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15/60)

제4장

“안녕하십니까?”

에반은 저택을 내려가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예전에 보았던 이가 있었다.

“시몬이라 했던가?”

“예. 사에타 상단의 시몬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지?”

시몬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기는지 에반의 옆에 섰다.

“다름이 아니라 무구 때문입니다.”

“무구?”

“예. 드워프들이 만드는 무구에 흥미가 있어서 말입니다.”

에반은 그 말에 시몬을 쳐다보았다.

마이젠트로와 로엔케가 크라우스 가문에 있다는 것은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는 이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지?”

“하하하! 그래도 왕국에서는 잘나가는 상단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래, 내가 무시한 것 같군. 그래서 무엇을 원하지?”

“말 그대로 드워프들이 만든 무구에 마도사 켈베스 님이 마법을 입히시면 최고의 가격으로 그 무구들을 사겠습니다.”

“우리가 가문이 아직 불안하다는 건 알고 있나? 이미 왕에게 작위를 받고 전 팔로스 백작의 아들이 영지를 이어받았다더군.”

“그렇지만 팔로스 영지는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지요. 아마 마도사 켈베스가 돌아오기 전 정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뭐, 그럼 그때 가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때?”

“하하하. 이번에도 그냥 말을 꺼내보았습니다. 그래야 저번처럼 좀 더 우위에 서지 않겠습니까?”

쥬드는 시몬의 열성을 마음에 들어하며 몇 달 전 접촉해 온 상단 중 사에타 상단에 마법 물품 몇 가지를 맡기기로 계약을 했다.

이미 켈베스와도 이야기가 끝난 터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시몬이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미 가주에게도 이 이야기를 했겠군.”

“예.”

“그래서 나를 설득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확답을 못하겠군. 본가의 기사와 병사들 먼저 무구들을 줘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그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건 말리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 평안하십시오.”

시몬은 더는 에반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분위기이자 재빠르게 빠지며 작별인사를 했다.

에반이 시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저택을 빠져나갔다.

* * *

-그래.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단주님.”

-모르겠다? 허. 내가 자네의 입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다 들어보는군. 뭔가 모자란가?

“이미 보고를 받으셔서 아시겠지만 이상하게 모든 걸 공개를 하고 있는데도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한정적입니다. 게다가 상권은 파고들 틈 또한 없습니다.”

-본래 크라우스가는 자체적으로 상단을 하나 가지고 있었지. 그 상단 또한 욕심 많은 왕이 빼앗아 갔지만 그것뿐이다. 그는 빈껍데기만을 가져갔고 상단의 수뇌부들은 대부분 잠적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크라우스 가문에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하더군.

“아…….”

시몬은 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다 보니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언제나 전체를 보고 판을 짜던 시몬도 이번만큼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왜, 힘든가?

“아닙니다, 단주님.”

-하하하. 뭐, 이번에는 거기에서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해라. 어차피 일이 벌어지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니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그곳에서 실제로 체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니요? 이미 팔로스 영지는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전대 팔로스 백작이 우리마저 감쪽같이 속이고 병력을 키웠더구나.

“예?”

그 말에 시몬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시몬의 행동이 마음에 드는지 단주가 말을 이었다.

-혹시 이터널 용병단이라고 아느냐?

“몇 년 전부터 제국 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용병단이 아닙니까?”

-그렇다. 그들이 바로 팔로스 백작의 수하들이 만든 용병단이더구나.

“헉, 규모가 오천 명 정도 되는 그 용병단이 모두 팔로스 백작의 수하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렇다.

“으음.”

시몬이 무언가를 고민하자 단주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과연 크라우스 백작가에서 그들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참여한 영지전 중 진 영지전이 한 군데도 없다. 그것도 그 용병단만이 영지전에서 타 영지와 맞붙었어도 이길 정도로 실력이 좋지. 게다가 평화로운 이 왕국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전장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고 말이야.

“그럼 단주님께서는?”

-난 크라우스가의 필패라 본다.

“그럼 왜 드워프들에게 무구들 산다는 이야기를 하라고 했는지요?

-그렇게 해야 크라우스 백작가가 방심이라도 하지 않겠느냐?

“예?”

-솔직한 이야기로 십오 년 전 우리는 한 발만 걸쳐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해를 입은 것은 맞다. 유타 상단처럼 큰 피해를 입고 그 피해에 눈이 돌아가 크라우스 가문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려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를 입었지. 그래서 몇 번 유타 상단을 도와주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크라우스 가문은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해서든 피해를 입혀야 한다는 거야. 우리 두 상단이 알게 모르게 크라우스가를 십 년 이상을 압박했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다.

