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18/60)

제7장

에반이 일을 해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베켓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정체가 뭐지?’

가문에 힘을 쏟는 것을 보면 진짜 에반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은 너무나 불가사의했다.

기사나 병사들을 정예병처럼 키워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한 달이 걸리는 거리를 단 몇 시간 만에 도착한다는 건 인간인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드래곤인가?’

이미 세상에는 유희를 하는 드래곤은 없다.

크루세스의 마법서가 나온 후 마탑주들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왕이나 왕비로 유희를 하며 장난삼아 세상을 어지럽혔던 드래곤들이 본체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처음에는 드래곤들은 다른 드래곤들이 어이없이 죽는 것을 비웃었다. 어떻게 하찮은 벌레 같은 인간에게 죽을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점점 드래곤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에 드래곤 로드는 각 일족들에게 자신들의 수를 파악해 보게 했고 그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수가 채 백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부터는 심각했다.

이미 인간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기사들의 수도 많았다.

게다가 그 백이 안 되는 숫자 중 반절은 수면기였다.

그런 상황이 닥치자 드래곤 로드는 로드로서 명령을 내렸다.

-유희를 금지한다.

그건 드래곤뿐 아니라 이 대륙에 사는 전 종족에게 전해졌고 모두가 그에 환호를 보내었다.

드래곤들이 유희를 하며 장난을 친 것 때문에 어떤 종족들은 서로 원수가 되었고 어떤 종족은 사라질 위기에도 처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유희를 하는 드래곤을 잡는 걸 도와주었던 여타 종족은 이제야 편히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드래곤들은 유희를 하지 못했고 만약 유희를 하면 그건 이미 드래곤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정체가 뭐지?’

베켓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할 때 에반은 다시 테페 산으로 모인 기사들과 병사들 앞에 서 있었다.

“잘 전했나?”

“예!”

에반이 당차게 대답을 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그들이 못미더웠다.

아마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진짜 전투를 보아서였을 것이다.

그냥 싸우면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라는 걸 다오와 흑마법사 간의 전투에서 에반은 깨달았다.

지금 이들로서는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내가 상대를 해주겠다.”

그 말에 모두가 긴장을 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도록.”

그 말에 게이브가 가장 먼저 나왔다.

모두가 망설이는 가운데 게이브는 눈을 빛냈다.

타고난 기사였다.

그런 게이브를 보며 에반이 중얼거렸다.

“준비는 되어 있군.”

“예?”

“아니다. 그럼 시작하지.”

“맨손으로 싸우는 겁니까?”

“네가 가장 자신 있는 걸로 공격을 해봐라.”

“단장님은 맨손이고 말입니까?”

“왜? 내가 맨손이라니까 공격하기 꺼려지나?”

“조금 그렇습니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나 마라.”

“제가 그 정도 상대밖에 되지 않습니까?”

에반이 땅을 한번 가리키고는 다시 하늘을 가리켰다.

게이브가 그 손가락을 가리킨 곳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에반을 보며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너와 나의 차이다.”

“절 도발하는 걸로 알아듣겠습니다.”

게이브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검을 뽑았다.

에반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하압!”

검이 위에서 아래로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속도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빨랐고 에반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의 속도도 적절했다.

단 한 번의 칼질이지만 멋대로 배운 검술의 기사와 싸운다면 이 한 번으로 모든 것이 갈리겠다 싶을 정도로 게이브의 칼질은 깔끔했다.

하지만 에반은 가차 없었다.

“기세가 없어.

퍽!

“큭!”

살짝 옆으로 피한 에반이 손으로 게이브의 옆구리를 두드리며 한 말이었다.

배가 꼬이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게이브는 아래로 떨어지는 검을 이번에는 사선으로 그었다.

그리고 에반은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이동하며 이번에는 게이브의 가슴을 치며 그에게 소리쳤다.

“기세가 없다니까!”

퍽! 쿵!

이번에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게이브가 넘어졌다.

그에 지켜보던 이들은 표정이 굳었다.

