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끼이이익!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 오거리. 달리던 차들이 일제히 급정거를 했다. 한 사내가 겁도 없이 드넓은 오거리를 횡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이 새끼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가까스로 사고를 피한 운전자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리봉 옛 시장 골목을 향해 유유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저 미친놈이! 야! 내 말 안 들……! 헙!”
사내의 뻔뻔한 모습에 기가 차 당장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던 운전자들은 바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서 수십 명의 무리가 그를 뒤따르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확실해?”
“이미 애들을 보내 확인했습니다, 형님.”
왼쪽 눈가에 길게 내리그어진 칼자국이 예사롭지 않았다. 짝 찢어진 눈매는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살짝 걷어 올린 오른쪽 팔뚝 위에는 검은 뱀 대가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관리국에 신고는 했고?”
“벌써 연락해 두었습니다. 내일 아침 직원들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형님.”
사내의 정체는 바로 가리봉 흑사파 두목 마봉춘.
“이번에는 좀 영양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다 형성된 것이 아닌데도 크기가 확실히 F 등급은 아닌 것 같습니다. E 등급보다도 클 것 같고요.”
“그래?”
시뻘건 꽃무늬가 촌스럽게 피어 있는 셔츠에 배꼽 위까지 올려 입은 바지까지. 이런 눈에 띄는 패션 감각이 없었다면 오른쪽 팔뚝에서부터 어깨와 골반을 지나 왼쪽 허벅지까지 이어진 커다란 뱀 문신이 그대로 드러났을 터였다.
“이번에는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형님.”
“그래, 그래야지. 서둘러.”
마봉춘은 지금 한껏 흥분해 있었다. 그의 구역인 가리봉 옛 시장 골목에 신규 게이트가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수치가 얼마나 돼?”
“형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막 측정기를 켜서…….”
드디어 현장에 도착한 마봉춘. 표정에 기쁨이 그대로 묻어났다.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허공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게이트가 틀림없었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기대감 때문일까. 마봉춘이 마력 측정기를 들고 있는 자신의 수하를 닦달했다.
띠디디디디.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마력 측정기의 바늘을 따라 수하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띠디.
그리고 마침내 바늘이 한 곳에 멈췄다.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측정이 끝난 것이다. 마봉춘은 수하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삼백은 거뜬히 넘겠는데요? D 등급입니다, 형님.”
“D 등급이라고? 좋았어!”
마봉춘의 표정이 환해졌다.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수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원래 모든 게이트는 국가 몬스터 관리국의 관할. 그러나 관리국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게이트를 전부 통제할 여력이 없었다.
“하하하!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드디어 이 마봉춘 인생에도 볕이 드는구나!”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법이 바로 사설 길드에 게이트 관리를 위탁하는 것이었다.
“D 등급 게이트면 이제 마정석도 얻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이제 좀 게이트다운 게이트를 관리하게 됐어.”
몬스터를 해치우고 얻는 부산물들은 큰돈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마정석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길드 입장에서는 게이트 관리를 대신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달수파 애들이 가만히 둘까요? 분명 냄새 맡고 득달같이 달려들 텐데…….”
“딱 하루야, 하루! 내일 관리국 애들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알았어?”
“예, 형님!”
보통 게이트 관리는 처음 게이트를 발견한 길드의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 생겨나는 게이트를 두고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이권이 걸린 일이 다 그렇듯 지역 길드들끼리 칼부림이 나는 일도 허다했다.
“그럴 게 아니라 이참에 아예 팽달수, 그 삼류 양아치 새끼도 정리해 버려야겠어.”
“전면전입니까, 형님?”
“우리가 계속해서 그런 격 떨어지는 놈들하고 놀아줄 수는 없잖아?”
마봉춘은 허공에 일렁이고 있는 게이트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했다. 구로를 독차지할 다시없을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어이, 봉춘이!”
“형님! 달수파 놈들입니다!”
“저 지긋지긋한 새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달수파는 흑사파와 함께 구로를 양분하고 있는 길드. 구로에서는 아직 D 등급 이상의 게이트가 발생한 적이 없었다.
“이 지렁이 새끼, 하는 짓거리가 귀엽네. 나 몰래 이걸 혼자 꿀꺽하려고 하셨어?”
“내 것 가지고 내가 꿀꺽하든 꿀떡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냐?”
무려 D 등급 게이트였다. 달수파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언제라도 두 길드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게 왜 네 거냐? 이거 섭섭한데? 친구 사이에 좋은 거 있으면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어야지, 안 그래?”
“네놈이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가리봉까지 기어들어 온 것을 보면.”
가리봉은 흑사파의 근거지였다. 팽달수의 입장에서는 적진 한가운데 뛰어든 셈이었다.
“아! 어차피 가리봉도 곧 내 차지가 될 테니까 굳이 번거롭게 나눠 먹을 필요는 없겠네.”
“달수야, 형이 항상 그랬지? 과유불금이라고. 욕심이 과하면 다치는 거야.”
“과유불급이겠지, 이 무식한 새끼야.”
마봉춘이 팽달수를 성가신 듯 바라보았다. 흑사파가 먼저 발견한 게이트를 욕심내는 팽달수의 모습이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순간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야!’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엉덩이골까지 깊숙이 박혀 있던 손도끼를 꺼내 드는 마봉춘. 이제 전쟁이었다. 팽달수의 손에는 그 유명한 그의 애병 도축용 정육칼이 들려 있었다. 이 게이트를 차지하는 길드가 가리봉은 물론 구로 전체의 주인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띠띠띠띠!
