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아마 제국에서는 그저 흥미로운 사람이 나타났다고만 생각할 겁니다. 본래 특이한 이들은 대륙에 언제나 존재하니까요.”
에반은 베켓에게 자신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를 조사해보라 시켰고 그 정보에는 대부분 에반이 영지전에서 행한 행적이 담겨 있었다.
리츠가 에반을 보고 소드 마스터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스미트 후작은 그걸 믿지 않았는데 스미트 후작 본인이 마도사인 만큼 에반이 가진 마나양을 가지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것이 에반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에 에반은 자신이 제국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베켓에게 물었고 베켓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날 초대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나?”
제국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다면 그리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초대를 했다는 것은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마 부탑주가 문제였을 겁니다.”
“부탑주?”
“에반 님이 기절을 시켰던 마법사 말입니다.”
에반은 한참을 생각을 하다가 겨우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그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의 생각이 나면서 팔로스 영지로 진군하기 전 켈베스가 그에 대해 물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는 어떻게 되었지?”
베켓은 에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마탑의 부탑주라는 자리가 그리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마음을 먹는다면 크라우스 가문도 멸문을 시킬 힘이 있는 것이 마탑의 부탑주였다.
만약 에반을 받쳐줄 다른 이들이 없었다면 사단이 나도 벌써 났을 거라는 것이 베켓의 생각이었다.
“그는 켈베스 마도사와 대화를 나누고 그냥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는 에반 님을 겪었습니다. 마도사인 자신을 자신도 모르게 기절시킬 능력이 있다는 걸 안 것이지요. 게다가 크라우스가를 떠나기 전 영지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수소문하여 들은 그는 에반 님이 보기와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겁니다. 스미트 후작과는 다르게요.”
만약 스미트 후작이 에반의 실체를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진 않았을 거란 것이 베켓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신의 본래 실력을 숨기면서 한 가문을 거의 차지한 것처럼 보입니다. 꼭 누구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아니. 떠오르지 않는다.”
베켓이 한숨을 쉬고는 말해주었다.
“그건 드래곤이 유희를 할 때 쓰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부탑주는 의심을 한 겁니다. 에반 님이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입니다.”
“내가 드래곤이라고?”
“예.”
“그것 참 쓸데없는 생각을 했군.”
“하지만 부탑주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죠. 게다가 자신을 기절시킨 복수를 벼르고도 있고 말입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크라우스 가문을 빠져나왔다.
분명 자신이 에반에게 당한 것이 많은데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빠져나왔다는 것에 울분을 느끼고 그것에 대한 복수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탑으로 초대를 하지 왜 제국에 손을 뻗은 거지?”
“마탑은 표면적으로는 권력자들과 인연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에반 님은 마탑이 초대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겁니다.”
“그럼 직접 찾아오면 되지 않나?”
“그건 마탑의 불문율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문율?”
“예. 마탑주는 마탑에서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화염의 마탑과 가까운 파르테스 공작가에 사주를 하여 에반 님을 불렀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스미트 후작이 나타난 이유는 뭐지? 그는 친제국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요.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마탑과는 연관이 있지요.”
“마탑?”
“예. 스미트 후작은 마도사입니다. 하지만 벌써 십오 년째 그 자리에 있지요. 더는 왕가의 마법서 가지고는 발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마탑에서 나를 보내면 마도사를 벗어날 수 있는 마법서를 주려고 했다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요.”
“마탑이 그렇게 자비심이 많았나?”
“사실 4클래스까지의 마법서가 풀린 것도 다 마탑의 노력에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마법서를 꽁꽁 싸매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마탑에서 마법서를 받고서 그걸 연구하는 마법사 가문들뿐입니다. 마탑은 순수하게 마법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꼭 한 마탑을 선택하라고 하지 않나? 거기에 켈베스를 데리고 가려고 했고 말이야.”
“그거야 마탑은 여섯 개의 마법으로 나뉘니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5클래스에 오르려면 하나의 원소 마법을 택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켈베스를 데려 가려고 한 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로운 풍조 때문입니다. 그게 간섭하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탑에서는 강제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마탑에 들어오려는 마법사들은 많지만 고위 마법사가 되면 연구나 혹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마탑을 떠나지요. 한마디로 마법사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그런 이유라면 스미트 후작이 내가 말한 조건을 들어준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군.”
