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55/60)

제6장

여러 방면으로 조사한 결과 안딜 영주가 국왕과 귀족들을 살린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났다.

게다가 자신들이 먹은 것이 마나가 있는 이들의 몸을 굳게 만들어 심하면 반신불수로 만드는 독으로 판명이 나자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죽은 테일러 백작이 사실은 가짜라는 것도 밝혀졌고 왕도의 한편에서는 계획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병사들을 잡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계획에 참여를 했다는 연판장마저 발견이 되자 이제 안딜 자작은 왕국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기도 전에 메소스 왕국은 다른 것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겨울 조금은 뜸하던 마커 왕국의 침략 전쟁이 다시 불붙으면서 이미 메소스 왕국 주변의 왕국들이 하나 둘씩 그들에게 복속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 겨우 이번 일을 해결하고 보니 코앞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마르뉴 왕국이 동맹을 제의해왔소.”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의 힘으로는 그저 다른 나라와 똑같이 될 뿐입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국왕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 국왕은 그런 귀족들을 돌아보다가 이채를 발했다.

에반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안딜 자작.”

“예. 전하.”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지 말해보게나.”

“저 같은 것이 의견을 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대도 이 회의의 구성원 중 하나요.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 말에 에반이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보시오.”

국왕은 그에게 빚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갚을 수 없는 큰 빚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빚을 제대로 보상해주지도 못했기에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저는 왜 여러 나라들이 그렇게 빨리 무너졌는지에 대해 의심을 해보았습니다.”

“왜 무너졌는가?”

“예. 적의 방법을 알아야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사한 결과는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무엇이 의외라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게나.”

“처음 마커 왕국이 전쟁을 시작할 때는 힘으로 하나 둘씩 나라들을 복속시켰습니다. 그 명백한 힘의 차이에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 스스로 고개를 조아린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커 왕국의 여론이 나빠지고 만약 복속이 된다면 본래 자신이 영지에 휘두르던 권력이 약해진다는 걸 알아차린 귀족들은 마커 왕국에 복속되기보다는 싸우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렇지. 그 후에는 전쟁이 지지부진해졌지.”

그래서 국왕 이하 다른 귀족들도 마커 왕국의 또다시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행보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힘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빠르게 나라를 흡수하니 급해진 것이다.

“현재 많은 정보가 차단되어 왜 이렇게 행보가 빨라졌는가를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짐작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슈렌츠 백작이 살짝 미간을 좁히더니 말했다.

“그렇소. 분석에 따르면 저희 왕국에 일어났던 일이 다른 곳에서도 연달아 일어났었습니다. 그 반란 세력들은 내전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나라의 왕과 귀족들을 억류하고 그 틈을 타 마커 왕국이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웅성웅성.

그 말에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왜 그 이야기를 지금 하시오?”

한 귀족이 질책을 하듯 물었다.

“어차피 저희는 이번 일을 다행히 막았고 재발을 위해서 철저히 감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귀족들의 동요를 막아보고자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서 슈렌츠 백작은 에반을 직시하며 물었다.

“안딜 자작.”

“말씀하십시오.”

“왜 자작은 이 사건을 들추려 하는가?”

“그것은 어디에도 배신을 하려는 무리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 경각심을 심어주고 또한 그들 때문에 이번 동맹은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심히 해야 한다고?”

“예. 혹시 슈렌츠 백작께서는 마르뉴 왕국에 이번 일에 대해 알렸습니까?”

“아니오.”

“그렇다면 마르뉴 왕국은 언제 저희와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르겠군요.”

“과장이 심하오.”

“과장이 아닙니다. 지금 마커 왕국에 복속되는 나라들은 모두 반란 세력들이 성공한 나라들입니다. 만약 메소스 왕국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포넬리아 왕국까지 무너지고 저희도 반란 세력에 당해 무너졌다면 마커 왕국은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왕국들을 모두 통합시켰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그대의 이야기는 마커 왕국에게 우리 왕국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말이오?”

“예. 그러니 동맹을 해오는 것도 재삼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미 반란 세력들이 왕국을 장악하고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면 마커 왕국의 군사들에게 무너질 뿐이라는 생각은 안 드시오?”