“으음.”

-그렇게 알고 거기 돌아가는 일을 잘 봐라. 아마 한 달 안에 결판이 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도록.

단주의 모습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시몬은 잠시 에반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이 더욱 그를 빛나게 한다.

“그라면…….”

시몬이 중얼거렸다.

* * *

에반은 문득 잠에서 깨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어난 에반이 창문을 연 순간 그림자가 저택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겠지만 에반은 가끔 본 적이 있는 이였다.

‘분명 하인이었는데.’

아무런 특징이 없어서 그냥 넘어 갔었는데 지금 보니 자신을 숨기고 있었던 듯싶었다.

그냥 저택에서 일을 하는 하인이 저렇게 소리도 없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 이목을 피했지?’

에반은 호기심이 들었다.

아직도 사방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에반은 그에게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는데 그에게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내 감각을 완전히 믿어서도 안 되겠구나.’

세작을 모조리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자신감이 저 하인 때문에 사라졌다.

자신의 감각이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기대치를 좀 낮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선 무엇을 하나 볼까?’

어둠에 동화된 에반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을 일그러뜨려 자신을 숨긴 것이다.

그러고는 창문을 통해 걸어 내려갔다.

허공에 밟을 수 있는 발판을 공기로 만들어 걸어 내려간 것이다.

병사들의 순찰을 피해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약간 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에반이 자신을 지켜보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는 자신이 갈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저택을 나서 한참을 움직인 그가 숲 속으로 들어갔고 에반이 그 뒤를 쫓아갔다.

한참을 쫓아가던 에반은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순식간에 그의 기척마저 사라지자 의아해하던 에반은 어느 한 곳의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허. 이럴 수가.”

아주 기초적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몸을 숨긴 것과 비슷한 형태로 그가 모습을 감춘 것이다.

자신은 신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신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는 사부에게 배운 것들을 인간이 사용하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어디 한번.’

그리고 비슷한 형태이기에 에반은 그 공간을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이런 것까지 보니 호기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져 있었다.

일그러진 공간을 통과하자 그곳이 작은 동굴이라는 것을 에반은 알았다.

‘마법을 이용해서 만든 것인가?’

꽤나 공을 들인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 말은 오래전부터 여기를 감시해 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에반이 동굴 깊숙이 들어가자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실패라고 보는 거냐?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 정도의 혼란으로 무너졌으면 이미 이 나라의 왕에게 무너졌겠지.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유입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소요가 없는 것을 보면 너무나 이상합니다.”

-그것보다는 조사는 해보았느냐?

“에반이라는 자의 처음 행적은 폴로냐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터라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절대 들키지 않는 선에서 조사해 봐라. 어차피 시간은 많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 후 조금 더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이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통신을 끊은 후 뒤를 돌아본 순간 그가 깜짝 놀랐다.

에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름이 몬테리얼이었나?”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몬테리얼의 몸에서 마나가 가득 차더니 마법을 영창했다.

“파이어볼.”

이곳이 좁은 동굴이라는 것을 무시한 공격이었지만 좁기에 더없이 적절한 마법이기도 했다.

에반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거의 앞까지 다다르자 손을 한 번 내저었다.

파삭!

“헉!”

너무나 깔끔하게 사라지는 파이어볼에 마법을 영창하던 몬테리얼은 너무 놀라 시전 중이던 마법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었고 그대로 에반의 손에 두 손을 잡혔다.

“마도사가 아니라면 손을 쓰지 못하는 이상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하지.”

몬테리얼이 에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백마법사에게만 통용되는 말이다.”

화악!

갑자기 몬테리얼의 손에 화염이 생겨났다. 흑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영창이 필요 없는 마법의 발현이었다.

몬테리얼은 에반이 당연히 손을 떼리라 생각하고는 다음에 시전할 마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에반은 불타는 손 위에 손을 놓은 채 있었고 그에 몬테리얼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단 자라.”

퍽!

그대로 몬테리얼이 기절을 하자 에반은 그를 들쳐 업었다.

“연구 좀 하라고 해야겠는걸.”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 주위의 공기의 기운을 내려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언제라도 흑마법사와 부딪칠 날이 올 수 있는데 자신은 흑마법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백마법사들의 약점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알려진 것이 없는 것이다.

