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43/60)

제3장

에반이 삼왕자군을 상대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가운데 마기 요새에서는 폰다 왕국보다 먼저 왕세자가 이끌고 온 병력이 도착했다.

“왕세자 저하를 뵈옵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백작.”

“아닙니다. 모두 이 나라를 위한 일 아닙니까?”

“상황이 급박하니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예.”

후터스 백작은 뒤에 오는 스미트 후작과 바우어 백작에게 눈인사를 했다.

회의실로 들어간 왕세자는 바로 현재 상황을 물었다.

“지금 폰다 왕국의 움직임은 어떻소?”

“보고 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현재 피해는 어찌 되오?”

“아직은 초기에 치른 전투 말고는 제대로 된 전투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어만 하는 입장이었는지라 사상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흠. 지금 폰다 왕국에서 오는 병력이 십만이 확실하오?”

“예. 그들의 병력은 닷새 전후로 도착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잠시 뒤로 물러나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으음.”

그들로서도 당연했다.

지금 자신의 병력은 십만이고 크리프 왕국은 왕세자의 합류로 병력이 십오만이 되었다.

며칠이 흐르면 자신들도 십만의 병력이 오기에 그때까지만 잠시 피하고 보자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왕세자가 바우어 백작에게 물었다.

그는 소드 마스터인 동시에 지장이기도 했다.

“일단 이십만의 병력이라면 저희가 성벽을 끼고 싸운다고 하더라도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빠르게 현재 병력들을 재편해서 물러나려는 폰다 왕국군을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것도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나가서 싸우자는 말이오?”

“예.”

“지금 저희는 뒤에 삼왕자군을 두고 싸우는 형편입니다. 소모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떻소?”

이번에는 왕세자가 후터스 백작을 바라보았다.

후터스 백작이 바우어 백작의 의견에 찬성을 표했다.

“바우어 백작의 말이 타당하다 생각이 됩니다. 십오만의 병력으로 기습을 한다면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럼 한 번 작전을 짜봅시다.”

“예.”

왕세자의 말에 후터스 백작이 지형도를 펼쳐들었다.

“현재 저희의 위치는 여기입니다.”

작게 그려진 요새가 있고 그 옆으로는 험난한 지형의 산이 자리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온갖 마법 트랙과 레인저들이 숨어있어 절대 많은 수의 병력이 지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요새를 기점으로 폰다 왕국이 있는 북쪽으로 갈수록 길이 넓어지고 있었다.

대군이 포진하기에는 좋은 이점이 있지만 만약 요새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좁은 길목에서 싸워야 하기에 폰다 왕국으로서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 것을 설명을 하고 후터스 백작이 뒤로 물러나자 바우어 백작이 나서 어떻게 병력을 운용하고 어떤 식으로 기습을 하면 좋은 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재편된 병력으로 기습적으로 폰다 왕국군에게 공격을 감행했다.

* * *

챙챙.

“크아악!”

“화이어 볼.”

“실드.”

콰쾅!

“으악!”

굉장한 혼전이었다.

하지만 크리프 왕국이 가진 마법사의 병력도 월등하고 지금 병력의 수도 폰다 왕국군을 더 압도하고 있어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폰다 왕국의 귀족들은 기습적으로 공격한 크리프 왕국의 병력 때문에 몸을 사렸다.

그들 대부분이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인 탓에 더욱 그러했다.

왕세자는 성벽 위에 서서 전투를 보고 있었다.

“으음.”

그는 어렸을 적 폰다 왕국군과의 전투를 겪어보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주 멀리서 본 것이었고 현재는 직접 전투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참혹함이 그의 안색을 좋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스미트 후작이 그에게 다가왔다.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일까?”

“왕국을 위한 희생입니다. 또한 오늘이 아니라면 더욱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럴까?”

“예. 그러니 마음을 굳게 다지십시오.”

“아니야. 내가 전쟁을 너무 쉽게 보았어. 삼왕자군이 보유한 오만의 병력 앞에 너무나 적은 병력만을 크라우스 자작에게 주고 온 것도 마음이 쓰여.”

