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이십 년 전 크리프 왕국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조그마한 왕국에서 유적이 발견이 되었다.
그 유적은 정말로 대륙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거기에서 나온 유물이 바로 고대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소국이었던 그 왕국은 그 유물로 말미암아 파멸의 길을 갈 수도 아니면 부흥의 길로 갈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소국의 왕은 유적을 대륙에 공개를 하며 누구나 유적 탐사에 참여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두 제국의 눈치를 보던 왕국들이 하나 둘 참가하게 되었고 맨 마지막으로 두 제국이 유적 탐사에 참여를 했다.
그렇게 해서 구역을 나누어 유적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그 유적의 크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아무리 소국이라지만 그래도 한 왕국인데 그 왕국의 삼분의 일을 유적이 덮고 있을 정도로 유적지가 크다는 것이 조사를 한 학자들이 결론이었다.
그 정도의 크기라면 정말로 왕국을 들어내야 할 정도인데 아무리 제국이라고 해도 그런 짓은 왕국의 양해가 없는 한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로 말미암아 수많은 나라들이 모여 유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했고 그 왕국의 옆에 붙어 있던 나라들이 유적의 크기만큼 땅을 주게 되면서 유적은 땅을 준 나라들의 공동의 소유가 되었다. 그로 인해 유적이 나온 왕국은 유적 때문에 농사마저 잘되지 않던 척박했던 땅을 버리고 더욱 기름진 땅을 가지게 되어 작은 왕국이라는 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유적이 나온 왕국과 붙어 있지 않았던 나라들은 공동의 소유가 된 나라들에게서 땅을 적당한 대가를 주고 샀으면 그때부터 활발한 유적 탐사가 개시되었다.
그리고 그곳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경악을 했다.
파면 팔수록 유적이 한 도시였으며 그 중앙에 신전이 있었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도시 하나가 왕국의 삼분의 일만 하다는 것도 놀라운데 생전 처음 보는 신을 모시는 신전을 찾게 되면서 고대 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자들은 새로운 신에 대한 궁금증에 신전의 복원에 열을 올렸고 복원된 신전의 안으로 들어간 날 그곳에 있던 학자들은 기적이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그들이 들어간 예배당 안으로 굉장한 신성력이 주위로 퍼져나가며 신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그 중 한 사람에게 신이 직접 강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경험한 이들은 모두 이 신전의 신도가 되었다.
그렇게 고대 시대에 잊혔던 신인 운명의 신 페른이 다시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페른 신전은 그 후 조금씩 세력을 넓혀갔다.
당연한 것이 진짜 신이 강림을 했으니 아무도 그곳을 이교도라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본래 있던 각 신전들에서도 어쩔 수 없이 페른 신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신성력마저 사라진 신전들의 신도들이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몇몇 이름만 남아 있던 신전들이 아예 몰락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오?”
에반이 라임에게 물었다.
라임은 에반이 페른 신전을 모른다는 말에 전 고고학자답게 그 역사를 친절히 알려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라임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성녀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 성녀의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소만.”
“아! 아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좀 더 말을 하려고 하는 라임의 말을 에반이 잘랐다.
“그만하면 되었고 본론만 말해주시오.”
에반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지?’
에반으로서는 그저 호기심을 풀기 위해 그녀를 찾아다녔고 그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했을 때 에반이 본 것은 파트가 메이스를 루네르의 심장에서 빼내는 장면이었다.
에반은 그 후 그대로 사라지는 네 명을 쫓아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네 명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루네르를 살리는 쪽에 관심을 두었다.
명색이 다오의 십이사도 중 한 명인데 그런 이가 크라우스 가문의 권역에서 죽는다면 괜히 골치가 아파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루네르를 구하기 위해 에반이 모습을 드러내려는 순간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루네르의 구멍이 난 가슴에서부터 찬란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녀를 덮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느끼는 순간 에반은 그 빛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깨달았다.
‘마나의 구슬.’
그 빛은 분명 구슬이 갑자기 빛을 뿌렸을 때 뿜었던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에반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고 루네르의 혈색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에반의 판단이 맞는다면 루네르를 삼킨 빛은 루네르의 상처를 모두 치유했고 종내에는 루네르의 몸으로 스며들어간 것이리라.
