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제1장 (50/60)

제1장

쿠쿠쿠쿵!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있었다.

하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왕성이 일부분 무너졌지만 지금 대치하고 있는 두 존재는 그걸 상관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에반이 하스를 보며 말했다.

“짜릿하군.”

“짜릿하다 못해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을 네 영혼에 새겨주마.”

“너는 내게 안 돼.”

“아직도 그 소리인가?”

하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오백 년을 봉인당해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마계의 마신과 막상막하로 싸운 후 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하스의 오만일 뿐이었다.

사실 그 당시 하스가 폭주하여 마계에 균열을 일으킬까 봐 마신은 그저 그의 실력에 맞추어 싸움을 주도하다가 봉인을 한 것이다.

그 후 그 사실을 안 하스는 그때의 일을 잊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10서클에 올라가 마신에게 당한 치욕을 갚아줄 생각만이 그를 지배했다.

그런데 오늘 그때의 그 패배감이라는 감정을 또다시 떠올리게 하는 자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에 하스는 에반을 어떻게 해서든 굴복시키고 싶었다.

에반은 그런 하스를 보면서 그의 힘을 측정했다. 그의 힘이 강하기는 하지만 중간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였던 중간계이니만큼 하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이 그런 생각에 하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하자.”

“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가 강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너는 날 못 이겨. 차라리 더욱 힘을 키워서 나에게 덤벼라.”

“크크크. 네가 정말 나를 화나게 하는구나.”

지금 에반이 보이는 태도가 마신이 마계를 생각하며 봉인했던 때와 같다고 생각하자 감정이 폭발하듯 휘몰아쳤다.

하스가 눈을 감고 마기를 한 점에 모았다.

쿠쿠쿵!

대전이 흔들리고 주위가 불안하게 떨렸다.

에반은 자신과 싸울 준비를 하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움직였다.

마기가 이곳을 완벽하게 장악을 했지만 그건 하스의 생각일 뿐 에반은 그에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있었다.

“움직여?”

하스가 눈을 뜨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에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힘에 자신의 영혼마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에반은 태연하게 움직이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힘을 완전히 모으지 않는 와중에 에반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하스는 다급해졌다.

‘어쩔 수 없군.’

미완성의 마기가 에반에게 쏟아졌다.

이미 마법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 마법이 아닌 힘에 우위를 두고 전투를 펼쳐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쿠쿠쿠쿠!

거대한 힘이 자신에게 다가오건만 에반은 계속 앞으로 걸어가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에반과 맞부딪쳤다.

스스스.

바람이 빠지듯 응축된 마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어차피 마기도 마나가 변한 종류였다. 그 힘이 중간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도 이 차원을 이루는 세계로 보자면 아주 작은 힘일 뿐이었고 세계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러하니 에반에게는 그저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마기가 마나로 바뀌어서 주위로 흩어져 버렸다.

“이…… 이…….”

하스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설마하니 자신의 힘을 이렇게 없애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또한 생소한 감정 하나가 마음속에 들었다.

그 감정이 어서 빨리 저 앞에 있는 인간을 공격하라 소리치고 있었다.

“죽어!”

하스가 강대한 마기를 쏘아 보낸다.

팟.

에반이 그걸 살랑대는 미풍으로 바꾸어 버렸다.

다시 한 번 마기가 쏘아진다.

파스스.

마기가 마나로 바뀌어 주위로 퍼진다.

쿠쿠쿠쿵!

하스는 계속해서 자신 안에 있는 힘을 쏟고 쏟고 쏟아 부었다.

에반은 자리에 멈추어 서서 다가오는 힘을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헉. 헉.”

영원히 지치지 않을 것 같던 하스가 지쳐 에반을 바라보았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앞에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던 하스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에반의 위치가 뒤에 있는 페른 교단 일행을 보호하고 있는 위치였다.

‘저놈들을 이용하자.’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 앞에 있는 자를 이기고 싶었다.

“하압!”

다시 한 번 마기를 쏘아낸 하스는 그 마기를 에반이 막든 말든 상관치 않고 워프를 이용해 기절해 있는 페른 교단 일행에게 다가가려 했다.

팟.

“응?”

