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크라우스가에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그 첫 번째 난관이 나타났다.
처음 그들이 크라우스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부터 문제가 되었다.
조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쥬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도저히 그들의 행패를 버티지 못한 마을의 촌장이 쥬드에게 알리고 나서였다.
그들은 오만했고 안하무인이었다.
쾅!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화라고는 내는 법을 모를 법한 쥬드가 상기된 음성으로 앞에 있는 자를 나무랐다.
그는 쥬드가 마음을 먹고 다시 크라우스가의 정보를 담당하게 하기 위해 데려온 베켓이라는 사내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서…….”
“그런 변명은 필요 없네. 십여 년 만에 다시 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낯을 붉히게 만들어야 하겠나?”
“죄송합니다, 가주님.”
베켓은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보름 전에 다시 크라우스가로 돌아왔을 때 의욕에 찼던 그였지만 막상 이곳으로 돌아오자 예전에 구축해 놓았던 정보망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고 다른 지역과의 연결망 또한 대부분 사라져 있는 상황을 보고 암담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십오 년 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일 때쯤 이번 일이 터졌다.
사실 크라우스 영역의 일만 제대로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늦지 않았겠지만 다른 지역과의 유기적인 정보망을 활용시키기 위해서 조금은 늦어져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베켓을 보며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쥬드가 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
“보고를 받은 즉시 본 가로 오게 조치를 취해 두었습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그가 아무리 십여 년 동안 크라우스 가문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크라우스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베켓은 언제나 밖에서 정보를 꾸준히 모았고 그걸 이제는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크라우스가를 중심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빠른 판단력과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아는 쥬드였기에 베켓에게 묻는 것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이미 에반 님에 대해서는 모든 조사를 했습니다. 에반 님이 갑자기 나타난 일은 가주님뿐 아니라 크라우스 가문에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 제가 조사를 한 것은 당연한 것임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쥬드는 베켓의 당당한 말에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물었다.
“계속하게.”
“예. 저희가 철저히 조사한 결과 정말 에반 님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 한 정말로 납치되어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삼십 년 동안 에반 님이 존재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었는데 갑자기 저택의 뒤쪽 산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에반 님이 한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여도 되겠는가?”
“제가 보기에는 에반 님이 당당하게 말씀하셨으니 믿어도 될 듯싶습니다. 일단 켈베스 님의 공증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오네.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집단이지.”
“그렇지요, 하지만 저희는 크라우스 백작가입니다. 그들이 쉬이 볼 가문이 아닙니다.”
베켓의 자부심 가득한 말에 쥬드가 실소했다.
“왜 그러십니까?”
베켓이 그런 쥬드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네. 가주인 나보다 이 가문을 더욱 믿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내가 창피해서 말이지.”
“아닙니다. 가주님께서는 이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웅크리지 않았다면 저희는 갈가리 찢어졌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쥬드를 바라보는 베켓의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정말로 쥬드는 믿고 따르는 것이다.
* * *
콰장창!
“여기에도 흔적이 없는 것 같군.”
그 말에 식당 주인의 얼굴이 흐려졌다.
갑자기 나타난 이 네 명은 이 마을이 자신의 것인 양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었다.
이미 본가에서 그들을 데리고 갈 사람이 왔는데도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남아 끝까지 식당을 엎어놓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흑마법사에게서 세계를 수호한다는 정의로움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다오라는 단체의 무서움을 아는지 그 누구도 그들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네 명 중 얼굴에 검상이 있는 자가 식당 주인을 불렀다.
“예. 예.”
식당 주인은 그의 부름에 재빠르게 그 앞으로 가 고개를 조아렸고 그는 그걸 만족한 듯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식당 주인은 그 손이 뜻하는 바가 무언지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내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억!”
“이 새끼야. 우리가 친절하게 조사를 해주었으면 그 값을 내야 할 것 아냐? 우리가 무료로 일을 해주는 곳인지 알아?”
사실 다오라는 조직은 그저 흑마법사를 처단하기 위해 생겨난 이익을 위한 단체가 아니지만 아무도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쓰러진 식당 주인에게 사내의 발길질이 이어지려는 찰라 그를 막는 이가 있었다.
“도저히 못 봐주겠군.”
검은색에 가까운 머리에 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바로 에반이었다.
네 명을 데려가려는 정보원은 그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본가에 있어야 할 에반이 여기 있다는 데에서 오는 놀라움과 이렇게 튀는 그를 자신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넌 또 뭐냐?”
“너희의 행패를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오. 이거 오랜만에 트리그한테 엉겨 붙는 놈을 다 보는데.”