에반은 루네르가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이 살아났다는 것을 깨닫자 그 네 명을 쫓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라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깨어나지 않은 루네르를 데려가려 하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에반을 경계하던 라임은 에반에게 루네르가 누구인지 듣고 그가 루네르를 데려가려 하자 필사적으로 루네르를 데려가는 것을 막으며 이십 년 전 페른 신전이 다시 세워진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라임은 에반의 본론만 이야기하라는 말에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흠. 흠. 알겠습니다. 그럼 본론만 이야기하지요. 그때 교주님에게 강림하신 신은 몇 가지 미래의 일을 세상에 내놓으셨습니다.”
“미래의 일을?”
에반이 흥미롭다는 듯 라임을 바라보았다.
에반은 절대 과거나 미래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불가능이 없는 사부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쓴 것은 절대적 미래나 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공무에도 과거나 미래의 세계를 훔쳐보거나 관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이 아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과거를 아무리 바꾸어도 현재의 자신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에 가서 한 일은 모두가 없던 일이 되어 버려 현재로 돌아오면 과거는 그저 똑같은 과거로 남아 있게 된다.
절대 자신이 있는 세계의 과거는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미래로 갔다면 현재에 있던 자신이 사라지고 미래로 시간을 뛰어넘은 것이 되어버려 그 사이에 자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도 자신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미래에 있는 시공간에도 적용이 되어 아무리 자신이 일을 벌여도 미래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또한 역사나 그 외의 것이 현재에서 자연스레 가는 미래와 달라지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부는 절대 과거나 미래는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는데 신이 미래를 예견했으니 에반에게 흥미가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단편적이지만 저희 신전에 일어날 일을 예견해 주셨습니다.”
라임은 그러면서 간단하게 자신이 아는 예견된 일을 말했다.
-세상은 내 신전을 알게 될 것이다.
-신전의 성물이 나타날 것이다.
-성녀가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신전이 있는 현세에 암흑이 도래할 것이다.
-암흑을 거두어 내는 데 내 신전이 필요할 것이다.
‘간단하군.’
호기심을 보였던 에반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의 미래라면 신이라는 존재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건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맞추어 미래의 일들을 유추해 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반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한 생각은 어떻게 보면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이라는 걸 에반도 알고 있었다.
대신 에반도 라임의 말에서 유추해 물었다.
“그럼 지금 그녀의 몸속에 있는 것이 성물이고, 그녀가 성녀란 말이오?”
“성, 성물이라니요?”
에반의 말에 오히려 라임이 모르겠다는 듯 더듬거렸다.
그를 보니 루네르를 단순히 성녀로만 생각했지 어떻게 성녀가 되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루네르의 몸속에는 자신이 전날 보았던 마나의 구슬이 심장에 스며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주위의 마나를 조금씩 흡수하여 그들이 말하는 신성력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루네르의 몸 안에는 신성력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오기 전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심장에 큰 구멍이 나 있었소. 이미 심장이 멈추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어떤 물건이 그녀의 심장에 나 있는 구멍 속에 파고들더니 그녀에게 당신이 말하는 신성력을 나누어주고 그녀를 치료한 것이오.”
“아… 아아!”
라임은 자신이 성물과 동시에 성녀를 보았다는 것을 깨닫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를 잠시 보던 에반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오?”
“이분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녀는 다오라는 조직에 속해 있소. 그것도 간부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그녀는 본 신전의 성녀가 틀림없습니다.”
“신성력을 뿜어낸다면 어느 신전의 성녀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아닙니다. 이 기운은 본 신전 특유의 신성력입니다. 또한 저희를 이곳으로 이끈 것 또한 그분이십니다.”
그 말에 에반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게 정말 페른 신만의 독특한 신성력이라면 자신은 그 신성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다. 왜냐하면 만약 구슬이 자신을 만나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평범한 구슬로 남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에반의 심기를 거스르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말로 페른 신이 예전에 성물과 성녀가 나타날 것을 예견했고, 또한 이곳으로 오게 했다는 것은 에반 자신이 루네르가 성녀가 되어가는 운명의 과정 속에 있던 하나의 조각이었단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에반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페른이라는 신이 내가 나타날 것을 예상했다고?’
그는 사부를 아주 가볍게 부르지만 사부가 절대 가벼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에반은 예전부터 만약 신과 사부가 붙는다면 사부가 더 우위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즉, 사부는 신과 동급이고 또한 자신도 신과 동급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 생각을 했다.