“예.”
“그럼 더 받아내도 그가 아깝지 않겠군.”
“그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국으로 가는 여정은 더 늦춰졌다.
* * *
십 일이면 왕국을 벗어나 제국으로 갈 수 있는데도 에반은 아직까지 제국으로 가는 여정의 반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십오 일째가 되는 날 에반은 다시 하루를 숙식이 모두 해결이 되는 여관에서 보내고 있었다.
십오 일이라는 시간은 에반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으로 인해 그는 왕국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안정이 되어 있어.’
십오 년 전의 전쟁으로 인해 피폐되었던 땅은 곡식이 자라고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이걸 보면서 베켓이 왜 왕국의 혼란을 바라지 않는지를 에반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지금 에반이 있는 주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어이, 들었어?”
“뭘?”
“이번에 영지전이 일어났다는데.”
“그게 정말이야?”
“그래. 팔로스 영지와 크라우스 백작가가 붙었다는군.”
“그건 작년 일이 아니야?”
“아니. 다시 한 번 붙었다나 봐. 팔로스 영주가 제국에서 용병을 고용했다는군.”
“쯧.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제국이라는 단어와 크라우스 백작가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창 음모론이 퍼져 있었는데 그 하나가, 십오 년 전 전쟁을 일으키게 만든 국가가 바로 바스트 제국이라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소문에 더해서 제국의 용병들이 구국의 영웅이 존재했던 가문을 치기 위해 왔다는 말에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걱정할 정도로 크라우스 백작 가문이 약한 건 아니야.”
“설마 이겼다는 거야?”
“그래.”
“그분들은 분명 기사단을 왕가에 바치지 않았나?”
“그런데도 다른 기사들을 키워서 막아내었다는군. 현 가주님의 형이라는 사람도 돌아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야.”
“이야.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그럼 팔로스 영주는 어떻게 되었지?”
“어떻게 되긴. 당연히 영지에서 쫓겨났지. 그런데 그 영주라는 놈은 재산을 모두 들고 가신들도 나 몰라라 한 후 제국으로 피신을 했다고 하더라고.”
“뭐? 우리 왕국의 귀족이 그런 짓을 했다고?”
“그러니까 말이야. 아직까지 그런 귀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야.”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잘된 일이기도 해.”
“뭐가?”
“그런 귀족이 제국으로 갔다는 거 아닌가? 분명 우리 왕국을 좀먹는 귀족일 텐데 잘된 일이지 않아?”
“그런가? 하하하.”
“그런 의미에서 술이나 한잔 마시자고.”
“그럴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반이 베켓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귀족들을 좋아하는군.”
생각보다 평민이 귀족을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박하지 않았다.
자신이 책을 읽은 것과는 많이 대조적이었다.
“십오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크라운 전쟁이 있은 후 루드 왕이 치세를 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게 루드 왕 때문이라고?”
“예.”
“흠. 그건 아닐 거야.”
루드 왕과 만났을 때 너무 거리가 멀어 루드 왕이 어떤 인물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가 절대 좋은 군주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만약 좋은 군주라면 절대 크라우스 가문을 배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에반은 그보다는 스미트 후작과 노드에르 백작이 왕국을 이렇게 풍요롭고 살기 좋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을 파악한 바로는 아마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예? 아니라고요?”
“그래. 아마 재상이나 스미트 후작 덕분에 나라가 안정이 된 것일 테지. 그건 정보에 없나?”
“무슨 정보 말입니까?”
“정책 결정을 어떻게 하고 왕은 어떻게 명령을 내리는 지 말이야.”
“그것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조사해 봐. 그럼 내 말이 맞을 거야.”
“예.”
그때 여관의 문이 열리면서 무장을 한 기사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잠시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기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마법사도 그리 꺼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 가문의 영역에서 사는 이들은 조금은 힘겹게 살았었군.’
