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리봉 마왕족발-7화 (8/204)

<제7화>

“큰아빠! 의사 선생님이 이제 백구랑 뛰어놀아도 된대요!”

“진짜?”

“맞지, 아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지?”

민우는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유진에게 안겨들었다. 자신이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자랑하고도 싶고 다시 또 확인받고도 싶었을 터였다.

“응. 너무 무리해서 뛰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하셨어.”

“진짜 잘됐다. 민우야, 축하해.”

“감사합니다, 큰아빠. 아빠, 골목에서 백구랑 공놀이해도 돼요?”

“위험하니까 멀리 가지 말고 가게 앞에서만 놀아야 해. 무리해서 뛰지 말고.”

“네! 가자, 백구야!”

“왈왈!”

민우는 아무리 신나게 놀아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덩달아 신이 난 백구도 민우와 밤을 새워가며 놀 기세였다.

“축하해, 성진아.”

“형이 돌아오니까 좋은 일만 생기네. 진짜 형이 우리 민우 고쳐준 거 아니야? 그런데 이것들은 왜 사 오라고 한 거야?”

“왜는? 요리하려고 사 오라고 한 거지. 마침 잘 됐네.”

성진은 정말 하루하루가 어제오늘만 같으면 좋을 것 같았다. 어제는 십 년 만에 형이 돌아오고, 오늘은 민우의 심장이 기적처럼 건강해졌다.

“요리? 형이?”

“옛날부터 요리 솜씨는 너보다 내가 더 괜찮았어.”

성진은 돌아오는 길에 양념 몇 가지를 사 오라는 유진의 전화를 받았다. 요리를 하려는 것이라고 짐작은 했던 터였다.

“어제 내가 해준 요리가 진짜 맛이 없었나 보네?”

성진도 사실 못내 아쉬웠다. 드워프토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돼지족발을 선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이제 추억 속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맛이 되어 버렸다.

“그래, 너무 맛없어서 또 먹기 무서워서 그런다. 그나저나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누가 오기로 했어?”

성진이 의아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드르르륵.

쿵.

드디어 가게 문이 열리고 비닐로 칭칭 감싼 무언가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리박혔다. 무게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헉헉! 형님, 아직 10초 남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대머리에 나이도 적지 않아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백구야, 먹을 거 왔다.”

“왈왈.”

유진은 낯선 사내를 본체만체했다. 오로지 내려놓은 짐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어휴, 깜짝이야!”

‘먹을 거’ 왔다는 소리에 사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백구가 반갑게 짖으며 다가서자 더욱 놀라는데…… 백구가 물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덩치는 커다란 분이 겁이 많네.’

성진은 저 귀엽고 깜찍한 백구가 물어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저리 호들갑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락부락 오크라고 해도 믿을 만한 사내의 덩치가 아쉬웠다.

“이분은 누구셔?”

“거래처 사장님.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작은형님. 저 팽달수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달수라고 불러 주십시오.”

성진은 너스레를 떨며 친한 척을 하는 팽달수가 싫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푸근함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힘이 진짜 좋으신가 보다.”

“제가 소녀 같이 가냘파 보여도 힘은 장사입니다, 작은형님.”

도대체 어디를 봐서 소녀 같다는 건지. 오크 중에서도 가냘픈 축에는 절대 들지 않을 덩치였다.

“그런데 거래처 사장님이라니? 이건 다 뭐고?”

“자세한 거는 이따가 말해줄게.”

유진은 대답을 미룬 채 비닐로 꽁꽁 싸여 있는 짐을 풀었다.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잠깐 땀이라도 식히고 가세요. 온몸이 완전 땀범벅이신데.”

성진은 괜스레 팽달수에게 말을 건넸다. 땀을 뒤집어쓴 모습이 안쓰러웠다. 머리가 벗어진 탓에 더 측은해 보였다.

