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28/60)

제7장

루드 왕과 스미트 후작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대전 밖으로 나온 쥬드와 에반은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잘했다.”

“그걸 포기했으니 저들도 고민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곡식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값이다.

하지만 크라우스 가문에는 드워프가 있고 폴로냐 산이 있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이젠트로가 폴로냐 산과 그 뒤를 잇는 산맥에 굉장히 많은 양의 여러 광물이 묻혀 있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아무리 곡식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건 보석을 드워프의 손으로 가공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어쩌면 하나의 보석으로 만든 사치품이 팔로스 영지에서 거두어들이는 곡식보다 더 값어치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걸 모르는 가신이나 베켓은 영지를 반납한다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미 그걸 알고 상의를 했던 쥬드는 아무런 미련 없이 팔로스 영지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지를 포기하는 강수로 인하여 루드 왕은 크라우스 가문이 진짜로 크리프 왕국을 위해 희생을 하는 충성스런 가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 그건 아니었다.

쥬드가 에반에게 말했다.

“왕국에 대한 충심을 가진 것은 아버지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아직도 그때가 잊히지가 않습니다.”

쥬드에게는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는 왕국에 대한 분노만 남았다.

그저 힘이 없어 움츠려 살았지만 이제 무력과 재력이 갖추어지려 하자 쥬드는 예전의 나약함을 버리고 아버지인 루크 크라우스를 보는 것과 같이 강인한 모습을 에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소리를 차단하고 시종의 안내에 따라 걷고 있던 두 사람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프라마 남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전하께서 별실로 두 분을 모시랍니다.”

“별실이라면 왕성에 머물라는 말입니까?”

“예.”

쥬드가 에반을 바라보자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다면 그럴 수밖에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날 두 사람은 왕궁에 머물 수 있었다.

* * *

다음 날이 되자 쥬드와 에반은 시종을 따라 한 내실로 안내되었다.

거기에는 이미 스미트 후작과 노드에르 백작이 자리해 있었다.

서로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스미트 후작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겉치레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예의였지만 어제의 그 이야기를 빨리 다시 듣고 싶어 했다.

“이곳에서 우리만을 만나게 해서 미안하네. 전하께서는 오늘 일정이 잡혀 있어서 움직이기가 힘들다네.”

“아닙니다.”

“그럼 어제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까?”

스미트 후작의 말에 쥬드가 답했다.

“더 할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납골당까지의 땅을 저의 가문의 영역으로 인정하신다면야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정말 그것으로 되겠는가?”

“예. 저희의 본래 근간이 되었던 땅을 주신다면 만족합니다.”

노드에르 백작이 날카롭게 물었다.

“십오 년 전으로 돌려 달라는 이야기인가?”

“말하자면 그렇지요.”

스미트 후작이 노드에르 백작에게 물었다.

“어떤가? 재상. 그렇게 할 수 있겠나?”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던 노드에르 백작이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모두 해줄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들이 십오 년 전 왕가에 돌려준 땅 중 지금 다른 귀족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럼 되었군.”

“다만.”

“다만?”

“다만 폴로냐 산의 뒤쪽의 산맥까지 크라우스 가문에 넘기는 겁니까? 본래대로라면 그곳도 크라우스 가문의 영역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본래 크라우스 가문은 곡창지대는 아니지만 산맥을 포함한다면 꽤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십오 년 전 귀족들에게 나누어 줄 땅이 없다는 핑계로 조금씩 빼앗아 갔었던 것이다.

쥬드가 노드에르 백작에게 재빨리 말했다.

“사실 그 험준한 산맥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기사들이 그곳에서도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걸 국영지에 침입했다고 처벌을 받지 않게만 되면 좋겠습니다.”

“훈련을 거기에서 한다고?”

“예. 저희 기사단은 전통적으로 폴로냐 산을 기점으로 산맥을 훈련장으로 썼었습니다. 하지만 십오 년 전 그곳을 반납한 후 그곳까지 갈 수가 없어서 훈련을 하는 데 불편한 사항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스미트 후작과 노드에르 백작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지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직 그 산맥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스미트 후작이 쥬드에게 말했다.

“그건 나중에 실무자와 조율해 보겠네.”

그 말에 쥬드가 난색의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실무자를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실무자를 데려오지 않았다니?”

“어떤 것을 협상하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닌 순수하게 영지를 내놓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실무자를 데리고 올 필요가 없지요.”

“허어.”

스미트 후작이 쥬드의 말에 감탄을 했다.

그건 노드에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영지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는데도 실무자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로 순수한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군. 우리의 생각이 짧았네.”

