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2 그녀의 요상한 판타지 (完) =========================================================================
수화 역시 할 얘기가 있다는 성준의 말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정말… 갑자기 새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거나…… 그렇게 말하면… 어쩌지…?'
성준의 말을 미리 짐작하여 걱정하는 수화였지만 이제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성준을 오해하는 것 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하는 수화였다.
수화는 거울을 보며 옷과 머리를 단정히 했고,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 붉은색 립스틱을 입술에 발랐다.
'괜찮아. 수화야. 당당하게. 당당하게 물어보는 거야.'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굳은 결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화였다.
***
커피숍에 앉아 부들거리는 손으로 커피 잔을 쥐고 있는 진아.
'윤창호…!!!! 날 거부하면서까지 니가 그렇게도 못 잊어하는 한수화를 내가…!! 내 손으로…!!! 무너뜨리게 해줄 거야… 한수화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괴롭히고 말 거라고…!!!! 윤창호… 넌 나한테 아주 큰 실수를 했어…!!!!!'
그때 커피숍 종소리가 울리며 솔아가 들어 왔다. 진아는 솔아를 한 눈에 발견하고는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솔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제가 좀 늦었죠?? 친척 집에 잠시 가 있었어요… 진아씨 전화 받고 급하게 올라 온 거예요……." 뛰어와서 그런지 숨을 겨우 고르며 말하는 솔아였다.
"어머… 친척 집에 계셨으면… 제가 괜히 부른 거 아닌 지 모르겠네요…." 태연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진아가 말했다.
"아녜요. 저는 인생에서 성준이가 가장 소중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어요. 성준이만 되찾을 수 있다면… 이 정도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예요." 진아의 맞은 편에 앉으며 솔아가 말했다.
"솔아씨의 그 단호한 태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솔아씨가 그렇게 확고하게 의지가 있으시니… 제가 도와 줄 맛이 나네요… 오늘 멀리서 급하게 오신 거 … 후회하지 않도록 해드릴게요." 진아가 솔아에게 웃음을 흘기며 말했고 솔아는 성준이를 되찾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듯 진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오늘은…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진아씨가 시키는 대로… 그동안 성준이한테 연락하고 싶은 거 꾹꾹 참았어요. 오늘은… 성준이를 볼 수 있게 해주시는 거죠…?" 애절한 눈빛의 솔아였다.
"네. 그럼요. 오늘은 특별하게 포옹, 그리고… 입맞춤까지 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하지만 아직 성준씨의 마음이 닫혀있으니까 솔아씨가 먼저 리드하시는 쪽으로 유도하셔야 할 거예요. 아, 이제 시간이 되었네요. 이제 슬슬 병원으로 출발해야 겠어요."
진아는 시계를 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고 솔아 역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진아의 뒤를 따랐다.
***
성준이 입원한 병원 정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 수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눈 딱 감고… 내 속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자.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성준이가 만약…다른 여자가 생겼다 해도… 사실을 알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침을 꿀꺽 삼키고는 굳은 결심으로 병원으로 들어가는 수화였다.
***
병실에 있는 거울을 보며 한껏 멋을 부려 보는 성준. 문득 시계를 보면 이제 곧 수화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아… 멋을 부려도 환자복을 입으니까 태가 안 나잖아. 수화한테 멋있게 보이고 싶은데… 근데 혹시나… 수화가… 정말 내가 부담스럽다고… 떠나버리면 어쩌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성준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구나…!!'
성준은 수화를 마주할 생각에 긴장이 되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수화를 반기기로 했다.
그러나, 환한 웃음으로 문을 연 성준은 수화가 아닌 솔아가 문 앞에 서 있어서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소… 솔아야…. " 당황한 표정으로 솔아를 쳐다 보는 성준이었다.
