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엘프숲을 벗어나 다시 공작 성으로 향한 에반은 칠 일이 더 지났을 즈음 공작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반은 거기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엘프와 인연이 있는 자는 언제나 환영을 받을 만했기 때문이다.
“정말 대우가 좋군요.”
베켓이 에반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그를 만날 수 있겠지.”
“예. 그럴 겁니다.”
“정신 차리고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에반 님.”
“이리 오십시오. 공작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베켓이 대답을 하고는 집사를 따라 내빈실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파르테스 공작이 앉아 에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네. 파르테스 공작이네.”
“크라우스 가문의 에반이라 합니다.”
“허, 이렇게 젊게 보이는 친구가 저기 서 있는 페케와 같은 나이라니 사실 믿기지 않는군.”
이미 에반을 조사했다는 걸 은연중 비치는 파르테스 공작이었다.
“저에게는 영광스럽지 않은 상처입니다.”
“그렇기도 하겠군. 그나저나 오늘 파티가 열린 예정이니 참석을 하길 바라네.”
“예.”
그러면서 파르테스 공작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자네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을 걸세. 내가 자네를 원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일세.”
“예. 알고 있습니다.”
“음. 알고 있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사실 마탑주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자리를 만들지 않았겠지만 지금 보니 마탑주가 나를 위해 좋은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군.”
사실 처음에는 파르테스 공작은 에반에 대해 무관심했었다.
그저 마탑주의 요청에 의해 그를 초청한 것인데 엘프의 손님이고 또한 자세히 알아보니 그 무력도 만만치 않았다.
파르테스 공작은 제국의 소드 마스터이기에 에반의 기운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에반이 이미 소드 마스터이거나 그 직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에반이 자신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살짝 기운을 푼 것이지만 파르테스 공작은 그것이 다인 양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 나이는 사십대이지만 몸은 이십대 초반에 소드 마스터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절대로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영광입니다. 공작 각하.”
“아니네. 오히려 내가 자네를 보아서 영광이네.”
베켓의 조사대로 천생 무인인 파르테스 공작은 에반이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자라고 믿고는 더욱 기껍게 대하고 있었다.
“그럼 좀 쉬게나.”
“예.”
“페케, 어찌 보았나?”
에반이 물러가고 파르테스 공작이 서 있던 기사에게 물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실력자였습니다.”
“맞아. 정말 강해 보이지. 한번 대결을 해보고 싶을 정도야.”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는 가주도 아니라고?”
“예.”
“그럼 내가 거두어도 괜찮을 것 같군.”
“그렇습니다.”
“그럼 누굴 그에게 붙여야 할까?”
“크루세 자작이 좋을 것 같습니다.”
“크루세라면? 꽤나 검을 잘 쓰던 가신을 말하는 건가?”
“예.”
“그런데 왜 그이지?”
“제가 듣기로는 그 친구가 바로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였다고 합니다.”
“호. 그렇군. 그 친구도 소드 마스터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라우스 가문이라는 곳이 꽤나 대단하게 보이는군. 소드 마스터에 근접하는 실력을 몇 명이나 키워줄 수 있는 곳이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아무튼 그가 있다면 조금은 대화를 나누기 편하게 되겠군.”
“예.”
“그럼 그를 오라 하게나.”
“알겠습니다.”
에반의 생각이 멋지게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 * *
본래 첫날의 파티가 열리면 오기로 되어 있던 마탑주는 셋째 날 열린 파티가 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에반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달갑지 않는 이가 먼저 와 에반에게 알은체를 했다.
“자네가 에반이라는 자인가?”
붉은 로브를 입은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난 에반 크라우스라고 한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데 초면에 반말을 하지?”
에반은 바로 누구인지 깨달았지만 조금은 강하게 나갔다.
“난 화염의 마탑의 탑주네. 자네보다는 나이가 많으니 당연히 반말이지. 그게 마음이 들지 않나?”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아주 엎드려 절 받기군. 그래. 부탑주가 말한 대로 아주 막돼먹었어.”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소중한 가족을 빼내가려고 한 자를 그냥 보내준 것만도 많이 참은 겁니다.”
“말대꾸까지 하는군그래.”
“전 그저 어떻게 된 일인지를 말한 겁니다.”
“그렇군. 그래서 켈베스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탑주님, 켈베스 마도사는 물건이 아닙니다.”
“크흠. 내가 말이 헛 나왔군. 그래서 그를 풀어주지 않겠다는 건가?”
“그가 저희 가문에 있으려고 한다면 전 언제나 그를 보호할 겁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너무해. 그런 인재를 빼 가다니 말이야.”
그때 에반이 갑자기 말했다.
“이제 그만 하죠.”
“무엇을 말인가?”
“계속 절 확인을 했으니 제가 드래곤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습니까?”
“설마 알아차린 건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는데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에반은 탑주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진실의 눈이 있다고 믿게 한 건 크루세스 마법서에 있었던 마법이었다. 그건 드래곤도 마법을 감지 못하게 하기에 드래곤들이 그렇게 탑주들에게 속절없이 당한 것이다.
분명 평범하게 보이고 마법으로 확인한 결과 진짜 평범한 에반이 그걸 알 수 있을 리 없어야 한다.
‘그런데 파악했다. 뭐지?’
그러고 보니 파르테스 공작이 에반에게 살갑게 구는 것도 이상했다.
‘이렇게 비실거리는 놈을 그 무만을 숭상하는 자가 그렇게 대한다고?’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그건 탑주님이 알아내야 할 일이지요.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말하면서 에반이 자리를 떴다. 드디어 베켓이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베켓이 가리키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탑주는 에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지.’