게이브의 실력이 여기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단 두 수 만에 그는 쓰러졌다.

그것도 손속을 두어서 두 수이지 어쩌면 한 수 만에 쓰러질 수 있었다.

게이브가 아픔을 참고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에반은 그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턱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오른쪽.”

“예?”

“오른쪽으로 가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다음.”

모두가 눈치를 보았다.

게이브가 당하는 것을 보자 차마 에반의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시 아무나 나오길 기다리던 에반이 물었다.

“내가 꼭 집어줘야 하나?”

“제가 하겠습니다.”

갑자기 데일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네가 한다고?”

“예, 단장님.”

“그럼 나와서 서라.”

“예.”

데일이 앞에 섰다.

에반도 보일 정도로 손과 발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아,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에반 앞에 정면으로 서자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자신의 앞에서 기사들이 에반의 손에 죽고 자신마저 제압을 당하던 그 일이 말이다.

그러자 온몸에 두려움이 엄습했고 손발을 떨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그것이 에반에게 제대로 인정받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야만이 그때의 일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무기를 무엇으로 할 거지?”

“검으로 하겠습니다.”

“들어라.”

“예, 옙!”

큰 소리로 말하며 데일이 검을 뽑았다.

에반은 그가 검을 든 것을 보며 말했다.

“무언가 불안정하군. 정말 나와 싸울 자신이 있느냐? 난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혹독하게 대한다.”

“하겠습니다. 꼭 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데일이 무작위로 검을 휘둘렀다.

형식도 없고 목적도 없었다.

그냥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러나 데일은 게이브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에반은 자신에게는 다가오지 않는 검에서 점점 투기가 실리며 날카롭게 변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투기가 검의 형식과 목적을 살렸다.

휘익!

에반의 앞머리가 날리면서 검에서 일어난 검풍이 에반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난도질할 듯 다가오는 검이 에반에게 정확히 날아왔다.

에반은 그 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고는 데일의 검을 쥔 손을 잡아 돌렸다.

쿠당탕!

데일은 넘어지기는 했지만 손에서 검을 놓지는 않았다.

에반이 자신의 검을 빼앗으려 하자 오히려 몸을 가볍게 해 한 바퀴 돌아서 땅바닥에 넘어지는 걸 선택했다.

그런 데일에게 에반이 말했다.

“이번에는 빼앗기지 않았구나.”

데일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까지 거북하게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떨리던 손도 안정을 되찾았다.

데일이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너도 오른쪽.”

“예.”

데일이 게이브 옆에 섰다.

그 후 자발적으로 나온 기사들이 에반을 상대했다.

데일도 나섰는데 자신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수치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그런 기사들을 상대로 손을 섞고 병사들까지 모두 대련이 끝이 나자 왼쪽의 수가 월등히 많아져 있었다.

“너희들은 왜 왼쪽이 있는 줄 아는가?”

에반이 그들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그들은 정말 몰랐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오른쪽에 있는 이들과 비슷하게 땅바닥을 굴렀는데 자신들은 왜 왼쪽인지를 몰랐다.

다만 게이브가 오른쪽에 있기에 왼쪽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너희들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제부터는 단체 대련이다. 오른쪽이 라이트팀, 왼쪽이 레프트팀이다. 대련을 하도록.”

“예?”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이다. 너희들끼리 싸우는 거다.”

“숫자가 맞지 않는데요.”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숫자가 많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머뭇거렸다.

라이트 팀은 오십이 명이고 레프트팀은 칠십이 명이다.

두 팀 다 상대방을 상대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반의 한마디에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이긴 팀만이 오늘 산을 내려갈 수 있다.”

그 말 한마디가 주는 파급은 컸다.

폴로냐 산의 연무장은 한겨울이지만 춥지 않다. 두 드워프들이 춥지 않게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낮 동안만이다.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고 오히려 산 아래보다 더 춥다. 낮에 따뜻한 대신에 그 여파로 더 추워지는 것이다.

