팽달수 혈압을 올리고 있어! ]
“서장님, 그게 아니라 상대방 말로는 팽달수 길드장님 형님이시라는 분이 가게 앞에 쌓아둔 종이 상자하고 매장 내에 전시해 두었던 물건 몇 가지를 훔쳤다고 그래서요. 각성자인 모양인데 일반인들한테 막 마력도 사용하고…….”
[ 이런 덜떨어진 놈이 도대체 어떻게 경찰이 된 거야! 팽달수가 형님으로 모실 정도 사람이면 최소 C 등급 이상 각성자일 텐데 게이트 들어가서 5분만 돌아다녀도 너나 나 몇 년 치 연봉을 버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동네 구멍가게 물건이나 훔쳤다는 게 말이 되냐! ]
“그래도 사실관계를 확인은 해 봐야…….”
[ 병원으로 몰려가겠다는 걸 겨우 말려놨는데 너 때문에 눈깔 돌아가서 흑사파 애들 젓갈 담가 버리면 네가 다 책임질 거야! 당장 보내줘! ]
“그래도 규정상…….”
[ 야, 이 새끼야! 네가 서장이야! ]
박 순경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신분증 좀 확인하려던 것뿐인데 제대로 서장 눈 밖에 나 버렸다.
“신원 확인은 충분히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달수, 너만 믿고 간다?”
“살펴 가십시오, 형님.”
“이분들 오해는 잘 풀어드려. 아까 일러준 대로 차분하게 신사적으로, 알았지?”
“예,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부드러운 남자인 거.”
서장이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팽달수를 흥분시키지 말라고. 박 순경은 서둘러 팽달수의 형님이라는 사내를 돌려보냈다. 최대한 정중하게.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흑사파가 아니라…… 진짜 팽달수 길드장님하고 그 형님이신 줄도 모르고 그만…….”
“아들 녀석이 징징거리는 바람에 서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처럼 훌륭하신 분 형님께서 그러셨을 리가 없지요. 그럼요.”
“그럼 서로 오해도 풀리신 것 같으니까 다른 분들도 가보셔도 됩니다.”
다행히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사람들도 오해였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상황이 좋게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가기는 어디를 가?”
“예?”
“뭘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그래? 서로 오해는 확실히 풀어야 할 거 아니야? 차분하고 신사적으로다가. 아까 우리 형님 말씀하시는 거 못 들었어?”
형님이라는 사람이 자리를 뜨자마자 팽달수의 어조가 매우 차갑게 바뀌었다. 분명 부드러운 남자라고 그래놓고선.
“저, 길드장님. 방금 피해자분들이 오해였던 것 같다고…….”
“어이, 흑사파! 아까 나보고 문어 대가리라며? 너 마봉춘이 보내서 온 거 맞지?”
박 순경의 저지 따위가 먹힐 리 없었다. 팽달수의 시선이 곧바로 흑사파 덩어리에게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여지없이 도축용 정육칼이 들려 있었다.
“길드장님? 아까 형님 말씀처럼 차분하게 신사적으로…….”
“이거보다 뭘 더 어떻게 차분하고 신사적으로 하라는 거야! 형님 말씀 없었으면 벌써 이 새끼 혓바닥부터 도려냈을 거라고!”
박 순경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다 해결된 것 같았던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흑…… 흑사파라니요? 저는 최종구라고 그냥 백수입니다. 확인해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너 아까 분명 흑사파라고 했잖아? 그 팔뚝에 그거 뱀 문신 아니야? 흑사파 맞는 것 같은데?”
서둘러 최종구의 팔뚝을 훑는 박 순경. 그곳에 분명 뱀 비스름한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그냥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그려 넣은 겁니다. 보세요. 퉤! 이렇게 침 발라서 문지르면 지워지는 겁니다.”
팽달수의 시선이 자신의 팔뚝에 머물자 최종구가 다급하게 뱀 문신을 지우기 시작했다. 인제 보니 도롱뇽인지 지렁이인지 아무튼 뱀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왜소해 보이는 그냥 낙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