“아닙니다.”

“아니, 아니야. 우리는 협상을 할 생각만 했어. 자네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내가 다 부끄럽군.”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네. 그럼 오후에 다시 보세나. 그때면 자네의 뜻대로 될 것이네.”

스미트 후작이 일어나며 잠깐 에반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에반이기에 존재감이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스미트 후작은 내내 그를 의식하는 듯했었다.

쥬드도 그걸 눈치 챘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면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후작님.”

“아니야. 그럼 오후에 보세.”

“오후에 다시 봅시다.”

스미트 후작과 노드에르 백작이 그렇게 말한 후 먼저 내실을 나갔다.

그들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반나절 동안 많은 것을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나올 것이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쥬드가 물었다.

“잘될까요?”

“아마 그들은 큰 선심을 쓰듯 폴로냐 산맥 전체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십오 년 전의 영역을 모두 인정하려면 그 수밖에 없지.”

“그렇겠지요?”

“그래. 그리고 그곳에 실무자 대신 네가 직접 조정을 하겠다는데 귀족의 체면을 구길 짓은 하지 않겠지.”

“그리고 보물산은 우리 것이 되겠군요.”

“그럴 거다.”

에반이 실무자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아마 스미트 후작은 쥬드가 연기하는 줄도 모르고 광물이 묻혀 있는 산을 통째로 토해낼 것이다.

“분명 왕실에서도 광물이 묻혀 있는지 조사를 해보았는데 드워프가 찾은 것의 하나도 찾지 못하다니 조금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운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그건 운이 아니다.”

“운이 아니라니요?”

“그저 이 왕국의 현실일 뿐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묻어두었겠지. 그 누가 그곳까지 가서 열심히 조사를 하겠는가? 자기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렇군요.”

“아무튼 일어나자. 방에서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알겠습니다.”

그 두 사람이 일어나 내실 밖으로 나왔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왕실은 청소나 요리를 하는 하인들을 빼고는 모조리 귀족이었다.

그러니 쥬드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보는 자가 쥬드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저는 일왕자님을 보필하는 하인입니다. 일왕자님께서 꼭 크라우스 백작님을 뵙기를 원해 찾아왔습니다.”

“일왕자님이?”

크리프 왕국은 왕의 권력욕 때문에 아직까지 왕세자가 없었다.

거기에 아직 왕자가 어린 것도 한몫했다.

스무 살은 넘었지만 루드 왕이 보기에 세 왕자 모두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같이 가겠습니까?”

“아니. 난 방에 들어가봐야겠다.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지겹게 느껴진다.”

“알겠습니다. 형님.”

쥬드가 에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인을 따라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시종이 에반을 안내해 배정받았던 별실로 들어갔다.

별실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나?”

“얼마든지요. 이곳에 앉으십시오.”

스미트 후작은 내실에서 나가기 전 에반에게 잠시 보자는 메시지 마법을 날렸었다.

그리고 에반이 별실에 들어가자마자 찾아온 것이다.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그것이…….”

스미트 후작이 뜸을 들였다.

그걸 에반은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반문도 없이 뻔히 자신을 바라보는 에반의 시선에 스미트 후작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제국에서 자네를 보자고 했네?”

“어떤 제국 말입니까?”

“바스트 제국밖에 더 있겠나?”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사실 팔로스 백작은 바스트 제국의 유서 깊은 가문의 외손자라네. 그런데 그가 철저하게 당하니 그렇게 굴욕을 준 귀족을 만나고자 파르테스 공작이 자네를 청했다네.”

에반이 다시 물었다.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묻는 에반의 시선을 피하며 스미트 후작이 말했다.

“흠흠. 난 잘 모르네.”

“정말입니까?”

이제는 스미트 후작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아무리 제국의 공작이더라도 후작에게 시켜 한 귀족을 오라 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일단 크리프 왕국은 제국의 속국이 아닌 중립 왕국인 만큼 제국의 간섭을 심하게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스미트 후작이 이렇게 부탁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입을 다문 스미트 후작을 보며 에반이 말했다.

“말을 하지 않으시겠다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이미 베켓에게 대륙의 정세에 대해 들어두었기에 자신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사람이 없음을 에반은 잘 알고 있었다.

“그, 그런가? 하지만 자네가 제국을 간다면 그건 우리 크리프 왕국에 크나큰 도움이 되는 길일 걸세.”

“가서 죽기는 싫습니다.”

“누가 죽는다는 건가?”

“왠지 제 예감이 좋지 않아서요.”

“으음.”

