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20/60)

제9장

“옵니다.”

눈을 감고 있던 에반이 일어났다.

“가자.”

에반의 말에 칼과 아그나르가 에반의 뒤를 따랐다.

이미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활을 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두두두두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며 저 멀리에서 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용병들 전원이 말을 탈 수 있는 기병이었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소리 하나만으로 병사들은 손이 덜덜 떨렸지만 그래도 딴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여기에서 죽지만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며 사거리가 좁혀오자 에반이 명령했다.

“쏴라.”

“일조 발사!”

촤촤촤촤악!

그 말과 동시에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주 호기롭게 말을 타고 달리던 벤트릭은 갑자기 날아오는 화살에 손을 들었다.

“멈춰!”

“멈춰라!”

“멈춰라!”

벤트릭의 명령이 순식간에 전달되고 정말 빠르게 모든 말이 멈추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실책이었다.

“어? 어?”

“뭐야?”

성벽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비웃음을 던지던 벤트릭의 눈도 커졌다.

설마 화살이 여기까지 날아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퍼퍼퍽!

“크악!”

“으악!”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벤트릭도 당황하는 가운데 성벽에서 에반이 명령을 내렸다.

“연사.”

“이조 발사! 일조 장전. 일조 발사!”

빠르게 명령이 하달되고 병사들이 활을 계속해서 날렸다.

팔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날리려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이터널 용병단에게는 지옥이 되었다.

잠깐 멈칫하는 사이에 화살을 맞은 말들이 날뛰는 가운데 잠시 후 정말로 하늘을 뒤덮는 장막처럼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마법사! 마법사!”

벤트릭은 그걸 보면서 마법사를 외쳤고 그 말에 마법사들이 재빨리 실드를 쳤다.

“실드!”

퍼퍼퍽!

하지만 실드는 인간의 목숨은 살려줄지언정 말들의 목숨은 살려주지 못했다.

벤트릭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쳐내며 옆에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자르, 여기에서 성벽까지의 거리는?”

“삼백 미터입니다.”

“그런데도 화살이 날아와!”

역시나 자신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화살의 날아오는 사정거리를 피하고 멈추었다 생각했는데 상대방이 가진 활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멀리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모두 말들을 버려. 그리고 후퇴해. 그리고 마법사들은 대단위 실드를 펼쳐.”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말들이 후퇴를 방해하는 셈이다.

그걸 알기에 벤트릭은 망설임없이 말들을 버리라 명하고는 자신도 말에서 뛰어내려 뒤로 달려갔다.

그 앞을 마법사가 이제야 펼친 대단위의 실드로 후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기습적으로 한 방을 먹은 이터널 용병단이었다.

* * *

마법사가 출현하고 그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궁수라는 군사 조직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서클의 마법사만 되면 궁수와 비슷한 사정거리로 굉장한 살상력을 가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

궁수들에게 지급하는 활과 화살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보다 2서클의 마법사 열 명을 데리고 있는 것이 더욱 전력에 보탬이 되고 또한 돈도 적게 든다.

그런데 오늘 크라우스 가문이 그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피해는?”

“사상자가 백여 명 정도 됩니다.”

“백여 명? 그럼 몇 명이 죽었지?”

“열 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부상자들입니다.”

“그럼 말들은?”

“뒤에 있던 말들을 빼고는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저희가 뒤로 물러나서도 계속해서 말들에게 화살을 쏘아대었습니다.”

“제길.”

벤트릭의 빠른 판단과 용병들의 실력으로 사상자는 적었지만 기동력을 있게 해주는 말들을 잃었다는 데에 짜증이 났다.

“그렇게 마음 상하실 것 없습니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 설마 이런 성벽에 궁수를 두었을 줄은 몰랐어. 척후병을 운용했어야 했는데.”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나 팔로스 백작이 가진 정보력을 믿었다.

궁수가 없다고 알려져서 그대로 돌파를 하려고 했었는데 난데없이 궁수들이 나타났다.

이건 자신의 실수도 실수이지만,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팔로스 백작도 문제였다.

게다가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궁수들이 마법사보다 더 긴 사정거리에서 화살을 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자르는 그런 벤트릭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하면 됩니다. 그리고 기동력이 없어진 만큼 천천히 그리고 철저하게 없애면 됩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얼마를 손해를 본 건데.”