그 정도라면 절대 다른 신이 예정한 운명 속에 휘말리지 않아야 정상인데 자신이 그 운명 속에 휘말렸다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날이 오겠지.’
생각 같아서는 당장 페른 신전이라는 곳에 쳐들어가고 싶지만 지금 가문에서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일을 모두 끝낼 때까지는 아직은 가문을 벗어나지 않을 생각에 에반은 라임에게 말했다.
“뭐, 그렇게 우긴다면 내 할 말이 없소. 하지만 이건 약속해 주기 바라오.”
“무엇입니까?”
“그녀는 실종이 아닌 당신들이 데려간 것이란 걸 정확히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분이 깨어난 후일 겁니다.”
“음?”
“저희는 당당하지만, 형제님 말씀대로 성녀님은 다른 신전의 성녀도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특유의 신성력이지만 그렇다고 신성력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깨어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고서 성녀님이 저희 신전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양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반은 루네르가 곧 깨어날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러자 라임이 루네르를 업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찾기를.”
페른 신전만의 독특한 인사를 받은 에반이 물었다.
“본가에는 들르지 않는 것이오?”
“예. 이미 예언이 실행이 되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남긴 라임이 리스터와 함께 사라지자 잠시 그 자리를 보고 있던 에반도 곧 그곳을 떠났다.
* * *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크리프 왕국의 크라우스가에 신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소문을 듣고는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비웃었다.
크라우스 가문이 다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일부러 낸 소문이라고까지 했다.
소문으로 이목을 끌고 자신들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생각에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바뀌었다.
바로 페른 신전 때문이었다.
페른 신전에서 크라우스 가문을 몰래 다녀갔다는 것이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정말로 신물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페른 신전이 신이 내려준 두 번째 예언인 성물이 나타날 것이다, 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신물을 찾아다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 페른 신전에서 크라우스 가문에 사람을 보낼 정도면 정말로 신물이 나타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스, 이번 일은 조금 성급하구나.”
“죄송합니다, 마스터.”
“루네르라는 여자 때문이냐?”
“예, 마스터.”
“그녀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예. 분명 심장이 뚫린 것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시신이 발견되리라는 제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다오 쪽에서도 그녀를 실종 상태로만 보고 있지 그녀가 죽었을 가능성은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다오에서 어느 정도 크라우스 가문에 타격을 주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가 사라지는 바람에 계획이 엉망이 되었고, 그 때문에 제가 조금 무리하게 크라우스 가문을 흔들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되었다. 그곳으로 잠입한 몬테리얼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다른 곳에서도 사람을 보내왔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차라리 혼란 속에 몸을 숨겨 원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나의 공명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페른 신전의 사제까지 왔다 갔다. 그건 정말 무언가 있다는 이야기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번에 다오의 십이사도 중 한 명을 죽인 것은 정말로 우리 입장에서는 쾌거랄 수 있지. 그게 우리 흑마법사들의 천적인 데일리 가문의 사람들이었으니 더욱 좋고 말이야.”
“예. 몬테리얼이 아주 훌륭하게 해주었습니다.”
“거기다가 루네르라는 여자를 죽인 네 명을 다시 다오에 잠입시켰다고?”
“그렇습니다. 이미 약간의 세뇌가 되어 있는 상황이니 배신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그들을 주시하라고 일러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또한 몬테리얼에게 가주의 형이라는 자를 감시하라고 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 마스터.”
“이제 너는 이 일에서 손을 떼라.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고 저번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알겠습니다, 마스터.”
하스의 고개가 더욱 숙여지는 것을 보며 마스터라 불린 사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 사적인 일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 그러는 것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거라.”
“예.”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더니 허공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사형제들과 연관이 있는 놈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지. 그리고 흔적을 찾아 그들을 죽인다.’
그의 눈이 한순간 검게 번들거렸다.
* * *
‘흐흐흐. 이것만 있다면…….’
프타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앞에서 자신들을 감독하고 있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처음 가주의 형이라고 소개를 했을 때만 해도 절대로 믿지 못할 이가 바로 에반이었다.
저렇게 어려 보이는데 어찌 가주의 형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인 것이다.