바로 자신의 앞에 그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마기를 모았던 하스가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위치가 그들 앞이 아니라 에반의 옆이었던 것이다.

일순 당황한 하스를 보며 에반이 손을 뻗었다.

하스도 그냥 당할 순 없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과 손이 만나고 접점이 생겼다.

그리고 에반은 하스 안에 있는 거대한 마기를 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걸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궁.

하스의 몸 안에 있는 마기가 빠르게 생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크어어억.’

자신의 몸 안에 일어나는 일을 하스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몸을 뺄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온몸의 힘이 빠진 것처럼 그저 자신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만을 느끼며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만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에반은 하스의 몸 안에 있는 마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면서 미간을 좁혔다.

생기가 위험할 정도로 농축이 되어 하스의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스의 몸과 생기는 서로 반발력이 있기에 생기는 어서 빨리 그 몸 안에서 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험해진다.

특별한 성질이 없는 마나는 생기라 칭해진다.

이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 마나이고 그것이 변환이 되면서 다른 기운이 된다.

그래서 마나는 마나인 동시에 이 세상을 이루는 생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농축된 생기가 퍼진다면 그걸 감당 못하고 모든 생명체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갑자기 불어난 생기를 어떤 생물체이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에반은 하스의 몸 안에서 나가려는 생기를 붙잡았다.

그럴수록 하스는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에반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에반은 일단 하스 자체를 공간 안에 가두었다.

그러자 생기가 빠져나와도 그 공간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생기가 제한된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가운데 하스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곧 생기가 완전히 하스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때를 기해 에반은 하스를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밀어내었다.

본래 생기의 특징은 한데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기는 고일 수도 없고 한곳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그런데 계속 날뛰던 생기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자 스스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생기들이 하나의 빛을 이루었다.

본래 생기는 만져지지도 보이지도 않아야 정상이건만 에반이 만든 공간 안에 모인 생기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모인 생기는 날뛸 거라는 예상을 깨고 한곳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걸 보며 에반은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이 세상의 법칙에 위배되는 물건이 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에반은 아공간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걸 가두기에는 불안했다.

살짝 손에 쥔 마나의 빛이 아주 따스했다.

그러다가 공간의 틈이 생각이 났다.

이 세상이면서 이 세상이 아니니 이 마나의 빛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그그긋.

에반이 억지로 연 공간의 틈으로 재빠르게 마나의 빛을 넣은 후 공간의 틈을 닫았다.

“후…….”

자신을 유혹하는 그곳을 느끼면서 한숨을 한 번 쉰 에반이 쓰러져 있는 하스를 바라보았다.

하스의 표정은 보는 이까지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또한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서서히 굳고 있었다.

죽은 것이다.

마기가 사라지고 생기에 의한 고통을 받다가 생기마저 사라지자 영혼과 하스의 몸을 구속하던 끈이 떨어지고 영혼은 다시 마계의 자신의 몸이 봉인된 곳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그는 봉인된 상태에서 그 누구도 이 봉인을 풀어주지 말 것을 기도할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기가 사라졌으니 이제 하스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신이 그걸 안다면 바로 소멸을 시킬 것이 자명했다.

인간이나 마족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가 이제는 자신의 소멸을 두려워하는 아주 가녀린 영혼이 되어 버렸다.

“으으음…….”

그때 루에르가 신음을 흘리면서 정신을 차렸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루에르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꿈?”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장면은 에반이 들어오고 하스의 앞에 서 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주위에는 마기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생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만히 서 있는 에반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에반을 보면서 루네르가 탄성을 터뜨렸다.

“아…….”

“왜 그러지?”

“아, 아니에요. 혹시 이건 꿈인가요?”

“꿈?”

“예.”

“아니다.”

그러면서 에반이 쓰러져 있는 하스를 가리켰다.

루네르는 그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슬픔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자신의 몸을 쓰던 마족이 쓰러졌다는 걸 알면 다른 곳에서나마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루네르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마족이 쓰러져?’

생각해보니 그리 강대하던 마족이 쓰러져 있었다.

루네르는 급히 에반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죠?”

“그 영혼은 사라졌다.”

“그를 쓰러뜨린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마기도 사라졌네요?”

“그가 사라졌으니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변질된 마기는 아직도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미미하게 남아 있을 거다. 아마 이걸 정화하는 건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

“예.”

