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장 (21/60)

제10장

“에리아 님, 여기를 좀 보십시오.”

“응?”

“여기 말입니다.”

그곳에는 약간의 파인 흔적과 신발 자국들이 있었다.

그곳을 살펴보던 에리아가 발견한 마법사에게 물었다.

“무슨 흔적인지 알 것 같아?”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를 보면 분명 병사들이 이쪽으로 지나간 것 같은데 이곳을 기점으로 모든 자국이 끊겨버렸습니다. 꼭 이쪽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사라지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워프진일까?”

“아닙니다. 워프진이라면 누군가가 남아 있거나, 지운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사라진 것 같은데 그 원인은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그래. 하지만 일단 단장이 시킨 일이니 좀 더 찾아보자.”

“예.”

그리고 에리아가 다시 그곳을 자세히 관찰하려 허리를 굽혔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습격이… 컥!”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리아가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갑옷을 입은 적들이 무차별적으로 자기편을 죽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케어.”

에리아의 옆에서 그 광경을 보며 당황을 하는 그를 부르자 겨우 정신을 차리며 에리아를 돌아보았다.

“예.”

“빨리 단장님에게 연락해라. 그리고 마법사들을 조심스레 이곳으로 모아라.”

“알겠습니다.”

케어가 재빨리 움직였다.

에리아는 그걸 보며 황급히 마법진을 그렸다.

이런 일이 있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준비해 둔 마법이 하나 있었다.

혼자서는 펼치지 못하지만 여기 성벽 위에 있는 마법사 정도라면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마법진을 그린 것이다.

에리아가 반절 정도 마법진을 그렸을 때 모든 마법사가 모였다.

“에리아 님, 혹시 타깃 바인딩을 그리고 계시는 겁니까?”

“그래요. 저희 용병단에게는 이 마법을 피할 수 있는 표식이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렇군요.”

마법사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사이 계속해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마법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건 중구난방 마법을 쓰는 것이 아닌 적들을 제압할 한 방의 마법이 필요하단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에리아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다 그렸어요.”

“그럼 시작합시다.”

마법사들이 마법진 안으로 손을 올려놓았다.

* * *

“응?”

장내를 보며 위험할 것 같은 기사들을 도와주고 있던 에반은 갑자기 일어나는 마나의 유동에 고개를 위로 올렸다.

성벽 위였다.

“뭐지?”

그가 이상한 느낌에 성벽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깃 바인딩.”

우우웅!

그 말과 함께 에반은 자신의 몸을 무언가가 압박을 하는 것을 느꼈다.

‘마법인가?’

에반이 즉시 마나의 기운을 풀어버렸다.

어차피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어떠한 것도 자신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건 마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쉽게 마법을 푼 에반이 기사들을 보자 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보였다.

에반은 우선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는 기사들을 공격하려는 용병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팟!

손을 한 번 흔들 때마다 한 명씩 쓰러지는 그 놀라운 무력에 용병들은 이미 제압된 기사들을 놔두고 에반에게 모여들었다.

에반은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야 좋지.”

에반이 자신에게 몰려드는 용병들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에반의 아래에 떨어져 있던 칼 서너 개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 광경에 용병들이 주춤하는 사이 에반이 다시 손짓을 했고 칼들이 일직선으로 날아가며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버렸다.

“괴, 괴물.”

용병이 한순간 삼십여 명의 목숨을 빼앗은 에반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에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발을 내디디며 앞으로 나갔다.

그가 스스로 자신들 사이에 파고들자 용병들을 검을 휘둘렀고 에반은 그 검을 쳐내는 대신 자신의 손에 모조리 올려놓더니 그들의 손에서 빼앗아 버렸다.

“크악!”

손아귀에 있던 검을 강제로 빼앗기며 그 마찰에 손에서 피를 흘리는 용병들이 살짝 뒤로 물러날 때 에반이 빼앗은 칼을 던졌다.

피슉!

그리고 검은 방금과 똑같이 용병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용병들은 에반을 공격하기는커녕 그의 앞에 서 있기가 무서워졌다.

그때 다시 성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비켜요.”

어느 사이에 에리아가 마법의 영창을 끝내고는 에반에게 시전을 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에반이 아니라는 걸 에리아는 몰랐다.

에반이 성벽 위로 손을 내질렀다.

그저 파리를 쫓듯 아니면 아이들이 장난치듯 주먹을 앞으로 내뻗는 동작이었지만 그 동작 하나로 그곳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은 재앙을 맞이했다.

파아앙!

그대로 에리아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주먹 모양의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 주위에 마법사들도 모조리 휩쓸렸는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으으으으.”

