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0 그녀의 요상한 판타지 =========================================================================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수화였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성준이는 그럴 애가 아니잖아… 그 여자는…친척 동생일 수도 있구… 하지만…그러기엔 분위기가 묘했어….'
수화는 지금이라도 당장 성준에게 전화해서 지난 번 통화부터 오늘 목격한 어떤 여자와의 포옹까지 전부 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성준이 자신을 집착하는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마음 한 켠에서는 '성준이도 다른 남자랑 똑같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하는 작은 외침이 계속해서 수화의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수화의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성준의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 하던 수화는 진동이 거의 끊기기 직전에 받고야 말았다.
"…여보세요?" 자신의 마음을 티내고 싶지 않았던 수화는 작은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를 받았다.
[수화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지금 어디야?] 걱정스러운 목소리의 성준이었다.
"…어… 나 지금 학교야."
[그럼… 지금 병원 오면 꽤 늦을 텐데? 음… 그러면 오늘… 병원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아까 엄마한테 얼핏 들었는데 병원에서 보호자 침대를 지원해 준대. 그래서 오늘 내가 다운 받은 영화보면서 같이 맛있는 것두 먹구 몰래 맥주도 마시구…어때? 솔깃하지?] 성준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준아… 나 오늘… 못 가." 조금은 시무룩한 목소리의 수화였다.
[진짜? 아쉽다… 오늘 너 오는 줄 알구 엄마한테두 일찍 들어가시라고 했는데…] 곧 시무룩해지는 성준이었다.
"기다렸다면 미안해…."
[아냐. 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뭐. 근데…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일은. 그런 거 없어… 그냥…오늘 좀 갑자기 특강수업 과제가 생겨서. 성준아…"
[응?]
"있잖아…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머뭇거리는 수화였다.
[물어볼 꺼? 뭔데? 다 물어봐. 우리 수화 질문이라면 다 대답해줄게.] 성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말 문이 막히는 수화였다.
'성준이한테 물어보고싶어… 근데… 용기가 안 나…….'
"아, 아냐…그냥…언제 퇴원하냐구…." 말꼬리를 흐리는 수화였다.
[뭐야 싱겁게. 진지하게 얘기하길래 나 내심 기대했다? 음… 퇴원은 그래도 개학전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준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수화였다.
"어… 그래? 그래. 얼른 나아서 퇴원해야지. 학교도 가야하니까… 아, 성준아. 나 지금 전화 끊어야겠다. 그럼… 밥 잘 챙겨먹어."
전화를 끊은 수화의 눈에 눈물이 조금 맺혔다.
'…한수화… 이 겁쟁이… 왜 말을 못 해… 왜…!' 입술을 꾹 깨물며 눈물을 참아내는 수화였다.
***
끊어진 전화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성준.
"아… 오늘은 수화를 못 보네. 내 유일한 에너지인데…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성준이었다.
그때 병실 문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어, 누구지? 엄마야?" 의아하게 문을 바라보는 성준이었다.
문이 열리자, 딸기를 담은 작은 바구니를 들고 수줍게 웃으며 들어오는 진아였다.
"어? 수진아. 웬 일이야?" 수진의 의외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성준이었다.
"아, 저희 할머니한테 병문안 오신 분이 딸기를 많이 사오셔서요…양이 너무 많아서 할머니랑 저랑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해서요." 어색한 웃음의 진아였다.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아, 온 김에 너도 음료수라도 몇 병 챙겨가." 성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하며 말했다.
"아, 아녜요. 저 너무 심심해서 그런데…여기서 좀만 오빠랑 얘기하다 가면 안 돼요?" 은근슬쩍 물어보는 진아였다.
"아… 뭐…안 될 것도 없지. 그럼 앉아."
성준은 진아에게서 건네 받은 딸기를 냉장고에 넣고는 음료수를 꺼내 진아에게 주었다.
"아… 근데… 오빠가 좋아하신다던 그 여자분은… 병문안 안 와요? 어째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서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진아가 물었다.
"아…… 원래 오늘 오기로 했었는데… 오늘 좀 바빴는지 다음에 오기로 했어." 수화 생각에 쓸쓸한 표정으로 성준이 대답했다.
"근데…오빠 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여요… 혹시…무슨 일 있는거예요?" 은근슬쩍 떠보며 묻는 진아였다.
"…무슨 일은… 그런 거 없어. 내 걱정해주니까 고맙네." 진아를 보며 씨익 웃는 성준이었다.
"오빠, 제가요… 학교다닐 때 심리학 공부도 좀 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 조금만 해두 그 사람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다 알 수 있겠더라구요. 그러니까…오빠두 혹시… 무슨 고민있으시면 저한테 털어놔보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해드리는 조언이… 오빠가 좋아하는 그 여자친구분이랑 잘 될 수 있게 해주는 해결책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은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성준의 눈을 바라보는 진아였다.