“호호호. 저 사내 늠름한 것 좀 봐. 트리그. 좀 봐주라고.”
“이 새끼가 지금 내 일에 방해를 놓겠다는 거냐?”
“네 일이 식당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라면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
“보자 보자 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구나.”
쿵!
바닥을 크게 한 번 밟아 도약을 한 트리그가 한 번의 점프로 에반과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가벼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꽤나 실력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주먹이 에반의 지척으로 다가오고 에반이 그 주먹을 살짝 발을 옮기며 피했다.
“어라? 이 새끼가 피해?”
그는 호리호리하게 생긴 청년이 자신의 주먹을 피했다는 데 분노를 느끼는 듯 이번에는 팔꿈치로 에반의 얼굴을 가격하려 했다.
그런 트리그를 상대로 에반이 손을 들어 자연스럽게 트리그의 손을 위로 올렸고 그는 당연히 에반의 얼굴이 아닌 허공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트리그는 반쯤 장난이던 마음이 완전히 분노로 뒤덮였다.
사실 자신이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일반 사람들과 약간의 마찰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먹고 근신을 하던 도중 받은 임무였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텔레포트 진을 세 번을 타야 했으며 다오에서도 막나가는 저 세 명과 함께 다녀야 했다.
모든 것이 짜증이 났고 화를 풀고 싶었던 트리그는 크라우스 가문의 영역에 도착하자마자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
그걸 본 세 명도 그 일에 동참하여 벌써 삼 일째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직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같이 보이는 놈이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고 광포한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이답게 일단 그를 때리고 보려 했는데 계속적으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어!”
광포한 늑대가 발정난 늑대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주먹에 마나를 담아 에반을 후려쳤다.
근육 속에도 마나가 충만한지 방금 전과는 다른 빠름과 파괴력을 지닌 주먹질이었다.
그러나 빠름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에반에게는 그저 가볍게 피할 수 있는 정도의 공격이기도 했다.
휙!
너무나 손쉽게 에반이 피하자 공격에 힘을 실은 크리그의 균형이 무너졌다.
크리그는 앞으로 쏠리는 상체에 힘을 주며 튕겨서 균형을 잡는 동시에 발차기가 들어갔다.
그러나 그 공격 또한 에반이 손을 들어 막고는 그대로 내쳤다.
“으윽.”
장내가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공방이었지만 에반의 느린 움직임 때문인지 모두가 에반이 피하거나 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 행동하는 에반에게 크리그가 한차례 욕설을 하며 다시 달려들었지만 에반은 태연하게 정보원에게 물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다, 다오에서 나온 이들입니다.”
“다오? 그 흑마법사를 잡아들이는 단체 말이냐?”
“예.”
에반과 정보원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크리그는 어느새 빼어 든 너클을 손에 착용하고 에반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단 한 대 맞지 않으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들이 왜 여기 있는 건가?”
“그것이 에반 님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예.”
세 명은 대화를 하며 크리그의 공격을 피하는 에반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그가 자신들이 조사를 하기 위해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슬그머니 무기들을 꺼내었다.
에반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정보원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럼 다시 묻지. 이들이 왜 여기 있는 건가?”
그러는 사이에도 크리그는 계속해서 에반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 라운드 파이터의 공격을 아주 자연스럽게 피하고 있었다.
정보원은 그 장면을 눈에 담으며 조금씩 말에 힘이 들어갔다.
이들에게 굽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디어 든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본가에 올 생각은 하지 않고 이곳에서 꽤 많은 피해를 입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마을에 피해를 입힌 이들을 징치할 수는 없는가?”
“아닙니다. 다오라는 단체는 비호를 받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가법이 고스란히 적용이 됩니다.”
“그래?”
탁!
“큭.”
파리를 쫓듯 손을 허공에 휘젓자 거기에 크리그의 발이 나타나면서 에반에 손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잠시간 공격의 틈이 생긴 사이 에반이 다른 세 명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인가 무기를 꺼내 들고 공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들은 에반의 시선에 움찔했다.
에반이 말했다.
“너희도 덤빌 테면 덤벼라. 난 흔쾌히 조사를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너희가 본가의 영역에서 끼친 피해는 고스란히 돌려받아야겠지.”
“이얍!”
가장 먼저 메이스를 든 남자가 에반을 찍어 누르듯 공격했다.
에반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며 말했다.
“이 식당에 더 피해를 입히는 건 볼 수가 없지.”