“아닙니다, 작은형님. 제가 또 가볼 데가 있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형님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팽달수는 성진이 건네준 물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이 후다닥 가게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백구의 눈치를 흘깃 본 것이 전부였다.

‘백구 눈치는 왜 보는 거지? 아까도 그렇고 원래 개를 무서워하시나?’

“물이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지. 많이 바쁘신가 봐. 그런데 나이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시는데 왜 자꾸 형하고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게 다 장사 수완이지. 그리고 쟤 너보다 한참 어려.”

“와, 진짜 대단하시다! 그런데 나보다 어리다고? 에이, 누가 봐도 큰형님뻘인데 형은 무슨 그런 농담을 하고 그래.”

성진은 새삼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 아래 동생에게도 형님이라는 존칭을 아끼지 않는 저 넉살. 머리가 절로 숙어질 정도였다. 물론 당연히 유진의 말이 진담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

털 손질을 끝내고 커다란 찜통에 코뿔멧돼지 앞다리의 반의반, 또 그 반의반을 다시 토막 쳐서 넣었다. 원래 돼지 다리라면 통으로 넣었겠지만, 코뿔멧돼지 다리는 일반 돼지다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비계와 살코기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야 맛있지.”

다리 하나가 전봇대보다 굵다 보니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한참 핏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핏물은 어느 정도 빠진 것 같고. 이제 삶아 볼까?”

물을 충분히 부은 다음 양파, 청양고추, 마늘, 파 뿌리, 대파. 여기에 통후추와 된장, 간장, 설탕까지. 냄새를 잡아주고 밑간을 책임져 줄 각종 재료를 가미했다.

‘월계수 잎이나 계피, 팔각, 정향 등도 있으면 좋을 텐데…….’

뽀글뽀글.

없는 양념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당장 구할 수 있는 양념이라는 양념은 다 때려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냄새나는 개똥민들레를 누가 먹어봤겠어?’

핏물이 다 빠졌음에도 코뿔멧돼지 고기는 여전히 시커먼 색을 띠고 있었다. 독성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독성을 중화 시켜 줄 강력한 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이 개똥민들레였다.

‘하긴. 더한 것도 먹었었는데, 뭐. 훗!’

달수가 코뿔멧돼지와 함께 배달해 준 개똥민들레의 즙을 짜내며 상념에 잠겼다. 지난 십 년 동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스쳐 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너무나 배가 고팠고, 너무나 살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야 했으니까.’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백구도 개똥민들레만은 쉬이 먹으려 들지 않았었다. 원래 식용이었다면 이름에 이런 장난을 치지 않았을 테니까.

‘몬스터 고기도 처음에는 무턱대고 먹어댔다가 죽을 뻔했었는데. 개똥민들레가 몬스터 고기의 독성을 완벽하게 제거해 준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전에 똥냄새에 질식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정말 우연 중의 우연이었다. 마나로 개똥민들레 즙을 기화시켜 훈증하듯 그 연기를 쐐주면 감쪽같이 몬스터 고기 특유의 독성이 제거되었다.

“이제 건져서 식히기만 하면 되겠는데?”

상념에 빠져 요리를 하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 버렸다. 성진이와 민우는 냄새에 이끌려 주방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백구도 함께.

“이건……!”

육수가 적당하게 졸아붙었다. 이제 고기를 건져서 식혀야 할 때라는 뜻. 음식의 정체를 알아본 성진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형, 이거 족발이잖아?”

오늘 준비한 요리는 바로 족발. 어제의 아쉬움을 제대로 털어 버리고 싶었다.

“색깔은 제대로 나왔네.”

탱글탱글한 캐러멜색 족발이 식욕을 자극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쫄깃하고 쫀득거리는 족발을 오물오물 맛보는 기분이었다.

“족발을 먹는데 막국수가 빠지면 안 되지.”

새콤달콤한 막국수 양념의 핵심은 바로 식초와 사과. 사과가 워낙 비싸 넣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대신 게이트에서 챙겨 온 아르라우네 열매를 갈아 넣었다. 맛만큼은 사과 못지않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양념장을 하루 정도 냉장고에 숙성 시켜 두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족발이 식을 때까지 30분 만이라도 넣어두었다가 비비자.’