“그라면 잘 해결할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그는 소드 마스터 둘을 무너뜨린 강자입니다. 그와 글로리 기사단이 만난 것이니 무슨 수를 낼 거라 봅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이제 들어가십시오. 눈먼 화살에 맞으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난 여기에서 우리 병사들을 지켜보고 싶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외조부.”

“스미트 후작이라 불러주십시오.”

“아무튼 난 좀 더 앞에서 그들을 독려할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아파.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을 지켜볼 수조차 없어?”

“하지만 왕세자님의 신변이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건 왕국에 더욱 큰일입니다.”

“이렇게 외조부가 옆에 있는데 내가 무슨 일이 있겠어? 그렇지 않아?”

“왕세자님.”

스미트 후작은 잘 자라준 왕세자가 대견했다. 그리고 현재의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그가 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왕세자가 지켜보는 사이 새벽에 시작되었던 전투는 저녁이 될 때쯤 막을 내렸다.

계속 전투가 펼쳐진 것은 아니고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맞부딪친 거지만 그러면서 혈전이 계속되었다.

“우리 군의 피해는 어떻게 되는가?”

“근 만 명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왕세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무 피해가 크군.”

“아닙니다. 폰다 왕국군의 피해는 삼만이 넘습니다. 저희 병사들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 겁니다.”

“내일은 좀 더 밀어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녕 요새를 끼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싸우겠다는 말인가?”

왕세자가 우려를 표하자 바우어 백작이 나섰다.

“그래야만 합니다. 피해는 많겠지만 저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도 저번의 설명을 들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바우어 경이 잘 해주시기 바라오.”

“꼭 이기겠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좀 더 밀어붙인 크리프 왕국군은 폰다 왕국군을 후퇴시키면서 전선을 뒤로 가져갔다.

바우어 백작이 요새를 버릴 생각을 한 것은 호리병 모양의 지형이기에 많은 숫자의 병력을 적은 병력으로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에반이 버티지 못하고 삼왕자군에게 당해 수도가 함락될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 전에 병력의 일부를 뺄 생각으로 이런 작전을 짠 것이다.

그가 가진 마음가짐이 다르니 그 기세가 전투에서 보였다.

그날 바우어 백작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폰다 왕국군을 쫓았을 뿐 아니라 이만의 피해를 더 주었다.

며칠 후 폰다 왕국군의 증원이 있었지만 그때가 되자 병력의 수는 거의 차이가 없게 되어 폰다 왕국군도 자신의 병력을 믿고 밀어붙일 수 어렵게 되었다.

그렇게 두 진영은 고착이 되기 시작했다.

* * *

전쟁이 조심스레 진행이 되는 가운데 아트베라는 뒤숭숭했다.

가장 먼저 출발을 했던 홀름 자작이 실종이 되고 타 귀족들은 아트베라 관문으로 이동했다가 의견을 일치하지 못하고 불화만을 더 키운 채 다시 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불화의 시작은 바로 에반의 작전 때문이었다.

크라우스 기사단이 펼친 작전으로 인해 귀족들의 심사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기사를 그런 작전에 쓴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에반이 기습을 한 병력들은 모두 본래 이왕자군 소속이었으니 더욱 심했다.

이왕자군은 그 때문에 바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성토를 했지만 삼왕자군의 귀족들은 그걸 보면서 좀 더 지켜보자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이왕자군의 귀족들을 견제하려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다.

삼왕자도 내심 이왕자군의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공격을 하기를 바랐지만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반대를 하니 제대로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삼왕자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에반이 이끄는 진압군을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삼왕자의 영향력은 너무 미미했다.

만약 홀름 자작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그의 영향력을 좀 더 키울 수 있었겠지만 이미 홀름 자작은 죽고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되니 그들은 삼왕자군 소속이지만 그건 그저 이름을 빌려 쓰는 정도일 뿐 삼왕자의 권한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게 하나로 뭉치지 못하자 귀족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감을 키우고만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의견을 일치를 보았으니 기사들을 그런 작전에 투입한 점에서 항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진압군에 대한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기사도에 어긋난다는 그들의 항의에 나선 것은 쥬드 크라우스 백작이었다.

