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35/60)

제4장

에반은 알타니엘과 함께 최대한 빠르게 왕성으로 향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루드 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왕도에 도착한 마차는 빠르게 왕궁으로 달려갔고 왕궁으로 들어가기 전 왕궁 경비대에게 마차가 막혔다.

예전 같으면 가문의 상징을 보거나 마차에 누가 탔는지 마부에게 물어보는 것만으로 검문을 끝마쳤다면 지금은 경계가 아주 철저해져 그 누구라도 예외 없이 마차에서 검색을 받아야 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모두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불쾌해 할 귀족을 위해서인지 계단까지 준비하고 거기에는 양탄자까지 깔아 마차에서 편안하게 내릴 수 있게 신경을 써주는 경비병이었다.

에반은 그 쓸데없는 짓을 보면서 그 옆으로 내렸고 그건 알타니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준비를 하다가 에반이 그냥 내리자 에반을 쳐다보았고 에반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 건 필요 없다.”

“아. 예. 그렇다면 신분을 말씀해 주십시오.”

“에반 크라우스 자작이다.”

에반의 말에 경비병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손에 들린 서류를 잠시 보더니 군례를 했다.

“확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궁정 수석 마법사님을 만나러 오셨군요.”

현재 왕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목적을 알리고 수락을 받아야만 했었다. 사실 에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왕궁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왕궁 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해야 정상이지만 쥬드가 이미 에반을 위해 그 일을 처리했고 에반이 지금 왕궁에 들어갈 수 있는 확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행 분은 누구십니까?”

로브를 입고 후드를 쓰고 있는 것이 아주 수상해 보이기는 했다.

“밝혀도 됩니까?”

알타니엘이 에반에게 물었다.

“물론.”

에반의 말에 알타니엘이 후드를 벗자 경비병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아…….”

그를 보는 경비병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남자이건만 그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자 알타니엘은 속 후드 속에 얼굴을 감추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비병들이 아쉽다는 듯 그를 힐끗 바라 보며 말했다.

“엘프셨군요.”

“그렇다.”

“이 엘프 분도 같이 궁정 수석 마법사님을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그래. 엘프의 치료술이라면 전하께서 차도가 있을 수도 있어 데리고 왔다.”

“알겠습니다. 통과입니다.”

마차에 오르는 알타니엘을 보면서 경비병들이 아쉬운 듯한 시선을 던졌다.

그걸 보는 에반이 마차에 오른 그를 보며 물었다.

“저들이 왜 그러지?”

“제가 엘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엘프들을 만난 사람들의 행동과는 많이 다른데?”

“그건 저는 저주 마법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저주 마법?”

에반의 물음에 하이엘프인 글라리엔이 한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이 넋을 잃은 거군. 그런 이유 때문에 후드가 달려 있는 로브를 원한 건가?”

“예. 게다가 제가 하이엘프가 되었으니 그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사실 저희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에반 님께 감탄할 뿐입니다.”

시에라 또한 저주 마법이 풀려 쥬드도 처음 시에라를 보았을 때 넋을 잃었었고 그 때문에 비밀스러운 객실을 내준 것이었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마주치면 큰 파급이 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에반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자신들을 아무렇게나 대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반이 알타니엘의 말에 대답했다.

“난 네가 생각하는 인간과는 좀 달라.”

인간이 생각하는 미라라는 것은 절대적인 관념이 아니다. 그런데도 엘프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이 가장 조화로운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반의 관점에서는 엘프조차 조화로운 종족이 아니다. 사실 그에게는 인간이나 엘프나 드워프나 다 같은 범주에서 보이는 것이다.

공간을 인식하며 세상을 보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부정한 존재를 지극한 존재로 바꿀 수 있는 에반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알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넋이 빠지면 귀찮은 일이 생기겠군.”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럼 먼저 네 목소리는 손보지 못하더라도 얼굴은 손봐야겠군.”

“할 수 있는 겁니까?”