찍어 내리던 메이스를 교묘하게 왼쪽으로 비튼 에반이 왼손으로 그대로 남자의 가슴을 치자 그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그 기회를 이용해 주먹을 뻗어대는 크리그의 공격을 피하며 오른손으로 살짝 뒤로 밀었다.
“큭.”
크리그가 뒤로 물러나고 이번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에반에게 날아들었다.
에반은 식당에 피해를 더는 끼치지 않게 하겠다는 건지 그 단검들을 손으로 모조리 잡아챘다.
“헉!”
단검을 던진 사내가 그 놀라운 광경에 헛바람을 집어 삼킬 때 옆에 있던 여인이 채찍으로 에반을 공격했다.
취리릭.
채찍이 뱀의 움직임처럼 에반에게 다가들었다.
그리고 에반의 손에 들려 있던 여섯 개의 단검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촤촤작!
오우거의 힘줄을 꼬아 만든 채찍이 허무하게 에반에게 다가든 만큼 잘려나갔다.
“안 돼!”
그 광경에 여인이 바로 채찍을 뒤로 회수했지만 이미 채찍은 반절 이상이 잘려 나간 다음이었다.
그때 또다시 뒤쪽에서 크리그의 공격이 에반을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살짝 피하며 다시 뒤로 밀어버린 에반은 크리그를 무시하고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 텐가?”
두 사람이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에반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야얍!”
크리그는 그 상황을 모르는지 다시 한 번 에반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것을 본 에반은 이번에는 제대로 크리그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쿵!
발이 바닥을 파고들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보다 큰 소리가 나며 크리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웁.”
설마 에반이 자신을 공격할지 몰랐던 크리그가 공격에 당하며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에반이 자신의 옷을 한번 매만진 후 정보원에게 말했다.
“이들을 끌고 가라.”
“예, 에반 님.”
* * *
“형님, 대체 어디를 갔다 오신 겁니까?”
이미 보고를 받았던 쥬드가 에반이 나타나자 황급히 물었다.
“아버님을 뵙고 왔다.”
납골당에 다녀왔단 소리였다.
“어느새?”
분명 어제까지 같이 저녁을 먹었던 두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에반이 보이지 않자 잠시 또 명상에 들어간 것인가라는 생각에 찾지 않았는데 그 먼 곳을 다녀온 것이다.
“예전 길을 따라 한 번 가보았다.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야.”
“그래도 이야기를 해주시고 돌아다니세요. 제가 깜짝 깜짝 놀랍니다.”
“뭐, 그러지.”
에반이 쥬드에게 살짝 미소를 보였다.
요즘은 가끔이지만 이렇게 웃음을 짓기도 하는 에반이었다.
그 미소에 넘어간 쥬드도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잘 다녀오시긴 했습니까?”
“이들을 만난 것을 빼고는 좋았다.”
에반은 오늘 아침 자신이 정말 오랜만에 꿈이라는 것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와 지내면서 꿈마저 꾸지 않게 되었던 에반은 생생히 기억나는 꿈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생각했었다.
‘내가 아버지를 그리워한 것인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에반은 그 즉시 납골당으로 향했다.
본래 말을 타고 반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에반에게 그곳은 반나절이 아닌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묘비를 본 에반은 한참 동안을 그렇게 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그가 들른 식당은 예전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에 다녀 올 때면 언제나 식사를 했던 그 식당이었는데 그곳에서 추억에 잠기길 원했던 에반은 반갑지 않은 이들을 만나버린 것이다.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을 생각하는 걸 망친 것은 물론 크라우스 가문의 영역 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그들을 보며 에반은 철저하게 그들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도록 했다.
한 명과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면서 가지고 놀다가 다른 세 명도 간단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에반의 뒤에 따라오는 세 명은 숙인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베켓이라 합니다.”
“반갑다. 에반이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정보를 모으게 될 정보원들은 이미 며칠 전 만나보았는데 베켓은 오늘 처음 보는 자리였다.
“이들이 바로 다오에서 나온 분들입니까?”
“자기들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군.”
에반의 대답에 베켓이 네 명을 바라보았다.
“맞습니까?”
“맞다.”
“그럼 우선 에반 님이 흑마법사인지부터 확인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그 말에 네 명의 눈에서 동시에 빛을 발했다. 식당에서 당한 것을 그를 흑마법사로 만드는 걸로 갚으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죄책감은 없었다.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들은 은밀히 돈을 받고 무고한 이를 흑마법사로 만들어 파멸을 시킨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디에서건 부정은 일어나고, 자신들은 그 사이에 살짝 끼어들었다가 돈을 받고 빠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다오에서 알든 모르든 그들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여기에 보낸 저의가 거기에 있다고 그들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기다렸건만.’
