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전령이 간 후 에반은 병력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가자.”
최전방에 검과 방패를 든 병사들이 앞장을 섰다.
그 뒤로 창을 든 병사들이 움직였고 그 뒤에 기사들이 갑옷을 입은 채 뒤따라갔다.
“벌써 움직였군.”
벤트릭도 적의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병력을 움직였다.
“모두 진군!”
“진군!”
“진군!”
벤트릭의 말에 아래로 명령이 하달되었고 서서히 병력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리는 가운데 크라우스가의 병력이 빠르게 이동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적의 병력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그들과의 거리를 맞추어 보던 에반이 켈베스를 불렀다.
“실행해.”
“예.”
그 말에 켈베스가 에반의 옆에서 메모라이즈해 놓은 마법을 펼쳤다.
“패턴.”
켈베스의 주문에 땅에 커다란 마법진이 새겨졌고 그 중심에 켈베스가 앉더니 영창을 하기 시작했고 에반은 켈베스의 곁을 지키며 주위의 마나를 끌어모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에반이 끌어 모으는 마나가 빠르게 켈베스의 주위를 맴돌다가 그가 앉아 있는 중심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심을 시작으로 서서히 밝아지던 마법진은 이내 에반과 켈베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크라우스의 병사들은 그걸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밝게 빛나는 마법진 때문에 계속 움직이던 벤트릭의 병력이 멈추었다.
“무슨 일이지?”
“마나의 유동이 있습니다.”
벤트릭의 물음에 근처에 있던 마법사가 말했다.
“마법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마법이지?”
“너무나 멀어 무슨 마법인지 알기 불가능합니다.”
“그럼 유추해 낼 수 있는 마법은?”
“그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거리가 너무 멉니다. 캐터펄트를 쏴도 닿지 않을 거리입니다.”
캐터펄트는 거대한 화살을 장전하는 공성병기를 말한다.
그것이 닿지 않는다면 마법은 절대 이를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이다.
“마도사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불가능합니다.”
마법사가 단언했다.
“어째서지?”
“아무리 마도사라도 자신이 쏘아낸 마법을 이곳까지는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나?”
“그것은 아닙니다. 상대는 마도사입니다. 그 외에 어떤 수를 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마법사가 여기까지 말할 때였다.
“크아악!”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앞에 있던 아군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서서히 지상으로 올라온 거대한 ‘그것’을 보면서 마법사가 질린 듯이 말했다.
“골렘…….”
“크아악!”
“아악!”
모두가 한순간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 골렘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손을 좌우로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 손에 맞은 용병들이 이리저리 맞고 날아갔다.
“공격!”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있던 벤트릭이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이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골렘의 주위에서 물러나면서 틈을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골렘 때문에 혼란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그 혼란이 오래가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련한 이들일지라도 골렘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골렘이라는 마법 생명체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이다.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한 순간 골렘이 한 발을 내디딤으로써 그 거릴 좁히고 다시 손을 휘두르자 한 번에 몇 명의 사람들이 그 공격에 맞고 날아갔다.
그 틈을 타서 몇몇의 용병들이 골렘의 뒤를 공격해 보았지만 그저 헛된 몸부림이었을 따름이다.
캉!
검은 골렘의 겉에 흠집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어서 마법 공격을 해라.”
하지만 벤트릭의 말에도 주문을 시전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대신 침중한 목소리로 벤트릭에게 말하였다.
“골렘은 저희들의 마법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골렘을 만들 수 있는 건 마도사부터입니다. 그렇기에 그보다 낮은 클래스의 마법은 골렘이 모두 무시할 수 있는 항마력이 있습니다.”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닐 것 아냐! 그러니 공격해!”
“알겠습니다.”
벤트릭의 말에 마법사들이 마지못한 듯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제길.”
그걸 보며 벤트릭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또다시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또 하나의 골렘이 튀어나온 것이다.
게다가 곧바로 두 개의 골렘이 튀어나왔다.
