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10화 (11/204)

<제10화>

“이봐요, 어르신한테 말씀이 너무 심하시잖아요!”

“당신은 뭔데 나서? 당신이 이 노인네 아들이라도 돼?”

“아들은 아니지만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이분이 도둑질했다는 증거 있어요?”

“지금 내 집 앞에서 종이 박스 훔치다가 딱 걸렸는데 뭔 증거가 더 필요해?”

먼저 달려 나간 것은 성진이었다. 그간 챙겨드리지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성진이는 이내 얼굴이 시뻘게진 채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왈왈!”

백구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너무 마왕다운 방법이었다. 한번 마왕의 모습을 드러내면 돌이킬 수가 없을 터였다. 잔뜩 기대하고 있을 백구에게는 미안할 따름이었다.

“저쪽에서 다 지켜봤습니다. 억지 부리지 마세요. 그냥 집 앞에 있던 폐지를 주워 가시려던 거잖아요.”

그때 길을 지나가던 한 아가씨도 성진이를 거들고 나섰다. 전혀 상관없는, 그야말로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아가씨는 발악하듯 소리 지르는 부부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아하, 이것들이 어디서 머릿수로 밀어붙이려고. 여보, 종구 나오라고 해. 너희들 오늘 아주 다 죽었어. 이때까지 피해 본 거 다 배상해. 그냥 거지한테 적선했다고 치고 조용히 강아지 한 마리로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 이것들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종구야! 최종구!”

동네 구멍가게에서 뭘 도둑맞았는지는 몰라도 백구를 빼앗기고도 고마워해야 할 만큼 대단한 물건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부부는 곧이어 누군가를 불러냈다.

“너희들 뭐야?”

덩치가 제법인 녀석이 나타났다. 생긴 것도 험상궂은 것이 보통 인상이 아니었다. 험악한 생김새로 기를 죽여 보려는 속셈이었다.

“얘가 누군 줄 알아? 너희들 흑사파 알지? 얘가 거기 길드원이야. 너희들 오늘 다 죽었어.”

흑사파라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촌놈’ 소리에 열등감이 폭발했던 그 녀석이 두목이라고 했던가.

‘양아치들 이름 팔아서 먹고사는 놈인가 보네. 그깟 양아치 놈이 뭐 대단한 뒷배라고.’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대단하신 뒷배는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제 두목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던 그 현장에 없었다는 뜻. 흑사파의 일원이라는 말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것들이 그래도 흑사파 이름은 들어 봤나 보네? 이제 어쩔 거야? 순순히 그 강아지를 놓고 가든가, 아니면…….”

“아니면 어쩔 건데요?”

“이거 완전 미친년이네. 나 흑사파라니까! 구로 최강 길드 흑사파!”

“흑사파가 뭐요? 그 길드는 다 당신 같은 깡패들만 모아놨어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좋은 일 많이 하는 다른 길드들까지 욕먹는 거잖아요!”

겉모습은 참 얌전하고 수더분해 보이는 아가씨가 어쩜 저리 말을 시원하게 쏘아붙일까. 성진이도 속이 다 시원한지 아가씨를 보며 웃어 보였다.

“젊은이, 내가 이렇게 빌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되겠수? 그 강아지는 내 것도 아닌데 그걸 달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진혁이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이 자신 탓인 것처럼 미안해하셨다. 그러나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노인네가 그 더러운 손으로 어디를 만져!”

소매를 붙잡고 사정을 하는 진혁이 어머니를 덩치 녀석이 매몰차게 뿌리쳤다.

‘이것들이……!’

순간 나도 모르게 마력이 치솟으려고 했지만,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아이쿠!”

“할머니, 괜찮으세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진혁이 어머니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화들짝 놀란 아가씨가 서둘러 진혁이 어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화가 난 성진이는 당장 덩치 녀석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어머니, 저 유진이에요. 진혁이 친구 유진이요. 기억하시겠어요?”

아가씨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나신 진혁이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너무 늦은 인사였다.

“유…… 유진이? 네가 정말 유진이냐?”

진혁이 어머니는 울기 시작하셨다.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자식 같은 내 앞에서 도둑으로 몰려 봉변을 당하는 것도 속상하셨을 터였다.

“성진아,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어머니 모시고 집에 가 있어.”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였다. 성진이도 그렇고 저 아가씨도 그렇고 이런 부류의 놈들을 다루는 방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형…….”

“걱정하지 마. 금방 해결할 테니까.”

성진이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흑사파라는 이름에 주눅이 든 것이 분명했다.

“왈왈!”

살랑거리는 백구의 꼬리가 녀석의 끝 모를 허기를 대변했다. 이번에는 제발 간식거리를 던져달라는 눈빛이었다. 본능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내 적의를 느낀 것일 터였다.

‘밥 먹을 때에는 워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는 녀석이라 기운 조절을 못 할 거야.’

하는 짓거리로 봐서는 백구에게 한 번에 삼키지 말고 뼈 마디마디를 아주 천천히 잘근잘근 씹어 먹으라며 던져주고 싶었다.

“먹는 거 아니라니까, 백구야. 너도 민우랑 같이 가.”

직접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백구를 인류의 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가기는 어디를 가겠다는 거야! 갈 거면 그 강아지는 두고 가. 이제 그 강아지는 우리 거라고!”

“진짜 두고 갈까? 후회할 텐데?”