용병들은 그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건 정말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은 에반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크악!”

그때 마법진이 부서져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사들이 용병을 베어 넘겼다.

그들은 전의를 잃은 채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는 족족 모두 쓰러졌다.

베켓이 다가왔다.

“방금 그것이 무슨 공격이었습니까?”

에반은 베켓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신의 주먹을 바라 보았다.

주먹을 내지르며 그 앞에 있는 공간을 압축에 압축을 하였다. 아주 가볍게 지른 것 같았지만 그 한 방으로 인해 자신의 영역이 흔들릴 정도로 에반도 힘을 썼다.

그리고 압축된 공간은 에반의 영역을 벗어나서도 그 힘을 잃기는커녕 더욱 크기를 키워 에리아의 앞에 도달했을 때는 거대한 크기로 공기의 압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에반이 손을 내리자 압축된 공간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에반도 놀랐다.

그저 마법을 시전하려는 여마법사에게 날린 것인데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모두 처리하였습니다.”

게이브의 말에 에반이 자신을 점검했다.

‘너무나 큰 힘을 썼다.’

하지만 여기에 있다가는 이들을 잃을 수도 있기에 에반은 자신의 힘을 쥐어짜내어 공간을 열었다.

베켓이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오.”

모두가 지금 이곳에 있기 싫은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고 에반이 안으로 들어가 삼바스 마을에 발을 딛는 순간 공간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

“큭.”

“괜찮으십니까?”

에반이 비틀거리자 깜짝 놀란 베켓이 에반을 부축했다.

“괜찮다. 잠깐 쉬면 나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에반이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가자 어리둥절하던 기사들이 베켓을 보며 물었다.

“여긴?”

“삼바스 마을이오.”

“허!”

그들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이미 병사들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겪으니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 *

-타깃 바인딩.

“성공했나?”

-성공했습니다.

갑자기 본진이 있던 자리에 신호가 올라와 열심히 뛰면서 통신구를 바라보던 벤트릭이 한숨을 쉬고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적은?”

-약 삼십 명 정도에… 어… 어…….

마법사나 말을 하다 말고 무언가에 놀란 듯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것이 말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지?”

-소드 마스터. 적들 사이에 소드 마스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마법을 풀고 저희 편을 도륙하고 있습니다.

그때 옆에서 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마법진에 집중해 줘요. 저는 저자를 막겠어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본 벤트릭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다시 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비켜요.

그리고 끝이었다. 갑자기 통신구의 마나가 끊어지며 통신구가 검게 변했다.

“이봐, 케어! 이봐!”

벤트릭이 아무리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벤트릭이 마나를 온몸으로 돌렸다. 그가 단장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마나 운용법이었다.

마나로 인해 활성화되어 강건해진 육체가 벤트릭을 지치지 않고 더욱 빠르게 뛰어갈 수 있게 해주었고 잠시 후 벤트릭은 현장에 도착했다.

“이게 무슨…….”

용병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성벽 한 곳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에리아와 다른 마법사가 있던 자리였다.

“에리아…….”

에리아는 십오 년 전부터 동고동락을 한 피를 나눈 형제였다.

이터널 용병단의 사백 명가량이 같이 생사고락을 한 이들이었고, 거기에는 지금 죽은 에리아를 포함한 몇 명의 용병들이 있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이터널 용병단의 진짜 멤버가 십여 명이나 죽은 것이다.

잠시 멍하니 죽은 이들을 바라보던 벤트릭이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 이놈들!”

그가 번뜩이는 시선으로 크라우스 가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 * *

‘공간력이 줄어들었다.’

공간력은 에반이 컨트롤할 수 있는 공간의 영역이다.

그의 컨디션이 좋을 때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은 팔을 뻗은 만큼에 더해서 손 하나 정도의 거리였다.

그것이 그가 최대로 장악할 수 있는 거리였고, 그의 현재 그릇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릇에 담겨 있는 공간을 공간력이라 표현한다.

그릇과 공간력은 다른 의미이지만 공간력이 줄어들면 그릇이 크기가 크더라도 그릇만큼 공간을 장악할 수 없고 공간력이 줄어든 만큼만 컨트롤할 수 있다.

본래 공무는 정신력에 그 기반을 둔 능력이다.

그의 정신 세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의 그릇은 커지고 담을 수 있는 공간력도 커진다. 그리고 지금처럼 정신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공간력이 줄어들기도 한다.

본래 공간력이라는 것이 한계치까지 쓰지 않는다면 거의 무한으로 쓸 수 있을 만큼 그 크기에 변화가 없는데 이번에는 한계치를 두 번이나 넘어버렸기에 몸에 무리가 가버린 것이다.