그들이 바로 백작가로 향하지 않고 마을에 눌러앉아 행패를 부린 것은 스트레스를 풀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거기에서 누군가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크라우스 백작가의 영역에 도착한 것을 알면 크라우스 백작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이가 돈을 쥐여줄 것이라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에반과 만나게 되어 일이 꼬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만은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에반을 흑마법사로 만들어 버리리라 다짐했다.
그때 베켓이 물었다.
“마나의 구슬을 가져오셨지요?”
“…….”
그 말에 네 명의 표정이 동시에 떨떠름하게 변해버렸다.
“가져오지 않으셨습니까?”
그 물음에 뭐라 대답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베켓이 말을 이었다.
“가져오지 않으셨다면 다오에 직접 연락을 해 보내드리라 하겠습니다. 그 비용은 저희가 책임을 질 겁니다.”
“다르게 확인을 하면 되지 않겠소?”
크리그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베켓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마나의 구슬이 가장 정확하게 흑마법사를 가려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틀릴 수도 있는 물건이라.”
“실패라? 대체 마나의 구슬의 어떤 점이 흑마법사를 가려내지 못한다는 겁니까? 마나의 구슬에 대고 하는 마나의 맹세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물품이 아닙니까? 그렇기에 만약 흑마법사가 자신이 흑마법사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면 그는 그대로 마나를 잃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게 흑마법사를 가려내는 판별법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흔히 말하는 백마법사와 악의 근원이라는 흑마법사 모두 사실은 마법사이기에 마나의 맹세를 어길 수 없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시각이 많은지라 다오에서조차 마나의 맹세를 시키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었다.
“아, 아니오. 이놈이 마나의 구슬이 무언지 잘 몰라 하는 헛소리이니 듣지 마시오.”
메이스를 들었던 남자가 황급히 대답했다.
마나의 구슬이 실패할 수 있다고 다오에서 말했다는 것이 공론화된다면 그건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나쁜 점들이 많았던 다오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그들을 은근히 지원해 준 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나의 구슬이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면 마법사와 전쟁을 치를 수도 있게 된다. 왜냐하면 처음 마법사가 되면 맹세를 하는데 그때 마나의 구슬에 손을 얹고 마법사들만의 의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걸 전면으로 부정당하게 되면 마법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되는 일이었기에 그가 황급히 크리그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증명을 하지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마나의 구슬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채찍을 휘두르던 여인의 말이었다.
“정말입니까?”
“예.”
“그럼 마나의 구슬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증명하면 될 것 아니오?”
크리그가 퉁명스레 말했다.
“지금 당사자와 다툼이 일었는데 그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고의적으로 흑마법사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오?”
“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가장 정확한 방법을 선호할 뿐입니다. 다른 방법들은 오판의 여지가 있지만 마나의 구슬만은 오판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마나를 잃으니 말입니다.”
“으음.”
그 말에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마나의 구슬이 다오에서 이곳으로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하지요.”
베켓이 그렇게 말을 한 후 뒤로 빠졌다.
이제 이들은 손님이니 쥬드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우선적으로 에반이 말했다.
“이들을 지하의 감옥에 넣어라. 이들은 지금 죄인의 신분이다.”
그 말에 뒤에 사람들이 우물쭈물했다. 그리고 쥬드도 그런 에반을 말렸다.
“형님, 우선 이들을 손님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형님이 흑마법사의 혐의를 벗을 때까지는요.”
“가주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가주 뜻대로 해.”
“고맙습니다. 그럼 이들을 모셔라.”
“예.”
그제야 하인들이 나서서 그들을 데리고 갔다.
* * *
“어떻게 할 거지?”
크리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자신들도 실력이라면 자신이 있었는데 너무나 쉽게 제압을 하는 에반을 보면 무력을 사용하기도 만만찮았다.
게다가 마나의 구슬까지 알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만약 이번 일이 끝난다고 하더라고 크라우스 가문에서 자신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 분명한 시점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만 했다.
“우선 연락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누구에게?”
“우리를 보낸 게 누구지?”
“아마 루네르일 거다. 제시.”
제시는 그 말에 분통을 터뜨렸다.
“역시 그년일지 알았어. 그런데 그년은 왜 우릴 보낸 거지?”
“우리보고 당해보라는 심정이든가 아니면 우리가 미끼든가 둘 중 하나겠지.”
“흥. 마음에 들지 않는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우리를 죽을 자리에 보내진 않았을 거 아냐?”
“정말 우리가 죽지 않을까?”