그는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들을 비난했다.

“외국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때에 서로 하나가 되어 타왕국의 침입을 막지 못할망정 계속해서 군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기사도를 운운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라. 현재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니 우리는 반란군을 사람이라 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몬스터와 같은 족속들이니 우리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거다.”

이 말에 삼왕자군은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더욱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아트베라 지역 곳곳에 그에 대한 벽보가 붙은 것이다.

그들의 반목에 대한 이야기나 그들이 병사들을 어떻게 취급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쓰여 있으니 삼왕자군 병사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그 지역의 백성들도 삼왕자군을 불신 어린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여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제는 진압군보다는 내부를 더욱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이제는 전면전은 생각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귀족들은 아트베라 성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으며 병사들은 각 병영들에 불만을 토로했다.

삼왕자는 다시 한 번 상황의 역전을 꾀하려 했다.

서로 극명하게 양쪽으로 갈라져 앉아있는 귀족들을 보면서 삼왕자가 말했다.

“상황을 역전시키려면 전면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오.”

“지금 당장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현재 여론이 좋지 않게 흐르고 있소. 그 상황을 뒤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소? 내 생각은 일단 진압군을 치는 것이 먼저라 보는데…….”

“안 됩니다. 지금 해야 하는 건 내부의 불만을 불식시키는 겁니다. 그 다음이 전쟁입니다.”

“맞습니다.”

많은 귀족들이 그에 대해 찬성을 했다.

그건 이왕자의 귀족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이러니 삼왕자는 또다시 자신의 뜻대로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 언젠가는 이들을 모두 쳐내버리리라.’

그는 굳게 다짐했다.

아직은 지지 않았고 시간은 많았다.

삼왕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우리의 힘을 보여준다.”

“지금은 그냥 수성을 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의 계책은 아주 제대로 돌아갔다.

삼왕자군의 사기는 떨어질 수 없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병력을 운용해야 하는 귀족들은 서로 반목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진압군이 아니라 내부 정비에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에반과 베켓 그리고 코퍼 남작이 짠 작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작전을 에반이 뒤엎고 공격을 한다고 하니 코퍼 남작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본래대로라면 코퍼 남작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남아 있는 이유가 없게 되지. 그건 코퍼 남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으음.”

만약 정말 만에 하나라도 반란군을 이길 수 있다면 그건 하나의 전설이 될 수도 있고 또한 현재 왕세자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물론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도박성이 짙었다.

삼왕자군은 오만이 조금 되지 않고 에반이 가진 병력은 칠천 정도이다.

한 명당 일곱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도 병사 일곱을 상대하기 어려운데 병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치였다.

“우리는 해야만 한다.”

베켓의 정보로는 삼왕자가 열심히 귀족들을 설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삼왕자가 자신의 진면목을 숨겼다는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병력을 추슬러 공격을 해올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기습으로 인해 몇몇 귀족들이 자신들의 병사들을 뺀 지금이 적기였다.

아트베라 관문의 튼튼함을 믿는 건지 현재 그 부근에는 만여 명의 병사들만이 상주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해볼만하다 에반은 생각했다.

“정말 철벽의 요새라고도 불리는 아트베라 관문을 뚫을 생각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삼왕자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아트베라 관문을 방문한다는 첩보가 있다. 그날에 맞추어 우리는 아트베라 관문을 공격하고 삼왕자를 잡는다.”

에반은 이미 마음을 정했고 또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코퍼 남작은 에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지만 그의 기사들이나 병사들을 보면 그를 믿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강병을 키워낸 에반이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알겠습니다. 준비를 하겠습니다.”

코퍼 남작은 군수물자 담당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틀 후 삼왕자가 아트베라 관문에 왔다.