쥬드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없이 가문을 영위하기에 바빴을 때 꽤나 부정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그걸 참고 넘어가 준 것은 아마 크라우스 가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에반의 쇄신에 부정 축재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곳을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법사와 기사 둘이 에반의 앞에 멈춰 선 것이다.
“누구지?”
“스미트 후작 각하가 보내서 왔습니다.”
‘드디어 왔군.’
“그래. 무슨 일이야?”
“스미트 후작 각하께서는 곤란한 일이 있다면 모두 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스미트 후작은 이미 에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이들을 보내왔다.
에반도 사양할 생각이 없기에 마법사를 자리에 앉게 했다.
베켓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은 마법사가 물었다.
“먼저 물어보지. 뭐든지 가능하다는 건가?”
“후작 각하께서 할 수 있는 일이시라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로만 약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혹시 후작님께서 제국에 도착하면 모른다는 듯이 외면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제가 왔습니다. 제가 바로 후작 각하께 보고를 하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에반 님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법사가 에반의 옆에 서 있는 베켓을 한 번 쳐다보았다.
베켓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군. 그럼 위층으로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예.”
“기어코 제 신분이 노출이 되었군요.”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었으니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마라. 어차피 너 정도면 몸을 피하는 건 쉬운 일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분명 엠이 말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분노가 치미는데요.”
“그럼 너도 소문을 퍼트리면 되는 거다. 그놈이 무슨 생각으로 네 정체를 알렸는지는 모르지만 엠이란 한 명이 아니라는 소문을 퍼트려라.”
“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나중에 설명해 주마. 지금은 이들과 할 이야기가 많아.”
“하긴 그렇군요.”
베켓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에반과 마법사는 방으로 들어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오후가 지나고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된 긴 이야기였다.
* * *
이제 에반은 제 속도를 내며 제국으로 향했다.
베켓은 꽤나 놀랐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설마 왕이 그걸 허락할 줄은 몰랐습니다.”
“네가 내놓은 사안인데 그것이 수락될 줄 몰랐다니. 그럼 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한 거란 말이냐?”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 그냥 농담 삼아 이야기한 거고 그걸 진짜로 말한 건 에반 님이셨잖습니까?”
“그게 왜 농담이지?”
“솔직히 기사 수의 제한과 전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들을 은퇴해도 돌아오지 못하게 한 건 십오 년간 크라우스 가문을 크지 못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풀어주다니 루드 왕이 미치기라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는 루드 왕이 아니라 스미트 후작과 거래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본 가에 대한 건 모두 왕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과한 요구는 아니다.”
“과한 요구가 아니라니요?”
“이미 우리는 이터널 용병단을 힘으로 압도했다. 그건 이미 전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들이 없어도 우리의 힘이 강해져 우리끼리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럼 기사의 제한을 푼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건 우리가 재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예?”
“지금까지 본 가를 좀먹던 인물들은 모두 왕가에 명령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을 모두 치워버리거나 회유를 했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이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이 사라진 건 아니지. 그걸 보고 우리는 재물이 없다고 보았지. 게다가 팔로스 영지를 상대하느라 더욱 많은 돈을 썼는데도 그 영지를 포기했으니 기사의 수의 제한을 푼다고 하더라도 얼마 충원을 못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군요.”
이미 에반에게 폴로냐 산에 묻혀 있는 광물 이야기를 들었던 베켓은 금방 이해를 했다.
“또 아그나르를 일왕자에게 붙여주었으니 스미트 후작이 고맙게 생각하겠지. 그를 지지한다는 소리이니까 말이다.”
일왕자는 스미트 후작이 후원하는 왕자였다. 그러니 그에게는 크라우스 가문을 좋게 생각하는 마음이 많이 작용을 했을 것이다.
“알아들었습니다.”
베켓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러지?”
“명색이 정보를 만지는 사람이 그런 사실을 짜맞추지도 못하고 에반 님의 말에만 맞장구를 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더 열심히 뛰어다녀. 나만 쫓아다니지 말고.”
“알겠습니다.”
베켓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지막 에반의 말은 지킬 생각이 없었다.
* * *
“안 됩니다.”
이틀 만에 제국과 왕국의 경계를 넘어서 이제는 파르테스 공작가로 가고 있던 에반 일행은 처음으로 제지를 받았다.