“그렇게 쉽게 저희 왕국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 자신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제가 알기로는 마커 왕국은 네 명의 영웅들에 의해서 남대륙의 패권을 거머쥘 힘을 얻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그런데 지난겨울이 끝나고 마커 왕국이 다시 정복 전쟁을 하면서 그 앞에 마커 왕국의 영웅들이 참여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런 소문은 어디에도 나지 않았다.

“없었소.”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 있을까요?”

“그들은 현재 아직 항복하지 않은 잔당 세력들을 소탕하고 있소.”

“맞습니다. 정복 전쟁으로 분명 수많은 왕국을 자신의 손에 쥐었지만 그 안으로는 아직 남아 있는 전 왕조의 세력들에 의해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더라도 격렬한 양상이 아닌 이상은 막아낼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의 군세는 그 수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소?”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합지졸일 뿐입니다. 돈으로 창을 쥐여 주고 갑옷을 입혔지만 정규 병사들은 전쟁 때 피해를 입었고 또한 마커 왕국의 병사들도 많은 피해를 입어 제대로 된 정규군이 아니게 된 겁니다. 지금 마커 왕국의 병사들은 그저 무장만 갖춘 어중이떠중이들이란 소리입니다.”

슈렌츠 백작은 그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에반의 말에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면 알딘 자작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저희 왕국의 정병들을 더욱 훈련을 시키고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동맹을 맺자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들의 모든 것을 알아 완전히 확인이 된 후에야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저희는 고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라를 잃었지만 의기가 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마커 왕국에 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한 마커 왕국은 쉬이 정복 전쟁을 끝내지 못할 겁니다.”

에반이 말을 마치고 앉자 귀족들이 그를 주시했다.

그의 말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슈렌츠 백작도 어쩔 수 없이 에반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에반이 회의에 참석하고 얼마 후 귀족들은 국왕의 말에 따라 사병과 기사들을 훈련시켰다. 국왕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는데 기존에 귀족들에게 제한을 두던 기사와 사병의 수를 풀어버리고 대신 전쟁이 났을 시 그들을 이끌고 전장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마르뉴 왕국과의 동맹은 없던 것이 되었다.

그들에게서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메소스 왕국이 동맹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자 몇몇 나라들도 동맹을 맺지 않았고 동맹 건은 몇몇 나라만 맺는 것으로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날 때쯤 마르뉴 왕국과 동맹을 맺었던 두 나라가 마커 왕국과 일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때 마르뉴 왕국이 배신을 하는 바람에 그들은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마커 왕국에 흡수가 되었다.

이제 남대륙에 남은 나라들은 북쪽에 위치한 다섯 개의 나라가 전부였다.

마커 왕국이 광활한 남대륙을 대부분 통일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다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나라들은 견고하게 자신들을 지켰으며 안에서 일어난 반란 세력들도 제압을 하였다.

그 후로 동맹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긴밀한 연락 체제를 갖추어서 빠르게 대처를 할 수 있게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해 여름 주춤하던 마커 왕국이 포넬리아 왕국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 * *

“어이.”

“음? 웬일이지?”

파이레는 갑자기 찾아온 브리즈를 보면서 물었다.

“허. 역시나 굉장한데?”

“그놈들이 너무나 짜증나게 해서…….”

“그렇다고 산을 통째로 태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불기둥 위에 앉아 있는 파이레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불을 조정하여 산 하나를 태우고 있었다.

마커 왕국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 페레드리아 왕국의 잔당들이 이 산맥에 숨어 저항을 하고 있었는데 그놈들을 잡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라 파이레는 아예 산 하나를 태워서 그들을 죽일 생각을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을 쓰다가는 전쟁을 어떻게 하려고…….”

“전쟁? 무슨 전쟁을 한다는 거지?”

“그분께 연락이 왔다. 빨리 남대륙을 통일하라고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잖은가? 이런 놈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거라는 걸 말이야.”

“그분은 그것이 더 좋다고 하시더군.”

“이런 잔당들을 남겨두는 것이?”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화마가 뒤덮은 산이 순식간에 식었다.

산에 넘실대던 불길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아 있는 건 반절 정도 탄 흔적뿐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컨트롤도 하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그분의 옆에 설 수 없지.”

