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팔로스 백작의 크라우스가에 대한 영지전 신청과 죽음.
그건 크리프 왕국의 크나큰 충격이었다.
용장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 죽음에 크라우스 가문이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때문에 부랴부랴 조사관을 파견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정황에 대해 파악하기에 분주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한 마법사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고, 그 마법사가 마도사라는 데 또다시 놀랐다.
켈베스 드라우고.
그리 명성도 없었던 크라우스가의 마법사가 6서클을 이룩한 마도사라는 데에서 사람들은 크라우스가의 저력은 또다시 느껴야만 했다.
영지전이 시작은 있었지만 팔로스 백작의 죽음으로 유야무야가 되었다.
그의 아들은 이미 예전에 죽었고 손자가 현재 바스트 제국의 아카데미에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영지전을 할 수가 없었다.
영지전을 위해 모인 병력들은 다 죽었고, 성에 있던 병사들도 꽤 많은 피해를 입었다.
마도사인 켈베스가 에반과 함께 치료를 위해 팔로스 성에 있다는 것은 그대로 묻혔다. 그들이 치료를 하고 나서 나온 것을 공격하려 했다는, 어찌 보면 귀족이 할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명분으로 내세웠던 에반이 흑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건 그대로 묻혔다.
그 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영지전이 벌어진 지 한 달이 흘렀다.
쾅!
“이게 무슨 일인가? 켈베스 따위가 짐을 무시하다니?”
“고,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노드에르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이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깨달음을 빌미로 칩거에 들어간 마법사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
“그래도 너무 괘씸하지 않은가?”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그러지.”
스미트 마도사의 말에 루드 왕이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그리고 켈베스가 마도사가 되었다고 그리 불안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하 곁에는 그런 자가 세 명이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불안해.”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오에 연락을 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또한 이번에 전 팔로스 백작을 대신해 영지를 이끌 제트로 팔로스를 복귀시키는 겁니다.”
“이미 켈로스가 마나의 맹세까지 하며 에반이 흑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네. 그런데도 부르자는 말인가?”
“어차피 크라우스가를 흔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이라면 그 일을 아주 잘해줄 겁니다.”
“그렇군. 역시 스미트 후작이야.”
“아닙니다, 전하.”
“그럼 노드에르 백작?”
“예, 전하.”
“자네가 스미트 후작과 상의를 해서 한 번 계획을 짜보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스미트 후작?”
“예, 전하.”
“현재 글로리 기사단은 어떤가?”
“제국을 도와 전쟁 중에 있습니다.”
“사상자는?”
“…….”
“역시나 없는 건가?”
루드 왕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 쉬고 싶구나.”
그 말에 스미트 후작과 노드에르 백작이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나 대전을 나왔다.
대전 안에서는 루드 왕이 의자에 몸을 깊이 묻은 채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후우, 이제 끝난 것 같군.”
조사관이 떠나고 쥬드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한숨이냐?”
자신을 귀찮게 하던 조사관이 가는 것을 보고 방을 나온 에반은 쥬드를 보고는 물었다.
“오랜만에 이런 조사를 받으니 몸이 피곤해서 말입니다.”
“그래?”
“그나저나 켈베스 님은 아직도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켈베스 따위에게 존칭을 붙일 필요는 없다.”
“따위라니요. 마도사는 대륙에도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건 높은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네 아래에 있는 사람이니 존칭은 생략하거나.”
에반의 말에 쥬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제 모든 일이 끝난 거냐?”
“대략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략적?”
“뭐,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본가가 크게 터뜨려 줬으니 이대로 끝나지는 않겠죠. 그나저나 정말로 켈베스 마도사가 한 일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쥬드의 얼굴은 그늘이 없었다. 왠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너도 켈베스가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을 들었으면서 계속 묻는구나.”
켈베스는 조사관이 자꾸 귀찮게 굴자 자신이 마법을 써서 성벽을 무너뜨리고, 거기 있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마나의 맹세를 했다.
거기에 ‘대부분’이라는 말을 넣어 켈베스는 거짓으로 마나의 맹세를 하는 것을 피해갔던 것이다.
쥬드는 그날 갑자기 영지전이 다시 선포가 되고 에반을 흑마법사로 몰아가는 팔로스 백작으로 인해 분노를 했었다. 그런데 당연히 구금이 되었거니 생각을 했던 에반이 다음 날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니 쥬드는 정말로 놀랐었다.