* * *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에반이 몬테리얼을 들쳐 메고 오자 다시 저택에는 비상이 걸렸다. 에반은 물론 세작이 저택 밖으로 나간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 세작이라는 이가 흑마법사라니 허투루 볼 일이 아니었다.

바로 베켓이 찾아와 어떤 상황인지 파악을 한 후 에반의 흑마법사에 대해 왜 모르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게 대답을 한 것이다.

“예. 다오가 창설된 이후 사람들은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됩니다. 이 대륙의 사람들과 흑마법사의 싸움에서 다오와 흑마법사의 싸움이 된 것이지요.”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대륙 전체의 사람들과 싸우던 흑마법사가 다오라는 조직 하나와 싸우게 되다니 말이야.”

“사실 다오가 생긴 건 흑마법사와의 대규모 전쟁 이후입니다. 흑마법사의 대부분이 그 전쟁에서 모두 죽었고 겨우 몇몇만이 도망을 치자 흑마법사의 세력은 예전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때 이후로 흑마법사들은 대륙을 덜덜 떨게 하던 이들이 아니게 되었던 겁니다. 그 후 사람들은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시간이 흐르고 다시 몇몇의 흑마법사들이 복수를 부르짖으며 나타났지만 귀족들은 이미 흑마법사들이 예전의 힘은 없다고 판단되어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냥 놔두었다? 설마 그들로 하여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게 하자는 수작이었나?”

“맞습니다. 그 당시 분위기가 한참 사람들의 인식이 변할 때였습니다. 귀족이 아닌 자들 중에서도 돈을 많이 번 부자가 나오고 또한 현자들도 출현하던 시기였습니다. 귀족들만이 인간이 아니라 자신들도 인간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었죠. 귀족들은 이렇게 가다가는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롭다 여기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절묘하게 흑마법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흑마법사들이 평민들 중 성공한 이들을 죽였겠군.”

“맞습니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식자들은 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바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흑마법사란 그런 존재였으니까요.”

“그 후 다오가 만들어진 거군.”

“예.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흑마법사들을 쫓는다는 명분으로 귀족들은 다오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흑마법사에 관련된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다오는 흑마법사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정보가 담긴 책을 모두 가져갔지요.”

“머리를 좀 썼네.”

“그렇습니다. 귀족들은 흑마법사에 대한 공포를 실제가 아닌 사람들의 상상에 맡기게 꾸며 더욱 공포심을 자극하고 자신들의 치부가 관련된 사건이 터지면 교묘하게 흑마법사들이 나타났다고 선전을 하여 자신들의 사건을 덮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그걸 이용해 먹는 귀족들의 행태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이미 다오가 아니면 흑마법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어 다오를 없앨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으음. 그래서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가 없다는 건가?”

“예. 정보를 얻으려고 하면 다오에서 추적을 해버리니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럼 저자는 어떻게 할 거지?”

“일단 저희가 데리고 있으면서 정보를 좀 캐내야겠지요.”

“잘 숨길 수 있나?”

“다오에서 본가를 주시한다지만 그 정도의 눈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럼 믿겠다.”

“예.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예?”

“아버지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었나?”

“아직 진행 중입니다.”

루크 백작의 유언에 따라 쥬드는 아버지가 왜 독극물을 마셨는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었다.

에반은 베켓에게 그 조사를 맡겼다.

쥬드는 가문을 위해 아버지를 그냥 묻었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내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고통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에게 사주한 이들까지 모조리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할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는 마지막 자리를 지켜드리지 못한 못난 아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미 예전에 조사를 해두었을 거라 보았는데 아니었나?”

“가주님의 명령이 있었기에 저희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긴 했다는 거군.”

“예.”

“그런데?”

“그것이 왕궁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끊겼습니다.”

“왕궁?”

“예. 본래 전 가주님께서는 차를 그리 즐기시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아버지는 언제나 기사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이 아닌 몇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처음 들어보는 차를 전 가주님께서는 마셨습니다. 그건 가까운 사람이 주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사람은?”

“세 사람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나?”

“예. 그 중 한 명은 실종이 되었고 한 명은 다른 나라로 갔으며 한 명은 왕국에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지?”

“모두 기사들입니다.”

“크라우스 기사단의 기사들은 모두 글로리 기사단이 된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 몇몇은 은퇴를 했고 몇몇은 다른 기사단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네가 의심스러운 사람은 세 명이라는 이야기군.”