“아무튼 빨리 움직여라.”

“나를 데리고 가는 것 아니었나?”

“다른 두 사람에게도 연락을 해야 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난 간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지?”

“포넬리아 부근이라 들었다.”

“그럼 나는 먼저 가 있으마.”

“그래.”

그리고 브리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이레가 힐끗 아래를 바라보았다. 탄 곳의 경계로 사람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그러나 이미 그분이 명령을 내렸기에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마커 왕국의 현재 왕은 이들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주군은 오직 그분뿐이었다. 그러니 마커 국왕의 부탁은 무시해도 된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불덩이처럼 변하더니 그대로 하늘을 가로질러 포넬리아 왕국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 * *

“그들이 전쟁에 참여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라 함은 마커 왕국의 네 영웅들이었다. 각기 하나의 힘들을 다룰 수 있는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마커 왕국은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포넬리아 왕국에서 우리의 도움을 바라겠습니까?”

“음.”

포넬리아 왕국과 메소스 왕국의 사이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다. 서로가 국경을 마주 보고 있으니 마찰도 많았고 교류도 많았기에 무어라 단정을 지을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에반이 나섰다.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이오? 알딘 자작.”

“이미 마커 왕국이 벌인 일로 인해 각 왕국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소.”

“그렇게 큰 도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도움을 말하는 것이오?”

“저희에게 남는 식량이나 군수물자들을 어느 정도 주는 겁니다.”

“그것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없을 것 같소만.”

“아닙니다. 직접 마커 왕국이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해 알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술을 말하는 것이오?”

“예.”

“그런 건 이미 수정구를 통한 영상이나 세작들에 의해서 많이 밝혀진 바가 아니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그들을 제대로 찍은 영상은 하나도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을 그저 추측을 할 뿐이지 제대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까?”

“…….”

회의장의 귀족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지도 않았으니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들의 힘을 직접 느끼고 와야 한다고 보는가?”

“예. 대부분의 왕국들은 그들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철저하게 그들을 제약할 수 있는 전술로 가야만 우리는 승리를 할 겁니다.”

에반의 말이 그럴듯하여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 듯한데.”

“무엇입니까?”

슈렌츠 백작의 말에 에반이 반문했다.

“어차피 전술을 짜는 것이야 아랫사람들이 한다고 해도 귀족들이 있어야 그 전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곳으로 갈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귀족들이 너도나도 슈렌츠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에반은 그런 슈렌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으면서 말했다.

“정 가실 분이 없다면 제가 전술을 짤 수 있는 이들을 데리고 가지요.”

“그들은 내가 추천해주겠네.”

“예.”

이렇게 해서 에반은 포넬리아 왕국으로 사신 겸 마커 왕국의 전쟁의 양상을 보기 위한 귀족으로 뽑혔다.

* * *

“너희들은 남아라.”

“예?”

그 말에 세 사람은 한목소리로 반문했다. 에반이 홀로 간다는 이야기에 놀란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가면 너희를 챙길 수도 없다. 그러니 너희는 여기에 남아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군. 저희는 주군의 기사들입니다. 저희를 남기고 대체 어디를 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칼이 에반의 말에 마음을 담아 말했다. 뒤이어 라우웰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거긴 전장입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가는데 제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이건 남의 나라의 전쟁이다. 이런 전쟁에서 너희를 잃고 싶지 않다.”

“설마 마커 왕국의 영웅들이라는 자들의 실력이 저희보다 뛰어나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남아.”

“그럼 저라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어차피 전 전쟁을 좋아 하는 놈입니다.”

라우웰이 나서며 그렇게 말했지만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너 또한 네가 이룬 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전장은 너에게 위험해.”

“하지만…….”

“그만.”

에반이 말을 끊었다.

그러자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러니 들어라.”

“예.”

그들은 에반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에반이 그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에반이 생각하기에 그 네 명은 꽤나 위험했다.

‘물과 불, 바람과 땅을 다스린다라.’

그들은 네 개의 원소를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에 예전에 자신의 사부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공무 말고도 세상에는 힘을 다스릴 줄 아는 존재가 많다.