그러나 팔 개월이란 시간이 지나자 에반은 점점 크라우스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우선 언제나 근심이 가득했던 가주가 이제는 미소를 짓고 있고 조금은 어두웠던 저택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또한 기사단의 무력이 높아지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으니 크라우스 가문에는 틀림없는 복덩어리였다.
‘그리고 나한테도 말이야.’
처음 에반에게 훈련을 받을 때는 정말 데일을 떠나지 않은 것이 잘된 선택인지 굉장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데일을 타락시키려고 보낸 세작이었고 데일을 타락시키지 못하면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떠날 때 이렇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챔버에게 진 후 에반이 가르쳐 주는 동작을 제대로 훈련을 한 프타는 자신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저 자식이 알려주는 것을 모두 내 것으로 한 후 난 여길 뜨는 거야.’
그가 세작을 하고 있는 이유는 명성과 돈, 그리고 권력 때문이었다.
에반이 가르쳐 주는 동작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프타는 생각했다.
이 동작을 제대로 배운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전과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더욱 욕심이 커졌다.
프타는 어떻게 해서든 에반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신이 습득한 후 바로 이 가문을 떠날 것이라 되뇌었다.
에반은 그런 생각을 하는 프타의 옆을 지나가며 살짝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군.’
자신이 감정을 읽는다지만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프타의 휘몰아치는 감정을 정리하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보였다.
‘그래. 어디 한번 내가 가진 것을 모두 가져가봐라.’
에반이 그들에게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은 동공이었다.
좌공으로 한자리에 앉아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땀을 흘린 만큼의 대가를 얻는 것을 좋아해 좌공보다는 동공이 더 이들에게 적합하다 판단하고 동공을 알려준 것이다.
게다가 좌공은 동공과는 다르게 마음과 몸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야만 실력이 향상된다.
에반이 처음 이 기사단을 맡았을 때는 좌공을 제대로 연마할 수 있는 기사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좌공을 연마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기사들이지만 아직은 동공만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에반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바라 마지않는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에 올라갈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공은 무수한 방법을 알고 있는 에반이기에 그들이 계속해서 욕심을 내어 배우게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좌공보다는 효율이 떨어지는 동공을 배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실력은 여타 기사단보다 좋을 것이다.
‘어차피 이 세계의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못했느냐의 차이가 크라우스 기사단과 다른 기사단의 차이겠지.’
이 세계에는 에반이 말하는 좌공도 존재는 한다.
하지만 그런 좌공은 유명한 가문들만이 가지고 있는 비기였고 아주 은밀히 전수된다.
그러 상황이니 있는 것만 못했고 기사들 중에는 좌공을 익힌 이가 소수였으니 후일 동공을 체계적으로 익힌 크라우스 기사단을 이길 기사단은 없을 것이라 에반은 생각했다.
“멈춰라.”
그들의 훈련을 살펴본 에반이 기사단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기사들은 하던 훈련을 멈추고 에반을 바라보았다.
“요 몇 개월간 수고가 많았다. 이제 이곳에서의 훈련은 끝났다.”
그 말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에반에게 배운 동작들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도 못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훈련이 끝났다고 하니 다들 놀란 것이다.
“왜 벌써 끝난 겁니까?”
질문을 한 건 데일이었다.
처음 가장 훈련을 등한시했던 것이 데일과 프타였다.
프타는 챔버에게 진 후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다가 에반이 아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리라는 욕심으로 다시 일어섰었다.
그 때문에 프타가 잠시 데일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데일도 그 당시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데일은 가장 강하다고 알고 있던 프타가 진 것도 모자라 그 대상이 챔버였기 때문이다.
챔버는 데일이 그래도 어느 정도 열심히 훈련을 했었던 몇 년 전에 데일에게도 졌던 전력이 있었다.
그 후 데일은 자신은 재능이 없다며 한탄을 하고 또한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 기사단의 훈련이나 실력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들과 나쁜 일을 벌이기에만 열중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챔버가 갑자기 프타를 이기니 데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데일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 후부터는 에반이 알려주는 것을 독기 어린 눈으로 열심히 따라갔다.
그리고 이제 겨우 따라갔다고 싶은 순간 더는 훈련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데일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내 말을 오해를 했군.”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연무장에서의 훈련보다는 실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말에 기사들이 웅성거릴 때 에반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기사들이 병사 셋을 데리고 본 가문의 권역을 순찰한다.”
