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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마왕족발-2화 (3/204)

<제2화>

“백구, 그만! 아무리 배고파도 아무거나 막 먹는 거 아니야.”

“끼응.”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막아 세우지 않았더라면 사내의 허벅지에 바게스트의 모습으로 돌아간 백구의 송곳니가 꽂혀 있을 터였다. 백구는 아쉬운 듯 사내의 허벅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놈은 또 뭐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아…… 아무거나?”

졸지에 ‘아무거나’가 되어 버린 촌놈이 혈압이 오르는 듯 제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아무거나’라는 말이 무척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니기는 했다.

“음하하하! ‘아무거나’래. 얘들아, 앞으로 봉춘이한테 인사 제대로 올려라. ‘안녕하십니까, 아무거나 형님?’ 이렇게. 알았지?”

“알겠습니다, 형님.”

지린내 풀풀 풍기는 대머리가 ‘아무거나’ 촌놈을 더욱 자극했다. 촌놈은 창피함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딱 보니까 저 대머리 새끼하고 같은 패거리인가 본데 오늘 이 마봉춘이 왜 ‘가리봉 살모사’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촌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일단, 이 개새끼 모가지부터 잘라 버리…….”

그러고는 백구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했다. 겨우 살려줬더니 다시 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실거렸다. 백구는 내게 동의를 구하듯 귀여운 눈짓을 보냈다.

“분명 그만하라고 말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잽싸게 다가가 촌놈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가는 백구가 원래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팽달수는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촌티’ 소리에 열등감이 폭발한 마봉춘의 모습이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별안간 나타난 웬 사내가 ‘아무거나’ 취급하며 더욱 마봉춘을 긁어댔다.

“이…… 이거 놓지 못해?”

그때 전혀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마봉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곧 팽달수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놈 뭐야? 마봉춘이 전력을 다해 내려찍은 도끼를 가볍게 낚아챘어!’

마봉춘의 도끼를 가볍게 한 손으로 막아냈다는 것은 곧 사내가 그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적어도 D 등급 이상이라는 말인데……!’

각성자가 분명했다. 그것도 마봉춘을 능가하는 마력을 가진 각성자가 틀림없었다.

“나랑 백구를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 놓아줄게.”

“오호라! 네놈도 내 게이트가 탐나서 기어들어 온 놈이구나. 내 손도끼가 오늘 아주 피 맛을 제…… 제대로……! 이…… 이거 놓…… 놓으라니까!”

마봉춘은 여전히 사내의 손에서 손도끼를 빼내지 못해 낑낑거리고 있었다. 미간을 좁힌 채 사내에게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댔다.

‘마봉춘과 나를 노리고 온 건가? 구로를 차지하려는 거야!’

팽달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곳은 서울 변두리 구로구 가리봉동. D 등급 이상의 각성자가 이곳에 올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구로의 주인이 되려는 것일 터였다.

“먼저 약속부터 해. 그럼 놓아줄 테니까.”

“알…… 알았어, 알았다고. 약속하면 될 거 아니야.”

“그 약속 꼭 지켜야 할 거야.”

사내는 낚아챘던 마봉춘의 손도끼를 순순히 놓아주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우위를 확신한다는 자신감이었다.

‘마봉춘이 먼저 덤벼들기를 기다리는 건가?’

팽달수는 마봉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제 수하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녀석이 신사적으로 나올 리가 없었다.

“어디서 운동 좀 했나 본데. 저 똥개 새끼도 그렇고 너 오늘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얘들아! 쳐!”

역시 마봉춘다웠다. 약속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마봉춘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흑사파 전체가 의문의 사내에게로 달려들었다.

‘마봉춘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각성 등급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용의주도한 자였다. 싸움을 피하는 척하더니 결국 마봉춘을 자극해 명분을 끌어냈다. 다음 목표는 자신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팽달수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사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번쩍!

“뭐야!”

그때 별안간 섬광이 눈앞을 가렸다. 팽달수는 물론 현장에 있던 모두가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게, 약속은 꼭 지키라니까.”

겨우 다시 눈을 뜬 팽달수. 의문의 사내는 귀찮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팽달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흑사파 전체를 모두 때려눕혔어!’

마봉춘과 함께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흑사파 전체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무려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발을 떼는 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겨우 눈을 감았다 뜰 정도의 찰나였는데 그새 마봉춘은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다른 녀석들도 비슷한 상태였다. 듣도 보도 못한 경지였다.

“왈왈!”

“생긴 건 비슷해도 오크 아니라니까. 잘 봐봐. 좀 닮기는 했어도 사람 맞잖아. 사람은 막 뜯어먹고 그러면 안 돼.”

“끼응.”

사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지친 기색도 없었다. 팽달수는 직감했다. 사내가 저 강아지에게 건네는 말들이 전혀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 똥개 새끼가 정말로 마력 측정기를 터뜨렸다는 거잖아? 그럼 S 등급 똥개새끼를 애완견처럼 데리고 다니는 저놈은 도대체 뭔데?’