루네르는 한숨을 쉬었다.

거창하게 마족을 없앨 거라 원정대를 꾸렸건만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에반 홀로 모든 것을 처리했다.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그러자 신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내게 그런 계시를 내린 걸까? 신께서는 무엇을 알고 있지?’

이제 대체 자신이 성녀가 된 이유조차 알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루네르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다른 이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은 성물이 있기 때문에 일찍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이렇게 된 것 에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가 없었기에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에반 공.”

“……?”

에반이 루네르를 쳐다보았다.

“부탁이 있어요.”

“부탁?”

“예.”

“들어보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루네르가 물었다.

“전 계속 성녀로만 살아야 하나요?”

“그건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예요. 계속 신의 뜻을 잇는 자로 남아야 하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자신이 성녀로 존재하는 것이 싫은가?”

“싫진 않아요.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에요.”

“부담스러워?”

“예. 전 본래 그리 착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잘 알지.”

그 말에 루네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죠. 사람을 속여먹고 이용하는 것이 제 본래 성격인데 성녀로 포장되어 그런 것들도 포장이 되니 너무나 부담이 돼요.”

“자신이 성녀로서 자질이 떨어진다는 건가?”

“예.”

루네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에반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이용하려고 해도 먼저 죄책감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서 마음의 짐을 가지고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 그건 이미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니라는 소리였지만 루네르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확연히 느껴지자 절로 고개를 끄덕이던 에반이 눈을 뜨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몇 년 후 나를 찾아와라. 그때도 네가 성녀라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면 내가 기꺼이 네 심장에 있는 성물에서 성력을 없애주지.”

“고마워요.”

“고마워할 것은 없다.”

에반은 그녀가 절대 그런 부탁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현재 변하고 있는 중이었고 계속 변할 것이다.

그리고 성녀의 자질을 완전히 갖출 것이다.

“으음…….”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을 때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다른 이들도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차례차례 일어난 그들은 주위를 한차례 보더니 서 있는 에반과 루네르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루네르가 대답을 하려는 것을 에반이 먼저 가로채 말했다.

“성녀가 마족을 물리쳤다.”

“아…….”

루네르가 급히 에반을 보자 에반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방금 했던 부탁에 대한 대가다.

하지만 이건 대가도 뭐도 아니다.

자신이 받는 입장인데 어떻게 대가가 된단 말인가?

그런 의미로 루네르가 에반을 쳐다보았지만 에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곧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성녀의 앞에서 신을 찬양했다.

“페른이시여…….”

“오오오…….”

“성녀님. 훌륭하십니다.”

한참을 그렇게 기도를 올리는 그들을 보면서 루네르가 부담이 가는지 그들에게 말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죠.”

“떠나다니요?”

“아직 마기가 곳곳에 있어요. 그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러고 보니 신성력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만약 이곳에 마기가 충만해 있었다면 지금 있는 신성력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 둘씩 일어났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 * *

성녀 일행이 폰다 왕국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폰다 왕국에 만연했던 마기가 걷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결과를 알고자 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곧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잔존하는 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기분을 나쁘게 하고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게 하는 증상에 의해서 속속들이 빠져나왔고 대신 그 안에서 나오는 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하스가 마기를 아무리 모두 다시 흡수했다고는 했지만 이미 합쳐져 다시 변한 마기는 그가 흡수하지를 못하고 남았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대신 폰다 왕국 곳곳에 있었던 흑마법사들은 모든 마기를 다 빨리고 도망도 치지 못한 채 오히려 잔존하는 마기의 여파에 하나 둘씩 죽어나갔다.

이제 정말로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스터도 에반에게 죽었으니 아예 흑마법사의 후대를 이을 명맥은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기가 사라진 지 스무 날이 지났을 무렵 페른 교단 일행이 크리프 왕국의 국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성녀가 마족을 물리쳤다는 데에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여기에서 불이익을 당한 조직이 있었으니 바로 다오였다.

그들은 분명 가장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고 그 전에 흑마법사들을 막아야만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들에게 준 권한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라 이번 일을 미리 막거나 대비를 했어야 하지만 막상 이번 일이 생기가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오를 불신했고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던 다오는 서서히 와해가 되었다.

