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장 (19/60)

제8장

“따뜻해졌군.”

제트로가 성 밖을 보며 말했다.

용병들이 훈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

“얼마나 모였지?”

“삼천 명가량이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병력이 다인가?”

“그렇습니다.”

“하긴 그 정도만이라도 자신이 있겠지. 벤트릭을 불러와라.”

“예.”

전의 켈베스의 공격때 살아남았던 기사가 나가고 잠시 후 이터널 용병단의 단장인 벤트릭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작님, 부르셨습니까?”

문을 마음대로 여는 벤트릭의 행도에 화를 낼 법도 한데 젠트로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봄이군.”

그 말에 벤트릭이 씩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한 참이었습니다.”

아직 삼십대의 벤트릭이었다.

십오 년 전 전대 팔로스 백작이 병력을 키우기 위해 모처로 보낸 이들 중 벤트릭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십 년 후 세상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부터 벤트릭이 단장이었다.

제트로는 이제 그가 왜 단장이 되었을까도 궁금해졌지만 그런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지금은 오직 크라우스 백작가에 힘을 쏟을 때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준비는?”

“저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그대들끼리만으로 가능하겠는가?”

“저희는 이터널 용병단입니다. 다른 자들은 필요 없습니다. 백작님께서는 저희가 크라우스 가문을 무너뜨리는 것을 구경만 하십시오.”

“알겠다.”

“그럼 언제 출정을 하는 겁니까?”

“삼 일 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출정식을 거행하겠다.”

“예, 백작님.”

벤트릭이 그 말에 신형을 돌려 방을 나섰다. 제트로가 나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냥 나가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제트로는 참았다.

“모든 것은 이번 전쟁이 끝난 후다.”

제트로가 중얼거렸다.

* * *

“쏴!”

촤라라라락.

명령이 내려지고 병사들이 시위를 놓자 활이 포물선을 그리며 보이지도 않는 거리까지 날아갔다.

“다음.”

그들은 자신이 날린 화살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빠져 옆에 있는 궁수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다음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한 번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촤라라락!

“열심이군요.”

“음.”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에반은 옆에 쥬드가 말을 걸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드워프들이 만든 활을 가지고 나설 궁수병입니까?”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지?”

“팔로스 백작이 출정식을 준비한답니다.”

“언제?”

“삼 일 후라는군요.”

“별로 남지 않았군. 사람들의 반응은?”

“이미 빠져나갈 이들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게다가 기사들이 마을을 순찰하니 난동을 피우는 사람도 없고요.”

에반은 점점 봄이 다가오자 기사들을 마을로 보내고 병사들을 폴로냐 산으로 불러들였다. 병사들이 사라진 걸 아는 순간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안해했지만 난동을 부리는 무뢰배들을 기사들이 직접 나서 처단을 하자 그런 불안은 사라졌다.

조만간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지만 치안은 안정이 되어 있었고 신물을 찾아왔던 어중이떠중이들은 몸을 피한 후였다.

“그럼 이제 진짜 전쟁을 준비해야겠군.”

“이미 팔로스 영지 가까이에 있는 마을 세 군데의 사람들은 이곳으로 이동을 하라고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너도 갈 것이냐?”

“예. 전 크라우스 가문의 가주니까요.”

“그렇군.”

“그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을 하시다 오신 겁니까?”

“응? 무슨 뜻이지?”

“형님께서 하시는 행동을 보아서는 절대로 흑마법사의 실험체로 있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아아, 그건가?”

“예?”

“넌 내 말을 다 믿을 수 있겠냐?”

잠시 생각하던 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형님의 말을 모두 믿지는 못하겠습니다. 이미 흑마법사의 실험체였다는 것도 믿지 못하는데요.”

“그거 말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받아들이도록 노력을 해봐야죠.”

“그거면 되었다. 이번 일이 끝난 후 내가 겪은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지.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형님 소리도 듣지 못할까 봐 거짓말을 했었던 거다.”

그때는 켈베스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이제 쥬드가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기에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도 된다는 생각을 에반은 했다.

쥬드가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는 에반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폴로냐 산에 있는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헉. 헉. 가주님.”

“무슨 일이오. 집사?”

집사는 숨이 차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이 시기에?”

이 시기에 손님이 왔다는 말에 쥬드가 집사를 보며 물었다.

