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자, 식사하세요.”
테이블 다리가 부서질 지경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놈의 음식을 이리도 많이 차린 것인지.
“냄새 죽이는데?”
“내가 미역국은 진짜 예술로 끓인다니까. 여기 그렇게 드시고 싶어 하시던 족발도 대령했습니다.”
“왈왈!”
고기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백구였다. 어느새 민우 품에 안겨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미역국까지?”
“지난 십 년 치 생일상이니까 많이 먹어. 소주도 한 잔 받으시고.”
방금 압력밥솥에서 퍼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쌀밥.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에 간장 양념 특유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족발까지.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들이었다.
“백구는 밑에서 먹을까?”
“키응.”
백구 밥은 테이블 밑에 따로 차려졌다. 거기도 잔칫상이었다. 제 밥그릇 앞으로 끌려가면서 백구는 아쉬운 소리를 냈다. 훨씬 풍성한 테이블 위 음식들을 노렸던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식구가 다 모여서 밥 먹으니까 너무 좋다, 형.”
식구라…… 지난 십 년간 나는 실로 마왕이라고 불릴 만했다. 적들의 시체를 베개 삼고 그 핏물을 침대 삼아 잠들어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때 내 옆에는 백구뿐이었다.
“큰아빠, 울어요?”
“너무 좋아서 그래. 이렇게 민우랑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누구랑 이야기 나누면서 밥 먹은 게 오랜만이거든.”
“백구랑 얘기하면 되잖아요? 전에는 백구랑 안 친했어요?”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정말로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백구는 밥 먹을 때 말 거는 걸 싫어해서.”
“에이! 나빴다, 백구.”
“끼응.”
민우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애먼 백구만 꾸중을 들었다. 주인이 섭섭했을 거라 생각했는지 녀석은 그래도 미안한 척을 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형. 이렇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고.”
“아빠는 또 왜 울어? 내가 밥 먹을 때 얘기 많이 해 줄게.”
성진이는 백구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민우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다가 이내 내 젓가락을 챙겨주었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 말해놓고 울컥했는지 성진이의 눈가도 젖어 들었다.
“고마워, 아들. 아들도 많이 먹고 튼튼해져야 해?”
“응! 의사 선생님이 아빠 말 잘 듣고 밥 꼭꼭 잘 씹어 먹으면 뛰어다닐 수 있다고 그랬어.”
이제 뛰어다닌다고 해서 당장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성진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임시조치를 해 두었으니까.
‘이 큰아빠가 꼭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말 그대로 임시조치일 뿐이었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아리아스 대륙에 다녀오는 것뿐이었다.
“그럼 맛있게 먹어볼까? 일단 족발을 이렇게 쌈에 싸서 우리 민우 입속에 쏙!”
말하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짠해서 먼저 민우의 입에 족발 쌈을 넣어주었다. 앙증맞게 오물거리는 모습이 어쩜 이리도 깜찍할까.
“음.”
민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수저를 들었다. 은은한 미역국 냄새가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미역국을 다시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참기름이 동동 떠 있는 뽀얀 국물이 입안의 모든 미각 세포를 자극했다. 푸릇하게 물에 불린 미역과 함께 볶은 소고기가 진한 맛을 뿜어냈다.
‘정말 돌아왔구나.’
지구로 돌아온 첫날. 생일날은 아니었지만 그런 셈이었다. 이런 날 미역국만 한 성찬이 또 있을까. 주인공인 미역과 소고기에 풍미를 더해주는 다진 마늘과 간장의 조화. 아리아스 대륙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음? 맛있기는 한데…… 하긴, 아버지가 끓여주시던 것과 같을 수야 있나.’
그런데 기억 속 미역국 맛과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가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음식에 담긴 마음이 중요한 거지.’
아버지와 성진이의 연륜의 차이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를 먹일 생각에 정성 들여 요리한 그 마음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으쁘드 으~~~.”
곧이어 민우의 조막만 한 손이 내 입으로 향했다. 양 볼 가득한 족발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지만 제 손으로 싼 족발 쌈을 내게 먹여주려는 모양이었다.