어디서나 무조건 통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르테스 공작가의 초대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런 마차를 세우고 돌아가라고 하니 베켓이 궁금증에 나와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곳으로는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마차에서 나오는 사람이기에 병사가 존대를 했다.
“저희는 파르테스 공작가의 초대를 받고 가는 중입니다.”
그 말에 살짝 안색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비켜주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지 사정을 설명해 주시오.”
“지금 영지전이 한창입니다. 만약 이 상태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으음.”
베켓이 고민했다.
이곳으로 가는 것이 파르테스 공작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이 길로 가지 못하고 돌아가면 엘프숲이 있는 곳을 완전히 돌아가야 하기에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리는 것이다.
그때 고민을 하고 있는 베켓에게 에반이 말했다.
“시간도 많은데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언제까지 오라는 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초대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마차가 다시 뒤로 돌아갔다.
그곳을 떠나면서 베켓이 한숨을 쉬었다.
“휴. 봄이 지나니 전쟁이 기승을 부리는군요.”
“대체 영지전이 왜 일어나는 거지?”
크리프 왕국에서 크라우스 가문과 팔로스 영지 간의 영지전이 일어난 건 왕국 내에서 오 년 만에 일어났던 영지전이었다.
그런데 제국을 보면 빈번히 영지전이 일어나니 조금은 의문이 드는 것이다.
“힘을 제대로 터뜨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쪽을 다시 수복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힘이 되지 않으니 힘은 쌓여만 가고 그 힘을 어느 정도 풀 수 있는 건 동쪽의 야만인들의 왕국을 건드리는 일인데 거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국의 황제가 영지전을 권장하는 면도 있습니다.”
“차라리 영지전으로 제 힘을 깎아먹는 것보다는 북쪽의 프레스톤 제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 낫지 않는 선택이지 않나?”
“바스트 제국으로서는 아마 이긴다는 확신이 없다면 절대 덤벼들지 않을 겁니다. 이미 한차례 경험을 한 바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군.”
중앙의 바스트 제국과 북쪽의 프레스톤 제국이 형성된 이유를 알고 있는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트 제국은 벌써 천여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속에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건 일례가 없는 일로 본래 흥망성쇠가 있어야 하건만 이상하게도 제국에는 몇 대에 걸쳐서 한 번 강력한 황제가 나오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프레스톤 제국에게 북쪽을 내어준 건 그 강력한 황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본래 중앙은 물론이고 북쪽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바스트 제국은 그 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힘이 강하면 내부에서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고 힘을 가진 대영주들이 난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정말로 하늘이 내려주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황제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몇 대에 걸쳐 나온 황제들보다도 더욱 강한 황제였다
그가 바리오스 대제였다.
그는 그가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주기 전에 영주들의 난립을 완벽하게 억누르고 더욱 확실하게 황권을 공고히 했다. 게다가 주위의 몇 개의 왕국마저 병합하여 더욱 큰 제국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바리오스 대제로부터 영주들을 견제해야 한다는 걸 수없이 듣고 자랐던 부어 황제는 영주들을 더욱 억누르는 법을 지정했고 또한 무를 숭상하는 귀족이 아닌 문에 밝은 귀족들을 관리에 임명하고 더 나아가 문관들을 더욱 우대해 주었다.
그런 부어 황제의 정책에 바스트 제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한 시기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름다운 문학들이 쏟아져 나오고 명성 있는 예술가들이 서로의 실력을 뽐내었다.
문화적으로는 완벽하게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부어 황제의 실책이 되었다. 너무 문학적으로 한세대를 다스려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다음 황제인 디서러 황제 또한 제위에 오르고 아버지처럼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부어 황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마저도 무를 배척하고 문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부어 황제는 무를 숭상하는 영주들이나 귀족들을 배척하면서도 자신은 무에 힘쓰고 또한 황궁 기사단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사단으로 만들었었다.
하지만 디서러 황제는 기사단마저 배척하고 문관들과 시를 짓고 문학을 교류하는 데 힘을 쓰기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연하게 제국의 풍조는 완벽하게 무에서 문으로 넘어갔고 그 상황에서 몇 개의 왕국을 병합하고 힘을 키워가던 프레스톤 제국이 바스트 제국을 침략한 것이다.