몇 번 연무장에서 밤을 지새워본 이들은 절대 밤에는 연무장에 있는 것은 사절이었다.

드워프들은 연무장은 만들어 주었지만 그곳에 쉴 곳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이 드워프들이 모르고 만들지 않았는지, 에반의 부탁에 일부러 만들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연무장에서 추위를 피할 곳은 없었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야얍!”

“죽어.”

“어이, 진검을 휘두르면 어쩌겠다는 거야?”

“지금 밤을 지새운다는데 진검이 문제야! 죽어! 죽어!”

정말로 개판이었다.

이것이 정말 기사들이 맞는지 모를 정도로 기사들도 그 개판에 동참해서 비슷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승자들이 가려졌다.

생각 외로 승자는 바로 라이트팀이었다. 에반의 생각대로 된 것이다.

레프트팀은 고작 초반에 열두 명을 제압하는 데 그쳤다.

초반의 열세에 당황했던 라이트팀은 열두 명이 당하자 그 후 정신을 차리고 레프트팀을 상대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레프트팀을 하나하나 제압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모두를 제압하고는 무릎 꿇려 놓았다.

에반은 그들을 보며 물었다.

“거기.”

“예.”

풀 죽어 있는 목소리의 레프트팀에게 에반이 물었다.

“무엇이 문제인 것 같은가?”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지 않았다.

에반이 라이트팀을 보았다.

“너희는 왜 너희가 이겼는지 아는가?”

“…….”

그 말에도 제대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 이기기는 했는데 어째서 이겼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게이브.”

“예!”

“내 대답에 답을 알 때까지 여기에서 훈련을 하도록.”

“저희도 말입니까?”

“그래. 너희도.”

“알겠습니다.”

게이브가 대답했다.

그리고 에반이 나갔다.

* * *

“대체 뭐가 문제지? 어떻게 내가 저딴 놈들에게 질 수 있냐고!”

프타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까지 하며 말했다.

그러자 게이브가 나섰다.

“조용히 해라.”

“흥. 지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는 건가? 어차피 단장님에게 단번에 나가떨어진 주제에 말이야.”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러자 프타의 옆에 있던 기사가 일어나며 말했다.

“대체 네가 무언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네가 부단장이야? 아니면 무슨 감투라도 있어?”

분명 게이브는 아무런 직책도 없었다.

“맞아.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너무 나대.”

“그것이 게이브에게 할 말이야? 게이브가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하는지 아는 너희들이 할 말이냐고!”

“어허라? 이제 게이브 똥구녕을 핥겠다는 거냐?”

“뭐야?”

프타로 인해 시작된 푸념이 점점 커져 언성이 높아지더니 장내는 아주 시끄럽게 변했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며 칼부림이 나기 직전까지 가자 참지 못한 데일이 일어나 연무장의 바닥을 세게 쳤다.

쿵!

“그만.”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사는 기사들끼리 병사는 병사들끼리 서로를 비방하던 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에반도 이제 인정을 하는 추세이고 스스로도 의젓해진 데일이기에 예전처럼 만만히 볼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그 성격 때문에 따르는 척을 했다면 지금은 그의 바뀐 분위기 때문에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번 겨울이 지나면 전쟁을 한다는 건 알고 있나?”

“…….”

모두가 말이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는 건가? 특히 프타, 너.”

“예?”

“난 아직도 프타 너를 단장님이 받아들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명 너 때문에 기사들이 단합이 깨질 것이 뻔해 보이는데 왜 단장님은 너를 받아들였을까?”

“…….”

잠시 말없이 시선을 외면하는 프타를 노려보던 데일이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너도 우리 기사단의 일원이고 그러니 우리는 너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알면 조금은 마음을 바꾸고 우리와 어울리려 노력을 하는 것이 어떤가? 그렇지 않나? 프타.”

“알겠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프타가 그렇게 말을 했다.

에반이 오고부터 많이 것이 꼬였다.