그 후 태연한 에반과 켈베스의 모습에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나중에 조사관이 와서 조사를 할 때서야 켈베스가 자신이 일을 벌였다고만 하니 믿기가 어려웠다.
이상한 말이지만 에반은 쥬드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쥬드를 에반이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제가요?”
“그래.”
에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쥬드가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기분이 좋군요. 하하하!”
“네가 오늘은 좀 이상하구나.”
“그렇게 보입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조사관이 제 눈치를 보더군요. 아직 본가가 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말이지요.”
“그래?”
“예.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예전에 느꼈던 그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으니까요.”
“네가 그러하다면 그러한 거지.”
잠시 에반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던 쥬드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물어보았다.
“그런데 형님, 제 아들은 잘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버거울 정도로 훈련을 받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그러니 아직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지. 그저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에반과 쥬드가 즐겁게 대화를 나눌 무렵 집사가 그 둘을 찾아왔다.
“가주님.”
“무슨 일인가?”
집사는 살짝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당분간은 아무도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것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가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드워프가 찾아왔습니다.”
“드워프?”
에반이 집사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예. 그들은 꼭 켈베스 마법사를 만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람이라면 그냥 쫓아내겠지만 드워프라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여쭙고자 왔습니다.”
“흠.”
쥬드도 드워프라는 말에 고민을 했다.
그때 에반이 끼어들었다.
“드워프를 한번 보고 싶군.”
에반으로서는 지금껏 다른 종족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모시게나.”
“알겠습니다, 가주님.”
* * *
마이젠트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붉은 일족 최고의 드위프이자 현재에도 그의 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드워프가 많을 정도로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하젠푸스의 최고의 걸작이 바로 미트라의 검이다.
그런 검을 인간에게 준 이유는 하젠푸스의 가족들을 그 왕국에서 찾아준 덕분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걸작이 인간의 손에 있다는 것이 다른 드워프들의 불만이었다.
그래서 붉은 일족의 드워프들은 미트라의 검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 언제나 감시를 했고 그들이 그걸 잘 관리하는지도 가끔 관찰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미트라의 검을 받았던 인간이 죽었다는 소식에 그 영지에 가까이에 있는 드워프를 바로 보내었고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은 불탄 잔해 속에 부러져 있는 미트라의 검이었다.
놀란 그는 곧바로 부러진 미트라의 검을 가지고 나와 붉은 일족의 장로들에게 이 일을 보고했고 성격이 불같은 이들 몇몇이 바로 그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팔로스 영지를 찾았다.
그러고는 처음 미트라의 검을 발견한 드워프가 부러진 검을 보여주자 바로 감정을 시작했고 그것이 진짜 미트라의 검임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화가 났다. 이런 걸작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가 부러뜨려 버렸다는 데에 화가 난 것이다.
그 후 화가 가라앉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검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검이라 했는데.’
당시 하젠푸스는 미트라의 검은 드래곤마저도 절대 파괴할 수 없는 검이라 확신을 했었다.
당연히 드워프들은 하젠푸스의 말에 그 검을 시험을 해보았고, 그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 전의 걸작 중 미트라의 검과 같은 강도를 가진 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검들이 부딪친다면 괜히 걸작만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거기까지는 시험해 보지 못했지만 하젠푸스의 말대로 드래곤의 브레스도 견딜 수 있는 검인 건 분명했다.
‘그런 검이 부서졌다.’
처음에는 이 검을 가지고 있었던 주인을 죽인 범인이 드래곤인지 알았다.
그러나 현재 이 왕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드래곤이 없다는 정보에 대체 어떻게 이 검을 부러뜨렸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함이 그들을 크라우스가로 오게 했고 지금 그들은 크라우스가의 가주를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본인은 쥬드 크라우스 백작이라 합니다. 무슨 일로 드워프가 이런 곳까지 오신 겁니까?”
“난 마이젠트로라 하고 이쪽은 파라머네. 우리는 그 마도사란 양반을 만나고 싶은데 말이야.”
“켈베스 마도사는 현재 6서클을 완성하기 위한 깨달음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방해를 하면 안 됩니다.”
그 말에 마이젠트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장난하나?”