사실 여기에 오는 것이 늦은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나중에 보지.’
그런 생각을 하며 탑주가 그 공간에서 사라졌다.
그때 에반은 드디어 발견한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당신이 소치니인가?”
갑자기 자신의 옛 예명을 말을 하는 이 때문에 돌아보다가 놀랐다.
자신의 주군이었던 분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에반 님이십니까?”
“후. 나에게 존대를 해주는군.”
“전 영원한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에반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물어는 봐야 했다.
“자네는 왜 기사단을 그만둔 것이지?”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는 본래 파르테스 공작의 가신 가문인 크루세 자작가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후계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 저는 집을 나왔고 기사 수행을 하다가 주군께 반해 그의 기사가 되었지요.”
“그런데?”
“그것이 운명의 장난인지 후계자들이 모두 죽고 후손도 남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온 것이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아직도 그립습니다. 그때가 말입니다. 정말 폐가 되지 않는다면 다시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는 자작 가문을 유지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럼 오게.”
“예?”
“드디어 십오 년 만에 우리 가문의 문은 열렸네. 누가 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지.”
“정말입니까?”
“그래. 만약 정말 지쳤다고 생각할 때 오게.”
“알겠습니다.”
“그럼.”
또다시 아니었다. 하지만 에반은 기분이 좋았다. 만나는 이들마다 크라우스 가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건 에반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에반은 베켓에게 갔다.
베켓은 혼자 오는 그를 보며 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번에도 아니군요.”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시 조사를 할까요?”
“아니. 괜찮다.”
“하지만 이제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래. 그러니 그 한 사람을 찾아. 그가 아니라면 그때 다시 조사를 해라.”
“하지만 그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베켓의 말에 에반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명 나타날 것이다. 사람이라는 건 죽지 않은 한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예.”
* * *
오늘이 파티의 다섯 번째 날이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 파티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파르테스의 공작의 성의에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파티장이 웅성거렸다.
예상치 못한 귀족이 온 것이다.
“크리너 하프스 후작이 들어오십니다.”
하프스 후작은 파르테스 공작의 정적이었다.
이 파티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파르테스 공작이 하프스 후작을 맞이하러 갔을 때 에반에게 다가온 이가 있었다.
“당신이 에반입니까?”
“응?”
“안녕하십니까? 제트로 워프스라고 합니다.”
에반이 돌아보자 처음 보는 청년과 그리고 벤트릭이 있었다.
“에반 크라우스다.”
“후후. 역시나 생각대로군요.”
“생각?”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고 모두를 깔보는 그 모습이 생각대로라는 말입니다.”
독설을 말하는 제트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라 할 수 있었다.
“공자님. 진정하십시오.”
“알았다.”
벤트릭이 제트로에게 깍듯이 존대하고 있었다.
에반은 벤트릭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불안정하군.’
그냥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리에 무언가가 벤트릭을 압박하고 있었다.
베켓에게 듣기로는 벤트릭은 제트로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렇게 깍듯한 모습은 이상한 것이다.
‘저 자가 수를 써 놓은 것 같으니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에반은 곧바로 벤트릭의 머리에 장난을 쳐 놓았다.
그런 후 그에게 암시까지 걸어놓았다.
그러고는 에반이 제트로에게 말했다.
“어차피 제국에서 살 거라면 더는 볼일도 없는데 그만하지.”
그러면서 에반이 등을 돌리자 제트로가 그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더는 볼일이 있는지 없는 지는 나중에 가서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때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
그러면서 에반은 파르테스 공작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프스 후작을 보았다.
‘설마 나 때문에 이곳에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또 누군가가 에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에반 님이십니까?”
“응? 누구지?”
“전 벨입니다. 오래전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였던 사람입니다.”
에반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에반이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를 찾아 베켓은 아직도 요원들을 총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반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벨?”
“예. 들어보셨는지요.”
“음, 생각해 보니 들어본 것도 같군.”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당신도 하프스 후작을 따라왔나?”
“아닙니다. 전 지금 유타 상단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유타 상단?”
“예.”
“좋은 곳에 있군.”
사에타 상단과 거래를 트면서 유타 상단도 이름을 들어보았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기사단을 그만두었지?”
“가주께서 쓰러지고 왕국에 기사단이 편입되자 그것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가주라…….’
벨은 지금 주군이 아닌 가주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왠지 그가 범인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침착해야 할 때였다.
“그렇군. 하지만 난 아버지를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 정말로 아버지께서 쓰러지시기 전에 굉장하셨나?”
“그랬죠. 가주를 이길 자는 없는 듯 보였으니 말입니다.”
진실과 함께 질투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 분이 암습에 돌아가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저도 그렇습니다.”
분명 거짓이었다.
“후, 정말 누가 독을 든 차를 주었는지 알면 좋으련만 단서가 없다.”
“그때도 몰랐지요.”
이 말도 거짓이었다.
“자네는 누가 그랬는지 의심 가는 자가 있나?”
“없습니다.”
진실이었다.
“누가 독을 탔는지 정말 모르는가?”
“예.”
이건 거짓이었다.
의심 가는 자는 없어도 누가 죽였는지는 안다.
그 말은 자신이 한 일이거나 그 범인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에반은 침착했다.
“미안하군,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했어. 어디 자네 이야기를 해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벨은 유타 상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에반이 그걸 보며 눈을 빛냈다.
눈동자 깊숙한 곳에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이제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에 연관된 모두에게 복수를 할 시간이었다.
「공간의 절대자」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