진아의 말에 조금 고민을 하던 성준은 이내 말 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그 친구 말야… 나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하는 행동 보면… 그 아이도… 나한테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내가 다쳐서 잘해주는건지, 아니면 진짜로 나한테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겨서 그러는 건지…잘 모르겠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털어놓는 성준이었다.
진아는 성준의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고민을 털어놓았다면…그 사람을 믿는다는 뜻인데…그럼… 성준오빠는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거잖아? 훗. 내 작전이 성공하는 건, 이제 시간 문제겠어…!!'
"음… 이렇게 오빠가 헷갈릴 정도면. 제가 드는 생각은…딱 한 가지예요." 진아가 조심스러운 척 하며 말했다.
"한 가지? 그게… 뭔데?"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진아의 대답을 기다리는 성준이었다.
"…음… 다쳐서…잘해주는 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두… 그 여자분이 병문안 오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구요… 그리구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오빠를 헷갈리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안 그런가요?"
진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성준이었다.
"아냐. 수진이 네가 못 봐서 그렇지, 병문안 자주 왔었어. 근데 최근에… 조금 변한 것 같아서…그게 걱정이 되었던 거야. 혹시나 무슨 일 있었나…하고." 성준이 소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그, 그래요? 근데요… 전에 병문안을 자주왔다가…최근에 좀 뜸해지고… 그런거라면… 그동안 오빠한테 미안해서… 왔던 것 아닌가…싶은데요?" 진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성준은 진아의 말에 생각을 되 짚어보기 시작했다.
'… 수진이 말이 맞을 수도 있겠어… 그러고보니 그동안 난 내 생각만 했었네… 수화가 부담스러울 거라는 생각은…못 했어. 근데 수화 표정은… 그래도 나한테 조금은 진심으로 마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혹시… 그런 적 있지 않아요? 여자분이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말을 돌리거나 할 때요."
고민에 빠진 성준에게 더더욱 일격을 가하는 진아였다.
진아의 일격에 오늘 수화와 했던 통화가 생각나는 성준이었다.
'오늘 수화가 분명…무슨 할 말이 있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언제 퇴원하냐고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긴 했단 말야. 좀 이상하긴 했어….'
성준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진아였다.
"오빠, 그 여자분이 미안해서 말하기 망설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근데! 제 말이 백 퍼센트 맞는 건 아닐지도 몰라요… 일단… 잘 생각해 보시구요… 오빠가 필요하시면 다음에 또 조언해 드릴게요. 오빠가 그 여자분하고 잘 되고 싶다고 하시면, 제가 또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요."
살짝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한 뒤 병실 밖을 빠져나가려는 진아였다.
"수진아. 잠깐만." 막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 진아를 다급하게 부르는 성준.
"네?"
"너희 할머니… 몇 호에 입원해 계셔? 정말… 또 상담해 줄 수 있어?" 기대하는 표정의 성준이었다.
"음, 당연하죠. 학교 선배시니까… 아, 근데 어쩌죠? 저희 할머니… 모르는 사람이 병실에 오는 거 싫어하셔서요…그래서 병실 몇 호인지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대신 핸드폰 번호 알려드릴게요."
미소를 지으며 성준에게 다가가 번호를 남기고 다시 병실 밖으로 사라지는 진아였다.
진아가 나가고 난 뒤에도 성준은 수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통화를 할 때, 수화가 망설였던 것은 자신에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미안해서 꺼내지 못했던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에 착잡해지는 성준이었다.
***
병원 밖으로 나오며 통화를 하는 진아.
"저예요. 정진아. 일은 잘 되고 있어요. 하성준씨가… 저에 대한 신뢰가 아주 크더라구요. 그래서 뭐 곧 솔아씨가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미소를 지으며 진아가 말했다.
[정말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솔아가 대답했다.
"은혜랄 것 까지야… 저도 솔아씨랑 성준씨랑… 잘 되는 모습 보면 좋죠. 아, 근데… 이제부터가 시작이거든요. 솔아씨가 앞으로 제가 하라는 대로 임무를 잘 수행하셔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진아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당연하죠.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나갈게요. 그러니까 새벽이든 아침이든 꼭 좀 연락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솔아가 간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진아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한수화. 내가 너 잘 되는 꼴. 절대 못 봐. 선배한테 했던 짓… 다 갚아줄 거야. 천천히… 그리고 아주 가슴 깊은 곳까지 아프게 만들어 줄거야." 웃음을 멈추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진아였다.
============================ 작품 후기 ============================
이지시스 독자님, 어서오세요! 그녀의 요상한 판타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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