“예?”
“우리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그것이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말은 아니네. 그 마도사라는 자가 쓴 마법 대부분이 6서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쓸 수 있는 경지인데 또 무슨 깨달음을 얻어야 한단 말이야?”
“음…….”
그 말에 쥬드가 당황했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젠트로는 쥬드를 보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음, 가주는 모르는 이야기인 모양이군.”
“아, 예. 그곳에서 6서클을 이룬 것이 아니라 이미 6서클의 마도사였다니 조금 당황스럽군요.”
마이젠트로는 쥬드에게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음을 느끼고는 그 옆에 있는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쪽은 알고 있었나?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켈베스와 함께 있었다는데.”
“난 마법에 문외한이다. 그러니 할 말이 없지.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키가 그리 작진 않군.”
보통 드워프라고 한다면 아주 작달막한 키를 가진 장인 일족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이젠트로는 에반의 가슴까지 오는 키에 덩치가 있어서인지 그렇게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흥. 인간들은 대상을 볼 때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우리의 특징을 부각시켜서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멍청한 머리를 가진 게 네놈들이지.”
“그렇군. 그나저나 켈베스를 만나서 무엇을 물어볼 생각인가?”
“그걸 자네에게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으려면 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지금 켈베스는 공식적으로 깨달음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그러니 자네들은 절대 공식적으로는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
“그 말은 자네는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물론.”
그 말에 마이젠트로가 에반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가주라는 것이 그 가문의 수장이라는 뜻 아닌가? 그런 가주도 컨트롤을 못하는 자를 자네가 컨트롤할 수 있다니 믿기 어렵군.”
“내가 가주의 형이라서 말이야.”
그 말에 더욱 마이젠트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드워프라지만 인간과의 접촉은 많은 편이지. 그래서 인간의 나이는 대체로 알아볼 수 있는데, 네가 가주의 형이라고?”
“아까 말한 대로라면 인간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가졌지만 드워프들은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라는 뜻을 가지고 말한 것 같은데, 내가 정말 젊어 보이나?”
마이젠트로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고 에반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지금까지처럼 건성이 아닌, 에반을 제대로 보자 그가 주는 본질 자체가 마이젠트로를 숨 막히게 하고 있었다.
점점 마이젠트로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 에반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컥! 헉헉!”
“왜 그러는가?”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파라머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고 거칠게 숨을 토하는 마이젠트로에게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네.”
마이젠트로는 그러면서 다시 에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까처럼 숨이 막히는 일은 없었고 다만 에반의 무표정한 표정만을 볼 수 있었다.
‘드래곤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마이젠트로가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을 본다면 본질이 보이며 저절로 공포심이 떠오를 뿐이지 이렇게 압도당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에반을 바라보며 마이젠트로는 계속해서 생각을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자유자재로 자신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에반이 다시 물었다.
“어때? 아직도 내가 어려 보이나?”
“그건 아닌 것 같군.”
“그래. 난 가주의 형이라 많은 이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지. 그 친한 이들 중 켈베스가 끼어 있을 뿐이야. 그러니 내게 말하면 어쩌면 켈베스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군. 하지만 자네만 들을 수 있네. 괜찮은가?”
마지막 물음은 쥬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쥬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만 아신다고 해도 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나가보지요.”
쥬드와 집사가 나가고 응접실에는 에반과 두 드워프만 남았다.
에반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왜 켈베스를 만나려 하는 거지?”
이미 에반의 힘을 어느 정도 경험한 마이젠트로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부러진 검을 꺼냈다. 바로 미트라의 검이었다.
“이 검 때문이네.”
“음?”
에반은 갑자기 팔로스 백작이 가지고 있던 검이 마이젠트로의 손에서 나타나자 의문성을 토하며 그를 보았다.
“이 검을 아는가?”
“팔로스 백작이 가지고 있던 검인가?”
“그래. 그리고 붉은 일족 최고의 장인이었던 분이 만든 검이기도 하지. 미트라의 검이라고 아나?”
“들어보지 못했다.”
“크리프 왕국의 인간이라면 다 아는 검을 모르다니 웃기는 친구군.”
“그런데 그 검이 뭐가 문제지? 이미 부러진 검 아닌가?”
“그래. 부러졌지.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미트라의 검은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다.”