프타의 본래 계획은 데일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쥬드를 은밀하게 죽인 후 데일을 가주 자리에 앉혀 자신이 크라우스 가문의 영역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일에게 못 믿을 놈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왜 이렇게 되었지?’

자신의 계획과 완전히 틀어진 상황에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을 때 게이브가 일어났다.

“그거였군.”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두 게이브를 바라보았다.

데일도 갑자기 일어난 게이브를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아직도 옛날의 말투는 남아 있어 데일은 기사단의 기사들에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게이브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데일에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이긴 이유를 알았습니다.”

“정말?”

“예.”

“뭐지?”

“단합입니다.”

“단합?”

“예. 저희가 나뉜 팀을 보십시오. 언제나 함께 있던 병사들이기에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었지만 저희는 저희가 가르친 병사들과 한 팀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데일 님은 싸우실 때 누구와 함께 싸우셨습니까?”

“그거야 우리는 내가 가르친 병사들과 함께… 아, 그렇군.”

데일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프타나 나머지 레프트팀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기사 한 명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별거 없다. 정말로 단합을 제대로 했기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

“단합이요?”

“그래. 지난 십 일간 우리는 단장님의 명령으로 다른 십인장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가르쳤지?”

“예.”

“난 그들을 가르치다가 십 일은 너무 짧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느껴보라는 차원에서 많은 대련을 했다. 나 혼자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가르친 십인장들과 함께 열 명의 병사들을 상대했지. 그러면서 이들과의 호흡을 맞추었었지. 너희는 그렇지 않은가?”

“으음.”

사실 프타는 가르치기는 하되 열성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타의 눈치를 보는 십인장들도 병사들을 말로만 열심히 가르쳐 주었을 뿐 대련 같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레프트팀의 기사들도 제각각의 이유로 그런 상황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걸 알아차리다니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는군.”

“단장님.”

갑자기 에반이 나타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반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 내가 게이브와 대련을 할 때 느꼈지. 그가 너무 중심을 잡고 검을 휘두른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대련이나 다른 기사들도 각각 조금씩 자신의 검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랐지. 그런 이들을 일단 골라놓고 보니 알겠더군.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서 편을 나누어 싸워보라고 한 것이다.”

“그럼 저희가 병사들과 함께 싸워야 한단 말입니까?”

데일이 물었다.

“아니다. 너희 기사들은 다시 본래의 자신만의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 너희가 아니라 십인장들과 그 아래의 열 명의 병사들이 합격진을 만들어야 한다.”

“합격진이요?”

“그래.”

“합격진이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단체로 자신의 자리를 잡은 후 상대를 상대하는 것이다. 너희는 무의식적으로 네 명으로 된 합격진을 썼다. 그것이 비록 내가 알고 있는 합격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지만 어쨌든 적은 숫자로 더 많은 숫자의 인원을 이겼지.”

형편없다는 말에 살짝 얼굴이 달아오르는 데일이었다.

“그럼 그것을 어떻게 연습을 시킵니까?”

게이브가 에반에게 물었다.

사실 십인장이 여기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정도로 가문이 돌아가는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병사들은 크라우스 가문 안에 있는 마을 곳곳을 순찰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조금의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어떻게 연습을 시켰나?”

“근무 교대 시간 때 계속 같이 훈련을 했습니다.”

“대부분 몇 명이 순찰을 나가지?”

“각 마을마다 다르지만 보통 스무 명의 병사들이 네 시간을 순찰을 합니다.”

“마을마다 인원은?”

“본가가 있는 마을은 이백 명 정도가 거주하고 다른 일곱 개의 마을은 백여 명씩의 병사가 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에반이 말했다.

“그럼 순찰 시간을 바꿔. 낮에는 두 시간 밤에는 한 시간으로 대신 밤은 열 명이 순찰을 하고 열 명이 자면서 대기를 한다.”

순식간에 규칙을 바꿔버리는 에반이었지만 그가 기사단장이기에 아무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왠지 괜찮은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지금 말한 것은 베켓과 크라우스 가문의 병력 현황을 이야기하면서 베켓이 잠깐 언급을 했던 내용이었다.