공간을 압축하는 법을 처음으로 깨닫는 성과가 있었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이럴 때는 공간력을 회복하기 위해 수련을 하든가, 휴식을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전쟁 중이었고 이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했다.

에반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베켓이 문을 두드렸다.

“에반 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

끼익!

낡은 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고 베켓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리고 에반의 안색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베켓이 들어오자 에반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들이 움직였답니다.”

“어느 쪽으로?”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이미 이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럼 샤인 마을로 향한다.”

샤인 마을은 세 번째 마을이었다.

“그럼 로닌 마을에서의 작전은 포기하는 겁니까?”

“그래. 지금 그 작전을 펼칠 여력이 내게 없다.”

에반의 솔직한 말에 베켓의 안색이 살짝 흐려졌다.

지금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도 모두 에반 덕분이었다.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천여 명의 용병들을 없앴으니 대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군의 병력은 천여 명이 다였고, 그들은 그 수의 배인 이천여 명이 있었다. 게다가 실전을 거친 백전노장들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을 보면 강해지긴 했다는 생각이 들어.’

적의 본진이 있던 곳을 습격했을 때 적들의 숫자는 꽤나 많았다.

하지만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들은 차분하게 그들을 맞상대하며 적의 수를 줄였고 이겼다.

만약 이상한 마법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에반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이 모두 적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베켓은 자신감이 솟았다.

마도사가 있고, 기사들이 있으며, 훈련을 한 병사들도 있다.

아직은 진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한번 로닌 마을에서 에반 님이 계획했던 것을 해보죠.”

“음?”

“아직 저희는 저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에반은 잠시 그들에게 맞서 도망갈 수 있는 퇴로를 생각했다.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 한번 해보지. 그럼 이동하면서 계획을 알려주겠다.”

“알겠습니다.”

* * *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도 없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벤트릭이 자르에게 물었다.

“자르.”

“예. 단장님.”

“그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된 것 같은가?”

“아직 한 시간 안팎입니다.”

“다음 마을이 어디지?”

“로닌 마을입니다.”

“숲을 통과해야 한다는 그곳 말이냐?”

“예.”

“그곳으로 바로 가자.”

“거기에 있을까요?”

“없어도 계속 간다.”

“많이들 지쳐 있습니다.”

“그들 또한 휴식을 취하진 못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벤트릭의 고집에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이천 명이 움직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훈련을 받아왔고 벤트릭의 명령에 모두가 다시 자신의 짐을 챙겨 일어났다.

벤트릭이 선두에서 걸어 한 시간이 흘렀다.

“멈춰.”

이제부터는 숲이기에 척후병을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척후병이 모두 죽었다.

벤트릭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벤트릭의 뒤에 있던 용병이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안 된다, 멜로우.”

그 또한 원년 멤버이다. 그가 가서 죽는다면 벤트릭은 더욱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벤트릭이 바람의 방향을 보더니 말했다.

“숲에 불을 놓는다.”

“숲에 말입니까?”

“그래. 겨울철이 지났다고는 해도 아직도 많이 건조한 날씨이다. 불이 잘 붙겠지.”

“하지만 그러다가는…….”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 다른 시선을 신경 쓸 수가 없는 거다.”

“알겠습니다.”

벤트릭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르가 명령을 내렸고 곧 횃불을 든 용병들이 퍼져나가 숲에 횃불을 던졌다.

숲이 타는 건 순식간이었다.

활활!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내놓고 있던 나무들이 불타오른다.

바람이 숲쪽으로 불면서 불은 빠르게 확산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숨어 있다면 그대로 타 죽으리라.

이제 겨우 안심할 때였다.

파파팟!

“컥!”

“억!”

“뭐, 뭐야!”

갑자기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용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쓰러졌다.

벤트릭도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그때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촤촤촤촤악!

“으악!”

“실드!”

파파팡!

“윽!”

마법사들이 간헐적으로 실드를 쳤지만 그것이 모두를 구해주지는 못했다.

마법병단 중 핵심인물이 대부분 죽었기에 생긴 공백이 너무 컸다.

“어떻게 합니까?”

앞에는 자신들이 놓은 화공으로 숲이 타며 나아가질 못하고 뒤에서는 화살이 날아온다.

다시 한 번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벤트릭이 말했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뛴다.”

“예?”

“화살의 숫자를 보아라. 적어도 오백 개는 되지 않는다. 우리의 병력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 정도라면 화살을 무시하며 가서 그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모두 뒤로 돌아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뛴다.”