총 네 대의 골렘이 주위를 휘젓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벤트릭이 마법사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을 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벤트릭의 명령에 따라 골렘들을 공격하기 위해 영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도사가 이 정도였나?”
마도사의 힘을 너무 얕보았다.
설마 마법사들 모르게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또한 이 먼 거리에서 그 마법진을 구동할 방법이 있을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지금까지 벤트릭은 마도사와 싸운 적은 없었다.
바스트 제국이 아무리 영지전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도 룰이 있었다.
절대 마도사 이상의 마법사를 끌어들이면 안 되고 공멸을 할 때까지 전투를 하면 안 되었다.
만약 이 룰을 어긴 자가 있으면 직접 황제가 그 영주를 심판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벤트릭이 마도사를 직접 본 것은 동쪽의 야만인들의 침략에 맞서 고용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마도사가 아군이기에 그가 쓰는 마법이 얼마나 강력한지 체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골렘 네 마리를 보자 한 번에 마도사의 강함이 체감이 되었다.
그리고 이가 갈렸다.
물리적 공격과 마법 공격은 통하지도 않기에 용병들이 제대로 접근조차 못하고 어떻게 공략을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사이 골렘 한 기가 벤트릭의 주위로 다가왔다.
챙!
벤트릭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골렘을 보며 검을 뽑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병력을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면서 골렘을 없애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다.
뒤에서 자르가 무어라 말을 하든 말든 그대로 점프를 해 뛰어올랐다.
“이얍!”
벤트릭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골렘의 가슴을 갈랐다.
카카갓!
그리고 지금껏 생채기도 나지 않았던 골렘의 가슴이 쩍 벌어졌다.
소드 오러가 골렘의 가슴을 갈라놓은 것이다.
벤트릭은 땅으로 내려오면서 그걸 깨닫고는 주위에 크게 소리쳤다.
“소드 오러를 사용해라!”
벤트릭의 말에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 소드 오러를 일으키면서 골렘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소드 오러를 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들을 주축으로 서서히 골렘들을 피해 없이 상대하기 시작했고 곧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와르르르르.
한 기의 골렘이 드디어 핵이 부서지면서 무너졌다.
에반이 그걸 확인하고는 마법진에서 일어나 있는 켈베스에게 물었다.
“타깃팅이 가능한가?”
“예? 아. 예.”
켈베스는 멍한 표정으로 에반의 말에 대답을 했다.
사실 자신이 골렘을 소환한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것도 네 기나 혼자서 만들어내었다는 것을 다른 마도사에게 말하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마도사들 몇 명이 모여야 겨우 마나를 모아 하나의 골렘을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분명 골렘은 마도사 이상이 만들 수 있지만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7클래스부터였다.
그런데 에반의 도움으로 켈베스는 네 기의 골렘을 뽑을 수 있었다.
에반의 뜻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진을 그렸지만 진짜로 그 마법진들을 구동할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마법진을 구동하고서도 마나가 남아 더 많은 골렘을 뽑았다.
‘게다가 마나의 손실조차 미미하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안 하나?”
“합니다.”
잠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던 켈베스는 에반이 물음에 말을 하고는 이번에는 위쪽의 마법진 앞에 앉아 하나의 주문을 외웠다.
“이미지.”
곧 켈베스의 앞에 노란빛들이 점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보면서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영창을 시작하자 마나가 빠져나갔지만 이내 자신의 마나가 아닌 주위의 마나가 빠져나가며 마법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영창을 끝낸 켈베스가 에반을 쳐다보았고 잠시 전장의 상황을 보던 에반은 네 번째 골렘까지 무너지자 켈베스에게 말했다.
“지금.”
“예.”
화아악.
켈베스가 앉은 마법진이 이번에는 붉은색으로 빛을 발했다.
그 붉은빛은 마법진 위쪽에 모이는가 싶더니 곧 붉은 길을 내며 팔로스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붉은빛이 팔로스군 근처에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며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내었다.
그 마법진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적의 병력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뭐, 뭐야!”