“그것이 마탑에서 온 마법사입니다.”

“마법사가 왜?”

“켈베스 마도사 때문이라고만 하여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봐야겠군.”

“내가 같이 가지.”

“형님이요?”

“그래. 켈베스의 일이니 나도 들어봐야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지.”

“예. 가주님.”

집사가 먼저 내려가고 그 뒤로 쥬드와 에반이 함께 산을 내려갔다.

* * *

“안녕하십니까? 난 화염의 마탑의 부탑주인 코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크라우스 가문의 가주인 쥬드 크라우스입니다.”

보통 마법사들은 작위가 없어도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부탑주라는 신분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한데 이분은?”

“에반이다.”

“아. 예.”

갑자기 새파랗게 어린 놈이 자신에게 반말을 해대자 코임은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래도 웃음으로 대했다.

지금 자신이 웃고 있어야 나중에 제대로 상황을 이끌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켈베스 마도사 때문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를 불러드릴까요?”

그 말에 코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코임이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그리고 켈베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켈베스를 피해서 쥬드를 만난 건데 켈베스를 데리고 오겠다는 건 그에게는 당연히 안 될 말이었다.

“아니요. 문제라니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켈베스 마도사는 저희 마탑에서도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그러니 그를 풀어주십시오.”

“예?”

“그는 마나의 맹세를 했습니다. 그냥 이 가문을 떠나서는 마나의 맹세를 어기게 되는 겁니다. 그걸 피하려면 크라우스가에서 그를 내쫓든가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크라우스 가문이 사라지는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서 코임이 웃었다.

그는 웃으면서 분위기를 주도권을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서라면 팔로스 백작을 도와 우리를 없애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닙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켈베스 마도사를 놓아주면 좋게 해결을…….”

쿵!

“혀, 형님.”

에반이 코임에게 손을 뻗고 그가 눈이 돌아가며 기절을 한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쥬드가 당황하여 에반을 보았다.

그러나 에반은 태연했다.

“이자를 안 보이는 곳에 잘 처박아둬. 전쟁이 끝나면 풀어주자고.”

“하지만…….”

“어차피 이자는 나중에 켈베스 마도사가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그것보다는 전쟁 중에 새로운 적을 만드는 것은 자제해야지.”

“알겠습니다.”

퍽!

그때 에반이 코임을 발길질했다.

“형님!”

쥬드가 소리를 치며 에반을 말렸다.

“본가를 가지고 위협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야.”

그 말에 쥬드가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이내 안으로 병사들을 불러 그를 손님방으로 데리고 가라 명령했다.

에반은 그러면서 쥬드가 슬쩍 코임의 다리를 밟는 걸 보면서 역시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에반이나 쥬드나 같은 핏줄을 타고난 형제인 것이다.

* * *

출정식의 날이 밝았다.

제트로의 갑옷을 다 입고 하인들이 나가자 테판이 들어왔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드디어 복수를 하는구나.”

“그리고 저희의 비상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들을 제어할 수 있겠지?”

“이미 수뇌부들은 모두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을 확인을 했습니다.”

“그래. 그들이 백작가를 너무 우습게 보았어.”

“백작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굴복시키는 모습을 크라우스 가문이 멸문되는 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하! 그래.”

제트로가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가자.”

“예.”

그가 성 밖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질서정렬하게 서 있는 이들이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강인하게 보이는 이터널 용병단이었다.

지금은 이터널 용병단이지만 이번 전쟁이 끝나면 팔로스 백작가의 이터널 기사단으로 이름이 바뀔 거라 확신하며 제트로가 그들을 둘러보다가 출정식을 하려고 했다.

“이제…….”

콰아악!

우우우웅!

갑자기 그들이 서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기둥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저게 뭐야?”

모두가 하늘 높이 올라간 검은 기둥을 보는 사이 몇몇의 안색이 바뀌었고 그 중 한 명이 벤트릭에게 뭐라 말을 했다.

그에 벤트릭의 안색도 변하더니 재빨리 제트로가 서 있는 단상으로 올라섰다.

“백작님.”

“무슨 일인지 아는가?”

젠트로는 검은 기둥을 바라보다가 벤트릭이 올라오자 물었다.

“흑마법사의 소행 같답니다.”

“흑마법사?”