무모한 작전 같았지만 지금은 그 작전밖에 생각이 나는 것이 없었다.

용병들이 자신에게 제발 화살이 날아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맨 앞에 있었기에 가장 뒤늦게 뛰기 시작한 벤트릭이 의문 어린 눈으로 앞을 보았다.

“대체 어떻게 우리의 뒤에 있지?”

척후병이 시야가 닿는 거리에서 살피며 이곳까지 왔다.

절대 병력이 숨어 있는 낌새를 찾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자 그로 인해 벤트릭은 대체 그들이 무슨 수를 쓰는지 정말 궁금해졌다.

* * *

“이쪽으로 뛰어옵니다.”

망원경으로 그들을 살펴보던 병사가 말했다.

“모두 내가 말한 곳으로 뛰어가라.”

“예.”

화살을 날리던 병사들이 일어났다.

“베켓.”

“예, 에반 님.”

“네가 이들을 인도해라.”

“알겠습니다.”

베켓은 그러면서 에반을 경의의 눈빛으로 보았다.

그들이 숨어 있던 곳은 에반이 어느새 만들어 놓은 굴이었다.

땅 아래에 만들어진 굴은 들어가는 입구가 좁은 것치고는 안은 넓었다. 이백여 명이 들어가도 공간이 남았다.

처음에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위를 보던 병사들도 곧 휴식을 취하며 용병단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리며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에 그들이 있는데도 적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후 에반의 예상대로 그들은 숲에 불을 질렀다.

불이 타오르는 모습에 적들이 눈을 빼앗기고 있을 때 병사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에반의 명령에 화살을 쏘았고 정말로 불의의 일격을 맞은 적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가라. 뒤따라가겠다.”

“예.”

에반이 마지막으로 움직이고 용병들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저기 있다!”

“저놈들을 잡아!”

“멈춰!”

용병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병사들이 잡힐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삼백 미터의 거리가 벌어져 있었고 용병들은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지쳐 있었기에 병사들을 잡아보려고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성격이 급한 자들은 무기를 던지기도 했다.

그 정도로 그들을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건 벤트릭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으로 가면 무엇이 나오지?”

“소로길과 다음 마을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이 있다고?”

“예. 하지만 절벽을 타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병사들이 이용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지역입니다.”

“그럼 그들이 절벽으로 갈 때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있는가?”

잠시 지도를 보던 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가지고 있는 석궁을 쏘아대면 알아서 죽겠지. 어디로 가야 하지?”

“소로길을 지나야 합니다.”

조금 더 그들을 쫓아 뛰어가던 벤트릭은 까마득한 절벽의 틈에 작은 길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이곳을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그래?”

벤트릭은 이번에는 적들을 잡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때 한 용병이 외쳤다.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서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

“누군가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몇 명이?”

“혼자입니다.”

“혼자?”

“예.”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벤트릭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청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고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병사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넌 누구냐?”

수많은 용병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석궁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영창을 하고 있었다.

“내 이름을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그래도 우리를 혼자 막으려고 하는데 그 용기가 가상해서 물어보는 거다.”

“난 자신이 있기에 여기에 있는 것이다.”

피육!

그 말에 한 용병이 그대로 석궁을 쏘았다.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그에게 다가갈수록 미소가 짙어지던 용병은 갑자기 그 화살을 그가 잡아버리자 그대로 얼굴이 굳었다.

“위험한 물건을 날리는군.”

그렇게 말하더니 아주 가볍게 화살을 손으로 날렸다.

처음에는 그런 그를 어이없게 바라보던 용병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점점 화살에 속도가 붙더니 어느 순간 너무 빨라져 육안으로 볼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크악!”

“으악!”

석궁을 쏜 용병뿐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용병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간단히 날린 화살 하나에 네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벤트릭의 표정이 굳었다.

‘소드 마스터. 도륙.’

마지막으로 통신을 했던 마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벤트릭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가?”

“그래. 내가 그랬지.”

“이놈!”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던 벤트릭은 자르가 말리자 겨우 분노를 다스렸다.

벤트릭이 자신을 소개했다.

“난 벤트릭이라 한다. 넌 누구냐?”

“상대가 먼저 이름을 알려주었으니 나도 알려주는 것이 맞겠지. 나는 에반 크라우스라고 한다.”

“에반 크라우스!”

에반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벤트릭은 그의 이름을 아주 크게 불렀다.

“그래.”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둬라.”

“왜지?”

“지옥에 가서 누구 손에 죽었는지 말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벤트릭이 검을 움켜잡았다.


 

「공간의 절대자」 3권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