“엘프들의 얼굴과 목소리에 실린 마나가 어떠한 형태인지를 아니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반은 엘프가 어떠한 존재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마나가 얼굴과 목소리에 머물고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것이 저주 마법이었다는 건 오늘 알타니엘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던 것이다.

“잠시만 있어봐.”

알타니엘이 후드를 벗자 에반이 잠시 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공간을 약간 일그러뜨렸다. 그것으로 저주 마법이 했던 방법과 비슷한 형태로 그의 얼굴을 보면 거부감을 줄 것이다.

에반이 손을 떼자 알타니엘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인간에게 계속 진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면 그들은 분명 다른 마음을 먹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귀찮아서 해준 것뿐이야.”

그때 마차가 서면서 마부가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에반 님.”

마부이자 마우스의 요원인 그의 말에 에반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왕궁이 아닌 그 옆에 딸려 있는 건물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왕궁 안에 있는 마탑입니다.”

마부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잠시 기다리고 있자 마탑이라는 곳 안에서 로브를 입고 있는 척 보아도 마법사 같이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전 궁정 마법사인 도슨 남작이라 합니다.”

궁정 마법사에게는 누구나 작위가 있었다.

“에반 크라우스 자작이라 한다. 후작 각하는 어디 계신가?”

“전하의 곁에 계십니다.”

“그럼 안내하게.”

“예?”

“난 전하와 후작 각하를 만나러 온 것이니 안내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도슨 마법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아직 후작 각하께 크라우스 자작님이 오신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지?”

“중요한 일이 아니면 보고치 말라 하셔서…….”

“그럼 내가 이곳에 괜히 왔다는 말이군.”

“그것이 아닙니다. 그저 며칠만 기다리시면 후작 각하께서 크라우스 자작님을 찾으실 겁니다.”

“나도 그렇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나중에 만나면 후작 각하께 말씀을 드리지.”

“무, 무엇을 말입니까?”

에반이 옆에 있는 알타니엘을 쳐다보았다.

도슨 마법사도 알타니엘을 보았다.

그제야 알타니엘이 엘프라는 걸 깨달은 도슨 마법사가 놀라는 사이 에반이 말했다.

“전하께서 현재 위중한 이유가 독 때문이라는 소리에 치료에 능한 엘프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보고도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전하의 치료가 필요치 않은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돌아갔다고 말을 해야겠지.”

그 말에 도슨 마법사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 또한 엘프들의 치료술을 잘 알고 있다. 거기다 독에 관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종족이 바로 엘프들이었다.

에반이 그 중 한 명을 기다려 왔는데 그를 돌려보냈다고 보고가 가면 자신은 파직이 문제가 아니라 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도슨 마법사가 에반에게 말했다.

“정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빨리 보고를 하고 오겠습니다.”

그가 정말 허둥지둥 마탑 안으로 들어갔다.

알타니엘이 그 모습을 보면서 난색을 표했다.

“에반 님.”

“왜?”

“분명 제가 치료술을 알고는 있기는 하지만 신관이나 마법사가 치료하지 못할 정도라면 저는 치료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는 장로급이 나서야만 가능한 겁니다.”

“나도 너에게 치료를 바라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무슨 생각이십니까?”

“나 혼자는 왕을 만날 수 없어. 내가 치료를 한다고 하면 그들이 만나 줄 것 같나?”

“저는 인간들의 생리를 잘 모릅니다.”

“아무튼 너를 데려가는 이유는 네가 엘프이기 때문이야. 인간 세상에는 엘프들의 치료술이 굉장하다고 소문이 나있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무엇을 하는 겁니까?”

“그냥 구경이나 해.”

“구경이요?”

“그래. 내가 왕을 치료하고 나면 네가 했다고만 하면 된다.”

“저는 거짓을 말하지 못합니다.”

“응? 어째서?”

에반이 알타니엘을 쳐다보았다.

엘프들은 맹세의 말을 내뱉지 않는다면 거짓말은 할 수 있다는 소리를 분명 들었기 때문이다.