그게 생각난 에반이 그저 베켓의 말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지만 그들은 그걸 모르고 에반이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뻔뻔하게 말한 에반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집중적으로 가르칠 시간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너희는 그 시간에 내가 알려준 동공과 함께 합격진을 연마한다.”

“예.”

모두가 대답을 하자 에반이 조금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제 겨울이 가려면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전쟁이다. 지금 본가의 분위기로서는 그리 와 닿지 않지?”

전쟁이, 그것도 질 것이 뻔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혼란 속에 빠져 있어야 하건만 크라우스 가문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 보니 전쟁이 곧 닥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도 그걸 크게 생각하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쟁은 분명 일어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죽는 자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에반이 자신을 돌아보자 왠지 섬뜩해졌다.

“그러나 내가 알려준 것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합격진을 올겨울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연마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살아날 것이다. 그러니 그걸 제대로 배워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알려주지.”

“지금부터 말입니까?”

“그래.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다.”

에반이 나타났기에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낙담을 하는 순간이었다.

* * *

“에반 님은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운 겁니까?”

“다 내가 생각해 낸 거다.”

에반을 따라나섰던 베켓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던진 질문에 에반이 그렇게 대답을 하자 어이가 없었다.

솔직한 말로 에반은 무언가 결여된 사람 같았다.

멍청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데 인간과의 관계 즉, 사회성이 많이 부족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병사들을 운용하는 법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강하기도 하다.

베켓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나타났는지 정말 궁금했지만 에반이 이렇게 대답을 회피하자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에반은 베켓에게 진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는 사부와 살 때 하는 일이 공무를 익히는 것과 책을 읽는 일이었다.

아무런 의미 없이 읽는 책은 에반의 머릿속에 저장이 되었고 책으로 배운 지식을 다시 떠올리며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에반의 사부가 동공이나 좌공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토대로 에반이 재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니 에반이 생각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만 베켓은 믿을 수가 없었다.

“흠. 이 자리가 좋겠지?”

에반이 갑자기 멈춰 버리는 바람에 생각이 끊긴 베켓이 고개를 들었다.

베켓에게 지도를 얻은 에반은 베켓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지도를 들고 저택을 나왔다. 베켓으로서는 그 지도가 없어지면 안 되기에 같이 나온 거지만 에반이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하는 겁니까?”

갑자기 허공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가만히 있다가 손을 떼는 에반에게 물었다.

하지만 에반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것을 물었다.

“이곳은 길목이 좁고 언덕이 있어 기습을 하기 좋겠지?”

“예. 그러나 척후병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있다면 숨을 곳이 없어 바로 팔로스 백작군에게 들킬 겁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기습을 할 거니까.”

베켓은 대체 에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틀을 따라다닌 베켓이었지만 에반이 원하는 바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나중이 되어서는 그냥 에반이 하는 일을 보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반이 선 곳은 팔로스 영지가 보이는 성벽이었다.

본래 국영지였던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크라우스 백작가는 성이 없었다.

그러나 팔로스 백작을 위시한 주변에 귀족들의 영지가 들어오자 십오 년 전부터 본가가 있는 마을과 크라우스 가문의 권역과 다른 영지의 접경지역에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산에 둘러쌓인 지형에 자리를 잡았는지라 접경지역에는 성벽을 쌓을 곳이 거의 없었고 있다면 바로 팔로스 영지와 맞닿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에반이 지금 그곳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절대 싸울 수 없습니다.”

성벽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부실하다. 그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게 만든 것이지 공성무기가 성벽을 때리면 바로 와르르 무너질 것이 뻔했다.

지금 제대로 농성을 할 수 있는 곳은 본가가 있는 마을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반은 절대 그곳까지 팔로스 백작군이 들어올 수 없게 할 작정이었다.

“싸울 수 없다면 싸울 수 있게 만들어야지.”

“예?”

“보고 있어.”

에반이 또다시 허공에 의미 모를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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