그의 말에 스미트 후작은 어떻게 그를 회유해야 할지 고민에 들어갔다.

그런 스미트 후작을 에반이 살짝 찔러보았다.

“하지만…….”

“응?”

“하지만 조금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럴 건가?”

단번에 스미트 후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 가려면 작위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제가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작위가 없으니 제국에서 위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작위가 없는 귀족이라면 책임은 크지만 그에 관한 권한이 적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해결해 놓을 테니.”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지금 저희 가문이 많이 어렵기도 합니다. 제가 일선에서 움직이면서 가문의 일을 도와야 하는데 제국에 가면 누가 제 가문을 돕겠습니까?”

“그것도 걱정 말게. 내가 다 처리해 주겠네.”

‘시원시원하게 승낙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큰 이득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승낙은 하지 않고 갈 수도 있다는 뉘앙스만을 풍겼다.

우선은 쥬드와 베켓과 상의해 볼 문제였다.

“그럼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혼자서요.”

“꼭 그러리라 믿네.”

스미트 후작이 에반이 한 말의 뜻을 알아듣고는 일어나 별실을 나섰다.

그는 별실을 나서기 전 몇 번이나 에반에게 가기 전 꼭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 베켓의 의견을 들어봐야겠군.’

에반이 스미트 후작이 나간 곳을 잠시 쳐다보았다.

* * *

점심때가 될 즈음 쥬드가 에반의 별실로 들어왔다.

“잘 갔다 왔나?”

“예.”

“어떻지?”

쥬드는 에반이 무엇을 묻는지 깨닫고는 대답했다.

“온화한 사람 같습니다.”

“온화하다고?”

“예. 왕국을 잘 품을 수 있는 재목 같았습니다.”

“그래?”

“예.”

“만약 변란이 일어나거나 왕국이 혼란스러워지면 일왕자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재목인가?”

에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쥬드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포용력은 뛰어나지만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은 조금 부족해 보이는 일왕자였다.

“그럼 그 상황에서 누군가 뒤에서 그를 도와준다면?”

다시 생각을 한 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조금 귀가 얇다고 생각하는가?”

“예.”

“음…….”

“그런데 그걸 묻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오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또 벌어질 것 같거든.”

“예?”

쥬드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일단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확실한 것은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몇몇 비슷한 기운을 품은 가들이 이 왕도 곳곳에 숨어 있더군.”

“루드 왕이라면 왕도 안에도 세작을 침투시킬 인물입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왕가의 사람이라면 그렇게 어둡고 날카로운 기운을 갖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랄까? 우리 왕국의 사람과는 기질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이들이 누군가를 노리듯 아주 움츠려 있더군.”

“음. 큰일이군요. 어서 그 사실을 알려야…….”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

“예?”

“설마 지금껏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충성심이 남아 있는 건가?”

“하지만…….”

“한 명만 제대로 살아 있다면 왕위 계승을 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걸 위해 일왕자의 곁에도 그런 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왕성 밖으로 나갈 때 그를 불러 올 수 있나?”

“몇 번 만남을 가진다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봐라.”

“예. 형님.”

쥬드가 대답을 하면서 에반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사람이 바뀌어 버린 듯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사실 에반은 저쪽의 세계에서 살면서 엄청난 독서를 했다.

사부가 공무를 위해 알려준다는 핑계로 수십 가지의 글을 에반에게 가르쳤고 에반은 그걸 모두 습득했다.

그런 후 그는 사부가 가지고 있는 책을 대부분 읽었다.

그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무를 익히는 것과 책을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책들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적혀 있어 지금처럼 권모술수를 부리는 자를 파악하는 책도 있었고 전술을 자세히 설명한 책도 있었다.

에반은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 왕국의 사정을 이해하고 대륙의 정세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자와도 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에반이었다.

다만 단점이라면 그 지식들을 쓰는 건 크라우스 가문과 관련이 되어야만 쓴다는 것이다.

그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크라우스 가문의 사람과 그 이외의 사람으로 나누어 놓고 철저하게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이곳에서 인관관계를 쌓는 척도였다.

* * *

에반과 쥬드는 왕성에 삼 일간을 더 머물렀다.

루드 왕과는 다르게 일왕자는 쥬드는 아주 기껍게 대했다.

납치를 당한 건 루드 왕이지 일왕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어린 나이에 아주 당당한 기사들을 보면서 일왕자는 저 기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꿈을 키워왔었다.