그리고 그날 에반은 병력을 아트베라 관문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에 부산스러워진 삼왕자군은 곧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게 경계를 했다.

진압군이 병력을 데리고 왔다는 말에 삼왕자가 나가려 했지만 그건 따라온 브런디 자작에게 막혔다.

본래 삼왕자는 혼자 몸을 빼려 했었다.

그런데 진압군이 기습을 하고 삼왕자군을 내부에서 흔들자 삼왕자는 홀로 몸을 빼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는 남아있어야만 했다.

이왕자가 도망간 것 때문에 두 사람은 그대로 드러누웠는데 그 정도로 이왕자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탓이다.

사실 홀름 자작을 믿는 마음도 컸었는데 그까지 사라지자 삼왕자는 그 두 사람을 위해서 귀족들을 장악해야만 했다.

삼왕자는 위쓰를 죽인 원수이자 상황을 이렇게 만든 에반을 정말 보고 싶었다.

“놔라.”

“안 됩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지금 저들이 왜 도발을 하는지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다.”

“그들의 눈은 아트베라 전역에 깔려있습니다. 그런 그들이니 저하께서 이곳에 오신 것을 알고 도발을 하는 겁니다. 그들이 저하께서 모습을 드러내시는 걸 기다리고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차피 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저쪽에는 소드 마스터 두 명을 해치운 자가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음.”

브런디 자작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삼왕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 *

‘안 나오는 건가?’

삼왕자라면 당연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삼왕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그가 나오는 것을 막은 듯했다.

‘어쩔 수 없지.’

에반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옆에 있는 마법사에게 확성 마법을 시전하게 하여 성벽 위의 병사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외쳤다.

“항복해라. 그러면 살려줄 것이다.”

“흥. 그 정도 병력을 데리고 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크루에를 봉토로 받아 라트리아 관문을 지키는 매디슨 남작이 에반의 말을 듣고는 냉소했다.

“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항복만이 살 길임을 곧 깨닫게 해주지.”

“헛소리.”

그때 에반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

활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지점에 서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더 앞으로 가면 사정거리에 닿는다.

옆에 있던 코퍼 남작이 깜짝 놀라면 에반을 제지하려 하자 쥬드가 말렸다.

“형님께서 무슨 수가 있으니 행동하신 겁니다. 그러니 지켜보세요.”

“하지만…….”

코퍼 남작은 무장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가는 에반을 보면서 무모하다 느꼈다.

그건 성벽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매디슨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갑자기 이쪽으로 걸어오는 에반을 보며 눈을 빛냈다.

“에반 크라우스 자작인가?”

“예.”

“다른 뜻을 알리는 깃발도 없지?”

“예.”

사신이나 항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그에 맞는 색깔의 깃발을 든다. 그런데 에반은 그저 다가올 뿐이다.

“궁수들은 쏘고 마법사들을 불러라.”

“예.”

매디슨 남작의 명령에 지휘관은 대기시켜 놓았던 궁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기 걸어오는 자를 향해 화살을 날려라.”

쏴쏴싹.

거대한 물결이 치듯 하늘에 화살이 까맣게 덮였다.

아트베라 관문은 마법사들에게 제한이 있는 만큼 마법사들보다는 궁수에 중점을 두고 배치가 되어있었다.

성벽에서 일정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으면 저서클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마나가 불안정한 까닭이다.

화살이 에반을 향해 무수히 날아갔고 매디슨 남작은 회심의 미소를, 코퍼 남작은 굳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바탕 화살이 바닥을 쓸고 갔을 때 두 사람의 표정은 변했다.

에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화살은 에반을 빗겨나갔고 에반은 계속 그 속도로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시 쏴라.”

“예.”

쏴악.

다시 한 번 화살이 공중을 날아 에반에게 갔다.

그러나 또다시 화살은 에반을 피하기라도 하듯 그만을 비켜나가 바닥에 박혔다.