-사부님처럼 공간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니다. 세상은 만물이 있다고 하지. 이런 만물들의 힘을 다스리거나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라는 힘을 다스리거나 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다. 모든 건 시간과 공간 안에서 탄생된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걸 알고 있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것도 그렇지 않다. 그들의 힘이 나왔다는 건 네가 나서야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너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세상에 나가서는 신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이 가진 힘이다. 그러니 나중에 그런 존재들을 만나면 필히 없애거나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

사부가 하는 말이니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마나를 다루고 기사는 오러를 다룬다.

둘 다 기본은 마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은 에반이 볼 때 극히 미약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 속에 원소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존재들은 다른 사람들의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과 이들을 처리하면 더는 이번 남대륙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여러 이유를 대면서 포넬리아 왕국에 가려고 하는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린톤 자작입니다.”

“안딜 자작이라 합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큰일이 일어나는 걸 막으셨다고요?”

메소스 왕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말함이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 운이 저희에게도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마커 왕국의 힘이 의외로 강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온다면 힘들어지겠지요.”

“신의 기사들이라고 불리는 그들 말이지요.”

“예. 이제 쉴 곳을 안내할까요?”

“아닙니다. 마커 왕국의 병사들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조치하지요.”

에반과 그를 따라온 다섯 명은 무장을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다섯 명 모두 지휘관들이 아니라 전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이다. 책만 판 이들이지만 그래도 메소스 왕국의 전술들을 보강, 발전시킨 이들이기도 했다.

이런 조합이다 보니 포넬리아 왕국으로서도 주의 깊게 감시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모두가 어느 정도 정보를 통해 아는 자들인 만큼 이들이 마커 왕국과 내통할 확률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에반은 린톤 자작을 따라 성벽에 올라갔다.

그리고 성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굉장히 많군요.”

“오십만 정도 된다는군요.”

오십만이라면 크리프 왕국 병력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전쟁은 병사들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니 그리 무섭게 다가오지는 않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희도 조사를 해보았는데 저들은 그저 허수아비들입니다.”

“허수아비요?”

“예. 제대로 군사 교육도 받지 않은 이들로 병력을 꾸렸다고 합니다. 마커 왕국 안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사병들을 내놓을 수 없다고 하고 이제 더는 군수품에 대한 지원도 멈추었습니다. 이러니 마커 왕국의 국왕은 점령한 왕국에서 병력을 차출하고 그곳에서 군수품을 조달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에서 패한 이들의 힘이 어느 정도나 있겠습니까? 그들이 내놓은 병력들은 무기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농노였고 군수품도 그렇게 좋지 못한 겁니다. 지금만 보아도 저들이 화살을 쏜다면 저희들에게 닿지 않겠지만 저희들은 저기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지요.”

“그런데 왜 공격을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십만 명의 병력으로는 공격은 무리라는 것이 현재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사이 신의 기사들이라 불리는 자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하하하. 사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린톤 자작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이미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웃음이라는 것을 빼면 괜찮아 보였다.

콰콰쾅!

그때였다.

갑자기 성벽으로 거대한 열기가 뻗쳐 나왔다.

“이 열기는? 불의 기사!”

린톤 자작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성벽과 마커 왕국 병력의 중간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온몸이 불타오르고 있는 그는 마커 왕국 신의 기사 중 한 명인 불의 기사 파이레였다.

“정말 왔군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저자인가?’

에반이 파이레를 바라보았다.

세계의 힘을 제대로 다루는 존재와 마주한 것이다.

파이레가 갑자기 손을 성벽으로 뻗었다.

화르르르르.

“으악!”

“으아악!”

갑자기 성벽 위로 불길이 치솟으면서 병사들이 혼비백산 했지만 에반은 그에 대해 놀라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불안전하군.’

그것이 에반의 생각이었다.

그가 일으킨 불은 성벽에 있는 작은 풀 조각들을 태우고 그냥 사라졌다. 그건 그에게 매개체가 없으면 큰불을 일으킬 수 없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숨기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해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진정한 원소를 다룰 수 있는 자라면 이 성벽 정도는 그대로 녹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도도 하지 못하고 약간의 잔재주를 부리고는 그대로 그만두니 에반으로서는 파이레를 높게 쳐줄 수가 없었다.