우걱우걱.
쫄깃한 돼지 앞다릿살이 향긋한 채소,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쌈장과 어우러져 어김없이 기적을 만들어 낼 터였다. 절대 실패할 일이 없는 조합…….
‘응? 내 입맛이 변했나?’
…… 이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뭔가가 뒷맛을 흐렸다.
‘하나 더 먹어볼까?’
와그작와그작.
이번에는 새우젓만 살짝 찍어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되도록 족발 본연의 식감을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식감도 덜하고 육향도 밋밋해. 질기기도 하고. 이 맛은 오히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었다. 입맛이 변하기에 충분했다. 그게 아니라면…….
“미역국도 그렇고 족발도 예전에 먹었던 맛은 안 날 거야. 드워프토끼 고기를 넣어서 만들었거든. 진짜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이제 구하기가 힘들어서. 미안해, 형.”
“네가 뭐가 미안해. 맛있기만 한데, 뭘.”
역시 예상대로 드워프토끼였다. 어쩐지 씹으면 씹을수록 익숙한 맛이 나더라니.
‘십 년 만에 돌아와서 음식 투정이나 한 셈이네. 한심하기는.’
힘들게 음식을 차려준 동생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다. 아쉬운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맛없다는 내색을 하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여기 사람들도 드워프토끼 고기를 먹는구나?”
“게이트가 출현한 이후 식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졌거든. 채소 같은 거야 실내에서 기르기도 하니까 제법 유통이 되는데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은 키우기가 어려워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 몬스터들이 워낙 좋아하는 것들이기도 하고. 반면에 드워프토끼나 붉은목쥐 같은 몬스터 고기야 게이트에 넘쳐나니까 싸게 사 먹을 수 있는 거지. 독성만 제거하면 이렇게 먹을 수 있거든. 입맛에 안 맞으면 다른 요리를 해줄까?”
“아니. 십 년 동안 매일같이 먹던 것들이라 오히려 더 맛있는데?”
드워프토끼나 붉은목쥐는 아리아스 대륙에도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이곳에서는 몬스터라고 부르는 마물들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녀석들이랄까.
‘훗! 명색이 마물들의 왕이라는 마왕이 맨날 마물들을 구워 먹었으니, 참. 진짜 마왕이었지, 뭐.’
이곳 사람들도 몬스터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아리아스 대륙에서는 그 누구도 마왕의 자손인 마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오직 나만 빼고.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먹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양념을 가미하니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결국 소문난 미식가가 되었다. 휘하에 거느린 마물들마저 서슴없이 뜯어 먹는 냉혈한 미식가, 마왕 유진.
“다른 몬스터 고기는 안 먹어? 예를 들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맛만 놓고 보자면 더 맛있는 몬스터들이 많았다. 그런데 하필 제일 맛없는 녀석들만 골라 먹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마력이 센 놈들일수록 맛있다고 하긴 하던데 독성도 더 심하거든. 그런 몬스터 고기는 독성을 제거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그냥 내다 버리더라고. 수지가 안 맞으니까.”
오히려 상위 몬스터 고기일수록 독성이 심해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고기를 다 버린다고? 독성 없애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힘들게 잡은 그 맛있는 것들을 버린다니. 독성을 없애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상급 몬스터 고기의 독성을 제거하려면 상위 각성자들의 마력이 필요한데 그 사람들한테는 힘들여서 몬스터 고기 독성 제거하는 것보다 마정석을 찾아다니는 게 더 큰돈이 되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은 다행이지. 흔하고 마정석도 없는 하위 몬스터들마저 독성이 강했다면 아마 이렇게 가끔이라도 사 먹을 엄두를 못 냈을 거야.”
내가 너무 마왕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한테야 별거 아닌 일일지 몰라도 다른 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만약 독성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가게 문 다시 열어야지.”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가족들이 보고 싶어 돌아왔다. 마왕으로 불리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했고. 한적한 곳에서 평범한 일이나 하면서. 가령…….
‘족발집도 나쁘지 않지.’