그 뒤를 봐주던 귀족들이 떠나니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이 떠오른 것은 바로 페른 교단이었다.

그들이 있다면 마기를 막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륙의 나라들이 어떻게 해서든 교단의 신전을 지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다오에 영향력이 있는 브릴리언 가문의 장녀가 바로 루네르였으니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에반과 크리프 왕국의 국경에서 헤어져 그들은 자신들의 대신전이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지만 크리프 왕국 내에서 에반은 이미 영웅이었다.

유일하게 교단의 사람이 아닌 자로 참가하여 마족을 물리치는 데에 일조를 했으니 당연히 용사의 칭호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지금 크리프 왕국은 전쟁을 끝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들을 묶는 존재가 필요했고 그런 존재로서 전대 크라이스 백작의 아들이자 마족을 물리친 용사인 에반은 아주 제격이었다.

그래서 에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이번 일도 실패를 했군.”

“예.”

질책의 말이었지만 질책을 받는 자는 아주 태연했다.

그러자 질책을 한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내놓은 계획이 아니라는 건가?”

“…….”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무언의 대답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진짜 준비한 계획은 잘 되어가지?”

“아시다시피 잘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중년인과 삼십대의 청년은 상관과 부하의 관계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알력 관계에 있었다.

“그나저나 그는 파악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말이 자네의 입에서 나오다니 놀랍군.”

“하지만 손과 발을 묶고 하는 일인데 그걸 알아오는 것이 용하지요.”

“풀어준다면 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전 그 전에 북대륙의 일을 끝내야 합니다.”

“참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는군.”

“다른 자를 시키든가 직접 조사해보십시오.”

“정말로 빠져나가려 드는군. 그가 무섭나?”

“예. 전 무섭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그 모습이 중년인은 싫었다. 하지만 그에게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가봐.”

“그나저나 그분은 현재 어디에 계십니까?”

“마지막 수련을 하고 계신다.”

“저희가 벌인 일은 알고 계십니까?”

“언급은 했다.”

“흠…….”

“뭐가 문제지?”

“아닙니다. 요즘 들어 그분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것도 제대로 성공을 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쾅!

“자네!”

“아, 전 물러갑니다. 그럼.”

그러면서 태연히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중년인이 이를 갈았다.

“저 자식이…….”

저놈의 코를 납작해게 해줘야 화가 풀릴 것 같았다.

“그러려면 남대륙의 일이 잘 풀려야 하는데.”

남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재 그분의 지원을 받아 아주 안정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빨리 이루고 싶은 조급증이 중년인에게 생겼다.

그것이 모두 방금 나간 자 때문이리라.

* * *

와글와글

“아, 거참. 밀지 마. 차에 찔린다고.”

“누가 내 엉덩이를 만지는 거야? 누구야?”

크리프 왕국의 왕도에 때아니게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볐다.

그건 바로 한 달 전 마족을 물리쳤던 페른 교단의 일행 때문이었다.

그 중 성녀와 성기사 몇 명이 이곳 크리프 왕국을 찾았다.

다만 그녀가 간 곳이 왕궁이 아닌 여관이라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그걸 전해들은 병사들이 그들의 난입을 막고 있었다.

밖에서 이런 소란이 있는 가운데 여관은 아주 조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관 안에는 성녀 일행과 에반과 칼, 아그나르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성녀의 축복 한 번에 자진해서 여관을 나갔다.

에반이 잠시 밖을 보다가 루네르에게 말했다.

“거창하군.”

“미안해요.”

“미안한 것을 알면 조용히 오든가? 지금 이런 짓은 날 곤란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모르나?”

에반의 질책에도 성기사들은 아주 조용했다.

성기사들은 이미 에반을 성녀와 동급으로 놓고 있었다.

에반이 성녀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지만 성녀 혼자 마족을 쓰러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에반이 그렇게 알기를 원하기에 그의 뜻에 따라주는 것뿐이었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지?”

“폰다 왕국의 생존자들을 모두 모았어요.”

“그래?”

“그들을 모두 데려간다고요?”

“그래. 내가 거두기로 했다.”

“거기에 특이한 사람들이 있던데…….”