당연하게 갑자기 땅에서 붉은빛이 새어나오자 놀란 적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켈베스가 마지막으로 주문을 외웠다.
“매스 미사일.”
지면을 덮은 붉은빛이 한순간 강해지는가 싶더니 뭉쳐졌고 그 뭉쳐진 빛 덩어리가 어느 지점까지 허공으로 올라간 순간 빠르게 흩어졌다.
“크윽.”
“으악!”
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이들 중 켈베스가 타깃팅을 했던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미사일이 날아간 이들은 모두 골렘을 향해 소드 오러를 만들어내었던 용병들이었다.
골렘은 그저 사전준비에 불과하였고 에반은 켈베스에게 소드 오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적들과 마법사들을 솎아낼 수 있는 마법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익스퍼트의 실력자들은 대부분 마법 공격에 부상을 당했다.
이제는 전면전을 할 차례였다.
에반이 크게 말했다.
“모두 진군!”
“와아아아.”
순식간에 적들을 쑥대밭을 만들어놓은 켈베스의 마법에 사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은 가운데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켈베스!”
“예.”
“이제는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 혼자 몸을 피하든 적들을 공격하든 알아서 해라.”
“알겠습니다. 에반 님.”
에반은 켈베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병사들이 움직이는 뒤편으로 붙었다.
자신이 제대로 명령을 내려야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 * *
“모두 정렬!”
자신에게 날아온 마법을 겨우 피한 후 다시 마법이 날아오지 않는지 긴장을 하고 있던 벤트릭은 적의 병력이 움직이자 용병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잠시 우왕좌왕하던 그들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난전을 헤쳐 온 전사들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검을 고쳐 잡았을 때 크라우스의 병사들이 그들과 맞부딪쳤다.
쿵!
“밀어!”
맨 앞에 있는 방패를 든 크라우스의 병사들이 적들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터널 용병단의 용병들은 그 방패병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창!
묵직한 검격이 방패에 느껴졌지만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그걸 버텨내었다.
에반은 잠시 상황을 보고 있다가 소리쳤다.
“창 앞으로.”
그 말과 동시에 방패들 사이로 창이 튀어나와 용병들을 공격했다.
그들도 귀가 있기에 에반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당연히 창이 공격해 온다는 걸 알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이 찔러오자 대부분의 용병들이 창을 쳐내려 했다.
방패로 막고 창으로 찔러 넣는 전술은 이미 숱하게 경험해 보았던 그들이기에 본능적으로 창을 쳐내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에반에게 창술을 배운 병사들의 창은 그저 찌르기만 할 줄 아는 찌르기 일변도의 공격이 아니었다.
“악!”
“크악!”
곧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용병들이 쳐내려 했던 창이 교묘하게 자신들이 들고 있는 검을 피하거나 튕겨내더니 몸 안으로 파고들어 온 것이다.
창을 든 병사들은 절대 일격에 적들의 숨을 끊으려 하지 않고 부상을 입히려고 힘을 썼다.
부상을 입고 용병들이 쓰러지자 창이 뒤로 돌아가고 방패병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겨우 창을 피한 용병들은 뒤로 물러났지만 부상자들은 채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되어 방패병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리고 곧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그 소리가 용병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보이는 죽음에는 담담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자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이라고 할지라도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용병들이 주춤하는 사이 다시 한 번 창이 방패 사이에서 튀어나왔고 또다시 용병들이 창에 찔려 부상을 입거나 죽어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패병이 발걸음을 옮기자 부상자들은 안으로 빨려들어 갔고 어김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방패병과 창병들이 호흡을 맞춰 움직였고 스무 걸음을 이동하는 동안 크라우스 병사들 중에는 부상자조차 거의 없이 완벽하게 용병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방패 뒤에 숨어 있는 병사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길 수 있다.’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큭.”
방패병 중 한 명이 방패를 놓치며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방패는 깨끗하게 절단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들린 비명 소리에 에반이 그쪽을 바라보자 검에 오러를 입힌 용병이 쓰러진 병사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병사들도 그 모습을 보았기에 당연히 안색이 핼쑥해졌다.