이제 메밀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헹군 후에 갖은 야채와 함께 비벼주면 끝.

“자! 이제 먹어볼까?”

“왈왈!”

백구는 이미 유진의 손맛이 밴 음식의 맛을 잘 알고 있기에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잘 먹겠습니다, 큰아빠.”

일단 한 입 물어뜯고 보는 민우. 올망졸망한 입을 바쁘게 놀리며 먹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이건 드워프토끼 고기 같지 않은데? 붉은목쥐도 아닌 것 같고.”

“일단 맛이 있나 없나 먹어 봐.”

백구에게도 큼직한 족발 한 덩이를 던져주었다. 원래 몸 크기였다면 겨우 이만큼이냐며 버럭 화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민우야, 큰아빠 솜씨 어때? 먹을 만해?”

“왕정 마시써요!”

민우는 벌써 큰아빠가 만들어준 족발 맛에 푹 빠져 버렸다. 다람쥐처럼 양 볼이 볼록했다. 잘 먹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많이 먹고 이제 아프지 마. 큰아빠랑 약속!”

“야쏙!”

야들야들한 족발의 빛깔이 식욕을 자극했다. 냄새만으로도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똥민들레가 완벽하게 코뿔멧돼지 고기의 독성을 잡아준 덕분이었다. 오히려 돼지고기보다 더 맛있으면 맛있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형! 이거 진짜 돼지고기잖아? 이걸 어떻게 구했어?”

다행히 나만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성진이는 코뿔멧돼지 고기를 진짜 돼지고기로 착각했다.

“어때? 먹을 만하지?”

“식감이 엄청나게 쫀득거리는 게 방금 잡은 생고기라고 해도 믿겠는데?”

생고기 ‘같은’ 게 아니고 진짜 갓 도축한 생고기다. 게이트 안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자란 놈이라 그런지 육질도 젤리처럼 탱탱하다. 당연히 쫀득거릴 수밖에.

“이 정도면 장사해도 되겠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더 미룰 이유가 없다. 코뿔 멧돼지는 게이트 안에 넘쳐난다. 개똥민들레는 캐가라고 해도 안 캐가는 것이고. 오히려 각종 양념들을 구하는 것이 더 걱정이라면 모를까.

“장사? 식당을 다시 열자는 거야?”

“맛있다며? 그럼 된 거 아니야?”

“하지만 돼지고기를 어떻게 구하려고?”

“이거 돼지고기 아닌데?”

“돼지고기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코뿔멧돼지 고기.”

“이게 몬스터 고기란 말이야? 먹어도 되는 거야? 독성은 어떻게 하고?”

코뿔멧돼지 고기는 오늘의 조연. 주연은 따로 있었다.

“그거야 다 비법이 있지. 바로 이거.”

“이게 뭐야?”

“냄새 한 번 맡아 봐.”

“이게 뭐기에……! 윽! 이거 냄새가 좀…….”

“이세계의 식물인 개똥민들레라는 풀이야. 게이트 안에서도 자라니까 구하기는 어렵지 않아.”

성진이가 개똥민들레를 알 리 없었다. 지구에서는 자라지 않는 풀이니까. 게이트를 출입하는 각성자들이나 그 이름을 알까.

‘이름이 괜히 개똥민들레가 아니지.’

그 맛을 본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이름이 이렇게 붙은 이유를 냄새가 증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 독성을 제거한 거야?”

“응.”

“대박!”

충분히 대박이라고 부를 만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을 엄청난 양의 몬스터 고기들을 먹거리로 바꿔 줄 보물이니까.

“어때, 사장님? 이 정도면 주방 맡길 수 있겠어?”

대답은 들어 보나마나였다. 성진이의 눈동자는 이미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가리봉 왕족발’의 부활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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