“내가 잠시 손을 보았었지.”

“폰다 왕국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직 저희 페른 교단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필요하다?”

“예.”

“눈독 들이지 마. 그들을 그곳에서 살 수 있게 잠시 신성력을 집어넣었을 뿐 그들은 그 힘을 소모하면 채워 넣지도 못해.”

“그런가요?”

루네르는 아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 수만 만 명이 넘는다. 그런 그들이 모두 사제가 된다면 자신들에게는 굉장한 이득이 되는 일인 것이다.

“몇 명이나 되지?”

“만 명이 조금 넘어요.”

“그들 때문에 온 건가?”

“예.”

“설마 데리고 간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에요. 크리프 왕국의 경계에 모두 모여 있어요. 그들은 아직 마기에 오염이 되어 있으니까요.”

“치료는 하지 않았나 보군.”

“제 혼자 힘으로는 벅차서요.”

“그럼 그곳에 있으라고 해. 이번에 왕성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들를 테니까 말이야.”

“그들이 불안해해요.”

“사제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말하고 에반이 일어서자 루네르도 일어섰다.

“또 할 말이 남아 있나?”

“아니에요. 이제 가야죠.”

“그 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보군.”

“예.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그 말에 에반이 루네르에게 말했다.

“올라가지.”

성기사들은 에반과 루네르 둘이 올라가지만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방에 있는 탁자에 앉자마자 에반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조금만 도와주세요.”

“뭘 도와달라는 거지?”

“그 왕국민들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당신이 도와준다면 다른 이들도 폰다 왕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요.”

“흠. 무슨 속셈이 있군.”

“이제 폰다 왕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었죠. 마기만 제거하면 제법 큰 땅이에요.”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가?”

“예. 교단끼리 연합을 하려 왕국을 만들려 하지요. 신성 왕국이요.”

폰다 왕국은 그 크기가 꽤나 컸다.

게다가 중대륙의 남부의 중심지이기도 해 지리적으로 아주 좋았다.

이미 루네르는 몇몇 교단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합의를 보았다. 이제 그들만 그곳으로 이주하면 되는데 마기가 문제였다.

“신성 왕국이라…….”

지금까지 신의 사제들이 세운 왕국은 없었다.

수많은 신들이 있는 만큼 각 교단은 한 신이 크게 부흥하지 못했고 각 나라마다 국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국교가 있어도 꼭 국교의 신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교단끼리 힘이 뭉칠 수가 없어 언제나 서로가 견제를 했었는데 이번에 폰다 왕국이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생겨났다.

사제들이 아니라면 눈독도 들일 수 없는 곳이기에 그들에게는 아주 제격인 땅이 나오자 각 교단들은 합의를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번 기회를 이용해 신성 왕국을 세워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마기가 발목을 잡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에반이 말했다.

“마기는 마기야.”

“예?”

“아무리 변질이 되었어도 마기야. 마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냥 남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기도 하지. 하지만 마기는 변해. 이 세계에 맞게 모습을 바꾸지. 그렇기에 사람들이 마기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는 것이고 말이야.”

“그럼 시간이 흐른다면 저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오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래. 하지만 그건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마기가 변하면서 신성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될 거야. 내가 폰다 왕국을 지나오면서 느낀 것이니 믿어.”

“아…….”

루네르가 기쁨의 빛을 띠었다.

“고마워요.”

“난 도와준 것이 없다.”

“하지만 진실을 알려주었잖아요.”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너희들도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른 교단도 정화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겠지.”

“알겠어요.”

“이제 나와의 일은 끝난 건가?”

“예.”

어차피 그 때문에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해결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럼 먼저 가도록 해. 나야 언제 왕성에 들어가든 마찬가지이니.”

“왕성에 들어가라는 말씀인가요?”

“그럼 국왕도 만나지 않고 그냥 내빼려고 했나?”

“저도 바쁜 몸이라…….”

“지금 날 곤란하게 할 셈이야?”

만약 성녀가 자신만 만나고 국왕은 만나지도 않고 바로 떠나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루드 왕이 아무리 이제 자신의 것을 놓으려 하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귀족들을 풀어놓는 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

루네르는 에반의 눈을 보고는 섬뜩한 느낌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성녀가 일어나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아래로 내려온 에반은 밖에서 환호 소리와 그들을 연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희는 언제 갑니까?”