“그렇습니다. 모두 조사를 해보았고 그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그 세 사람은 전 가주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고 또한 전 가주님이 돌아가신 후 그들의 내력을 파헤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보가 차단된 건가?”

“그걸 알 수가 없어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없었고 더욱 파고들려면 현 가주님께서 알아차릴 수도 있는 터라 조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십오 년이 지난 후 다시 조사를 시작하니 더욱 알 수 없게 되었군.”

“예. 두 사람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겨우 다시 그들을 살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세 사람이 누구인가?”

“전 기사단원들입니다. 이름은 리츠, 소치니, 벨입니다.”

“모두 들어본 이름이군.”

“전 가주님과 친분이 깊었으니까요.”

에반이 예전을 회상했다.

다른 세계에 있을 때는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어릴 적 살았던 이곳에서 머물자 오래전 일들이 어제의 일처럼 이제 기억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기억이 쇠퇴해야 맞는 거지만 에반은 다른 세계로 넘어간 순간 기억의 쇠퇴가 멈추었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세 명의 모습이 선명히 기억이 났다.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에반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 * *

땅땅!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가 산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크라우스 가문에 소속된 마이젠트로와 로엔케의 망치질 소리였다.

에반은 이제는 평지라고 불러도 될 산 중턱에 자리한 그들의 작업장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드워프들이군.’

산을 깎아 마을을 만드는 드워프들이기에 이런 숲속도 두 사람의 힘으로 불과 며칠 만에 평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참 무언가를 두드리던 마이젠트로는 갑자기 느껴지는 존재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흥. 왔군.”

열심히 일하는 마이젠트로를 부르기보다는 에반이 일부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그가 쳐다보게 만든 것이다.

“무엇을 만들고 있지?”

“뭐긴. 네 수하라는 인간들이 쓸 무기들이지.”

에반은 마이젠트로의 말에 그가 만들던 창날을 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너무 성의 없이 만드는 것 같은데?”

“성의가 없다니! 어디서 우리 작품을 폄하하는 거야!”

하지만 에반의 말이 맞았다. 사실 마이젠트로는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틈이 많다고.”

“틈? 무슨 틈?”

“금속 안에 들어가 있는 이물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는다면 틈은 있기 마련이지.”

“이물질?”

“그래. 이물질. 불필요한 이물질을 없애야 제대로 된 것이 만들어진다고.”

그렇게 말을 하며 에반이 마이젠트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이젠트로는 자신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았다.

이런 설명으로는 제대로 이해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에반은 옆에 있던 집게를 잡고는 마이젠트로가 만들고 있던 창날을 집어 들었다.

“어이, 조심해. 아주 뜨거운…….”

마이젠트로는 말을 하다 말고 에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에반의 말을 듣고 있던 로엔케도 마찬가지였다.

집게를 가까이 가져간 에반이 손을 뻗자 창날은 가열로에 들어간 듯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고 이내 공중에서 동그란 구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에반은 그걸 조심스레 마이젠트로가 만들어 놓은 거푸집에 넣고는 그대로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치이익!

그러자 열이 식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올라왔고 에반이 거푸집의 뚜껑을 열자 창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단 한 번의 담금질도 없고 망치질도 없었다.

본래 거푸집은 인간들에게 줄 물건을 대충 만들기 위해서 마이젠트로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대로 만들려면 거푸집이 아닌 직접 때려서 만들어야 하지만 에반이 거푸집에서 꺼낸 창날은 이미 날이 서 있었고 윤이 나고 있었다.

모든 제작 과정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어, 어떻게?”

“강도를 시험해 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넌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냥 그렇게 알아.”

그때 로엔케가 중얼거렸다.

“화염의 검…….”

“말도 안 돼! 그럼 이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말이야?”

로엔케의 중얼거림에 마이젠트로가 방방 날뛰었다.

그러나 로엔케는 에반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그가 보여준 건 구전으로 내려오는 화염의 검을 만드는 방식과 똑같잖아.”

드워프들에게는 전해 내려오는 신화가 있었다.

그 옛날 이 대륙에 신의 현신이 가능하던 시대.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신인 헤파토스가 검을 모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수많은 검을 신에게 바쳤고 헤파토스는 그걸 기꺼이 받아들였다.

매일 드워프들에게 받기만 하던 헤파토스는 어느 날 드워프들이 사는 곳에 현신을 했다.

“너희들에게 나를 생각하도록 검을 만들어 주리라.”