“그런데 부러졌군.”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붉은 일족 최고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최고의 작품이 부서졌는데 우리에게는 비상상황인 거지.”
“이 검이 그렇게 대단했다는 건가?”
“그래. 그리고 6서클의 마법사가 어떻게 이 검을 부쉈는지 정말 궁금할 뿐이다.”
에반은 부러져 있는 검날을 집어 들며 말했다.
“검 하나로 너무 호들갑을 떠는군.”
“호들갑? 이게 호들갑으로 보이나? 이 검은 진짜 최고의…….”
빠각!
마이젠트로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손에 검날이 그대로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흠.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검이라는 것 자체가 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는 절대 부서지지 않아야 이치에 맞다.
그런데 그냥 검도 아니고 쇠와 함께 최고의 광물이 들어간 미트라의 검이 이안의 손에 부서졌으니 마이젠트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래. 이미 부서져 버린 검이라 강도가 약해져서…….”
“이 검이 본래의 모양이었을 때도 내가 부러뜨려 버렸지.”
미트라의 검을 부러뜨린 범인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그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검을 부러뜨렸는가 물어보기 위해 그 호기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인데 손으로 그냥 부러뜨리는 장면을 보았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되지?”
“어떻게 그렇게 검을 쉽게 부수는 거지?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최고의 걸작이 아닌가 보지.”
“이런 무례한…….”
“그럼 진짜 부서지지 않는 검을 가지고 와보든지.”
“으음…….”
“흠. 이보다 좋은 검은 없는 건가?”
“없긴 왜 없어. 이 검은 그냥 엘스티움을 섞어서 만든 검이다. 드워프 최고의 장인이라는 루엔케가 만든 검은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믿을 수 없군. 내 손이면 다 부서질 것 같은데 말이야.”
“흥. 신의 금속과 엘스티움이 만나 최고의 검을 만들었다. 그건 신의 작품이야.”
“그렇다면 내기를 해볼까?”
“내기?”
“그래. 어떤 검이라도 나에게 가져와 봐라. 그래서 그 검들이 내 손에 부서지지 않는다면 너희가 이기는 것으로 하지. 어떤가?”
아무 검이나 가져와서 시험해 보라는 에반의 말은 드워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마이젠트로가 에반을 노려보았다.
“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냐? 인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제대로 된 검도 아니면서 제대로 된 검이라 하니 웃길 따름이지.”
“으읏! 그래, 네가 말한 대로 내기를 해보자.”
마이젠트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에반이 물었다.
“그럼 내기로 무엇을 걸지?”
“흥. 어차피 너희가 가진 탐욕이 끝도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번만은 내기에 이긴 승자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으로 하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내가 가지고 올 검들은 우리 종족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부은 검들일 것이다. 절대 인간의 손에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 난 확신할 수 있지. 그러니 인간 너나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렇게 에반과 드워프의 첫 내기가 성사가 되었다.
* * *
마이젠트로와 파라머가 분통을 터뜨리고 간 후 쥬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냥 심심해서 장난을 좀 쳐보려고.”
하지만 쥬드가 드워프들에게서 보았던 표정은 장난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도가 넘어선 표정들이었다.
“저렇게 보여도 드워프라는 종족은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기술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힘은 제국과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쥬드가 에반에게 걱정이 된다는 듯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로 장난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장난에서 내가 이기면 넌 좋은 걸 얻을 거야.”
“좋은 것이라니요?”
“그때 가서 말해주마.”
그렇게 말한 에반이 응접실을 나섰다.
훈련을 하고 있을 기사들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다.
* * *
“정말인가?”
“예. 그곳에서 굉장한 마나의 공명이 있었습니다.”
수염을 기른 사십대의 중년인과 백색의 옷을 입은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어쩌면 세상에 또 하나의 신물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흑마법사와 관련은 없다고 보는 것이냐?”
“처음에는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켈베스라는 자가 마도사가 된 일을 말하는구나.”
“예. 크라우스 가문이 있는 곳이기에 조심스레 조사를 하던 도중 터진 사건입니다. 저희의 정보로는 켈베스는 절대 마도사가 될 실력이 없는 마법사였습니다.”
“그랬지. 그랬기에 크라우스 가문이나 감시하라고 보내었었지.”
“예.”