한 번의 우연은 있을 수 있어도 두 번의 우연은 믿지 않는 매디슨 남작이 지휘관을 바라보자 지휘관은 그 뜻을 알고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뭉그적거리고 있을 4서클 마법사들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에반이 이백보 정도 걸음을 옮겨 이제 성벽과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법사들이 도착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한다고 지금 왔는가?”

매디슨 남작의 질책에 열 명의 마법사들이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것보다 매디슨 남작의 말이 빨랐다.

“우선 저자에게 마법을 날리게.”

그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매디슨 남작의 말에 따랐다.

“선더볼트.”

“파이어 볼.”

“아쿠아 레인.”

그들이 마법을 쏟아 부었다.

화살과는 다르게 타깃팅이 되어 에반에게 날아가는 것이기에 매디슨 남작은 이번에는 에반이 곤죽이 되리라 믿었다.

콰쾅!

폭음이 일고 에반이 있던 일대가 먼지로 뒤덮였다.

모두가 그쪽을 주시하는 가운데 그림자가 보였다.

“꿀꺽.”

병사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리고 먼지가 채 걷히기도 전에 에반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마법사들은 당황했다.

분명 정확히 마법을 날렸건만 에반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당황하여 가만히 있을 때 먼저 정신을 차린 매디슨 남작이 소리를 질렀다.

“어서 마법을 더 날려.”

“아. 예. 예.”

하지만 당황한 마음에 그들은 마법을 다시 시전하지 못했고 그들이 겨우 캐스팅을 다하는 사이 에반이 먼저 성벽에 도달했다.

성벽 자체가 무서운 무기이기에 아트베라 관문은 해자가 없었다.

에반은 문이 있는 곳이 아닌 약간 왼쪽의 벽에 손을 짚더니 말했다.

“이건 너희가 초래한 일이다.”

그 말이 성벽에 있는 모두에게 들렸다.

매디스 남작이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쿠쿠쿠쿵.

성벽이 일렁인다.

에반을 중심으로,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중심으로 동심원이 일듯 성벽이 출렁거렸다.

“으악!”

“뭐, 뭐야!”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흔들리는 성벽으로 인하여 쓰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약간만 출렁이던 성벽은 이내 큰 파도로 변했다.

어느 정도의 데미지를 입으면 마법진이 활성화되어야 정상이건만 마법진은 활성화가 되는 동시에 그대로 사라졌다.

에반이 일으킨 데미지가 마법진이 버틸 수 있는 힘을 뛰어넘은 것이다.

콰콰쾅!

성벽이 에반이 손을 댄 곳을 중심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매디슨 남작이 에반을 쳐다보았다.

에반도 매디슨 남작을 보고 있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매디슨 남작은 에반의 입모양을 읽었다.

“아…….”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매디슨 남작은 무너지는 성벽과 함께 그대로 사라졌다.

에반이 몸을 돌리고 다시 진압군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며 쥬드에게 말을 전했다.

-뭐해?

그 한마디에 넋을 잃고 성벽을 바라만 보던 쥬드가 정신을 차리고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크라우스 자작이 길을 열었다.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병사들도 깨어났다.

쥬드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군해야합니다!”

병사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가자!”

쥬드가 먼저 말을 타고 달리자 그 뒤를 병사들이 따랐다.

“와아아아.”

너무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만 그 엄청난 일이 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게 만들었다.

지금 아트베라 관문 안에 병사들의 수는 만 명이 넘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은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조금 전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그가 있는 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우스 기사단이 가장 먼저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성문이 그대로 쓰러져 길을 만든 것이다.

“적이다.”

“대체 뭐야?”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삼왕자군은 갑자기 들이닥친 진압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밀리고 있었다.

제대로 진형도 갖추지 못하고 또한 무장도 안 한 상태에서 산발적으로 대응을 한 것도 허무하게 밀리는 데 한몫했다.

코퍼 남작은 뒤에서 가만히 서 있는 에반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쥬드에게 말했다.

“백작님.”

“왜 그러나?”

피에 물든 검을 들고 쥬드가 코퍼 남작을 바라보자 한 번 침을 삼킨 코퍼 남작이 할 일을 말해주었다.