벤트릭이 이를 한 번 갈며 자르에게 물었다.

“투석기는 이미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투석기를 날리는 동시에 저 성벽으로 들어간다. 저놈들을 일단 싸그리 죽여야겠어.”

“알겠습니다.”

* * *

“이제 후퇴합니까?”

옆에 있던 베켓이 조용히 물었다.

“아니. 저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면 화살을 쏜 후에 후퇴한다.”

“그러면 너무 늦습니다.”

“늦지 않으니 말대로 해.”

에반에게 베켓이 뭐라 하려 했지만 그것보다는 병사의 외침이 빨랐다.

“투석기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이 만들어 준 망원경이라는 물건이 멀리 있는 걸 가까이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적들은?”

“이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투석기를 쏩니다.”

그 말과 동시에 멀리에서 투석기가 날아왔다.

쿵!

성벽 바로 밑에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대체 저런 돌덩어리는 어디서 구한 거지?”

에반은 돌들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데도 태연히 바라보며 말했다.

“저놈들은 이터널 용병들입니다. 성 점령 놀이는 매일같이 하던 놈들이란 말입니다. 이미 모든 걸 예상하고 돌까지 싣고 왔을 겁니다.”

“그래?”

다시 망원경으로 적진을 관찰하던 병사가 말했다.

“적들이 움직입니다. 적들이 움직입니다.”

“촉이 있는 화살을 장전해.”

“촉화살 장전. 촉화살 장전.”

“한 번씩만 쏘고 이쪽으로 모인다.”

“일조 발사. 후퇴. 이조 발사 후퇴.”

처음 쏜 화살처럼 촉이 없는 것이 아닌 쇠를 단 촉이 있는 화살은 살상력과 사거리를 또 한 번 높여주면서 적진으로 쏟아졌다.

그 후 병사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에반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벌써 적들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뛰어오고 있었고 돌은 이제 거리를 맞추었는지 성벽에 제대로 접근을 하고 있었다.

베켓도 에반을 보다가 그가 하는 것을 보며 놀라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대체 무엇을……?”

우우웅!

대기가 진동하며 에반의 옆에 검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꼭 지옥의 입구 같았다.

에반이 말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라.”

병사들은 저쪽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와 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라리 지옥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이백여 명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검은 공간 안으로 들어가고 이제 에반과 베켓만 남았다.

“너도 들어가.”

“예? 예.”

베켓은 흘끔 공간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이백 명이 들어갔는데도 뒤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그대로 그 공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

적막했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닿지도 않았다.

당황한 베켓이 짧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러다가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악!”

통!

눈을 감고 있던 베켓은 아픔이 느껴지지 않자 겨우 눈을 떴는데 거기에 병사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때 뒤에서 에반이 튀어나오며 베켓에게 말했다.

“무슨 비명을 그렇게 지르지?”

“그, 그게… 그런데 여기는?”

“삼바스 마을이다.”

삼바스 마을은 팔로스 영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이자 방금까지 있었던 성벽으로부터 두 시간은 걸어야 나오는 마을이었다.

“어,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내 비전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

“괜찮으십니까?”

비전이라는 말에 베켓이 에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칼이 물었다.

“괜찮다.”

하지만 베켓이 보기에도 에반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혈색 하나 변하지 않던 에반이었기에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후. 힘들군.’

사실 공간을 뛰어넘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다.

우선 자신이 이동할 자리에 표식을 해놓고 그곳과 현재 있는 곳의 공간을 접어 포갠 후 공간을 연다.

그렇게 하면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 에반의 실력으로는 공간을 한 번 열고 뛰어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한 개의 공간도 아니고 두 개의 공간을 겹쳐서 다시 그 공간을 열어야 한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병사들은 오히려 지금 상황은 그냥 이해했다.

그냥 에반을 마법사라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짜 마법사인 켈베스는 더욱 두려운 눈으로 에반을 바라보았다.

마나의 움직임도 없이 이상한 공간이동 마법을 펼치는 것을 보고는 역시나 마족이라는 생각과 함께 에반이 하는 일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따라다니기만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베켓은 멍하니 보다가 전날 자신이 에반과 가문의 권역을 돌아다닌 것을 생각했다.