일단 주재료인 고깃값은 들지 않을 테니 망할 걱정은 없어 보였다.
***
[ 안녕하십니까? KBC 박대기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어제 신규 게이트가 발생한 가리봉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한때 국가 몬스터 관리국에서 S 등급 이상의 초강력 마력파 특보를 발령하면서 전 국민이 공포에 떨어야 했는데요. 다행히 곧바로 측정기 오작동에 의한 오보인 것으로 밝혀져…… (중략)…….]
다음 날 아침, 동네 전체가 야단법석이었다. 밟히는 게 기자들이었다. 이게 다 어제 갑자기 형성된 게이트 때문이었다.
“하여간 저놈의 예보는 제대로 맞는 날이 없다니까. 태풍 온다고 그러면 쪄 죽고, 가뭄이다 그러면 말라 죽을 지경이니. 저게 무슨 기상청이여, 돌팔이 점쟁이지.”
취재 현장을 구경하던 슈퍼 주인 박 씨는 뜬금없이 기상청 욕을 해댔다.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하마터면 생방송 중인 기자가 방송사고를 낼 뻔했다.
“어르신도 참. 저건 기상청 얘기가 아니라 관리국 얘기잖아요. 국가 몬스터 관리국 아시죠?”
“일기 예보 얘기가 아니야? 분명 일기예보 때 본 기자가 맞는데.”
박 씨는 평소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꼈다. 오늘은 다급하게 사람 구경을 나오느라 보청기 끼는 것을 깜박한 모양이었다. 교통정리 차 나온 가리봉 파출소 김 경사가 친절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진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 경사님? 분명 지구대 건물까지 흔들렸다고요.”
김 경사와 함께 출동한 박 순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분명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박 순경도 알잖아. 우리 지구대 지은 지 삼십 년도 넘은 거.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만 지나가도 흔들리는 거 몰라?”
“건물 때문이 아니라니까요. 측정기가 터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놈의 예산이 문제지. 예산 없다고 일선 파출소까지 허리를 쥐어짜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싸구려 중국산 측정기를 쓰는 거잖아. 그 덕에 우리까지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고.”
하긴 그럴 리가 없었다. 정말 S 등급 마력파를 발생시키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몬스터가 게이트를 통과했다면 서울은 벌써 쑥대밭이 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관리국은요? 거기도 중국산 쓰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대한민국 돈이라는 돈은 트리스타 같은 거대 길드들이 다 쓸어가니까 거기라고 별수 있겠어? 걔들도 우리 같은 공무원이야. 똑같지, 뭐. S 등급은 무슨. 겨우 D등급이란다, D등급.”
“D등급이요? 그렇게 낮을 리가 없는데…….”
박 순경은 자신의 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의혹이 풀리지 않은 눈초리로 기자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웬일로 봉춘이네 애들이 안 보이네. 해가 서쪽에서 떴나? 이대로 제 텃밭인 가리봉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포기한다고? 그럴 놈들이 아닌데…….”
저 멀리 팽달수가 수하들과 쑥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신규 게이트 관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제 게이트가 처음 발생했을 때 이곳에서 큰 소동이 있었다던데요?”
“소동? 무슨 소동?”
“쌀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어제 흑사파 애들이 모조리 여기서 구급차에 실려 갔답니다.”
“전부 다? 달수파 애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게이트가 발생할 때마다 으레 두 길드가 전면전을 벌이곤 했다. 세력이 비슷하다 보니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다른 변수가 있었다면 모를까.
“어렴풋이 보셨다는데 단 한 명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한 명이라니? 그럼 팽달수 혼자서 흑사파 애들을 전부 다 때려 눕혔다고? 랭크업이라도 한 거 아니야? 이거 빅뉴스인데!”
김 경사의 시선이 다시 저 멀리 팽달수에게로 향했다. 어쩐지 그의 표정부터가 여느 때와는 달라 보였다. 결국 살얼음판 같던 균형이 깨져 버렸다. 김 경사의 생각과 달리 그 균형을 깨뜨린 장본인은 따로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