제트로의 안색이 변했다.

“예. 흑마법사들의 마법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거는 주문 중 저런 마법이 존재한답니다. 본래는 실내에서 마법이 발생하여 저런 기둥이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는데 실외에서 한다면 저런 효과를 가진답니다.”

“그러니까 흑마법사의 마법이란 말인가?”

“예.”

그들이 말을 하는 사이 검은 기둥은 사라졌지만 그 잔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불과 짧은 몇 분 사이였지만 그걸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진짜 크라우스 가문이 흑마법사와 상관이 있는 건가?’

자신이 흑마법사와 상관이 없으니 제트로는 크라우스 백작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트릭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의문이 있나?”

“설마 흑마법사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저런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저 주문은 4서클 이상의 다섯 명의 흑마법사가 모여서 모든 마나를 소진한 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지금 느끼는 기분 그대로입니다.”

“기분?”

그러고 보니 몸에서 힘이 차오르고 자신감이 생겼다.

제트로가 벤트릭을 바라보았다.

“예. 맞습니다. 지금 느끼는 대로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되어 있는 힘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주문입니다.”

“이건 크라우스 가문에서 한 짓이다.”

“이 주문에 걸리면 저희는 전보다 배는 전력이 올라갑니다. 크라우스 백작가가 미치지 않은 이상 이 주문을 걸어 강해진 저희들과 싸우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본래부터 저희가 승기를 잡고는 있지만 이 주문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처절하게 짓밟힐 거란 말입니다.”

벤트릭은 추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트로도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테판이 나섰다.

“저희는 당당합니다. 그러니 이제 출정식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크라우스 백작가를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지금 내 말을 못 들었소? 우리가 전쟁을 한다면 그대로 흑마법사와 한패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오.”

“그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힘으로 크라우스 백작가를 없애주십시오.”

벤트릭이 페탄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차피 자신들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백작님.”

페탄이 자신을 부르자 제트로가 말했다.

“난 여기 남아야겠군.”

“예. 곧 다오에서 올 것입니다. 그들이 이걸 보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요.”

“내가 모든 걸 걸고 그들에게 흑마법사와 연관이 없음을 증명하겠다. 그러니 너는 당장 저 마법이 시전된 곳을 찾아 그들을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제트로가 단상에서 내려가 성으로 들어가고 벤트릭이 용병들을 다독였다.

갑작스러운 마법이 출정식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었다.

* * *

“되었습니다. 헉. 헉.”

“모두 고맙다.”

“아닙니다. 하스 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요.”

그 말에 하스가 쓴웃음을 짓고는 흑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를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하스가 쓰러진 다섯 명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그들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먹었고 곧이어 창백해진 혈색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흑마법사들이 일어서며 하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의 흑마법사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주문을 쓴 겁니까? 그들을 도와주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난 분명 도와주었다. 팔로스 백작가 곳곳에 우리들의 흔적을 남기고 또한 이 마법까지 썼으니 다오 놈들은 분명 팔로스 백작가가 우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팔로스 백작가의 병력은 더 강한 힘을 얻었습니다.”

“상관없다.”

“예?”

“우리가 팔로스 백작가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로 저들과 크라우스 백작가의 약속은 지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를 이용하고 흑마법사의 은신처를 알려줘 형제들을 죽인 것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그 말에 흑마법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있었군요.”

“대단합니다.”

“역시 하스 님입니다.”

하스는 그들의 칭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약속을 지켰다. 대신 너희는 나를 이용하고 내 눈앞에서 모두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한 죄로 파멸을 맞아야 할 것이다.’

하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이내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 * *

검은 기둥은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곳이 된 마을에 주둔해 있던 크라우스의 병사들도 볼 수 있었다.

“일을 아주 거창하게 했군.”

“하지만 조금은 불안합니다.”

“뭐가?”

베켓의 말에 에반이 물었다.

“그 기둥은 분명 문헌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흑마법사의 주문인데…….”

“서커라는 주문이다.”

켈베스가 굳은 얼굴로 베켓에게 말했다.

“무엇인지 아는가?”

“예. 대상자들이 가진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주문입니다. 그 주문으로 적들은 더 강해졌을 겁니다.”

“이 자식들이.”