‘그럼 그곳들이…….’

베켓의 얼굴이 환해졌다.

에반의 신기한 마법인지 뭔지 모를 기술로 자신들을 이렇게 옮겨만 준다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 *

“크윽.”

쾅!

벤트릭이 자신의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성문을 발로 찼다.

쩌적!

발길질 한 방에 성문 한쪽에 금이 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피를 볼 생각으로 열심히 뛰어온 자리에는 그저 자신들이 날린 돌덩어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에리아를 불러와.”

한 용병이 달려갔고 곧 로브를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부르셨어요? 단장님.”

“그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저희도 그걸 알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알아보고만 있어?”

“저희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병사들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그곳을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마법적 흔적은?”

에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크윽! 자르.”

“예, 단장님.”

“피해는.”

“조금… 많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삼백여 명의 사상자가 있었습니다.”

“뭐? 삼백여 명?”

자르가 화살 하나를 벤트릭에게 내밀었다.

날카로운 촉이 달린 화살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날린 화살입니다. 갑옷마저 뚫는 무서움을 보여주었죠.”

“그들을 어떻게 하지?”

“지금 팔로스 영주성으로 가지는 못합니다. 이미 다오가 움직였고, 이곳 왕도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괜히 그쪽 갔다가는 골치만 아파질 뿐입니다.”

“제길.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자신들이 이렇게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용병일을 했을 때뿐이었다.

시간이 가고 노련해지면서 언제나 이터널 용병단은 승리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그런데 초입 부분부터 이렇게 피해를 입으니 괜히 화가 났다.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한 어쩔 수 없습니다.”

자르가 말한 그분들이란 바로 그들을 십 년 동안 보살피고 가르친 팔로스 백작가의 가신들이었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터널 용병단이 생겨났지만 솔직히 그들은 팔로스 백작가에 충성심 같은 건 없었다. 만약 그 가신들만 없었다면 연락을 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거머리 같으니…….”

자신들이 어떻게 실력을 키웠는지 생각을 하지 않고 팔로스 백작가를 욕하고 있는 벤트릭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자르가 화제를 전환했다.

벤트리는 성벽을 계속 쳐다보다가 명령을 내렸다.

“사상자들을 돌볼 간이 천막을 만들고 척후병을 보낸다.”

“알겠습니다.”

자르가 떠나고 에리아도 마법사들을 찾아갔다.

혼자 남은 벤트릭이 다시 한 번 이를 갈았다.

“철저하게 파멸시켜 주마.”

* * *

“컥!”

용병 한 명이 또다시 쓰러졌다.

데일은 검에 묻은 피를 잠시 보다가 검집에 검을 넣었다.

세 명의 용병을 조를 이룬 기사들이 처리한 것이다.

“괜찮습니까?”

게이부가 물었다.

“아, 괜찮아. 내가 할 일이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다 처리한 거야?”

“예. 이쪽으로는 척후병을 세 명만 보낸 것 같습니다.”

“다른 쪽에서도 이들을 처리하고 있겠지?”

“그렇지요.”

“아무렇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너는 기사잖아. 그런데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

“훗! 단장님 앞에서 자존심을 지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단장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해야죠.”

“그렇기는 하지. 그나저나 이놈들은 너무 약한데?”

“저희가 강해진 겁니다.”

“정말이야?”

“예.”

그러면서 게이브가 수정구를 꺼내었다.

기사들을 세 명씩 짝을 지어준 에반은 그들에게 통신을 할 수 있는 수정구를 나누어 주었다.

드워프가 수정구와 함께 그걸 충전할 마나석을 주고 켈베스가 마법진을 새겼다.

비록 장거리 통신은 할 수 없지만 근거리를 통신할 수 있는 통신구가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돈 낭비라 생각하겠지만 에반은 이들에게 나눠주는 통신구가 제 역할을 하리라 믿고 있었다.

“들리나?”

-누구십니까?

“게이브다.”

-충.

“이곳으로 온 척후병은 처리했다. 다음 명령을 바란다.”

-척후병을 처리하면 집결지로 모이라는 명령입니다.