칼이 물었다.

“저들이 간 후 가자. 지금은 너무나 이목이 집중이 되어 있어.”

“예.”

이렇게 해서 에반은 하루 더 여관에 머물렀다.

몇몇은 에반을 보기 위해 기웃거렸지만 칼과 아그나르에 막혀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에반은 아침 일찍 입궁을 했다.

어제저녁부터 온 쪽지 때문이었다.

“통과하십시오.”

예전과는 다른 대우였다.

에반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근위병은 그대로 에반의 마차를 통과시켰다.

아직도 뒤숭숭한 상황 속에서도 에반의 현재 위치가 어떠한지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차가 왕궁의 정원을 반쯤 지났을 때 그를 막는 이가 있었다.

“잠시만 멈추게나.”

마차의 옆에 타고 있던 칼은 함부로 마차를 막은 이를 보더니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칼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벌컥 마차의 문을 열었다.

벌컥.

“어서 오게나.”

“오랜만입니다. 스미트 공작님.”

그의 마차를 세운 건 다름이 아니라 스미트 공작이었다.

백여 년 만에 크리프 왕국에 공작이 탄생을 했는데 그것이 스미트 공작이었고 이제는 명실 공히 최고의 귀족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런 그가 에반을 다급히 부르고 있으니 에반으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지만 그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여긴?”

바로 크리프 왕궁 안에 있는 마탑으로 스미트 공작에게 안내되어온 에반은 다시 한 번 스미트 공작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잠시만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그러나 여기에서 덥석 도와준다고 하면 그건 에반이 아니었다.

에반이 스미트 공작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전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그에 스미트 후작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설명하겠소.”

“누구시오?”

몸 안에 담긴 마나를 보자 예전에 바스트 제국에 갔을 때 보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에반의 짐작이 맞는다는 듯이 그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바람의 마탑주인 그레고리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크라우스 가문의 부가주 에반 크라우스 자작입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어찌 바람의 마탑의 탑주께서 이곳에 계실 수 있습니까?”

“그건…….”

그러면서 탑주는 에반의 뒤를 살짝 보았다.

거기에는 마부와 칼, 그리고 아그나르가 있었다.

그들이 있어서는 말을 못한다는 태도에 에반이 말했다.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러세.”

“안내해주는 처소에서 쉬고 있어라.”

“하지만…….”

“난 괜찮으니 가봐.”

“예.”

칼은 에반이 바람의 마탑주에게 가려 하자 놀라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리 에반이 굉장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대륙의 마탑주들은 그 궤를 달리한다.

그것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대부분이 인간의 정점을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주 충성스러운 기사들이군. 그리고 강하고 말이야.”

“그저 열심히 수련을 시켰을 뿐입니다.”

마탑주들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기운을 잘 읽는다.

그러니 한눈에 보아도 저들의 경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에반을 보면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힘을 분명 가늠했는데 그것이 지금껏 생각한 바하고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마탑주님이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마법서 때문이네.”

“크루세스의 마법서를 말함입니까?”

“그렇네. 그것이 지금 이곳에 있지.”

그러면서 마탑을 가리켰다.

“음.”

지금 보니 굉장한 마나가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곳으로 크루세스 마법서가 이동한 겁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네. 폰다 왕국이 망했으니까.”

본래 바람의 마탑이 있던 곳은 폰다 왕국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여 년 전 흑마법사가 이번에 소환했었던 하스를 부르는 바람에 마탑주가 죽었었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루세스 마법서가 이끄는 길을 따라간 곳이 바로 폰다 왕국이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은 후 폰다 왕국은 바람의 마탑을 믿고 꽤나 호전적인 정책 운영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많은 나라와 척을 지고 현재의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힘을 지닌 마탑이 이쪽으로 온다면 모두 좋아해야 하건만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무언가 문제가 있군요.”

“음.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그들이 마탑으로 들어가고 마탑은 완전히 봉쇄가 되었다.

* * *

우우우웅.

에반은 열여덟 명이 둘러앉은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이 기운은 마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네.”

“어째서 여기에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겁니까?”

“그것이, 크루세스 님의 마법서 때문이라네.”