그때 파이레가 성벽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모두 모이는 날 포넬리아 왕국은 우리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까지 잘 있어라. 하하하하.”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파이레를 보면서 아무도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마법사들도 포넬리에게 마법을 쏘지 못했다.

이미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반은 그가 돌아가자 미소를 지었다.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보다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 쉽겠지.’

* * *

“현재 상황은?”

“저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화살의 사정거리도 길 뿐 아니라 마법사의 존재가 병사들의 진격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지휘관의 말에 파이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곳에는 통신 마법사를 제외하고는 다른 마법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삼 년간의 전쟁으로 마법사들도 지친 것이다.

본래 마법사가 별로 없었던 마커 왕국은 자신들의 마법사를 보호하고 점령한 왕국의 마법사를 차출했지만 그들이 제대로 마법을 쓸 리 만무했다.

게다가 마법사들 대부분은 마탑과 연관이 있기에 함부로 건들 수가 없었다.

마탑이 정치적인 개입을 아무리 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마법사를 핍박하면 정치적이건 아니건 일단 그 상대를 적으로 지정하기에 마커 왕국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소리인가?”

“예.”

오늘 보니 성벽이 꽤나 견고해 보였다. 저런 성벽을 뚫고 가는 건 자신 전문이 아니었다.

‘란도스에게 맡기면 되겠군.’

란도스는 땅을 다룬다.

흙이나 돌로 된 모든 물질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성벽을 해체하는 건 그에게는 그리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쉬운 일이었다.

“그만 나가봐.”

“예.”

지휘관이 아주 극공의 예를 그에게 취하고는 그곳에서 물러나자 파이레가 피식 웃었다.

지금 지휘관의 작위가 백작이니 굉장히 상위의 귀족이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절대 올려다볼 수도 없는 그런 높은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을 그저 턱짓으로 부릴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이 정말로 출세를 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가 자신의 성정을 시험해본다고 자신이 자란 마을을 불태우라 했을 때 자신이 만약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면 아마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독해야 살아남는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갔었다.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냉정한 세상을 겪었고 희망이 없었다.

그 희망을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자신은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라.

“뭐냐!”

“무슨 일이십니까?”

갑작스러운 파이레의 외침에 병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파이레는 근처를 자신의 능력으로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헛것을 들었나?’

“아니다. 나가봐라.”

“예. 편안히 쉬십시오.”

한 번 더 주위를 살펴본 파이레가 다시 누우려 할 때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오라는 소리를 못 들었나?

벌떡.

파이레는 방금처럼 큰 소리로 외치지는 않았다. 다만 조용히 읊조렸다.

“넌 누구지?”

-그건 만나보면 알겠지.

“흥. 내가 널 만나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정말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가? 불의 기사는 겁을 모른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군.

“이, 이…….”

하지만 파이레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지금 알 수 없는 능력으로 자신을 불러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움직이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역시 무서운가 보군. 그렇다면 물러가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자 파이레는 더는 참지 못했다.

“기다려!”

촤악.

막사의 위쪽이 불타오르며 파이레가 튀어나왔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그의 귀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쪽으로 쭉 올라와라. 날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이레는 그 말을 듣고 이동을 하려 하자 누군가 급히 물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잠시 나갔다 올 테니 기다려.”

파악.

그러고는 북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파이레는 날아갔다.

쿠쿠쿵!

그의 뒤로 고랑이 깊이 파이면서 그가 지나간 흔적을 남겼다.

아무리 화가 났더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찾을 수 있게 이렇듯 흔적을 남겨놓는 용의주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허공에 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파이레는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공격을 시도했다.

선방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그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콰아아악.

불길이 에반을 순식간에 뒤덮었고 그 뒤로 파이레가 검에 불꽃을 일으키면서 에반을 베었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없이 그대로 검이 지나가자 파이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위로 솟구치는 것이 뒤를 잡혔을 때 유리하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파이레는 솟구치던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나?”

정말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이건만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브리즈와 많은 대련을 했고 아주 자그마한 기척이 있다면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자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뒤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과 자신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이다.

팍.

파이레가 빠르게 뒤로 주먹을 휘둘렀다.

턱.

활활 타오르는 주먹이 맥없이 잡혔다.

‘후자인 건가?’

전자이길 바랐던 그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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