"성준아… 또 찾아와서 미안… 근데 꿈에… 성준이 네가 나와서… 꿈 속에서 네가 다치는 꿈을 꿨어…그래서… 나 지금 지방에 있는 친척 집에서 바로 올라온 거야… 네가 걱정되어서…." 성준을 본 솔아는 곧장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울먹이며 말했다.
"휴… 걱정해 줘서 고마운데… 나 지금…중요한 손님 오시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제발 가 줄래?" 성준이 솔아를 타이르며 말했다.
솔아는 순간 '중요한 손님'이 오기로 했다는 성준의 말을 들으며 더욱 진아의 말에 신뢰가 갔다.
"성준아… 제발… 그럼 딱… 10분만이라도… 내 옆에 있어 주라. 응?" 솔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성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 저번에 우리 약속하지 않았었나? 마지막 포옹…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라고. 솔아 너… 이렇게 약속도 못 지키는 애였어?" 일부러 더 매정하게 말하는 성준이었다.
"흐흑……흑…… 나도… 네 말대로… 우린 끝났다구… 자꾸 널 좋아하는 마음이 다시 생겨나면 안 된다구… 그렇게 내 스스로한테 말하고 또 말했는데도…!!! 자꾸만 네가 내 꿈에 나와… 꿈에 나와서 날 괴롭혀… 근데 어떻게 해…?! 나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자꾸 내 마음처럼 안 돼…!!!!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해? 흑흑……."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치는 솔아였다.
순간 성준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솔아의 모습에 당황했고,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성준과 솔아의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쳐다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준은 솔아의 팔목을 끌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최솔아… 너 잘 들어. 너… 다음에 또 한 번…이렇게 불쑥 내 앞에 찾아오면… 그때는 나… 너 두 번 다시 안 본다. 설사 네가 오더라도…널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널 상처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좋은 말 할 때… 지금 당장 병원 밖으로 나가 줘." 단호한 태도로 솔아에게 경고하는 성준이었다.
솔아는 처음보는 성준의 무서운 모습에 당황하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솔아의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렸고 솔아는 그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성준의 품을 파고 들어 와락 안기기 시작했다.
"야. 최솔아… 너 지금 이게 뭐하는…!!!" 그런 솔아를 밀쳐내려 하는 성준이었다.
그러나 솔아는 성준의 품에 꼭 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
성준이 입원한 병실을 향해 복도를 느리게 걷기 시작하는 수화.
'휴… 어느새… 병실까지 도착했네… 이렇게 된 거… 오늘 정말… 끝장을 보자. 의외로…내가 오해했던 것일 수도 있잖아.'
어느새 성준의 병실 앞에 도착한 수화는 성준의 병실에서 들려 오는 인기척에 잠시 발걸음을 주춤했다.
'응? 누가 있는 건가…' 열려진 병실 사이를 몰래 훔쳐 보는 수화였다.
***
"야! 최솔아! 너 이거 안 놔? 너 도대체 왜 이래!!" 여전히 솔아를 강하게 밀쳐 내려 애쓰는 성준이었다.
"성준아… 딱 한 번만… 예전처럼 따뜻하게 대해 줘. 응?" 성준의 껴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르는 솔아였다.
그때 솔아의 핸드폰 진동 소리가 또 한 번 울리기 시작했다.
그 신호에 맞춰 솔아는 성준의 품을 빠져 나왔고, 성준은 갑작스러운 솔아의 태도에 놀라 어이없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솔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성준의 볼을 잡고는 성준의 입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
성준의 병실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수화는 이내 뒷걸음질을 치고는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복도 끝에서 사악한 미소로 바라 보고 있던 진아였다.
'훗… 오늘도 작전 성공이야. 이렇게 천천히 한수화 네 가슴에 못을 박고… 또 아주 천천히… 네 가슴 깊은 곳까지 대못을 박아줄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주고 있어. 한수화.'
***
성준의 병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솔아. 성준은 당황스러워 하며 자신의 입술에 묻은 솔아의 립스틱을 박박 닦아내기 바빴다.