“제가 그냥 엘프라면 거짓을 말해도 되겠지만 저는 이제 하이엘프입니다. 만약 거짓을 말하게 되면 바로 부정한 존재가 되거나 소멸해 버립니다.”

“그런 건가?”

“예.”

“그럼 거짓은 말하지 말고 말을 돌려서 말해.”

“예?”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을 돌려서 네가 한 것처럼 행동을 하면 되지 않나?”

“그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해.”

“예.”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도슨 마법사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가 말했다.

“후작 각하께서 만나시겠다고 합니다.”

“안내해.”

에반이 말했다.

* * *

“언제 돌아왔나?”

“며칠 되었습니다.”

스미트 후작과의 만남은 저번에도 왔었던 응접실에서 이루어졌다.

“아무튼 왕자 저하를 위해서 기사를 붙여준 점은 고맙게 생각하네.”

“별 거 아닙니다.”

“하지만 궁금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대체 어떻게 알았나?”

“그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섞일 수 없는 자들이 왕궁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자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군.”

“저라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야. 아닐세.”

그러면서 스미트 후작이 에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로 평범해 보였다.

크라우스 백작가의 전 가주인 루크 크라우스를 닮은 얼굴이기는 하지만 몸이 호리호리하여 그와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그가 크라우스 백작가에 나타나고 한 일은 정말로 대단한 일 뿐이었다.

영지전의 숨은 주역이었으며 제국에 가서는 엘프와 인연을 맺었고 또한 그전에 마탑에서 드래곤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왜 그러십니까?”

에반은 스미트 후작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자 어쩔 수 없이 물었다.

“자네가 너무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조금 경계하는 말투의 스미트 후작이다.

“저도 그냥 인간입니다. 인간인 이상 다 똑같지요.”

“그러니 더 예측하기 힘들다네.”

“그럼 제 가문의 가주를 지켜보십시오. 저는 가주가 가는대로 따라갈 뿐이니까요.”

‘그것도 걱정거리라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던 스미트 후작이 옆을 바라보았다.

도슨 마법사의 말로는 크라우스 자작이 어쩌면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하였다. 그는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다만 크라우스 자작이 찾아왔다는 말에 만날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크라우스 자작이 데리고 온 자는 치료사가 아니었다.

“엘프였군.”

“예. 엘프숲에서 인연을 맺은 엘프입니다.”

스미트 후작이 알타니엘에게 인사를 했다.

“엘프는 오랜만에 보는구려. 스미트 후작이라 하오.”

“알타니엘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오다니 감사하오.”

“그저 이분과의 인연에 온 것뿐입니다.”

엘프라면 조금은 믿을 만했다.

그 또한 신관이나 자신 같은 마법사가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엘프가 낫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프를 만났을 때도 약간의 도움을 받았었기에 그에게는 호의가 가득했다.

“엘프의 치료술이라면 조금이라도 전하의 병에 차도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네.”

그러면서 스미트 후작이 일어났다.

알타니엘을 전하께 데려가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따라오게.”

에반이 스미트 후작의 말에 뒤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뒤로 알타니엘이 따라갔다.

응접실을 나서면서 에반이 물었다.

“그런데 배후는 잡혔습니까?”

이미 누가 꾸민 일인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에반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스미트 후작이라면 어쩌면 그 뒤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은 알 수 없네. 흉수 중 잡은 자가 한 명 있지만 그가 도통 입을 열지 않더군. 그러고 보면 그것도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

“저한테 말입니까?”

“그래. 자네의 기사인 아그나르 경이 온전히 한 명을 잡았으니 말이야.”

“그건 아그나르가 뛰어난 거지요.”

“아무튼 고맙네.”

에반은 스미트 후작이 자꾸 말을 돌리려는 것 같아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의심이 되는 곳도 없습니까?”

“있긴 하지. 하지만 의심을 한다고 달라지나?”

“아무튼 있다는 말씀입니까?”

“어디인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스미트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이름을 자네가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 상관없겠군. 그럼 말해주지.”

“듣겠습니다.”