그 기사들은 바로 크라우스 기사단이었고 남몰래 지금도 그들을 도와주는 이가 바로 일왕자였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본래 그들의 주군이었던 전대 크라우스 백작의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쥬드가 왕성 밖으로 나가는 날 일왕자는 친히 나와서 그를 배웅해 주었다.

그 안에는 스미트 후작도 있었는데 에반이 나가는 날까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않아서 애가 달아 있는 상황이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에반 일행은 곧 짐을 꾸렸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들이 짐을 모두 싸고 나왔을 때는 스미트 후작이 특별히 배려한 마법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호위였지만 사실 에반의 결정을 기다리는 이였다.

에반이 마차에 타지 않고 아그나르를 불렀다.

“아그나르.”

“예. 단장님.”

사실 아그나르의 위치는 조금 묘했다.

그는 크라우스 기사단도 아니었고 기사의 서임을 받지도 않았다.

쥬드가 기사 서임을 해준다는 것을 거절한 것이다.

그는 오로지 에반을 주군으로 모시고 싶었기에 그의 기사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네가 일왕자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어야 할 것 같구나.”

“단, 단장님.”

자신을 내치는 에반으로 인해 아그나르의 목소리가 떨려올 때 에반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건 내가 제국에서 돌아올 때까지만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나?”

아그나르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하다 말했다.

“전 아직 기사도 아닙니다.”

“그건 상관없다.”

그러면서 에반이 조금 떨어져 있던 스미트 후작이 보낸 마법사를 불렀다.

“내가 제국으로 가면 주라는 것이 있겠지?”

“아. 예. 여기 있습니다.”

마법사가 재빨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꺼냈다.

거기에는 에반을 자작으로 임명한다는 왕의 옥새가 찍힌 서류가 있었다.

“자, 이제 나는 작위를 가직 귀족이다. 네게 기사 서임을 할 수 있지. 아그나르, 기사 서임을 받을 건가?”

아그나르는 생각도 할 것이 없었다.

“예. 받겠습니다.”

에반이 자신이 가지고 온 검을 꺼내었다.

그건 마이젠트로가 심혈을 기울여 검이 없는 에반에게 선물을 한 것이었다.

재빨리 아그나르가 무릎을 꿇었고 에반이 그의 어깨에 검을 대며 물었다.

“아그나르 파에스트는 내 가문에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섬길 것을 약속하는가?”

“예.”

“그럼 아그나르 파에스트는 나 에반 펠로 드 크라우스의 첫 번째 기사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아주 약식으로 받는 기사 서임이었지만 아그나르는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 명령이다. 일왕자의 곁에서 그를 지켜라.”

“예.”

에반은 그러면서 아그나르에게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그나르.

움찔

고개를 숙인 그가 살짝 떨었다.

갑자기 머리를 울리는 에반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그나르는 당황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듣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네가 세자를 보호하고 죽지 않게 해야 우리 가문이 더욱 비상할 수 있다. 할 수 있겠나.

아그나르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내가 조심해야 할 자들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겠다.

에반은 그에게 몇 명의 조심해야 할 자들을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검을 치우며 말했다.

“네 목숨을 버리지는 마라. 그건 나에 대한 불충이다.”

“알겠습니다. 주군.”

지금까지는 단장이었지만 이제는 주군이었다.

아그나르는 굳은 결의가 묻어 있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에반 님의 걱정이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베켓은 에반과 함께할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미 며칠간 밤에 만나 에반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베켓이었다.

하지만 믿기가 어려웠다.

십오 년 전 보았던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온다는 건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일생에 한 번 겪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베켓에게 에반이 준비하는 계획은 사실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일왕자는 살아날 것이고 그는 왕이 될 것이다. 그러면 되는 거지.”

“이왕자와 삼왕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죽거나 일왕자의 반대편에 서겠지.”

“그렇다면 또다시 크라운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백성들은 신음하고 왕국은 피폐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게 내가 놔두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마음을 먹는다면 한 명을 오롯이 세울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마라.”

베켓이 에반의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골라내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조금 발전을 했을 뿐이다.”

쥬드에게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가 암중에 숨어 있는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일을 획책하려 한다는 건 공무가 계속 발전을 해가는 상황에서 부수적으로 알 수 있게 된 것들이다.

넓어진 공간력은 주위의 사물을 보다 넓게 보여주었고 그러면서 에반의 정신력을 좀 더 확장해 주었다.

그러자 사물이 가진 생각들의 색깔이 확연하게 보이는 것은 물론 그 색깔을 읽으면서 미래마저 조금은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미래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에반이 읽은 사물이 가진 정보를 계속 분석을 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베켓은 그런 에반을 조금은 경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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