“그런 자가 마도사가 되었다라……. 넌 그것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느냐?”
“그 신물이라는 것이 마법과 연관이 있는 거겠지요.”
“크루세스의 마법서처럼 말이냐?”
“예.”
세상에 마법이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은 드래곤이지만 인간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한 마법사에 의해서다.
그는 최초의 인간 마법사이자 지금까지도 그가 이룬 서클에 이른 마법사가 없기에 최고의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는 이백 년이란 긴 시간을 이 세상에서 살다 갔는데 그가 죽기 전 그는 자신이 마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마법서 때문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 마법서는 자신과 하나가 되어 자신이 갈 길을 알려주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 그는 자신과 하나가 되었던 마법서를 자신과 떼어놓는 데 성공을 했고 그 마법서를 자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에게 전해준다는 말을 남기고는 종적을 감추었다.
크루세스의 선언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정말로 마법서들이 나타났다.
다만 그 마법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형태를 가진 물건으로 각각의 선택을 받은 이들에게 돌아갔다.
그걸 알아챈 수많은 이들이 그 마법서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그렇게 욕심을 부린 이 중 마법서를 얻은 이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마법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주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택된 주인들은 스스로가 한 마법 분야의 정점에 오르게 되었고, 그들은 8서클을 이루며 자신과 뜻을 같이할 마법사들을 모았다. 그렇게 여섯 개의 마탑이 생겨났다.
그 후 여섯 명의 마탑주들은 모두가 모여 합쳐진 마법서를 보고자 했지만 그걸 마법서가 거부하였고, 그에 낙담한 그들은 크루세스가 자필로 남긴 또 다른 마법서를 보고 기본적으로 다른 분야의 마법사들도 익힐 수 있는 마법을 연구해 내놓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3서클까지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법을 익힐 수 있게 된 배경이 되었다.
대신 4서클이 되면 자신이 느끼는 대로 한 분야로 나가야 했고 그렇게 하려면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대륙에서 마법사를 핍박하지 못하는 건 모든 마법사가 마탑 소속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후후후. 켈베스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마법서를 얻었다면 지금 자신을 드러냈겠느냐?”
“…….”
그 말에 청년이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의아했던 점을 중년인이 정확히 찔러 들어온 것이다.
“너 또한 그걸 생각하고 있는 듯하니 어찌할 테냐?”
“제가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네가?”
“예.”
“흠…….”
중년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왜 그러십니까?”
“넌 크라우스 가문이 어떠한 곳인지 아느냐?”
“그곳이야 제일 철저하게 분석을 한 곳이 아닙니까?”
“아니다. 철저하게 분석을 했다면 넌 켈베스가 마도사가 되었던 것을 알아차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지.”
“우연입니다.”
“후후후.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다. 그리고 크라우스 가문은 우연이라도 그걸 필연으로 만들 수 있는 가문이기도 하다.”
“…….”
청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침묵했다.
그리고 중년인은 그런 청년의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한 말에 고분고분하기만 한다면 좋은 수장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의 말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면 최고의 수장이 될 수가 있다.
“그래. 너 또한 생각이 있겠지. 아무튼 그곳으로 가려면 조심해야 한다.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중년인과 청년의 대화가 끝이 났다.
* * *
그리고 또 다른 장소의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있었다.
“마나의 공명이 일어난 곳에 마도사가 출현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물일 수도 있겠구나.”
“예.”
“그런데 왜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지?”
“그곳이 크라우스 가문의 권역이기에 섣불리 접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겠군. 하지만 그래도 한번 힘을 써보아라.”
“잠입을 합니까?”
“그래. 되도록 평범한 인물로 보내 보거라.”
“알겠습니다. 한데 이상한 정보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정보?”
“예. 크라우스 백작의 형이 돌아왔는데 그가 흑마법사의 실험에 지금껏 당하고 있다가 탈출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이냐?”
어둠 속의 남자가 놀란 듯 소리치자 그 앞에 부복해 있던 남자가 놀란 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렇습니다.”
“음…….”
잠시 어둠 속의 남자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부복해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
“마스터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내가 확인을 할 것이 생겼다.
“알겠습니다.”
“그럼 물러가라.”
“예.”
이렇게 크라우스 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 여러 세력의 눈을 그곳으로 집중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