“알았다.”

-충. 고생하십시오.

처음 받은 명령과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게이브가 수정구를 넣고는 데일에게 말했다.

“집결지로 모이랍니다.”

“그래.”

“가자.”

“예.”

세 기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 * *

게이브와 데일 그리고 기사 한 명이 집결지에 모였을 때에는 이미 대부분의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에반도 있었다.

“오셨습니까?”

게이브가 에반을 보며 인사를 했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병사들에게 공간이동을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에반이 여기 있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공간이동이 무엇인지 겪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에반은 모두가 모인 듯하자 기사들에게 말했다.

“저들은 척후병들이 모두 죽은 것을 알면 어느 정도 규모의 용병들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베켓이 말했다.

“그들이 출발했답니다.”

“병력은?”

“백여 명씩 세 개 조라고 가까이 있는 정보원들이 보고를 했습니다.”

기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에반의 말이 척척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벤트릭은 척후병들은 보통 십오 분 거리를 빠르게 탐색을 하게 운용한다.

그런데 척후병들이 신호를 보내지도 못하고 십오 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번에는 백여 명 정도의 용병과 마법사들까지 한 조를 이루게 하여 보내었다.

그리고 에반은 그들 중 첫 번째 목표를 쫓았다.

“적이다!”

갑자기 불쑥 모습을 드러낸 크라우스 기사단의 모습에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본진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 사이 그들에게 다가선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나타난 이들이 자신들보다 숫자가 적자 얕보았던 용병들은 너무나 재빨리 자신들에게 붙어 검을 휘두르는 그들을 보며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크악!”

“으앗!”

검이 춤추듯이 휘둘러지며 늑대들이 양떼에 들어간 것처럼 기사들은 용병들을 압도해 나가고 있었다.

에반은 뒤에서 그 광경을 보며 마나의 움직임이 있는 마법사들을 허공을 격해 점혈을 하는 것으로 제압을 하고는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기사단원들도 제각각 따로따로 움직였지만 옆에 동료가 있는 와중에 검을 휘두르면 이상하게 힘이 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느새 몇 명씩 모여서 용병들을 상대했다.

그걸 보며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공에 저런 효능이 있었군.’

투기가 어우러지며 기사들이 에반에게 배운 검술을 펼치자 자연스럽게 동공도 활성화되면서 주위의 마나를 끌어들였는데 옆에서 다른 기사가 같은 검술을 펼치자 동공 또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더 많은 마나를 몸으로 끌어들이며 더욱 빠르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용병들이 신호를 날린 지 십 분 정도가 지나자 더는 서 있는 용병이 없었다.

“수고했다. 가자.”

온몸에 피칠갑을 한 기사들에게 재촉을 하는 통에 처음 살인을 해본 몇몇은 그 감정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에반을 따라갔고 잠시 후 그곳에 다른 용병들이 나타났다.

“단장님.”

-무슨 일이 일어났지?

도착한 용병이 마법사가 연결해 준 통신구에 벤트릭이 보이자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그 주위를 보여주었다.

-으음.

백여 명이 핏물 속에 잠겨 있는 그 광경에 벤트릭이 침음을 흘리더니 그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당할 수 있으니 빨리 복귀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벤트릭은 용병 한 명을 시켜 지금 밖으로 나간 용병들에게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내게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또 하나의 신호가 터졌다.

“으득. 가만둘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벤트릭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 모여라.”

잠시 쉬고 있던 용병들은 벤트릭의 말에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며 재빠르게 모였고 그런 용병들에게 벤트릭이 말했다.

“밖으로 나갔던 백여 명의 용병들이 당했다.”

그 말에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신호가 올라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갈가리 찢어 개밥으로 줘야 합니다.”

“맞습니다.”

용병들이 무기들을 들며 그렇게 외치자 벤트릭이 말했다.

“그래. 우리는 그들을 잡아서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러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지 마라. 복수를 하자!”

“와아아아아!”

이천여 명이 지르는 고함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벤트릭이 자르를 불러 말했다.

“빨리 이동한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잠시 신호가 왔던 쪽을 바라보던 벤트릭이 말했다.

“오른쪽이다.”