“드미콘이라는 단체라네.”

“드미콘이요?”

에반으로써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래. 사실 처음에는 제국의 한 상단을 의심도 해보았네. 하지만 전하께서 피습을 당하시기 전 상단주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 그래서 의심을 접고 드미콘이라는 단체에 혐의를 두었지.”

지금 말하는 상단은 분명 유타 상단이었다. 그리고 스미트 후작은 그곳을 의심했으면서도 또 다른 곳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이름을 아는 것만 해도 우리 왕국의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갔네. 그러니 자세한 것은 몰라. 다만 십오 년 전 크라운 전쟁에서 그들이 개입했다는 것만은 알고 있지.”

에반이 알기로는 크라운 전쟁도 유타 상단이 꾸몄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스미트 후작의 말을 보자면 유타 상단뿐 아니라 드미콘이라는 곳도 그 당시 동참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스미트 후작이 꼬리를 잡은 곳이 바로 유타 상단의 배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게 조사를 해서 유타 상단의 배후를 잡은 것인가?’

“다른 것은 아는 게 없습니까?”

“그들은 신기루와 같네. 흔적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이상한 단체지. 하. 내가 지금 자네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그만두지.”

스미트 후작이 드미콘이라는 이름을 꺼낸 것은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에반이 그쪽의 인물일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에 떠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에반을 보니 드미콘에 궁금증을 드러내며 더 알고 싶을 뿐 그곳과는 연관이 없다 생각이 되자 더는 말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에반은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스미트 후작이 더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자 자신도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 왕의 처소에 다다랐다.

스미트 후작이 지나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선선히 몸을 비켜주었지만 에반과 알타니엘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사가 에반의 앞을 막으면서 스미트 후작에게 물었다.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전하를 치료하기 위해 크라우스 자작이 엘프 한 분을 모시고 왔네.”

“엘프를요?”

놀라 에반의 뒤를 쳐다보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알타니엘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엘프라는 것을 알아본 기사가 가로막았던 길을 비켜주었다.

엘프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계심을 반쯤은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들어가시지요.”

문이 열리고 스미트 후작과 에반, 알타니엘이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방 안의 침실에 루드 왕이 죽은 듯 누워 있는 모습이 에반의 눈으로 들어왔다.

안색이 파리하고 입술의 색이 파랗게 질린 것이 병색이 완연했다.

알타니엘이 에반이 하라는 대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진찰을 해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시오.”

스미트 후작이 보는 앞에서 알타니엘이 루드 왕을 진찰을 하는 척했다.

알타니엘도 엘프고 어느 정도 치료술에 정통했는지라 그가 독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 독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독하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자신의 귀로 에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하는 말을 스미트 후작에게 하게.

알타니엘이 마나를 이용하지 않고 메시지 마법을 펼치는 에반에게 신기해하면서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자 에반이 스미트 후작에게 할 말을 읊어주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알타니엘은 루드 왕에게 몸을 떼었다.

“어떻소?”

“다행입니다.”

“그것이 무슨 소리요? 다행이라니?”

“독이 피를 통해 온몸을 돌아다니고는 있지만 그 시발점에서 난 상처는 온전히 치료가 되었고 다른 장기들 또한 다친 곳이 없으니 피에서 독기만 제거하면 치료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소?”

“예. 다만 피에 독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더 방치를 했더라면 심장이 멈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바로 치료를 하게 준비를 해드리겠습니다.”

스미트 후작은 알타니엘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단 몇 번 몸을 만진 것을 가지고 현재 루드 왕의 상세를 제대로 짚은 것이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사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확인을 했고 신관도 확인을 해준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극비였고 또한 그걸 알아내는 데 걸린 시간이 거의 하루였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알타니엘이라는 엘프는 한순간에 그것을 파악했으니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바로 치료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십시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모두 나가 계시기 바랍니다.”

“예?”

“여기에서 제가 펼치는 치료술은 엘프와 인연이 아닌 분들은 보여드릴 수 없는 겁입니다. 그러니 모두 자리를 비켜 주셔야 합니다.”