아무리 단단한 방패를 들고 있더라도 소드 오러에는 방패가 버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켈베스의 마법에서도 견딘 용병들이다.
당연하게 그들이 쓰는 소드 오러는 더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용병들 중 소드 오러를 쓰는 몇 명만 모여도 일각이 무너질 수 있는 일이었고 자신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병사들의 기분을 아는지 에반이 나섰다.
“내게 배운 기술과 기사들과의 대련을 생각해라!”
그 말에 안색이 흐려졌던 병사들의 표정이 약간은 본래대로 돌아왔다.
전장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에반의 말에 자신들이 소드 오러를 방패로 흘리는 기술을 배운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 벤트릭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소드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을 모아 한 곳을 뚫으려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뒤로는 겨우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패병이 소드 오러를 쓰는 용병에게 쓰러지는 걸 본 직후였다.
그 때문에 에반은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려야 했다.
“모두 삼인 일조로 흩어진다.”
에반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방패병 두 명과 창병 하나로 구성되는 삼인 일조로 흩어졌다.
그러면서 방패병들 사이로 틈이 생겼는데 그걸 보는 용병들의 눈이 빛났다.
‘틈이다.’
지금까지 견고한 벽이라 생각했던 방패병들의 주위로 틈이 생기자 소드 오러를 일으키지 못하는 용병들이 그쪽으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파고든 용병들은 무언가 번뜩이는 것을 본 후 바로 세상과 이별을 해야 했다.
그 틈 사이에 있었던 검을 든 병사들과 기사들이 안으로 파고들려 하는 용병들을 일격에 베어버린 것이다.
방패병과 창병들뿐 아니라 기사들과 검병들도 삼인 일조로 모이고 있었다.
에반은 기사들 또한 절대 혼자 적을 상대하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합공을 통해 적을 상대하게 기사들에게도 보조를 붙여주었다.
기사들이 검병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방패병들도 창병들과 짝을 이루어 용병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바로 혼전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소드 오러를 일으킬 수 있는 용병들을 준비하던 벤트릭은 그들에게 각자 적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혼전 상황에서 그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전력 낭비인 것이다.
쥬드는 전장의 상황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굉장하군요.”
“뭐가?”
에반이 물었다.
혼전 상황이 되자 바로 쥬드의 곁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은 에반이었다.
“순식간에 혼전으로 유도해 마법사들이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마법사라고는 켈베스밖에 없으니 이런 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혼전은 사절이야. 어쨌든 많은 피해가 오니 말이다.”
“형님.”
쥬드는 에반의 말에 감격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보여도 에반은 병사들을 아끼고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쥬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상관없이 에반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이 노린 먹잇감을 찾는 것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에반의 눈에 검에 오러를 집어넣고 크라우스의 병사들과 싸우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찾았다.”
바로 벤트릭과 그 옆에 있는 자르였다.
에반이 양옆에 있는 이들을 불렀다.
“칼, 아그나르.”
“예. 단장님.”
“앞을 뚫어라.”
“알겠습니다.”
에반에게 집중적으로 배운 칼은 이미 기사들과 맞붙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그나르는 본래의 실력에 더해 에반에게 배운 좌공과 검술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고 있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니 자신감이 충만했고 에반의 명령에 드디어 근질거리던 몸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걸 모두 풀겠다는 듯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앞에 있는 용병들을 베어 넘겼다.
마음의 공부를 한 칼은 이미 예전의 소심하던 병사가 아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검을 날려 용병들을 베었고 그 사이로 에반과 쥬드가 걸어 나갔다.
“으득, 역시 살아 있었구나.”
삼인 일조로 자신을 공격하던 병사 셋을 해치우고 병사의 몸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던 벤트릭이 길이 열리는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현재 평야 전체가 전장으로 화했지만 지금 다가오는 에반과 쥬드는 정말로 한가롭게 산책을 하듯 걸어오고 있었다.