헤파토스는 드워프들이 보는 가운데 공간에 손을 집어넣어 금속 덩어리를 꺼내더니 그걸 손으로 녹여 쇳물로 만들었다.

그 쇳물의 열기에 지켜보던 드워프들이 눈부셔할 때 어느새 쇳물은 기다란 막대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고 그걸 손으로 문지르자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검이 되었다.

검날을 만든 헤파토스는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흙을 손으로 움켜쥐고는 검날의 아랫부분에 갖다 대니 어느 사이인가 흙은 아름다운 검 자루로 변해 있었다.

그 검을 옆에 있던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가마에 넣고는 헤파토스가 말했다.

“너희가 나를 믿는 한 이 검은 영원히 불타오르리라.”

그 말과 동시에 가마솥에 있던 검이 불타오르더니 가마에 담긴 철을 녹여 쇳물로 만들고는 그 자신은 그 쇳물 안에 모습을 감추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드워프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에 이미 헤파토스는 사라졌고 대대로 화염의 가마는 드워프들의 신물이 되었다.

이것이 신화라고 하는 이유는 그 후 지금까지 화염의 검을 본 드워프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도 화염의 가마는 신이 현신한 곳에 남아 불을 지피지 않아도 언제나 끓고 있어 그 이야기가 진실일 거라고 말하는 드워프들이 많았다.

아무튼 그 이야기 중 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에반이 한 행동이 신인 헤파토스가 한 행동과 비슷했기에 로엔케가 그렇게 중얼거린 것이었고 마이젠트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펄쩍 뛴 것이다.

에반은 좀 더 놔두었다가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그들의 대화를 끊으며 말했다.

“내가 익힌 인간의 기술이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생각해.”

마이젠트로와 로엔케가 에반의 말에 서로를 돌아보다가 에반에게 물었다.

“혹시…….”

“혹시?”

“그 기술을 알려줄 수 있나?”

마이젠트로와 로렌케의 얼굴에는 탐욕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에 살짝 어이가 없던 에반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비인부전이라는 말을 아나?”

“비인부전?”

이 세계에 통용되는 단어가 아닌 사부가 즐겨 쓰던 언어 중 나오는 사자성어였다.

에반은 의문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드워프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면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본래 비인부전이라는 뜻에 담긴 의미는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에반은 그 뜻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말하고 있었다.

“뭐? 우리가 인간하고 다른 게 무언데?”

마이젠트로가 발끈하며 묻자 에반이 대답했다.

“모든 것이 다르지. 그러니 드위프들은 못 배워.”

이렇게 말하니 더는 떼를 쓸 수 없었다.

대신 두 사람은 이제 시선을 창날에 돌렸다. 에반이 만든 창날이 얼마만큼의 강도를 보여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로엔케가 에반이 만든 창날을 손으로 들더니 창대에 묶었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가죽 갑옷에 창을 찔렀고 경악성을 터뜨렸다.

푹!

“어?”

갑옷이 그대로 찢어지며 창날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들어갔다

놀란 눈으로 로엔케가 얼른 창에서 창날을 빼내어 살펴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가죽 갑옷을 뚫는 창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창날을 만들려면 자신들도 공을 들여야 만들어진다. 에반처럼 뚝딱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두 드워프가 다시 에반을 돌아보았다.

“당신들이 만든 것과 다른 점은 시간을 단축하고 이물질을 배제한 채 자신이 원하는 이물질을 넣는 거야.”

“이물질을 넣는다고?”

“이물질을 어떻게 없애지? 그리고 넣는 방법은?”

“그건 당신들이 연구해 봐야지. 이미 몇 가지 방법을 알고 있잖아?”

마이젠트로는 에반의 말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렇군.”

자신들은 그저 일족들에게 드워프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무구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면 좀 더 강하고 인간들이 만든 것과는 다른 물품들이 나왔다.

그걸 너무 당연시하여 어쩌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이젠트로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인간에게 질 수 없지.’

갑자기 의욕이 불타올랐다.

지금까지는 에반에게 내기에 졌다는 사실에 설렁설렁 일을 했지만 이제는 자존심 문제였다.

인간보다 못한 걸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이젠트로가 에반에게 말했다.

“우리가 연구해 보지.”

이미 마이젠트로와 로엔케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탁한 무구들을 만드는 것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건 끝내놓지.”

“그럼.”

에반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의 작업장을 빠져나왔고 곧 작업장에는 망치질 소리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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