베켓이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흑마법사들이 이런 짓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어차피 흑마법사들이다. 원래 믿지 못할 놈들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지만 이터널 용병단은 평소에도 강합니다. 그런 그들이 이 마법으로 더욱 강해진다면…….”

베켓이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에반은 침착했다.

“우리가 이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

지금 에반은 크라우스 가문에 있는 모든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궁수들만이 자리해 팔로스 백작군이 이곳으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성벽에 올라가 활을 쏜다니 너무나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의 모든 건 에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에 불만을 속으로 삭였다.

괜히 말을 꺼내면 분란만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켈베스.”

“예. 에반 님.”

“모든 준비는 되었나?”

“이제 그들이 지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에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에는 칼을 보았다.

“모두에게 긴장을 하고 신호를 하면 내게 모이라는 말도 내렸나?”

“예. 단장님.”

칼은 예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몇 달 사이 에반에게 좌공을 배우면서 마음의 수련을 쌓았고 그것이 칼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그는 침착해졌고 또한 과묵해졌다.

아마 이것이 본래 칼의 성격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본래의 성격을 봉인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위한 새로운 성격을 형성했던 칼은 에반을 만나 본래 자신을 찾았다.

베켓은 그런 칼을 보며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냥 말단 병사였던 칼을 에반이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을 보며 불가사의하다고까지 생각을 했다.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정보대로라면 자신들은 필패였다.

어차피 필패면 에반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베켓은 그런 심정으로 에반을 믿고 있었다.

* * *

루드 왕이 오랜만에 웃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크라우스 가문을 밀어버릴 수 있다고?”

“예. 폐하.”

“크크크. 그렇게 이제야 앓던 이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군.”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스미트 마도사가 말했다.

“조심? 무엇을 조심하라는 건가?”

“팔로스 백작은 그 흉중을 숨기고 병력을 키웠습니다. 충성심이 강한 팔로스 백작도 그럴진대 다른 귀족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흠. 그렇기도 하겠군.”

“또한 후계자 문제도 있습니다.”

노드에르 백작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이지?”

“후계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지금 귀족들은 중구난방으로 편을 가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서 빨리 후계자를 정해야…….”

“흥. 노드에르 백작. 너는 짐이 죽기를 바라느냐?”

“어, 어찌 제가?”

노르에르 백작이 펄쩍 뛰며 루드 왕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데 어째서 벌써부터 후계자를 정하라는 말을 할 수 있지?”

“그, 그것이…….”

첫 번째 왕자가 스무 살에 두 번째 왕자가 열아홉이다.

그런데도 왕세자가 없는 실정이다.

타 왕국 같았으면 이미 오래전에 정해졌을 왕세자이지만 루드 왕은 자신의 아들들까지도 경계를 하고 있었다.

크라운 전쟁이 끝난 지 십오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루드 왕은 그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노드에르 백작과 스미트 마도사가 없었다면 이미 반란이 일어나도 훨씬 전에 일어났을지도 모르게 루드 왕은 제멋대로였다.

스미트 마도사는 자신을 곁눈질로 쳐다보는 노드에르에게 눈치를 주더니 나섰다.

“전하, 잠시 재상이 헛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옵소서.”

“흥. 역시나 스미트 마도사밖에 없구나.”

그 말에 노드에르 백작이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러나 스미트 마도사의 말에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잠시 후 루드 왕이 말했다.

“혼자 있고 싶구나. 둘 다 일을 보거라.”

“예, 전하.”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전의 문을 닫고 나와 고개를 들었다.

노드에르 백작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건가? 후계자 문제는 꺼내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하지만 왕자님들이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들을 보고만 있자면 자꾸 불안해집니다.”

그 말에 스미트 마도사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드에르 백작이 그런 스미트 마도사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또다시 크라운 전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그걸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상?”

“예, 후작님.”

“재상은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무슨 생각 말입니까?”

“만약 왕자 분들 중에 한 명이 왕세자가 된다면 다른 왕자 분이 어떻게 나올지 말이야.”

“그야 조용히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럴까?”

“예?”

노드에르 백작이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스미트 마도사를 보았지만 그는 말을 해주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난 말일세. 오래전부터 왕을 보필해 오던 사람이네. 그의 독심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세 왕자 모두 그 독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이런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자신이 왕세자를 옹립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왕세자가 나온다면 더욱 빨리 십오 년 전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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