오른쪽은 아직 신호가 오지 않은 쪽이었다. 벤트릭은 백 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인지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르는 그런 벤트릭의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크악!”

“으아악!”

다시 급습한 용병들 또한 크라우스 기사단에게 힘을 써보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옆에 있던 베켓이 말했다.

“본진이 움직인답니다.”

“방향은?”

“아직 처리하지 않은 용병들이 있는 곳입니다.”

“알았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보자 이미 용병들을 모두 처리한 기사들이 검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본진이 있는 곳을 치러 간다.”

그 말에 모두가 놀라 에반을 바라보았다.

그건 정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기 때문이다.

“저희만으로 삼천 명을 상대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다. 지금 본진은 우리를 잡으러 이동 중이라고 한다. 우리는 본진에 남아 있는 잔여 병력과 부상자들을 처리한다.”

“부상자까지 처리합니까?”

“그래. 그래서 저들은 더욱 이성을 잃고 날뛸 테니까. 그래야 움직임이 편해지고 전투도 한결 편해진다.”

에반의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실지 에반은 책에서 본 것을 토대로 계획을 짜고 있었지만 조금 비인간적인 계책이 많았다. 그러나 에반으로서는 무엇이 비인간적인지 구별을 못하고 또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문의 사람들이 최우선이기에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나가는 것이다.

“가자.”

“단장님.”

데일이 에반의 발길을 막았다.

“뭐지?”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그곳에서 남아 있는 잔여 병력을 처리한 후 저희는 어떻게 후퇴를 합니까? 성벽 바로 앞이기 때문에 병력들이 돌아온다면 저희가 갈 곳은 팔로스 영지밖에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예?”

“안전하게 그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에반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데일을 바라보았다.

현재 데일의 감정은 복잡했다.

많은 감정이 교차를 하는 가운데 부정의 기운이 정말로 뚜렷한 것이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에반이 그런 데일에게 한마디 하려 할 때 그것보다 베켓이 먼저 나섰다.

“데일 님, 그건 에반 님이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데일이 말을 하려 하자 베켓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미 병사들이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 들으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냥 가지요.”

잠시 베켓과 에반을 쳐다보던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과 기사들이 움직이고 그 뒤로 에반과 베켓이 뒤따라갔다.

“왜 내가 말을 하지 못하게 했지?”

“아무리 보아도 에반 님께서는 현재 데일 님의 심정을 모르시는 것 같아 제가 나섰습니다. 죄송합니다.”

“현재 심정? 그곳으로 가기 싫다는 마음 말이냐?”

그 말에 베켓이 놀란 눈으로 에반을 바라보았다.

“설마 왜 데일 님께서 저런 상태인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건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가기 싫다는 걸…….”

“그 정도는 척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노련한 베켓도 데일이 에반에게 대드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런 걸 에반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은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반이 그에 대해 말할 것 같지 않자 그냥 넘어가며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 데일 님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 그게 뭐지?”

에반의 물음에 넌 인간도 아니냐, 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앞에까지 나오려다 간신히 막은 베켓이 말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죄책감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까요.”

어차피 인간이 죽어서도 그건 인간이라는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영원히 세상을 떠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에반으로서는 베켓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그냥 넘어가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켓은 에반이 이해를 한 것 같자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부상자들까지 죽인다는 소리에 데일은 죄책감이 두려움으로까지 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베어본 것 같은데 그렇기에 더욱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네가 나선 거냐?”

“예.”

“음…….”

에반은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기본적인 것을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마음.’

절대 에반이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배울 수는 있지만 그걸 느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을 하며 베켓에게 말했다.

“베켓.”

“예. 에반 님.”

“나중에라도 누군가 인간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는 내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싶으면 나에게 설명을 해주어라.”

“예?”

“내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그를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냥 네가 깨달으면 되잖아.’

베켓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음. 그럼 데일은 이번 일에서 뺄까?”

“아닙니다. 에반 님과 지내다 보면 어차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입니다. 더욱 빨리 익숙해져 무덤덤해지거나, 그런 마음을 뛰어넘으려면 일찍 경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가?”

“예.”

“그럼 우리도 가자.”

“예, 에반 님.”

베켓은 에반의 등 뒤를 보며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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