모두가 문학에 취해 있던 터라 제국은 속절없이 프레스톤 제국에게 밀렸다.
만약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색 가면을 쓴 기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제국은 프레스톤 제국에 먹혀버렸을 수도 있었다고까지 역사가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 후 디서러 황제는 제위에 오른 지 이십 년 만에 황제자리에서 물러났고 현재 바스트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바리오스 2세가 제위에 올랐다.
현 황제를 바리오스 2세라 칭한 건 바리오스 대제처럼 제국을 키워달라는 디서러 전 황제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디서러 황제의 바람과 같이 바리오스 2세는 제국을 훌륭하게 다스렸다.
지금 힘을 키우고 영지전으로 영주들을 조종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우려되는 건 바리오스 2세의 나이였다.
본래 바스트 제국의 황제는 오십 년을 주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디서러 전 황제는 이십 년 만에 제위에서 내려왔고 열 살밖에 되지 않았던 바리오스 2세에게 큰 짐을 주었다.
처음에는 더 흔들리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판단과는 달리 바리오스 2세는 훌륭하게 제국을 다스렸고 아버지의 제위기간까지 채우기 위해 칠십 년간을 다스리다 보니 벌써 팔십이 되었다.
국정에 힘을 쏟았는지 요즘은 잔병치레로 인하여 바리오스 2세가 아닌 현 황태자가 직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귀족들은 아직도 바리오스 2세가 황제의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사실 황태자가 바리오스 2세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 바스트 제국이 가진 가장 불안함 점이었다.
“어쩌면 황제가 교체되고 그 후에는 바로 제국과 제국 간의 크나큰 전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황태자는 자신이 아버지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전쟁이 끝난 후가 문제입니다.”
“왜지?”
“현재 프레스톤 제국의 황제나 바스트 제국의 황태자나 호전적인 인물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바로 정복 전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반 님.”
“우리 왕국도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예.”
“우리가 상관이 있나? 피해만 없다면 우리 가문이 제국의 귀족이 되든 왕국의 귀족이 되든 상관이 없다.”
분명 에반은 베켓의 말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 생각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베켓이 고개를 젓고 있을 때 또다시 마차가 멈추었다.
“무슨 일이지? 또 영지전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나?”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베켓은 재빠르게 마차에서 내렸다.
이미 태양이 질 시간인지 석양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그 석양을 등지고 세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복장을 보니 절대 병사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베켓이 외쳤다.
그들은 베켓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더니 베켓이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엘프?”
이질적이게 생긴 얼굴이었다.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것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마음속에 파고드는 것을 확인한 베켓이 엘프임을 확신했다.
갑자기 이는 살기에 마차에서 내린 에반이 마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갑자기 말이 제 말을 듣지 않고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 엘프들이 나타났습니다.”
에반은 그 말을 듣고는 이번에는 엘프에게 물었다.
“너희가 마차를 멈추었나?”
하지만 그들은 에반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할 말을 했다.
“잠시 마차를 수색하겠소.”
아름답지만 거부감이 드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에반이 물었다.
“무슨 권리로?”
“제국과 맺어진 협약이오.”
“엘프숲에서 나왔나 본데 미안하지만 우리는 제국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제국의 협약에 따를 이유가 없지.”
“굳이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냐?”
에반에 왼쪽에 자리해 있던 여자 엘프가 단검을 꺼내며 반응했다.
그러나 앞에 나와 있던 남자 엘프가 여자 엘프를 저지했다.
“에그리나. 그만 물러서라.”
“파라스. 하지만.”
“물러서라. 이자의 말대로 다른 왕국과는 우리가 제국과 맺은 협약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슥.
팍.
말을 끈 파라스가 손을 들자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땅에 박혔다.
“그렇기에 우리는 협약이 되지 않는 저 인간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에반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인간보다 더 안하무인인 자들이야.”
“안하무인?”
파라스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의문을 표할 때 에반이 설명을 해주었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한 에반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오른편에 있던 엘프가 손에 들고 있던 활에 화살을 메기더니 그대로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