칼과 아그나르의 검에 쓰러진 용병들의 시신을 밟고 태연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를 보며 벤트릭은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자르는 냉정하게 만들었다.
“단장님, 피해야 합니다.”
“피해? 내가 말이냐?”
벤트릭이 자르에게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자르는 벤트릭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보다 더욱 감정적인 벤트릭을 보면서 자르는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벤트릭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아닙니다.”
자르가 벤트릭을 피신시키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젓자 벤트릭이 크게 소리쳤다.
“모두 비켜라.”
그 말에 벤트릭의 눈치를 보고 있던 용병들이 벤트릭과 에반 사이를 재빠르게 비워주었다.
검기를 쓰면서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 용병들을 베어오는 칼과 아그나르가 사실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단장이 보고 있던 앞에서 물러설 수 없었던 그들은 벤트릭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그들이 안도의 표정을 짓는 사이 벤트릭은 에반을 쳐다보았다.
“에반.”
이제는 가까이 접근하여 벤트릭의 말이 에반의 귀에 들려왔다.
“내 이름을 잘도 부르는구나.”
“그때의 못다 한 승부를 내야겠지.”
“그때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한꺼번에 공격을 하라고 한 건 네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군.”
“그래. 내가 뻔뻔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너와는 꼭 대결을 하고 싶다.”
하지만 에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와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날 피하겠다는 거냐?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해라.”
벤트릭이 도발을 해왔지만 에반은 아무런 감응도 없었다.
“내 앞에서 꼬리를 한 번 만 주제에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구나.”
그 말에 벤트릭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감정이 격해지고 두 눈에 불길이 일었다.
그때 에반이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승부를 새삼 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팔로스군의 지휘관인 만큼 내가 아닌 가주께서 널 상대할 것이나 영광으로 알아라.”
‘가주?’
설마 이곳에 크라우스 가문의 가주가 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정보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다만 벤트릭이 알고 있는 크라우스 백작은 아주 유약하고 별 볼일 없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자르는 화색이 되었다.
‘어쩌면 살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자르가 조용히 벤트릭에게 말했다.
“저희에게는 현재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벤트릭은 자르와는 달리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이미 전면전에서 자신들이 밀린 것부터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자신들보다 병력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전면전을 하면서 이길 수 있게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았었다면 지금 가주를 내세우는 것에도 무언가 계획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자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믿고 있는 것 같지만 벤트릭은 지금까지의 전황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자르처럼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우두머리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아오면서 생긴 감이었다.
척척.
벤트릭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을 때 쥬드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주위의 전투는 멈추어져 있었다.
전장의 한복판이지만 지휘관과 지휘관의 싸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벤트릭은 쥬드가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섰다.
쥬드는 벤트릭이 걸어나오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난 대크라우스가의 가주 쥬드 크라우스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터널 용병단을 이끄는 벤트릭이라 하오.”
정식 작위를 가진 상대이기에 존대를 해주고 있는 벤트릭이었다.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다. 당신 같은 사람과 싸울 수 있다니 가주이기 이전에 검을 배운 자로서 피가 끓는군.”
쥬드가 말을 하며 검을 뽑았다.
스르릉.
“저 또한 크라우스 가주와 검을 섞을 수 있어 영광이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허례에 가득 찬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이런 대결이 이루어질 때면 이터널 용병단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결을 하는 이유는 단 한 번의 결투로 전장의 흐름을 반전시켜 보자는 발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기에 다른 때보다도 더 긴장이 되고 있었다.
“그럼 먼저 가지.”
먼저 움직인 건 쥬드였다.
쥬드가 검을 호쾌하게 내질렀다.
파캉!
“크윽!”
쥬드의 한 수를 막으면서 벤트릭이 신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검격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게다가 교묘하게 내리쳐 왔던 검은 만약 방심을 했다면 자칫 막지 못하고 일격에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던 자르도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용병단에서 머리 역할을 하고 있더라도 그래도 용병이기에 무력이 그렇게 약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보통의 용병들보다는 강했다.