“저희는 병사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 삼왕자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옆에 붙어 있던 베켓이 말하자 쥬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뒤를 따랐다.

아트베라 관문에서 가장 큰 저택에 다가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칼을 뽑고 덤벼들었다.

사악.

옆에서 쥬드를 따라오던 게이브가 앞으로 나서 그들을 상대했다.

“크윽.”

“억.”

상대가 네 명이나 되었지만 게이브는 몇 번 손속을 나누더니 그들을 모두 물리쳤고 그 기세로 굳게 닫혀 있던 문을 갈라버렸다.

카캉.

정문이 열리고 베켓이 앞서 들어가자 그 옆으로 한 인영이 나타났다.

게이브는 공격을 하려다가 베켓이 제지하자 칼을 거두었다.

“저희 측 사람입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지금 삼왕자가 안에 있나?”

마우스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몸을 피했습니다. 이 저택은 함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으음. 좀 늦은 건가?”

쥬드가 아쉽다는 듯 말하자 베켓이 요원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가?”

“텔레포트로 사라졌으니 찾기 어려울 겁니다.”

“텔레포트라니…….”

텔레포트는 마도사부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물론 그 전에도 텔레포트진을 만들어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때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마도사가 옆에 있는 건가?”

“아닙니다. 스크롤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스크롤?”

“예.”

“텔레포트 스크롤이라면 마탑이 개입되어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최소한 스크롤을 만들려면 그 스크롤에 새기려는 마법의 서클보다 한 서클은 높아야 새길 수 있었다.

7서클을 뛰어넘는 마법사는 마탑주들뿐이니 텔레포트 스크롤은 그들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조사를 해봐야지. 아무튼 이곳을 정리하자.”

“예.”

에반의 한 방으로 아트베라 관문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 * *

“모두 제압했나?”

“예.”

“피해는?”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일단 정확하게 알아봐라.”

“예.”

톰슨이 큰 소리로 말하면서 물러났다.

에반의 힘을 보고 나서 대답을 할 때 더욱 목소리가 커진 톰슨이었다.

“형님.”

“왔나? 삼왕자는?”

“먼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잡지 못했습니다.”

“추격대를 구성해야 하나?”

“그럴 수도 없습니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썼다더군요.”

“그래?”

쥬드가 에반을 바라보았다.

“왜?”

“그냥 괜찮나 싶어서 보았습니다. 안 좋아 보여서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에반이 털어놓았다. 쥬드에게라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말해주었지. 내가 있던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예. 만약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었다면 오늘 보여준 그 모습을 보고도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능력이지. 너는 이 세상에 이런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나?”

쥬드는 에반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도 에반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강한 존재가 있긴 하지만 그들도 에반에게는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에반이 그리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혼자서 오만의 삼왕자군을 상대해도 이길 것 같았다.

그런 능력은 어떻게 보면 축복 같지만 그건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보게 한다.

지금만 보더라도 병사들은 에반을 신이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냐?”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뭐지?”

“저에게는 그저 뛰어난 형님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에반이 쥬드를 잠시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쥬드도 에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여주며 아트베라 관문이 무너지자 삼왕자군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곳에서 도망 나온 이들에게 에반이 어떤 힘을 보여주었는지 퍼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도 못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도망을 쳤다는 삼왕자의 행방마저 묘연해 지면서 귀족들은 단합이 되지 않고 흩어지게 되었다.

삼왕자군이 와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압군은 아트베라 관문을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더 나아가지 않았는데 귀족들이 앞다투어 항복을 해오는 바람에 아주 손쉽게 아트베라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도망갈 귀족은 도망가고 진압군에 투신할 귀족들은 투신하면서 삼왕자군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이왕비와 그의 아버지인 크로스 후작이 잡혔다.

단 칠천의 병력으로 오만의 병력을 제압하는 순간이었고 이제 폰다 왕국과의 전쟁을 뒤를 걱정하지 않고 치를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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