“그건…….”

스미트 후작이 난색을 표했다.

절대 루드 왕을 엘프와 둘이서만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알타니엘이 스미트 후작의 표정을 읽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분을 구할 다른 방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이분에게 해를 끼치고자 한다고 하더라고 그건 며칠 남아 있지 않은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아닙니까?”

스미트 후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타니엘의 말대로 정말로 루드 왕의 몸속에 있는 독은 현재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 어떠한 해독에도 독은 반발할 뿐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라면 독은 며칠 안에 심장을 멈추게 할 것이고 그러면 루드 왕은 죽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말을 하는 알타니엘 때문에 갈등을 하고 있는 스미트 후작에게 알타니엘 말했다.

“저를 완전히 신뢰를 할 수 없다는 걸압니다. 그렇다면 에반 님을 곁에 두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크라우스 자작을 말이오?”

“예. 그는 저에게 아주 큰 은혜를 주었습니다. 저와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러니 에반 님이라면 인간이라도 제가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음. 알겠소.”

스미트 후작은 결정을 내렸다. 그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에반을 보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크라우스 가문의 사람뿐이라는 것이 스미트 후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을 들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하께서 싫어하는 가문의 사람이 전하의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다니.’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스미트 후작은 알타니엘의 말대로 루드 왕의 처소에 있던 모두를 내보내며 자신도 나가려 했다.

그러자 알타니엘이 말했다.

“숨어 있는 일곱 사람도 내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잠시 자리에서 멈칫한 스미트 후작이 헛기침을 했다.

“험. 알겠소.”

대답을 한 스미트 후작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도 나가줘야겠네. 모두 전하를 위한 일이니 잠시만 그렇게 해주게나.”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알 듯이 알타니엘은 스미트 후작에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아니오. 대신 꼭 치료를 부탁하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나가고 방문이 닫혔다.

이제 에반과 알타니엘 그리로 루드 왕만이 이곳에 있었다.

알타니엘이 에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

하지만 에반의 손짓에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알타니엘은 에반이 루드 왕을 향해 손짓을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내린 에반이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루드 왕은 깨어 있었다.”

“깨어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이미 피에 독기가 스며 있는 것만을 빼고는 완벽하게 치료가 된 상황이기에 깨어 있을 수밖에. 하지만 그 독기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뿐이지.”

“지독한 독이군요.”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한다는 건 정말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느끼다가 그냥 죽어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생각만 해도 무서운 독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실 겁니까?”

“치료를 해야지.”

그러면서 루드 왕에게 걸어간 에반이 루드 왕의 머리끝에 손을 대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스윽.

약간 검붉던 루드 왕의 몸이 에반의 손이 거쳐 간 곳만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그 광경을 놀란 듯 바라보던 알타니엘은 에반의 손이 루드 왕의 발끝까지 내려간 후 발끝에 상처를 내 피가 나오게 하자 재빨리 옆에 있던 그릇을 루드 왕의 발에 대어 피가 그쪽으로 흘러나오게 했다.

한동안 녹색의 빛을 띠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더니 그릇을 가득 채우고는 멈추었다.

“끝난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에반은 루드 왕의 몸을 한 번 더 관조를 하며 피 안에 섞여 있는 독기를 생기로 대체했다.

움찔.

그 상황에서 약간 고통이 느껴지는지 루드 왕의 몸이 떨렸지만 에반은 멈추지 않고 모든 독기를 없앴다.

“정말 신기합니다.”

“넘보지 마라. 이건 다른 사람이 아니, 다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능력이니까.”

알타니엘이 그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에반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아쉽습니다.”

“그냥 손에 닿지 않는 능력이라 생각해라.”

그 말에 알타니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드 왕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사람은 살아나는 겁니까?”

“살아났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

“어째서입니까? 독기만 아니라면 아주 건강한 사람 같은데…….”

“그래 독기만 아니라면 아주 건강하지. 그런데 독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심장에 독 기운이 남아 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모두 없앨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없애지 않은 겁니까?”