팽달수는 터져 버린 마력 측정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S 등급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더군다나 그런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애완견처럼 부리는 각성자는 상상조차 해 본 적도 없었다.

“좀 참아. 곧 맛있는 것 먹게 해 줄게. 그나저나 제대로 돌아오기는 한 건가? 예전하고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길부터 물어봐야겠다. 누구 물어볼 만한 사람이…….”

사내는 자신이 때려눕힌 흑사파 놈들을 굽어보았다. 제대로 입을 열 수 있을 만큼 성한 녀석이 없었다. 자연스레 그 시선이 팽달수와 그의 수하들에게로 향하는데.

“어이, 거기!”

팽달수의 사타구니가 다시 한번 뜨끈해졌다. 저들의 대화 속 ‘맛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설마 나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팽달수뿐이었다. 수하들은 그 짧은 순간 모두 겁에 질려 달아나거나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수하들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했다.

“윽!”

팽달수는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신을 잃은 듯 픽 쓰러졌다. 기절하는 연기가 가히 일품이었다.

‘……?’

기절한 척 쓰러져 있자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 모양 이대로 개밥그릇으로 직행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젠장! 기절할 게 아니라 튀었어야 했나?’

온몸이 후들거렸다. 수하들처럼 줄행랑을 치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완벽하게 기절한 척하려 했지만…… 그새를 참지 못하고 실눈을 뜨고 말았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아까 그 앙증맞은 강아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강아지는 마치 먹음직스러운 뼈다귀를 간질이듯 팽달수의 뺨을 핥아댔다. 이 강아지가 마냥 귀엽기만 한 애완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팽달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살…… 살려 주십시오. 저는 고혈압에 지방간도 있어서 몸에도 안 좋고 진짜 맛없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다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요.”

눈물, 콧물이 절로 났다. 어느새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쪽팔리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살아야 했으니까.

***

“저기 간판 보이십니까?”

“고마워. 이렇게 직접 같이 와 줄 것까지는 없었는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제가 원해서 이렇게 직접 모시고 온 건데요. 이것도 다 인연 아니겠습니까, 형님?”

태어나서 이제까지 이렇게 착한 표정을 지어본 적 없던 팽달수였다. 게이트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많은 정보를 알아냈다. 다행히 사내는 구로를 노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귀인이 서쪽에서 나타날 것이라더니!’

팽달수는 올 초 오류동 처녀 보살에게서 산 팬티 부적의 영험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혹여 영험함이 달아날까 봐 구매 이후 단 한 번도 빨지 않고 입고 다닌 팬티였다.

‘귀환자가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거라는 말이었어!’

정말 족집게가 따로 없었다. 팽달수가 거느리고 있는 달수파의 본거지는 오류동. 새로 출현한 게이트는 오류동에서 정확하게 서쪽 방면이었다.

‘무려 S 등급 각성자야! 옆에만 붙어 있으면 떡고물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질 거라고!’

마력 측정기를 산산조각 내버린 S 등급 똥개새끼를 테이밍한 것을 보면 최소 S 등급일 터였다. 게이트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고 했으니 흔히 말하는 귀환자였다. 이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각성자들.

‘일단 집 주소는 알아뒀고.’

사내는 ‘가리봉 왕족발’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귀환자가 처음 올 곳은 뻔했다.

“그 형님 소리는 안 하면 안 될까? 내가 나이도 훨씬 어려 보이는데.”

“제가 머리가 벗어져서 그렇지 94년생 개띠입니다, 형님. 헤헤.”

오늘따라 유독 팽달수의 이마 위가 휑했다. 생김새는 58년 개띠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굽신거리는 그 표정이 간이고 쓸개고 모두 꺼내놓은 듯 보였다.

‘어리숙해 보이는데 형님 대접해주면서 잘 구슬려서 부려먹으면 구로가 아니라 전국구로 성장할 수도 있어. 음하하하!’

팽달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국구가 아니라 세계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전 세계 유일의 S 등급 각성자를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94년생? 어쩌다가…… 쯧쯧.”

사내의 시선이 팽달수의 시원한 머리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측은히 쳐다보는 바로 그런 표정이었다.

“남들보다 빠른 감이 없지는 않죠.”

팽달수는 꿋꿋했다. 자신의 치부를 건드린 사내에게 그는 어떠한 불편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 백구에 관한 이야기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제가 이 입 무겁기로는 대한민국에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애들도 제 이름을 걸고 확실하게 단속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지?”

“끼응.”

“물…… 물론입니다. 형님!”

실실 웃음을 흘리던 팽달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제 주인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낑낑거리는 S 등급 강아지의 눈빛 때문이었다. 마치 이름이 아니라 목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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