일촉즉발의 상황. 요란한 경고음이 살얼음판 같은 정적을 깼다. 마봉춘의 수하가 들고 있던 마력 측정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건 왜 자꾸 ‘띠띠’거리냐?”
“형님, 이거 이상한데요? 마력 수치가 계속 올라갑니다!”
“지금 얼만데?”
“일만을 넘어갔습니다!”
“뭔 소리야? 무슨 놈의 마력 수치가 일만을 넘을 수가 있어? 헉! 진짜네!”
그때 마봉춘과 수하 사이에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마력 수치가 일만을 넘어갔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훗! 이것들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쪽 팔려서 저러는 거 아닐까요? 그래도 명색이 흑사파 길드장인데 그냥 꺼지기는 뭣하니까요.”
팽달수는 마봉춘과 그 수하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천하의 팽달수가 고작 이런 얕은 속임수에 넘어가리라 생각한 것이 마냥 가소로웠다.
“봉춘아, 마력 수치가 일만이면 S 등급 게이트라는 말인데 세상에 S 등급 게이트가 어디 있냐? 사기를 쳐도 정도껏 쳐야지.”
“저 표정 보십시오. 어디서 연기수업이라도 받았나 본데요, 형님. 당장 마력 측정기가 터지기라도 할 것처럼 뻥치면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칠 줄 알았나 봅니다.”
“푸하하하!”
S 등급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보고된 바가 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달수파 전체가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뜨리는데…….
퍽!
“헉!”
바로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흑사파와 달수파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마봉춘과 그 수하의 대화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마력 측정기가 진짜 터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필 지금 측정기는 왜 터지고, 지랄인데?’
‘그럼 진짜 S 등급 게이트인 거야?’
마봉춘도, 팽달수도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갔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S 등급은커녕 C 등급도 감당 못 할 그들이었다.
우우우웅.
“헉!”
“오우씨!”
곧이어 게이트가 엄청난 굉음을 뱉어내며 출렁거렸다.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의 현상이었다. 게이트 바로 앞에 서 있던 마봉춘과 팽달수는 깜짝 놀라 모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당장 튀어야 해!’
‘여기 있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미련을 둘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튀어야 할 때였다. 최대한 빨리.
출렁.
게이트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표면이 크게 출렁이더니 무언가를 토해냈다. 모두 겁에 질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수 없었다.
‘ㅈ됐다!’
팽달수의 사타구니가 축축하게 젖어왔다. 시큼한 지린내가 풀풀 풍기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 멍하니 게이트가 뱉어낸 마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엥?”
“응?”
오줌까지 지려가며 맞이한 S 등급 몬스터를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이 이상했다. 전혀, 정말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물의 모습 때문이었다.
***
“엥?”
“응?”
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 거창한 환영식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기를 원했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저 멀리 남산을 몽환적으로 뒤덮고 있는 희뿌연 황사. 사방에서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서울인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고향에 돌아온 기쁨도 잠시였다. 먼저 뛰어나간 백구가 백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 강아지?”
“이 개새끼가 S 등급 몬스터라고?”
아무래도 백구가 모습을 바꾸기 전 뿜어낸 마력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철철 넘치는 마력을 숨기려고 일부러 모습까지 바꾸게 한 것이었는데 모두 허사가 되어 버렸다.
백구에 정신이 팔려 내가 뒤이어 게이트를 통과한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백구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이라도 하듯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고민은 저들의 몫이 아니었다.
‘돌아오자마자 하필…… 이 사람들을 다 어쩌지?’
정말 조용히 살고 싶었다. 백구는 간식거리들 간을 보듯 꼬리를 흔들며 사람들 사이를 총총 뛰어다녔다.
“푸하하하!”
“음하하하!”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달수, 기저귀 좀 사줘야겠네. 요 쥐방울만 한 강아지한테 겁먹어서 오줌까지 싼 거야? 얘가 진짜 S 등급 몬스터겠냐? 푸하하하!”
“너도 가랑이 젖은 거 다 보여, 인마. 그리고 마력 측정기도 꼭 저처럼 촌티 나고 덜떨어진 싸구려 중국산만 들고 다녀요. 겨우 똥개 새끼 멍멍거리는 소리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그 마력 측정기는 도대체 어디서 산 거냐? 중고왕국? 당근슈퍼?”
백구는 순진한 표정으로 간식들 재롱을 즐기고 있었다. 한껏 기대하는 눈치였다.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간식은 다음에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백구를 향한 경계심을 푼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초…… 촌티? 내가 어디를 봐서 촌티가 난다는 거야! 이 강아지 패듯이 처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알았냐, 이 대머리 새끼야!”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려던 찰나. 촌스러운 꽃무늬 셔츠를 입은 사내가 절대 해서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말싸움에서 밀리자 애먼 백구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듯 발길질을 한 것이었다.
“그르르릉!”
조막만 한 백구가 털을 세우고 사내를 째려보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꽤 기묘하게 보일만한 표정이었다. 화가 난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백구는 사내의 두툼한 허벅지살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려댔다. 더 위험했다. 먹을 것에 한 번 꽂히면 눈이 돌아가는 녀석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