그런 자르이다 보니 쥬드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한 번에 간파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한눈을 팔다니. 넌 나와 어울려야지.”
“헛.”
갑자기 들려온 말에 자르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기척을 느낄 사이도 없이 에반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놀란 것이다.
“설마 내가 너를 가만히 놓아둘 거라 생각했나??”
“무슨 소리요?”
“네가 거슬린다는 말이다.”
쉬익.
그 말과 함께 에반이 자르를 공격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맨손을 자신에게 휘둘렀지만 그 공격을 보면서 자르는 재빨리 검을 꺼내들었다.
그가 맨손으로 공격한 것은 방심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 틈을 타 검으로 그를 압박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자르의 공격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검이 오는 방향을 피한 에반은 계속해서 자르에게 그 경로 그대로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자르가 에반의 주먹을 보면서 고민했다.
피할 것인가? 아니면 검을 휘두를 것인가?
검을 내지르면서 허공을 베었기 때문인지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이 좋은지 고민을 하는 자르였다.
잠시 주먹을 보면서 고민을 하던 자르가 결정을 내렸다.
‘맞부딪친다.’
피하는 것도 에반에게 검을 날리는 것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하얀 주먹을 피로 물들게 하고 싶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순간 허공을 베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던 검의 방향을 주먹이 다가오는 투로로 바꾸었다.
에반의 주먹은 자르가 예상한 지점을 지나갔고 그와 동시에 검도 주먹에 맞부딪쳤다.
쾅!
그리고 주먹과 검이 부딪친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음이 일었다.
* * *
‘뭐지?’
벤트릭이 쥬드의 공격을 피하면서 폭음이 인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전투는 거의 멈추어져 있었다.
두 수장의 대결에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들린 폭음에 벤트릭은 시선이 쏠렸고 자르가 낭패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벤트릭이 표정을 굳힐 때 쥬드가 말했다.
“싸우고 있는 와중에 다른 곳을 볼 정신이 있다니 아직 여유로운가 보군.”
그렇게 말한 쥬드가 보다 무섭게 벤트릭을 압박했다.
검이 허리를 베고 지난다 싶은 순간 어느 사이에 목을 노렸고 목을 막고 있으면 손목을 노렸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검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창!
벤트릭이 자신이 손목을 노리며 들어온 검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오러를 일으키기 위해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우웅.
소드 오러가 검에서 일어나고 벤트릭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제대로 붙어봅시다.”
그러나 그걸 보며 쥬드는 피식 웃으며 다시 검을 들더니 그대로 부딪쳐가며 말했다.
“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네.”
“무모한!”
소드 오러에 그냥 검을 부딪쳐 들어가는 상대를 보며 벤트릭이 소리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르가 밀리는 것을 보며 승부를 걸기 위해서 소드 오러를 일으켰는데 상대는 소드 오러를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검을 평범하게 내지르고 있으니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벤트릭은 자신만만하게 쥬드의 검과 맞부딪쳤다.
챙!
그리고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당연하게 쥬드의 검이 밀려나거나 양단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비슷하게 검이 밀려나가자 경악했다.
일반적인 소드 오러와 소드 오러를 일으키지 않은 검에서 보여주는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쥬드가 뒤로 물러나면서 웃었다.
“나에 대해 모르는 건 물론이고 우리 가문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가 보군.”
“믿을 수 없다!”
쥬드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벤트릭이 더욱 강하게 쥬드를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쥬드는 아주 차분하게 그의 공격을 막아섰고 수십 합이 지나자 오히려 압도를 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벤트릭은 소드 오러를 일으킨 자신이 밀리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절대 이럴 일은 없어!”
우우웅.
소드 오러에 한층 더 오러가 겹쳐지더니 종래에는 흐릿하게 검을 감싸던 푸른빛이 검을 완전히 뒤덮었다.