덩치 녀석은 아예 백구가 자기들 것이라고 우겨대기까지 했다. 백구가 실실 웃어주니까 마냥 귀여운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만 아가씨도 이제 가보세요.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아니요, 저는 여기 꼭 있어야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것까지는 없는데…….”

이 정의감 넘치는 아가씨께서는 굳이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돕겠다고 나서준 은인까지 저 쓰레기들과 함께 처리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는 눈이 없어야 깔끔하게 정리를 할 텐데.

“오호라! 네년도 같은 패거리지?”

“말씀 가려서 하세요. 아이가 보고 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년이 누구보고 훈계질이야! 네년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아이 엄마의 억지가 끝을 몰랐다. 애먼 아가씨까지 도둑으로 몰았다. 아가씨는 계속되는 애 엄마의 욕설과 삿대질에도 꿋꿋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선…… 선생님.”

“……?”

“철승아, 선…… 생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드님 담임교사 백수현이라고 합니다. 거지라고 손가락질하신 이 아이들 담임이기도 하고요.”

반전이었다. 어쩐지 저 철없는 꼬마 녀석이 아까부터 용감한 아가씨 눈치를 슬슬 보는 것 같더라니. 백수현 선생님은 그새 민우와 현희를 양옆에 끼고 서 있었다. 상처 입었을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듯이.

“정말 담임선생님 맞아?”

“응, 엄마. 그런데 강아지 언제 줄 건데? 빨리 줘. 갖고 싶단 말이야. 빨리!”

아이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타고난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 제 자식 담임선생님을 앞에 두고 이년, 저년 소리를 질러댔으니 민망하기도 할 터였다.

“선생님, 민우 큰아빠 김유진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가 대화로 잘 해결할 테니…….”

“철승이 부모님하고 삼촌께서는 말로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시는데요?”

서둘러 피를 봤다면 무척 곤란했을 뻔했다. 이래저래 껄끄러운 방청객이 생겨 버렸다. 민우 담임선생님을 서둘러 떼어놓아야 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이런 도둑놈들을 싸고돌면 안……!”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끼리 모이는 법이었다. 그 천한 인성이 금세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아이 아빠는 제 아들 담임선생님을 앞에 두고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 입 닥치고 그냥 고개만 끄덕여. ]

조곤조곤 대화로 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것. 이런 쓰레기들은 귀가 막힌 것들이었다. 이성적인 대답을 바라고 말을 건넬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헉!”

아이 아빠는 갑자기 머릿속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대자 놀란 듯 보였다. 이 정도야 뭐 별것도 아니지.

[ 내가 이세계에서 귀환한 지 며칠 안 됐거든. 식인계 귀환자라고 들어봤나 모르겠네? 내가 짜증 나면 식욕이 막 당기는데 어떻게 할까? ]

달수가 그랬었다. 게이트 앞에서 내가 백구에게 먹는 것 운운할 때 식인계 귀환자인 줄 알았다고. 백구가 녀석들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아이 아빠를 바라보았다. 슬쩍 입맛을 다시면서.

꿀꺽.

아이 아빠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살만 뒤룩뒤룩 찐 덩치 녀석 하나 믿고 까불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일단 애들은 학교 보내고 오해는 말로 푸시죠. 그러실 거죠, 철승이 아버님?”

[ 뭐해? 끄덕이지 않고. ]

“예……? 예!”

얘는 됐고.

“철승이 삼촌하고도 대화로 잘 풀기로 했고요. 안 그래요?”

[ 너도 들었지? 내가 짜증이 나면 먹는 거로 푼다는 거. 저놈보다 큰 소리로 대답해야 할 거야. 지금 둘 중에 누구부터 뜯어먹을지 고민 중이거든. 나는 개인적으로 비계가 적당히 붙은 쪽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

“그…… 그럼요! 그…… 그렇습니다!”

아이 아빠와 이 덩치 녀석 딱 둘에게만 들려준 밀어가 꽤 들을 만했던 모양이었다. 덩치 녀석이 턱까지 덜덜거리며 다급하게 대답하는 걸 보면.

“정말 대화로 푸실 거죠?”

“사소한 오해니까 금방 해결될 겁니다, 선생님”

“그…… 그럼요, 예.”

일부러 친한 척 어깨동무까지 해 보였다. 백수현 선생님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학부모를 상대로 드잡이를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여보! 당신 미쳤어? 왜 저 도둑놈들을 그냥 보내? 강아지라도 뺏어야지?”

“아…… 아니……!”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종구, 너는 왜 가만히 있어?”

“누…… 누나 그게……!”

이제 겨우 혼자 남았다. 아이 엄마는 영문을 몰라 남편과 동생을 닦달했다.

“엄마, 내 강아지! 내 강아지 달라고!”

“네가 철승이구나? 아주 살이 포동포동하게 쪘네?”

“헉!”

그냥 그렇다는 거다. 하긴, 자고로 고기는 살이 연한 새끼가 더 맛있는 법이지. 철승이 아빠와 삼촌은 이내 사색이 되었다.

“철승이 아버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 나눴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철승이도 같이 데리고 들어갈까요? 철승이는 우선 학교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그래. 여보, 당신 빨리 철승이 데리고 학교 가. 얼른!”

“당신 갑자기 왜 그래, 진짜?”

“얼른 애 데리고 가라고! 제발 좀!”

그래도 전직 마왕 체면에 애까지 건드리기는 좀 그렇고 남자들끼리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서로 오해를 풀다 보면 좀 격해질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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