“내가 이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저 우리 가문이 완전히 안정이 되고 어느 정도 발전을 할 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되는 인간이다. 하지만 왕궁에 있는 치료사나 신관들이라면 심장에 남아 있는 독기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해서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도 있겠지.”

“조금은 잔인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가 우리 가문에 한 짓에 비하면 이건 은혜를 베풀어 주는 수준이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걸 아는 알타니엘은 에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무튼 심장에 독기가 남아 있다는 것은 밖에 있는 인간들에게 알려줘.”

“숨기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들도 인간들 중에서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어느 정도 검사를 하면 독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들이야.”

“하지만 완벽하게 고치지 못한 이유는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그건 제가 말을 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사실대로 말해.”

“예?”

“지금의 네가 이 이상 이자를 치료할 수 있나?”

“없습니다.”

“그럼 몇 년 후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하면 치료할 수 있을까?”

알타니엘은 에반의 말에 글라리엔을 떠올렸다.

자신은 이제 하이엘프가 하이엘프로서 다른 하이엘프에게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대답해. 네가 하이엘프라는 것을 밝히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군요.”

“또 네가 하이엘프라 말하면 저들도 너를 그리 쉽게 보지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알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들이 절 찾는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설마 엘프숲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잠시 생각을 하던 알타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곳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글라리엔에게 지식의 전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지식을 모두 전수를 받으면 엘프숲은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난 네 자식인 슈이엔에게 내가 살아 있을 동안 폴로냐 산에서 지내라고 할 생각이다.”

“폴로냐 산이 어디 있는 산입니까?”

“우리 가문 뒤에 위치해 있지.”

그 말에 알타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전 거기에서 살아야겠군요.”

“그리고 네 아내인 나르넬리에게는 엘프숲에 들어가 다른 다크엘프를 모아 오라고 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할 거다.”

“그럼 그들은 어디에서 삽니까?”

“당연히 폴로냐 산이지.”

“또 다른 엘프숲이 만들어지겠군요.”

일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변질되어 장로들은 수많은 부정한 존재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치료가 되어 한곳에 모이면 또 다른 엘프숲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 또한 너처럼 하이엘프의 가능성을 가진 엘프들이 있을 수도 있지.”

그 말에 알타니엘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이제 엘프숲은 제국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폴로냐 산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엘프숲을 지키는 하이엘프인 글라리엔은 늙었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하이엘프들이 많이 생긴다면 일족을 버리고 올 엘프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지?”

“전 상관없습니다.”

“상관이 없어?”

“사실 시에라와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전 부정한 존재가 된 후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까지 부정한 존재가 되어버려 정말 절망밖에 남지 않았지요. 사실 제가 살아 있는 건 시에라와 슈이엔 때문입니다. 아니었다면 이미 저희 부부는 이 세상을 등졌을 겁니다. 엘프로서 부정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하니까요. 그런 저를 다시 엘프로 만들어 주시고 제 아내와 자식까지 다시 엘프로 만들어 주시려 하는 분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저 하나의 대가가 아닌 수백 가지의 일이라도 전 따를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계산적으로 생각한 것이 미안해지는군.”

“부정한 존재를 다시 본래의 엘프로 돌아가는데 대가 하나라. 그건 계산적인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것입니다.”

에반은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살짝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 이제 나가자.”

“예.”

“아, 그전에 치료술을 힘들게 펼쳤다는 걸 보여줘야겠지.”

“어떻게 말입니까?”

“내 손을 잡아.”

“예.”

우우웅

“으윽…….”

에반의 손을 잡자 갑자기 몸에서 땀이 맺혔다.

갑자기 몸에서 열기가 솟아난 까닭이다.

그리고 의복이 축축해질 때쯤 에반이 손을 떼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헉. 헉. 예.”

그의 몸은 정말 땀투성이였다. 누군가 보았다면 굉장히 힘든 일을 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걸 보며 에반이 문을 열었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곧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