"최솔아. 너… 완전… 최악이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솔아를 노려보며 말하는 성준이었다.
"성준아… 난… 그냥……" 성준의 단호한 태도에 다시 울먹이는 솔아였다.
"가… 최솔아. 널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제발 꺼져!!! 꺼져버리라구!!!!!!" 성준이 울먹이며 소리를 지르자 놀라서 뒷걸음질 쳐 병실 밖을 빠져나가는 솔아였다.
솔아가 병실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성준은 왠지 분이 풀리질 않았다. 시계를 보니 수화가 도착할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성준은 수화에게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수화는 안 그래도 전 남친에게 받은 상처가 있었기에 성준 자신은 웃는 모습, 밝은 모습만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
병실 밖을 울면서 뛰쳐 나가는 수화.
"흑… 흑……."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보는 수화였지만, 야속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눈물은 앞을 가렸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보면 성준에게서 온 전화였다.
"하……. 하성준… 네가… 그러고도 나한테 어떻게 전화를 할 수 있어…?" 다른 여자와 입맞춤을 하고도 자신에게 태연하게 전화를 하는 성준이 너무나도 미워지는 수화였다.
수화는 눈물을 닦아 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울먹이는 목소리를 정돈하고 전화를 받는 수화였다.
[어. 나야. 성준이. 어디까지 왔어? 오늘은 좀 늦네?] 성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애써 수화에게는 숨기려 노력하고 있었다.
"미안. 나 오늘… 못 갈 것 같아." 일부러 틱틱 대는 말투로 대답하는 수화였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수화의 말에 당황스럽기만 한 성준이었다.
"무슨 일은… 그런 거 없구… 참… 오늘 우리 만나서 하기로 했던 말들… 차라리 지금 하자." 냉정한 목소리의 수화였다.
[뭐…? 아냐… 난 그 말… 꼭 직접 만나서 하고 싶어….]
"아니? 미안하지만…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말야."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더욱 더 일부러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수화였다.
성준은 수화의 냉정한 태도에 어쩔 줄 몰랐다. 우려했던 걱정들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것도 전화로 터져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수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조언이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성준은 점점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네가 먼저 말 해.] 눈물을 참아내며 성준이 묵묵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얘기할게.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성준이 네가 나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단지 그것 때문에 병문안 오고… 도시락을 싸주고… 그랬었어. 근데 내가 더 이상 그런 마음으로 널 만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성준이 널… 친구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그동안 내가 헷갈리게 했다면 사과할게." 냉정하면서도 할 말을 다 내뱉는 수화였다.
성준은 전화 저 편에서 들려오는 수화의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수화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지만 마지막까지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아… 역시… 그런거지? 그동안… 내가 너한테 많이 부담을 준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난… 수화 네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마음의 문을 연 줄 알았었는데… 하지만 그건 수화 네가 착해서 그런 거라는 것도 난 알아….] 낮은 목소리의 성준이었다.
"그래. 참… 너도 나한테 할 얘기 있다며? 뭔데? 얘기해 봐." 이미 물은 엎질러 졌다는 듯 상처를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화였다.
[사실은… 나도… 수화 네가… 날 부담스러워 하는 걸…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어… 그래서 그거에 대해 물어보고는 싶었는데… 역시나 그게 맞았어. 그동안… 널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아냐. 너도… 나 때문에 다쳤는 걸 뭐. 그래도 이제 곧 퇴원해서 학교도 다닐 수 있으니… 다행이야. 아무튼 몸조리 잘하길 바랄게."
전화를 끊은 수화는 또 다시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수화는 생각했다. 성준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나쁜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좋은 말로 자신을 포장했던 것이라고. 그동안 믿어왔던 성준에게 창호보다 더 배신감이 드는 수화였다.
========== 작품 후기 ==========
이지시스님 출석체크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혹시 질문 및 조언사항이 있으시다면 작가 메일로 부담없이 연락 주세요.
작가 메일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