분명 오러 마스터 이상만 보여줄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자신이 밀리자 자신의 모든 힘을 일시에 끌어들이고 또한 서커 주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벤트릭이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줄 수 있었다.
쥬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들였군.”
“절대 질 수 없어.”
벤트릭이 발악하듯 오러 블레이드를 검에 두르고는 쥬드를 향해 내질렀다.
쥬드는 소드 오러처럼 맞서지는 않고 살짝살짝 피하기만 했다.
서커 주문으로 인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었지만 대신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여 쥬드가 피하기만 하자 완전히 이성을 잃어 지금은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쥬드에게인지 허공인지 알 수 없게 검을 휘두르던 벤트릭은 점점 몸이 둔해지는 걸 느꼈다.
한계까지 끌어 쓴 힘이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중인 것이다.
그 순간에도 검을 계속 휘두르는 벤트릭이 계속 중얼거렸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벤트릭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찬란하게 빛나던 검은 서서히 보통의 검으로 돌아왔다.
쥬드는 그때가 돼서야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창!
주르르륵.
벤트릭은 쥬드의 검격을 얼떨결에 막기는 했지만 힘없이 밀려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쥬드는 벤트릭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목에 검을 대며 말했다.
“다음에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만약 검을 들 수 있다면 말이야.”
벤트릭은 목에서 금속 특유의 차가운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했다.
‘크라우스 백작가를 너무 얕본 것이야.’
쥬드 크라우스가 가주이건만 그가 누군지 무엇을 했었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크라우스 백작가의 위치였다.
십오 년 전 크라운 전쟁을 겪으면서 쥬드는 아버지가 물러준 많은 것을 습득했다.
그 중 하나가 싸우는 방법이었다.
전대 크라우스 백작에게 전장의 지배자라는 칭호가 붙을 수 있었던 건 오러가 보이지 않는 검으로 수많은 익스퍼트 기사들은 물론 소드 마스터까지 상대했기 때문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강함으로 특히 기사들은 루크 크라우스 백작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검술이 십오 년이 지나 현재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벤트릭의 패배가 확정되고 그의 입에서 졌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에반이 자르에게 말했다.
“저쪽은 끝난 것 같군.”
“헉. 헉. 뭐?”
주먹에 담긴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깨달은 자르는 에반의 공격을 계속 피하기만 한 채 공격다운 공격을 한 차례도 못하고 있었는데 에반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계속 피하기만 하느라 다른 곳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에반은 그를 위해 살짝 뒤로 몸을 빼주었다.
그러자 자르는 그 사이 쥬드와 벤트릭이 싸우고 있던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단장님…….”
자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벤트릭을 안타까운 듯 보며 중얼거렸다.
에반은 이제 자르도 반 정도는 포기한 듯 보이자 말했다.
“이제 끝내자.”
퍽!
에반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못한 자르는 에반의 공격을 맞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두 사람이 완전히 쓰러진 것을 본 아그나르가 크게 소리쳤다.
“팔라스군은 모두 무기를 버려라. 너희의 대장이 붙잡혔다. 다시 말한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그래야 살 길을 열어주겠다!”
그 외침에 이미 결과를 보고 있던 용병들이 하나 둘 무기를 땅에 내려놓았다.
더 싸우고 싶기는 했지만 그건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이곳에 있는 용병들은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이터널 용병단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벤트릭 한 사람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이상이 생기면 그를 대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팔로스의 아이들도 자르도 용병단을 이끌기에는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더 싸워보았자 더욱 비참하기만 할 뿐이었다.
노련한 그들이 절반의 숫자에 불과한 병사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전의를 깎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의 검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한 병사가 높이 창을 치켜들었다.
“이겼다!”
“와! 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본 베켓이 재빨리 소리 높여 외쳤다.
“크라우스 백작님 만세! 크라우스 가문이여, 영원하라!”
그 외침을 기사들과 병사들이 따라 한다.
“크라우스 백작님 만세! 크라우스 가문이여, 영원하라!”
크리우스 백작가로 쳐들어온 팔로스 백작군을 막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