“뭐?”
“그 에반이라는 놈 표정 못 봤냐? 살인이라도 태연하게 저지를 놈 같아 보였다.”
“그렇긴 하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지?”
“루네르가 이쪽 담당이니 아마 알아서 잘할 거야. 루네르가 사갈 같은 데가 있지만 그래도 일은 잘 처리하잖아.”
“너무 그년 편을 드는 것 아냐? 파트.”
“이놈은 루네르 추종자이니 그냥 그러려니 해라. 제시.”
“아무튼 기다려 보자고.”
“그럴 수밖에.”
그들이 초조하게 기다린 지 며칠 후 크라우스가에 마나의 구슬을 들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바로 며칠 전 그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던 루네르라는 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오의 십이사도 중 한 명인 루네르라 합니다.”
“반갑소. 크라우스가의 가주인 쥬드 크라우스요.”
쥬드가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에반은 얼굴을 찡그렸고 뒤에 있던 베켓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또 읽히지가 않는군.’
아직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사에타 상단의 시몬과 비슷했다.
다만 시몬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이 티가 난다면 루네르라는 여인은 그저 모호하게 보여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는 점이 달랐다.
“이분이 바로 가주님의 형님이 되시는 에반 님이신가 보네요. 반갑습니다.”
“에반이라고 한다.”
“듣던 대로 삭막하시네요. 흑마법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만해요.”
그 말에 갑자기 장내에 긴장감이 돌았다.
쥬드 또한 루네르에게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호. 그냥 장난으로 말해본 건데 분위기가 가라앉았네요. 제가 말실수를 한 건가요?”
“그렇게 태연하게 사람을 놀리다가는 누군가에게 호되게 당할 수 있는 일이지.”
그 말에 이제 완전히 분위기가 경직이 되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는데 표정만 보아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흐음. 그런가요?”
잠시 에반을 바라보던 루네르가 살짝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희가 보낸 이들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들은 지금 방에 감금되어 있네.”
“감금이라니요? 대체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그런 표현을 쓰나요?”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그렇게 말한 쥬드가 손짓을 하자 한 명이 재빠르게 그들을 데리러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루네르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얼굴이 별로 편치 않아 보이네요. 손님을 함부로 대했나 봐요.”
그 말에 흘끗 에반을 쳐다보았던 크리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루네르 님.”
루네르는 그들이 언제나 보였던 당당한 모습이 아닌 풀죽은 모습으로 있자 더는 그들을 감금했다는 이유로 압박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정말로 흑마법사가 아닌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네요.”
루네르는 주위의 이목을 끌면서 스스로가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
에반은 그에 딱히 나쁜 점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잠자코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확인을 하지?”
“이 자리에서 하지요. 누가 구슬을 놓을 곳을 가지고 오실 수 있나요?”
루네르의 말에 미리 준비된 탁자가 놓이고 거기에 푸른색을 띤 구슬이 놓였다.
모두가 그걸 바라보는 가운데 루네르가 말했다.
“이제 손을 올려놓아 주세요.”
에반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나의 구슬이 공명을 하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나의 맹세라는 것이 보통 마법사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건 마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마나의 맹세들도 어떻게 보면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강제로 마나와의 연결을 끊고 입으로 맹세를 한다고 하면 맹세를 어긴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슬에 손을 얹으면 그 누가 되었든 마나와 일체가 되는 기분을 맛본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법사의 자질이 있는 이들을 구별해 내기 위해 마나의 구슬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것 때문에 마나의 구슬은 마나와 대상과의 연결을 아주 깊게 하고 그 상태에서 하는 말은 강제로 마나의 맹세가 되어버린다.
루네르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에반 크라우스다.”
위이잉.
마나의 구슬이 한차례 크게 울렸다.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 작업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진짜 질문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흑마법사인가요?”
“아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우우우웅!
마나의 구슬이 세차게 흔들리며 주위의 마나들 또한 갑자기 반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루네르가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크라우스 가문은 없어질 운명이야.’
설마 여기에서 변형된 마나의 구슬을 사용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꼭 성공시켜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 변형된 구슬은 두 번째 질문에서 반응하며 그 사람의 마나뿐 아니라 생명력을 빨아들인다.
본래의 마나의 구슬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런 것은 흑마법사라는 증거에 묻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에반이 여기에서 죽어버리는 일은 그저 하늘이 분노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구슬이지만 크라우스 가문을 없앨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면 그리 큰 지출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화아악!
그리고 빛이 에반을 시작으로 장내를 뒤덮었다.
「공간의 절대자」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