“예?”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 한번 말해보게나. 저 마기를 정화할 수 있겠나?”

아마 사 년 전 마기를 정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에반을 기다린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 일에도 같이 갔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에반이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았다.

“한번 해봐야 알지 보는 것만으로는 모릅니다.”

“그럼 어서 한번 해보게나.”

“그나저나 성녀 일행이 왕궁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 이 일을 보이지 않고 저에게 보이는 겁니까?”

“그건 본래 마탑과 사제들이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네. 그래서 자네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네.”

스미트 공작이 변명을 했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지요.”

“고맙네. 정말 고맙네.”

에반은 마탑주의 인사를 뒤로하고 그대로 열여덟 명의 마법사 사이로 뛰어들었다.

스스로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곳으로 몸을 집어넣으면 당연히 튕겨져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그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마법사들이 열심히 마나를 불어넣고 있는 마법진은 그 어떤 것도 들어올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게 설계가 된 것이다.

어디에서나 자유롭다는 바람의 마탑에서 모든 것을 억누를 수 있는 마법을 만들었고 그 마법은 정말로 강력했기에 그들은 에반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충격을 받건 말건 에반은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끈끈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을 보아하니 하스가 뿌리던 기운과 별반 차이도 없었다.

에반이 힐끗 스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런 골칫덩이를 왕국에 받아들이다니.”

이건 자칫 잘못했으면 제이의 마족사태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있는 아주 큰일이었다.

에반은 스미트 공작이 못마땅했지만 우선은 이것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쿠쿠쿠쿵!

갑자기 마기가 움직임을 보였다.

생명체가 들어오자 크루세스 마법서가 거기에 반응을 한 것이다.

에반은 그 순간 주위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크루세스 마법서는 에반의 공간에 침투를 못하고 겉만 맴돌면서 어떻게 하지를 못했다.

‘이게 크루세스 마법서인가?’

깃털이 달린 펜이었다.

이 펜이 크루세스 마법서의 변한 모습이었다.

에반은 그 펜을 덥석 집었다.

그러고는 그 펜의 공간만을 더욱 줄였다.

그러자 주위로 퍼져나가는 마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마기와 함께 마나가 에반의 몸 안으로 들어와 폭발을 하기 시작했다.

쿵쿵쿵!

이건 크루세스 마법서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허락받지 않은 자가 손을 대면 그자는 바로 마나의 충돌로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에반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크루세스 마법서는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자 어떻게 해서든 에반의 손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건 그저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마기를 만들어내니 에반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 마기를 만들어내는 마물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인지 고민이 된 것이다.

그때 그 심경을 느꼈는지 갑자기 크루세스 마법서가 에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인간, 이걸 풀지 못하겠나?

“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위대한 대마법사가 만든 작품이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다.

“위대한 대마법사? 하스가 아니라? 네가 뿜는 기운은 그와 비슷한데?”

-그분을 만난 것이냐?

“난 하스를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소멸시켰지.”

“이……! 죽여 버리겠다!”

에반의 말에 크루세스 마법서는 힘을 표출하려 했지만 에반의 몸 안에 들어간 힘은 에반의 힘이 되었다.

그건 정말로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그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힘을 푼 크루세스 마법서는 어느 순간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힘을 회수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에반이 물었다.

“네가 말하는 위대한 마법사는 크루세스가 아닌가?”

-맞다. 그분이 바로 위대한 마법사이시다.

“그는 이미 죽었고 내가 만난 건 하스다.”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죽지 않으셨다. 다만 우리를 창조하고 마계로 떠나셨을 뿐이다.

“마계로 갔다고?”

-그렇다.

그러면서 크루세스 마법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에반에게 알렸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반이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너를 만든 이유는 나중에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힘에 먹혀버렸다면 그런 자신을 막기 위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그래. 다만 본래 하나의 마법서로 존재해야 할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를 받아들일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여섯 조각으로 나뉜 것이다.

“그렇군.”

에반은 흥미롭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이제 나를 놓아주기 바란다.

“그건 안 되지. 네가 이곳을 빠져나가면 마기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거다. 난 지금 그것을 막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도 안 된다. 난 내 창조주를 따라야 한다.