“저희가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해야 하지. 너희는 소문도 듣지 못했는가?”
크라우스 가문에 신물이 있다.
그 소문을 기사들도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어도 자신의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재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모두 그 소문을 들었던 것 같군. 그러면 이제 본가의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잠시 생각을 하던 기사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습니다.”
“그렇다. 아무리 소문이 거짓말 같아도 그걸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번 소문은 누군가가 교묘하게 포장을 하여 진실처럼 들리기까지 하다. 그러니 그걸 믿는 이들이 본가의 영역에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들을 상대한다.”
“그들의 실력이 저희보다 좋다면 어떻게 합니까?”
“너희를 이길 실력은 타 가문의 기사들밖에 없다. 기사들이 온다면 내가 나설 것이니 걱정 마라.”
에반이 나선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에반이라면 당연히 다른 기사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한 것이다.
“또한…….”
아직 에반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그가 말을 잇자 기사들이 에반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너희가 배운 동작을 너희와 함께 다니는 병사들에게 전수해 주어야 한다.”
“저희 것을 병사들에게 알려줘야 한단 말입니까?”
한 기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소리치듯 물었다.
그러자 에반이 그 기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건 너희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가 알려주고 싶지만 그들은 너희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이 아니니 너희에게 맡기는 것이다.”
“…….”
하지만 그 말에도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그러나 에반은 더는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자신은 이미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따르면 된다.
만약 따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건 후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니 말이다.
* * *
에반이 그들을 만난 후 저택으로 돌아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가 있었다.
바로 몇 달 전 이곳에 왔던 마이젠트로라는 드워프였다.
“오랜만이군.”
“오늘은 혼자 왔나?”
“이 내기는 너와 나의 내기니까.”
마이젠트로가 그렇게 말하면서 배낭에서 하나의 검을 꺼내었다.
이건 자신이 만든 작품 중 하나였다.
아직도 미트라의 검을 부러뜨렸다는 걸 믿지 못하는 마이젠트로가 자신의 검을 들고 온 것이다.
에반이 마이젠트로가 넘겨주는 검을 받았다.
“이건가?”
“그래. 한번 부러뜨려 봐라.”
마이젠트로의 도발적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뚝!
챙강!
검이 반절로 부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억!”
마이젠트로는 너무나 간단하게 부러지는 검을 보며 작은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는 에반과 검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물었다.
“어, 어떻게?”
“난 무엇이든 부러뜨릴 수 있다니까.”
검이 있는 공간을 순간적으로 잘라버리자 검은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다.
마이젠트로가 한동안 굳어 있더니 다시 배낭에서 검을 하나 꺼냈다. 배낭은 그렇게 크지 않건만 그 안에서 장검이 잘도 나왔다.
‘마법 배낭인가?’
에반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이젠트로가 검을 내밀었다.
“그럼 이걸…….”
뚝!
말도 끝마치기 전 에반이 다시 검을 부러뜨렸다.
“이익.”
마이젠트로는 에반을 노려보더니 배낭에서 또 하나의 검을 꺼내었다.
뚝!
그 검도 부러진다.
뚝!
또다시 부러진다.
뚝!
“으흐흑.”
마이젠트로가 울음이 섞인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다시 배낭을 뒤졌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으로 가져온 검을 꺼내었다.
“이건 내가 만든 최고의…….”
뚝!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검은 부러지고 그의 손에는 부러진 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에반이 물었다.
“또 없나?”
마이젠트로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있다. 있어. 내가 마을에 가서 꼭 가져오지.”
그렇게 말한 마이젠트로가 문을 박차고 저택을 나갔다.
쾅!
드워프가 왔다는 말에 응접실로 향하던 쥬드는 씩씩거리며 가는 마이젠트로를 흘끗 보고는 응접실로 들어가 에반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그냥 장난 좀 치고 있는 중이야.”
에반에게는 장난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저택을 나가는 마이젠트로에게는 모든 게 무너진 하루였다.
자신이 만든 모든 작품들이 모두 부러졌으니 독기가 생기지 않으려야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이젠트로가 중얼거렸다.
“내 반드시 부러지지 않는 검을 가져온다. 그리고 내기에 이겨 저 인간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어 주마.”
마이젠트로는 정말 화가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