이제 보니 이 크루세스의 마법서는 하스의 마기를 접하고는 조금은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인간보다 똑똑한 기물이니만큼 하스와 비슷한 기운을 만드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다면 그 원이 되는 마기를 없애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에반은 펜의 모습으로 있는 크루세스 마법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 안에는 무한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에반은 그 힘들을 차례차례 벗겨내면서 그 중심으로 갔다.

점점 반항도 심해졌지만 에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심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 검게 물든 하나의 책을 발견했다.

‘이건가?’

에반이 그 책을 바로 정화했다.

-크아아아악!

악마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마탑을 진동시켰다.

그 때문에 정신을 놓은 마법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마법진에 쏟던 마나를 끊어 버렸다.

“이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마탑주가 마법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펜을 들고 서 있는 에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고 그 어디에서도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에반이 그 펜을 마탑주에게 넘겼다.

마탑주가 얼떨결에 그 펜을 받자 에반이 말했다.

“지금은 모든 힘을 소진해서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마기를 제거했으니 지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마탑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그때 에반에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크루세스 마법서가 에반에게 말을 건 것이다.

-네게 인사를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다. 내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에반도 생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아무튼 고맙다. 그리고 그분을 소멸시켜 준 것도 고맙다.

마기가 걷히고 나자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마법서는 에반에게 그것마저 고맙다고 하고 있었다.

-알면 여기에서 잘 지내라.

-그래.

에반이 마탑주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

마탑주가 말을 하려는 걸 에반이 끊으면서 말했다.

“제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요. 그러니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 일부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흠칫.

그가 놀라는 사이 에반은 마탑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 앞을 지키던 마법사가 에반에게 물었다.

“잘 해결이 된 겁니까?”

“예. 문제가 없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크라우스 자작님.”

“아닙니다. 그럼.”

“예.”

그가 직접 마탑의 문을 열어주고 에반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에반이 입궁을 하자 그를 기다린 것은 작위 수여식이었다.

이건 루드 왕이 직접 수여를 했는데 에반에게는 백작의 작위가 주어졌다.

그러고는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그런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스미트 공작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바우어 백작이었다.

스미트 공작이 자신을 찾아온 건 이해를 하겠는데 바우어 백작은 조금 의외였다.

“그럼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난 저곳에서 기다리겠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에반은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미트 공작과 단둘이 되자 스미트 공작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그건 비밀입니다.”

“내게도?”

“공작님 같으시면 가문의 비기를 함부로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그렇다면 참으십시오.”

“알았다네.”

그러나 스미트 공작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주 대단한 일을 하셨었더군요.”

“대단한 일?”

스미트 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에반은 크루세스 마법서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 그런…….”

당연히 스미트 공작의 안색이 급변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까지 되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제가 보았을 때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그들의 마법진은 크루세스 마법서를 감당치 못했을 겁니다.”

“하하하. 그, 그렇군.”

에반의 말에 스미트 공작은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할지…….”

에반이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하자 스미트 공작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가?”

“저요?”

“그래.”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날 압박을 하나?”

“저도 모르겠군요.”

“끄응.”

에반이 이렇게 말하니 스미트 공작은 말을 하기가 뭐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짐을 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더욱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무튼 더는 저에게 할 말이 없지요?”

“그래. 이제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스미트 공작은 그런 에반의 뒷모습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 * *

“나라를 위해 해주게.”

에반은 그렇게 말하는 바우어 백작을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른 나라의 귀족이 되라니요?”

“남쪽이 심상치 안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예.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조금 편하겠군. 그 때문이네. 자네의 힘으로 남대륙이 통일이 되는 것을 막아주게.”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난 자네의 힘을 정확히 모르지 그러나 자네가 신의 기사라 불리는 이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아네.”

“신의 기사들이요?”

“그래. 마커 왕국의 영웅들이지. 그들은 네 명의 영웅들로 인해 현재 남대륙의 삼분의 이를 차지했네. 그리고 계속해서 정복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지. 본래는 내가 가려 했지만 내 힘만으로는 조금은 부족하다 느껴 자네를 추천했다네.”

“추천을 했다는 말은?”

“이미 국왕 전하께서 허락했다는 뜻이네.”

그 말에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의 귀족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에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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